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좀비 에이지 백수 생존기-91화 (91/145)

# 91

“지원과 탄약이 왔어요. 저는 옥상으로 올라가야 합니다. 그런데 남은 총알이 네 발입니다. 누군가 같이 가 주셨으면 합니다.”

장동건은 눈앞의 진화자를 둘러봤다.

옥상에서 따라온 복싱 은행원, 첫 방에서 구한 두 남자, 탕비실에서 나온 남자 셋과 여자 둘, 그리고 자료실의 덩치.

이진성과 관장이 오는 동안 입구를 지키며 파악한 진화자들이었다.

옥상까지 가는 길은 무방비 상태에 놓여 있었다. 3층에서 비상계단으로 나가는 문과 계단에서 옥상으로 나가는 문은 패닉바가 눌리기만 하면 열린다. 놈들 몸이 문에 닿아 눌리기만 해도 열리는 것이다. 옥상의 좀비 중 일부라도 그렇게 간 놈들이라면 3층에도 놈들이 있을 수 있었다.

“제가 갈게요.”

복싱 은행원이었다. 그녀는 현역 실업 복싱선수라고 했다. 복싱선수 했던 여자 탤런트 아줌마를 연상시키는 사람이었다.

그녀는 신체 능력의 변화는 알았지만, 진화라는 개념을 알지도 못했다고 했다. 좀비와 직접 맞닥뜨린 것도 오늘이 처음이었다는 것이다.

그리고 자신이 좀비를 때려잡은 것에 스스로 놀라고 있었다.

자료실에 숨은 남자친구를 구하러 내려오지 않았다면 그녀는 지금 옥상에서 좀비가 되기 위해 경련 중일 수도 있었다.

귀는 아직 제대로 들리지 않지만, 웅웅거림이 없어지면서 작게라도 들리는 상태까지는 돌아왔다.

“마스터키 아직 가지고 계시죠?”

“그럼요.”

두 사람이 일어서는데 덩치도 같이 일어났다.

“저도 가겠습니다.”

그러고는 입구를 막고 있는 가구 뭉치로 걸어가 티테이블 하나를 뽑아냈다. VIP 상담실에 있던 것인지 고급스러워 보이는 원목 가구였다.

덩치는 테이블의 네 다리를 뽀작 뽀작 부러트리고는 상판을 들고 한번 휘둘러 보고 고개를 끄덕였다.

그리고 이내 입구를 막고 있던 가구들의 한쪽을 들어내 통로를 만들었다.

장동건은 혹시나 가구가 치워지면서 들어오는 놈이 있을까 바짝 긴장하고 겨냥하고 있었다.

다행히 들어오는 놈은 없었다.

통로가 뚫리며 재빨리 밖을 확인했는데 역시 보이는 놈은 없었다.

“제가 앞장서겠습니다.”

총을 앞세운 장동건을 선두로 세 사람은 달렸다.

계단에는 보이는 놈들이 없었다. 아래를 봤는데 미사일이 어떻게 들어왔는지 벽이 무너져 계단을 덮고 있었다.

아래에서는 아직 그르렁 소리와 뭔가가 움직이는 소리가 들려왔다. 놈들이 아래 있다면 불편해도 올라올 수는 있어 보였다.

고개를 빼고 위를 봐도 움직이는 놈들은 없었다.

“조용히 가는 겁니다. 밑에 놈들이 올라오면 곤란해요.”

두 사람은 발소리를 죽이고 계단을 오르는 장동건의 뒤에 바싹 붙었다.

3층에 도달한 장동건이 아까 날아간 방화문을 통해 안을 살폈다. 눈에 보이지는 않지만, 분명히 놈들의 소리가 들렸다.

놈들은 달큰한 사람 세 명의 냄새를 맡았을지도 모른다. 그렇다면 어딘가 숨어서 공격의 기회를 노리고 있을 것이 분명했다.

그냥 달려드는 것이 아닌 것으로 봐서 놈들이 많지는 않은 것이 확실했다.

“빌어먹을 놈들. 그냥 막 달려들면 더 편한데. 이럴 때 형님이 있으면 몇 마린지 바로 아는데, 쩝.”

조심스럽게 발을 옮기는 장동건을 뒤에서 보던 덩치가 잡았다.

덩치는 장동건의 사격 실력을 보지 못했다. 놈들을 다 쏴 죽이고 나서야 장애물을 허물고 나왔었다.

그는 자신이 자료실에서 들은 소리가 단발 사격이라고는 상상도 못 했다. 그저 연사로 갈겨서 놈들을 잡은 것으로 생각하고 있었다.

그리고 장동건이 들어가기 무서워 망설이고 있다고 생각했다.

