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89
2층에 내려간 장동건은 어째서 좀비들이 그 안에 있는지 알 수 있었다.
방화문 자리에는 철문이 아닌 깨진 유리문이 설치되어 있었다. 그리고 그 안으로는 바로 농협은행이었다.
대충 보기에 외환창구, VIP 창구 그런 글자들이 보이고 몇 개의 방이 보였다. VIP 상담룸이나 은행의 사무실 그런 것들이었다.
입구를 막아 놓았던 집기로 보이던 것들이 폭발에 날아갔는지 사방에 흩어져 있었다.
그리고 안에는 바닥에서 버둥거리는 좀비 몇 놈과 이미 죽어있는 몇 놈이 보였다.
그리고 여전히 웅웅거리는 귀를 뚫고 좀비들이 지르는 소리와 뭔가가 부서지는 소리가 들여왔다.
방 안에서 나는 소리 같았다.
계단을 살짝 내려가 1층 쪽을 슬쩍 확인했다. 계단 옆으로 보이는 곳에 몇 놈이 돌아다녔지만, 다행히 아직은 올라오는 놈들이 없었다.
하지만 소리로 봐서 안 보이는 곳에 훨씬 많은 놈이 있는 것이 분명했다.
다시 은행으로 들어가려고 몸을 돌린 장동건은 깜짝 놀랐다. 아까 그 여자가 문 앞에 서 있는 것이었다.
달려가 구석으로 잡아끌면서 속삭였다.
“어? 왜 여기 있어요? 내려오지 말라니까?”
여자는 눈만 끔벅 거리고 잠시 있더니 큰소리로 외쳤다.
“안 들려요!”
장동건이 급하게 여자의 입을 막고 객장을 들여다봤다. 다행히 달려 나오는 놈은 없었다.
그녀가 소리치지 못하게 입을 막은 채로 다시 물었다.
“안 들려요?”
장동건의 입을 본 그녀는 무슨 말인지 몰랐지만 일단 고개를 저어 안 들린다는 표시를 했다.
귀를 막았던 자신도 아직 소리가 웅웅거리는데 그녀는 귀를 막지도 않았던 것이 생각났다.
“어휴. 고막 나갔나 보네.”
다시 그녀를 잡아끌고 3층으로 올라가려는 참이었다. 밑에서 그르륵 거리며 놈들이 올라오는 소리가 들렸다.
3층까지 갔다 오다가는 아까의 상황이 재현될 판이었다. 차라리 여자와 함께 2층으로 들어가는 편이 나았다.
타타탕 타타탕
안으로 달려 들어가면서 바닥을 기는 놈들을 쏴 버리고 객장 전체를 훑었다.
일단 보이는 곳에는 놈들이 더 이상 없었다. 슬쩍 들여다본 창구 안도 깨끗했다.
가능한 한 빨리 사람들을 구하고 입구를 막아야 했다.
안쪽으로 들어가는 복도를 통해 제일 앞에 보이는 방으로 달렸다.
VVIP 어쩌고 쓰여 있는 문은 이미 박살 나 있었다. 아직 안이 보이지 않았지만 가까이 가니 놈들의 소리가 확실하게 들렸다.
문 앞에서 총구를 돌리며 안을 확인했다.
소리를 지르며 사람들에게 달려드는 놈들이 다섯, 그들에게 의자, 옷걸이 등을 들고 대항하는 사람이 셋, 바닥에 피를 흘리고 쓰러져 있는 시체가 보이는 것만 일곱이었다.
타 타 탕 타 탕
막 사람을 물기 직전인 놈부터 시작해서 순식간에 다섯의 대가리에 총알이 날아들었다.
그 자리에서 풀썩 주저앉는 놈, 자신이 덤비던 사람에게 쓰러지는 놈들의 모습에 남아있던 사람들은 순간 어리둥절했다.
그리고 곧바로 문 앞에 총 든 남자를 보고는 구출병력이 안으로 들어왔다가 생각했다.
