# 88
“거기 이병 아저씨. 조심해서 쏴요. 유리 다 깨면 놈들이 더 많이 들어가잖아”
무전을 보내 봤지만, 이병은 제대로 듣고 있지 않은 것 같았다. 어쩌면 흥분해서 안 들리는 상태인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헬기에서는 쉴새 없이 총탄이 쏟아지고 간간이 미사일이 날아들었다. 그러면서 제대로 좀비를 잡는 것도 아니었다.
‘저러다 총열 못 견딜 것 같은데.’
<거기 상황 정리해. 여기 이병은 내가 진정시킬게>
“부탁드릴게요.”
다행히 박 준위가 상황 파악을 하고 이병을 진정시키기 위해 고도를 높였다.
일단 쏠 수 없는 위치로 가서 녀석을 진정시키려는 생각으로 보였다.
옥상의 사람들은 그런 상황을 알 수 없었다.
그들이 보기에는 총알과 미사일을 퍼부으면서 밑의 좀비를 잘 잡던 헬기가 갑자기 방향을 틀어 위로 올라가는 것으로 보일 뿐이었다.
사람들은 살려달라고 소리치면서 난간으로 달려나갔다.
저러다 추락하는 사람도 나올 분위기였다.
타 타 탕~~~
장동건이 공포를 쐈다.
몇 명은 비명을 지르며 바닥에 엎드렸고, 몇 명은 장동건을 돌아보며 얼어 버렸다.
그리고 그들은 그때야 헬기에서 사람이 한 명 내렸던 것을 기억했다.
비록 군복도 안 입은 상태로 전투 조끼를 입고 총을 들고 있는 장동건이었지만 그걸 인지할 만한 정신을 가진 사람은 없었다.
“군인 아저씨. 살려 주세요.”
“또 오는 건가요? 몇 명이나 오나요?”
사람들은 장동건에게 달려오면서 저마다 소리를 지르고 있었다.
거기 잡히면 큰일 날 것 같아 장동건은 뒤로 물러서며 다시 한번 하늘로 공포 사격을 했다.
타 타 탕~~
놀란 사람들이 제자리에 멈춰 서자 장동건이 이때다 싶어 외쳤다.
“여러분. 구출하러 왔습니다. 진정하세요. 저는 선발대로 정찰하러 온 겁니다. 나머지는 나중에 올 겁니다”
일부는 얼굴이 펴졌고 일부는 여전히 걱정하는 얼굴이었다.
하지만 일단은 더 달려들지는 않았다.
‘거짓말은 아니잖아!’
자신의 온 목적이 거짓말이어서 그렇지, 정찰하러 온 것도 맞고 나중에 사람들이 올 것도 맞았다.
쌀이 없어도 이주할 사람들이 있으면 어차피 와야 하는 것이었다.
그때 헬기가 다시 접근했다. 그리고 이번에는 차분히 사격하는 것이 보였다.
총열의 과열을 피하면서 적당하게 끊어 쏘고 있었다.
더는 쓸데없이 미사일이 날아 오지도 않았다.
장동건이 사람들을 뚫고 난간으로 다가가 밑의 상황을 확인했다.
“준위님. 아까 그 많던 놈들 다 어디 갔어요? 설마 여기로 다 들어온 거 아니죠?”
<다는 아니고 대부분 들어 간 거 같은데…>
한숨이 절로 나왔다.
자신의 뺨을 한번 두드린 장동건이 뒤로 돌아 사람들을 바라봤다.
다시 보니 대략 20명 남짓이었다.
그들은 장동건을 기대에 찬 눈으로 바라보고 있었다.
헬기가 다시 와서 사격하자 분위기도 아까보다 많이 진정되어 있었다.
“상황설명이 필요합니다. 대표 한 분만 나와주세요”
사람들은 서로를 둘러 보더니 50대의 남자 한 명을 앞으로 밀어냈다.
마지 못해 앞으로 나온 그는 자신이 이곳 농협의 지점장이라고 소개했다.