“제가 앞으로 나설까요? 이런 곳에서 갑자기 튀어나오면 사격이 불리한 것 정도는 저도 알고 있습니다. 제가 이걸로 막으면 잡아 주세요.”

말과 함께 테이블 상판을 들고 앞으로 나가는 덩치를 장동건이 말릴 이유는 없었다. 평소에 김현희도 일행의 앞에서 방패로 먼저 막아 줬었기에 그냥 그러려니 했다. 그렇게 덩치의 뒤로 장동건과 권투 은행원이 따랐다.

덩치는 3층에 처음 올라와 본 사람이었다. 당연히 길을 모르는 그를 뒤에서 권투 은행원이 안내했다.

그녀는 자신의 귀가 잘 안 들려 목소리가 커졌다는 것을 인지하고 있었다. 그 때문에 일부러 소리를 내지 않고 덩치의 옷을 뒤에서 좌우로 잡아당겨 안내했다.

코너를 두 번 돌 때까지 놈들의 공격은 없었다. 이제 쭉 가서 한 번만 오른쪽으로 돌면 비상문이었다.

여자는 옷을 잡고 있던 손을 놓고 걸었다. 장동건도 놈들이 나오지 않자 자신이 소리를 잘 못 들었나 생각했다.

그러면서도 아직은 놈들이 숨을 방들이 있으니 조심스럽게 전진했다.

하지만 남자는 그렇지 못했다. 거의 다 왔다고 발걸음의 속도를 높였다. 그리고 남자가 두 사람과의 거리가 2m 정도 되었을 때였다.

크르르르

장동건이 순식간에 뒤로 돌았다. 그들이 막 지나온 코너에서 두 마리가 튀어나와 몸을 날리고 있었다.

탕 탕~

총성이 울리면서 그때야 여자와 덩치가 뒤를 돌아보았다. 그 순간 덩치의 양옆에서 두 놈이 달려들었다. 그리고 덩치의 뒤에서 한 놈이 코너를 빠져나와 달려들었다.

덩치는 왼쪽에서 달려드는 놈을 테이블 상판으로 후려쳤다. 놈은 장동건과 여자 쪽으로 날아갔다. 오른쪽 놈은 공간이 안 나와 때릴 수 없었다. 선 자리에서 상판으로 막고 벽으로 밀어붙여야 했다.

퍼억~

총소리와 거의 동시에 뭔가가 얻어맞는 소리에 다시 급하게 앞으로 고개를 돌린 장동건과 여자의 눈에 날아오는 좀비 한 놈이 보였다. 그리고 덩치는 다른 한 놈을 벽으로 밀고 있었다.

하지만 둘은 덩치의 뒤에서 그에게 달려들고 있는 다른 한 놈을 그의 몸에 가려 볼 수가 없었다.

탕 탕~

맞아서 날아오던 놈은 여자의 바로 앞에서 머리가 터져나갔다. 날아오던 놈을 피하면서 놈의 대가리에 스트레이트를 날리던 여자는 갑자기 놈의 머리가 터지면서 헛방을 날렸다. 그리고 동시에 바로 얼굴 앞으로 지나가는 총알을 느껴야 했다.

뭔가 화끈한 것이 지나가면서 급하게 뒤로 몸을 뺀 그녀는 덩치가 누르고 있던 놈의 대가리가 터지는 것을 볼 수 있었다.

장동건과 그녀, 좀비와 덩치는 거의 일직선이었다. 조금만 잘못했다면 여자의 코가 날아갔거나, 테이블 상판을 밀고 있는 덩치의 팔꿈치에 총알이 박힐 수 있었다. 그는 몸을 돌리면서 한 놈을 잡고 동시에 그 작은 틈으로 총알을 날린 것이었다.

눈앞의 사내가 신기해서 바라보는데, 그의 일그러지는 얼굴이 보이고 덩치의 비명이 들렸다. 덩치가 뒤로 달려들던 놈에게 어깨를 물리고 만 것이다.

“나 총알 없어요.”

여자는 장동건이 외치는 소리를 듣고 몸을 날렸다. 덩치는 등에 붙어 어깨를 물어뜯는 놈을 떼어내려고 발버둥 치고 있었지만, 놈은 떨어지지 않았다.

불과 2m 남짓의 거리는 순식간이었다.

앞으로 달리는 힘을 실어 뻗어가는 스트레이트와 덩치의 몸부림에 마침 여자 쪽으로 틀어지는 놈의 대가리가 만났다.

빠각~

여자의 주먹은 놈의 두개골을 부수고 박혔다.