안 그래도 들려오는 헬기 소리와 총소리에 기대하고 있었던 것이다.
장동건은 자신에게 달려오는 사람들이 뭐라고 소리치는데 정확하게 들리지 않았다. 그렇다고 그들과 차분히 얘기하고 있을 상황이 아니었다. 사람들이 비교적 멀쩡한 상태임을 확인하고 외쳤다.
“1층 놈들이 올라와요. 따라와요.”
남은 탄창은 두 개. 총에 있는 것까지 다 써도 좀비들을 다 잡을 수 있을지 알 수 없었다.
빨리 안전한 방으로 들어가서 농성해야 했다.
복도로 달려 나오자 입구로 막 들어오는 여섯 놈이 보였다. 그 뒤로도 더 들어 올 것이 분명했다.
“잡아 줄 테니까 안전한 방을 찾아요.”
타타탕 타타탕
여섯 발의 총성과 함께 들어오는 놈들은 대가리를 잃고 쓰러졌다. 동시에 뒤를 흘깃 보자 세 사람과 여자가 다른 방으로 달려가는 것이 보였다.
그리고 다시 앞을 보고 들어오는 놈들을 쏘며 복도를 따라 뒷걸음질을 쳤다.
“준위님. 준위님 나오세요.”
<어. 동건 씨. 왜?>
“저 총알이 모자랄 거 같아요. 1층에서 올라오는 놈들 막아야 할 것 같은데 거기서 아까처럼 해 줄 수 있어요?”
<2층하고 1층 사이 창으로 말이지?>
“네.”
<각이 안 나와서 깊게는 안 들어갈 거야>
“그럼 서너 발만 쏴 주세요. 아예 계단이 무너질 정도로.”
<알았어>
그때 이병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미사일 세 발 밖에 안 남았습니다>
장동건이 탄창을 갈고 새로 보이는 방 안의 좀비 다섯에게 총알을 날리며 물었다.
그 방에는 좀비만 다섯이 바깥의 소란은 아랑곳하지 않고 시체를 뜯어 먹고 있었다.
“그럼 총알은 얼마나 남았어요?”
<모르겠습니다. 하지만 많지는 않습니다>
다시 입구를 바라보고 들어오는 놈들을 쏘며 잠시 생각하고는 다시 박 준위에게 물었다.
“1층 안쪽으로 미사일 들어갈 수 있어요?”
<들어가도 얼마 못 들어갈걸. 각이 안 나와. 도로가 넓으면 고도를 낮추겠는데, 여긴 좁아서 건물에 걸려>
“최대한 안쪽으로 두 발만 날려 주시고요. 계단에 한 발 날려 주세요. 그리고 나머지 총알은 전부 계단으로 쏴주세요.”
각이 안 나와 안쪽으로 깊게 못 들어가도 폭압으로 놈들을 날려 버릴 수 있을 것이라는 생각이었다.
얼마나 있는지 모르지만, 꽤 많은 놈을 잡을 수 있기를 기대했다.
나머지 한발은 지금 계단에 있는 놈들을 날려 버리기 위한 것이다.
그리고 총알은 어차피 안 맞는 거 계단을 견제만 해 주면 다행이었다.
말을 하면서 다시 또 다른 방에서 튀어나오는 놈들 셋을 잡았다.
그 방에는 두 명의 살아있는 사람과 한 명의 경련하는 사람이 보였다.
앞서갔던 네 명은 어디로 갔는지 보이지 않았다.
하지만 장동건은 그들을 찾고 있을 수 없었다. 입구에서는 또 다른 놈들이 들어오고 있었다.
* * *
박 준위는 난감했다. 밑으로 내려갈 수만 있다면 1층에 있는 놈들을 더 잡을 수 있을 텐데 도로 폭이 기껏 10m 정도밖에 되어 보이지 않았다. 수리온의 로터 지름이 16m 정도니 건물 사이로 들어가는 것은 불가능했다.