장동건은 일단 좀비의 처리가 우선이었다.
양곡의 확인은 그다음의 일이었다.
“일단 급한 것부터 질문하겠습니다. 간단하게 대답해 주세요”
고개를 끄덕이는 지점장에게 건물의 간략한 구조와 아래 얼마나 좀비가 있는지 물었다.
지점장은 이 건물이 3층이고, 1층은 농협마트와 농협은행, 2층 일부도 농협은행, 3층은 농협 지점 사무실이라고 했다.
현재 좀비는 1층의 마트와 은행에 들어와 있는 상태라는 것이었다.
“여러분들은 어디 계시다 오신 건가요?”
“저희는 3층에 있다 왔지요”
“여기 창고도 있다고 알고 있습니다만?”
“마트 재고 창고요?”
“아뇨. 정부 양곡 창고요.”
“아. 그건 여기 건물 반 세 층 전부 다입니다. 마트와 은행, 지점이 나머지 반을 쓰는 거고요.”
‘아싸. 제대로 왔다.’
다시 장동건이 질문을 하려는 참이었다.
<2층 창가에서 구조신호를 보내는 사람들이 있는데?>
이건 무슨 소린가 싶었다.
여기 있는 사람들은 3층에 있다가 왔다고 했다.
2층에 왜 사람이 있고 구조신호를 보낸단 말인가?
“저기요. 여기 2층에도 사람들 있어요?”
“어, 그게…….”
지점장은 말을 바로 하지 못했다.
그 모습에 장동건이 총을 들었다.
“빨리 말 안 해요?”
“하겠습니다. 총은 좀 내려 주세요. 2층에는 저희 사람들이 아니라…….”
3층의 사람들은 농협과 은행, 마트의 직원들과 그 가족들만이었다.
2층 사람들은 그 외 몇 명씩 피난 온 사람들이 모여 산다는 것이다.
그 인원이 서른 가까이 된다고 했다.
“아니 씨발. 그럼 지금 그 사람들 버리고 여기로 도망 왔다는 건가요?”
“그게… 그 사람들은 여태 자신들 끼리 잘 싸워 왔고…….”
“뭔 개소리야? 그래서 그 사람들 놔두고 당신들만 살겠다고 왔다고? 가만 그 사람들은 왜 안 올라와? 당신들 혹시 3층으로 통하는 문 잠근 거야? 그런 거야?”
“그게…….”
“이런 씨발것들.”
장동건은 옥상 문으로 달렸다.
밑에 몇 명이 살아 있는지는 모르지만 일단 구조신호를 보내는 사람들은 구하고 볼 일이었다.
“준위님. 몇 명이나 보여요?”
<창가에 있는 사람은 10여 명? 어. 잠깐. 저 안쪽에서 싸우는 것 같은데? 좀비들도 올라왔나 본데?>
지점장은 그 사람들이 여태 잘 싸워 왔다고 하긴 했다.
하지만 아까 본 그런 규모의 좀비 떼를 싸워 이길 수 있는 사람은 자신 일행 정도의 진화자 밖에 없었다.
마음이 급했다.
문에 도착한 장동건이 손잡이를 돌리는데 문은 열리지 않았다.
“씨발 이 건 또 뭐야? 왜 안 열려?”
저들이 잠갔거나 자동으로 잠긴 것일 것이다.
아까 그 상태의 사람들이 문을 잠갔을 것 같지는 않았다.
자동으로 잠긴 것이다.
저 사람들이 열쇠를 안 가지고 있다면 저들도 함께 옥상에 갇힌 신세였다.
장동건이 돌아보며 소리쳤다.
“거기 지점장 아저씨. 이거 열쇠 있어요? 있으면 빨리 내놔요.”
지점장은 주저주저했다. 있지만 주기 싫다는 의미였다.
시간이 없는 장동건이 총을 들었다. 몸 아무 곳이나 맞추고 뺏을 작정이었다.
“당장 안 주면 쏠 겁니다. 빨리 내놔요. 하나. 둘.”
셋을 세기 직전이었다.
지점장의 옆에 있는 젊은 여자가 갑자기 지점장의 얼굴에 펀치를 날렸다.
농협 은행 유니폼을 입은 것으로 봐서 행원인듯했다.
이가 부러지고 코가 깨지면서 피를 뿌리며 뒤로 넘어간 지점장에게 그 여자가 달려들어 품을 뒤졌다.
그리고 뭔가를 빼 들고는 장동건에게 달려왔다.
“마스터키에요. 모든 문을 열 수 있어요.”
문을 열고 들어간 두 사람은 3층으로 내달렸다.
“왜 그랬어요?”
“2층에 구해야 할 남자가 있어요”
“알겠으니까 키 주고 여기 있어요. 위험해요”
“일단 안전한 곳까지만 안내할게요”
그녀는 2층으로 바로 내려가지 않고 3층으로 들어가는 문으로 향했다.
계단에서 3층 내부로 들어가는 문 역시 잠겨 있었다.
“왜 2층으로 바로 안 가고요?”
“2층의 비상문은 막혔어요. 안 열려요. 1층도 마찬가지고요”
아마도 자신들의 안전을 위해 문을 고장 내놓은 것 같았다.
그녀가 키로 열고 들어간 문은 안에서 패닉바로 눌러 여는 문이었다.
닫히면 바가 없는 쪽에서는 열 수 없는 문이었다.
장동건이 급하게 내려오느라 보지 않았지만 옥상 문도 같은 방식이었다.
“따라 오세요”
그녀는 복도를 달렸다.
장동건이 달리며 돌아본 좌우는 원래는 사무실이었던 것으로 보였다.
집기는 한쪽으로 밀려나 있고 안에는 사람들이 생활하던 흔적이 남아 있었다.
1층에 있다는 농협마트에서 가져 왔는지, 잡다한 물건들이 보였다.
복도를 달리는 그녀는 몇 번을 꺾었다.
건물이 제법 크더니 내부 복도가 은근히 복잡했다.
그녀가 굳이 안내하겠다는 이유가 있었다.
큰 방화문 앞에 도착한 여자는 잠금장치를 풀고 문을 열려 했다.
그녀를 장동건이 잡았다.
“이 문 열면 2층으로 내려가나요?”
“네”
“1층으로도 통하고?”
“네. 왜요?”
“잠깐만요”
장동건이 문에 귀를 대고 소리를 들었다.
아직 바깥에서는 헬기가 공격하고 있었다.
그 헬기 소리와 총소리 때문에 소리가 잘 들리지는 않았다.
잠깐 귀를 대고 있자니 그르렁 소리가 들리는 것 같았다.
문 너머에 좀비가 있는 듯했다.
뒤로 물러나서 문 열리는 방향을 확인했다. 안으로 열리는 문이었다.
“신호하면 문 열고 바로 문 뒤로 숨어요. 절대로 먼저 들어가면 안 돼요”
장동건이 문에서 3m 정도를 물러나 섰다.
여자는 그런 그를 보고 긴장한 채 도어핸들을 돌렸다.
견착한 장동건이 여자에게 고개를 까딱했다.
그녀는 신호와 함께 문을 활짝 열어 재치면서 끝까지 열어 문과 벽틈에 숨었다. 나름 영리한 편이었다.
그리고 장동건은 문 앞에서 막 이쪽으로 고개를 돌리는 두 놈의 좀비를 볼 수 있었다.
탕 탕~
두 발을 쏘고 앞으로 달렸다. 놈들이 더 있다면 들어오지 못하게 해야 했다.
문을 1m 정도 앞에 뒀을 때 한 놈이 문 뒤에서 튀어나왔다.
너무 가까웠다.
거의 총구가 놈의 얼굴을 찌를 정도였다.
탕~~~
총알이 발사되었을 때는 총구가 놈의 눈에 거의 닿기 직전이었다.