기관총은 바깥의 놈들에게나 쏘고 있을 뿐, 건물 내부 놈들에게는 무용지물이나 마찬가지였다. 그래도 최대한 각도를 만들면서 비행하고 있는데 장동건의 요청이 들어온 것이다.
어차피 쏴야 하는 미사일이라면 최대의 효과를 내는 것이 좋았다.
잠시 고민하던 박 준위가 아까의 계단 창이 정면으로 보이는 위치로 옮겼다. 한 층 아래의 창을 쏴야 했기에 각은 훨씬 안 나왔다. 아무리 깊게 쏴도 안으로 2~3m 정도 밖에 못 들어갈 것 같았다.
“들은 대로 한 발 날려줘”
박 준위의 말에 이병은 조심스럽게 겨냥해서 한 발을 쏘아 넣었다. 다행히 정확하게 계단 창을 통해 들어간 미사일은 큰 폭음과 함께 터져나갔다. 그리고 다음 발을 준비하는데 헬기가 붕 떠오르며 위치를 바꾸는 것이었다. 헬기는 농협 건물 앞의 사거리 위로 기수를 돌렸다.
갑자기 헬기가 위치를 옮기자 이병은 왜 그런가 어리둥절했다. 하지만 잠시 후 들려오는 박 준위의 목소리에 이유를 알 수 있었다. 그리고 이번에는 이병이 난감해져야 했다.
“이곳 사거리에서 고도를 낮출 거야. 로터는 가까스로 안 걸릴 것 같아. 자네는 여기서 사선으로 미사일을 저 안에 꽂아 넣어야 해. 할 수 있겠어?”
말과 함께 헬기는 진짜로 서서히 내려가기 시작했다. 이병이 보기에 자칫 잘못하면 사방 건물 어딘가에 걸릴 것 같았다. 로터가 걸리기라도 하면 자신과 박 준위는 세상 하직하는 것이었다. 미사일이 발사되면서 헬기가 밀리기라도 하면 역시 마찬가지였다.
등에서 식은땀이 쫙 흘러나오기 시작하면서 정신이 바짝 들었다. 토우미사일을 쏴 보기는커녕 오늘 처음 만져봤는데 아까보다 난이도가 훨씬 올라간 것이다.
아까는 목표 지점이 기껏 해봐야 10m도 안 됐었지만 지금은 30m 정도였다. 거기에 미사일은 사선으로 들어가야 했다. 자신이 아까 처음에 날린 미사일로 농협마트의 쇼윈도가 전부 박살 나 있기는 했다. 하지만 빗나가면 인도나 건물 벽을 때릴 수도 있었다.
“해 보겠습니다.”
“자네가 잘못하면 저 안에 사람들 다 죽어. 그것만 명심해.”
심각하게 조준하는 이병의 눈에 마트에서 튀어나와 헬기로 달려오는 몇 놈이 보였다.
하지만 그놈들을 신경 쓸 여유는 없었다. 조준에 집중하는 그의 귀에 다시 박 준위의 말이 들렸다.
“저놈들은 신경 쓰지 마. 가까이 오면 올라가면 되니까.”
박 준위는 가까스로 헬기를 사거리 안에 구겨 넣고서 자칫하면 큰일이 날 수 있는 상황에서도 침착했다. 그런 그의 목소리를 들은 이병은 마음이 차분해 지는 것 같았다.
그리고 곧 화염을 뿜으며 날아가는 미사일이 두 사람의 눈에 들어왔다.
콰아아앙~
농협 마트 안으로 들어간 미사일이 굉음과 함께 터졌다. 건물이 부르르 떨리는 것 같았고 옥상에 걸려있던 간판이 떨어져 내렸다.
헬기로 달려오던 몇 놈은 뒤에서 터지는 소리에 놀라 주춤하더니 방향을 바꿔 다른 곳으로 달리기 시작했다.