놈의 눈이 터지고 뒤통수가 터지면서 총신이 터진 눈을 파고 들어갔다.
“에이. 이건 또 뭐야?”
발로 놈을 차서 빼려는데 바로 뒤에 또 한 놈이 들어오려 했다.
장동건은 총에 걸린 놈을 차려다 말고 방아쇠를 당겨 놈을 잡았다.
죽은 좀비를 총에서 빼내면서 문 안으로 달려들었다.
들어가서 보니 계단에서 올라오는 놈들이 있었다. 일단 보이는 것은 열셋.
다행히 계단이 넓지 않아서 횡으로 서넛 밖에 못 올라오고 있었다.
그런 놈들을 잡는 것은 일도 아니었다.
처음에 보인 열셋을 거의 잡을 때쯤 또 한 덩이의 뭉치가 올라왔다.
그리고 그 뭉치를 다 잡을 때쯤 더 많은 놈들의 뭉치가 올라왔다.
벌써 선 자리에서 탄창 두 개를 거의 소진하고 있었다.
‘씨발. 얼마나 많은 거야? 헬기에서 별로 잡은 게 없나?’
이대로 전진을 못 하면 2층 사람들을 구하기 힘들어진다는 생각이 번뜩 들었다.
무리해서라도 내려가야 했다.
계단의 중간에는 창문이 있었다. 그리고 다행스럽게도 그곳은 남쪽 벽면이었다.
세 번째 탄창을 끼우면서 박 준위를 불렀다.
“준위님. 거기서 건물 중간에 있는 계단 창 보이세요?”
잠시 후 대답이 들려왔다.
<보이네. 총구 화염도 번쩍이는 거 보여>
“거기 3층과 2층 사이 창으로 미사일 한 발만 쏴 주세요”
<알았어. 잠시만>
헬기가 움직여 위치를 잡는 것 같았다. 그리고 이병의 목소리가 들렸다.
<선배님. 준비됐습니다. 신호 주시면 쏘겠습니다>
“아저씨. 이번에는 잘 쏴야 해요. 정확하게”
<걱정하지 마십쇼>
장동건은 총을 쏘며 뒤로 물러났다.
문 옆에 서서 보이는 놈들을 순식간에 잡고 문 안으로 들어가며 소리쳤다.
“문 닫아요”
여자는 계속되는 총소리를 듣다가 갑자기 문 닫으라는 소리를 들었다.
무슨 일인지 모르지만 듣는 것과 동시에 있는 힘껏 문을 밀고 나왔다.
장동건은 문이 닫히는 동안에도 사격을 멈추지 않았다.
보이는 틈이 급속하게 좁아졌지만, 혹시라도 놈들이 들어올까 봐 계속 총알을 날리고 있었다.
쾅~~
거의 문이 닫히기 직전까지 총을 쏜 장동건은 문이 닫히자마자 무전을 보냈다.
“지금이에요”
말과 함께 장동건은 달렸다.
문 옆에 서 있는 여자의 손을 잡아끌고 문에서 조금 떨어진 곳까지 달려 벽을 등지고 섰다.
그리고 귀를 손으로 막았다.
콰앙~~~
실내에서 터지는 미사일의 폭음은 엄청났다.
방화문은 그 폭압을 견디지 못하고 열리면서 앞으로 날아갔다.
동시에 화염과 먼지가 훅 들어왔다.
장동건은 화염이 사그라지면서 먼지를 뚫고 다시 계단으로 들어갔다.
그곳에는 당장 보이는 좀비가 없는 것을 확인하고 여자에게 소리쳤다.
“거기 있어요. 난 2층으로 갈 테니까.”
장동건이 계단을 달렸다. 귀가 먹먹했지만 그래도 소리는 어느 정도 들렸다.
하지만 여자는 그렇지 못했다. 순간 고막이 나갔는지 아무 소리도 들리지 않았다.
그리고 그녀는 달려 내려가는 장동건을 따라 달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