놈들은 고소한 냄새의 인간 둘을 잡기보다는 알 수 없는 굉음을 피하고 싶었던 것 같았다.
마트에서 뿜어져 나오는 먼지가 약간 가라앉았을 때, 이병은 다시 한발을 날렸다. 그리고 그것도 운이 나쁘지는 않았는지 마트 안으로 들어가 다시 한번 엄청난 폭음을 울렸다.
그리고 헬기는 다시 아까의 계단이 보이는 곳으로 위치를 옮기고 남은 기관총탄을 쏟아 넣기 시작했다.
두 사람은 부디 장동건이 잘해주길 바랄 뿐이었다.
* * *
다시 입구의 놈들을 몇 마리 잡고 있는데 또다시 엄청난 폭음과 함께 입구에서 화염이 훅하고 들어왔다.
그 폭압에 입구 앞에 서 있던 몇 놈이 사방으로 날아가는 것도 보였다. 그중 한 놈은 재수 없게도 장동건을 향해 똑바로 날아오고 있었다. 비록 놈이 몸을 못 가누고 정신을 못 차리고 있었지만 놔둬서 좋은 일이 아니었다.
탕~
놈은 공중에서 머리가 날아갔다.
미사일이 터지고 놈의 머리가 날아가기까지는 순식간이었다. 아직 입구에는 화염이 남아 있었고 먼지와 파편이 쏟아져 들어오고 있었다. 장동건은 그것들을 뚫고 입구로 달렸다. 폭풍에 날아가 어딘가 처박힌 놈들을 끝내야 했다.
달려간 장동건이 찾은 놈들은 전부 셋이었다. 한 놈은 상체가 하체가 분리되어 외환창구에 걸쳐져 있었다. 나머지 두 놈은 창가 코너 깊숙이 포개져 바들바들 떨고 있는 게 놔둬도 죽을 것 같았다. 총알이 아까워 그냥 둘까 생각이 순간 들었지만, 확실히 하는 게 좋았다.
탕 탕~
다시 돌아온 장동건은 아까의 방 안에 들어가 경련하는 사람을 바라보았다.
물린지 얼마나 되었는지 모르지만 길어봐야 한 시간 이내였다.
“이 사람 좀비 되는 거 아시죠?”
폭음에 정신이 나갔는지 정신을 차리지 못하고 있는 두 생존자에게 물었는데, 대답이 없었다.
쫙~
한 사람의 따귀를 때렸다. 시간 없는데 정신 들기를 기다릴 수는 없었다.
따귀를 맞고 겨우 정신이 든 사람에게 다시 물었다.
“이 사람 제거해야 합니다. 좀비가 될 거예요. 그거 아세요?”
“아, 압니다. 저희도 압니다.”
다행히 그들에게 구구절절 설명할 필요는 없었다. 장동건은 더 이상의 대화 없이 경련하는 사람에게 총알 한 발을 먹이고 방을 나섰다.
나오자마자 달려드는 좀비 한 놈을 쏴버리고는 따라 나오는 두 사람에게 물었다.
“여기 방이 전부 몇 개예요? 사람들 어디 숨었는지 아세요?”
“이 뒤로 세 개 더 있습니다. 대부분 사람은 아까 서류실로 들어갔었습니다.”
“안내하세요.”
남자가 앞장서 달려나가려는 순간이었다. 건물이 울리며 다시 한번 폭음이 터져 나왔다.
발밑이 부르르 떨리고 천장의 형광등이 퍽퍽 터지는 것이 제대로 들어와 터진 것 같았다.
“잠깐 정지. 이리로.”
장동건이 바로 옆 방의 책상 밑으로 달려들었다. 두 사람도 무슨 뜻인지 알고 바로 따라 들어가 자리를 잡았다.
그 순간 다시 한번 폭음이 울리고 천장에서 먼지가 우수수 떨어져 내렸다.
그 잠깐동안 장동건은 자신의 탄약을 확인했다. 탄창 한 개와 현재 탄창의 열네 발이 전부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