놈이 떨어져 나간 덩치의 어깨는 뼈가 보일 정도였다. 가망은 없었다. 덩치를 문 놈은 검붉은 눈이었다.

“씨발.”

자신이 조금 더 조심했어야 한다는 자책을 하며 장동건이 욕을 뱉어내는데 저쪽 3층 입구에서 달려오는 소리가 들려왔다.

밑의 놈들이 올라온 것이었다.

“달려요.”

일단 덩치도 함께 가야 했다. 당장 총알이 없었다. 안전한 곳에 가서 변하기 전에 처리해야 했다. 이곳에 놔두고 가면 놈들의 숫자만 늘려 주는 것이었다. 더군다나 이런 괴력의 덩치가 변하면 피곤해 지는건 자신들이었다.

비상문을 열고 들어간 장동건과 덩치는 난감했다. 여자는 경험이 없어 몰랐지만, 덩치는 자신이 어떻게 될지 알고 있었다.

그리고 그 비상문은 저쪽에서 몸으로 밀기만 하면 열리는 문이었다. 문을 막고 서 있어야 했다.

“금방 갔다 오실 수 있습니까?”

덩치는 자신이 문을 막고 있기로 마음먹었다. 그리고 장동건이 위에서 총알을 가져와 자신을 끝내주길 원했다.

장동건은 고개를 끄덕하고 어깨를 한번 두드려 주고는 여자와 함께 계단을 올랐다.

* * *

“이놈은 왜 이렇게 안 와?”

관장과 이진성은 이미 옥상에 있던 놈들을 다 잡고 장동건을 기다리고 있었다. 착지했을 때 옥상에 남아 있던 놈들은 서른 남짓, 놈들을 처리하는 것은 순식간이었다.

그리고 옆 건물에서 드문드문 열댓 마리씩 넘어오는 놈들을 잡으면서 장동건을 기다리고 있었다.

“이럴 줄 알았으면 저도 헤드셋 하나 차고 올 걸 그랬어요. 다음부터 싸우다 버리더라도 일단 차고 출동할까 봐요.”

“영화 보면 방탄 헬멧에 부착되는 것 같던데 그렇게 하면 싸울 때 안 불편하지 않겠소?”

“오. 관장님 그런 영화도 보세요?”

“나도 그런 영화 보오.”

“관장님. 우리도 총 쏴 볼래요? 저놈들 총으로 잡을 수 있을까요?”

“총알만 낭비하오. 그냥 하던 대로 합시다.”

둘은 눈앞의 네 마리 남은 좀비를 설렁설렁 상대하며 실없는 소리를 하고 있었다. 그리고 그때 그들 뒤의 옥상 문이 벌컥 열리면서 장동건과 한 여자가 뛰어나왔다.

장동건은 바로 탄창이 들은 가방으로 달려들었다. 여자는 눈앞의 한 젊은 아저씨와 한 늙은 아저씨를 보고 당황했다.

‘무슨 구조대가?’

분명히 군용 헬기를 타고 왔고 군용무기를 가져온 사람들인데 복장도 그렇고 무기라고는 도끼와 장검이었다.

뭐 하는 사람들인가 싶은데 두 사람이 갑자기 눈앞에서 사라졌다. 그리고 급하게 고개를 돌린 그녀의 눈에는 순식간에 온몸이 분리돼서 사방팔방으로 날아가는 좀비 네 마리의 고깃덩이를 볼 수 있었다.

‘도대체 이 사람들 뭐지?’

그리고 여자는 2층으로 다시 내려가는 길에 셋의 엄청남을 다시 봐야 했다.

담담하게 덩치를 보내준 장동건은 여자가 열어준 문으로 들어가면서 바로 보이는 놈들을 잡아갔다.

두 아저씨는 방을 하나하나 뒤져 나오는 놈들을 박살을 냈다.

셋은 신속하고 정확했으며 잔인했다.

* * *

2층으로 내려온 관장과 이진성은 모여 있는 사람들을 확인하고 상황을 파악했다.

인원은 진화자 여덟에 일반인 스물둘이었다. 장갑차 세 대로 한 번에 이송할 인원이었다.

옥상에서 내려오는 것은 불가능했기에 위를 걱정할 필요는 없었다.

단 1층은 온통 다 뚫려 있어 놈들이 언제든 들어올 수 있었다. 1층에서 2층으로 오는 계단을 막아야 했다.

이진성과 장동건이 권투 은행원에게 양곡 창고에 관해 물었다. 나머지 사람들은 이곳에 피난 온 사람들이기에 그 존재도 모르고 있었다.

“건물 내부에서 통하는 길은 없어요?”

“없어요. 마트나 은행 직원들이 거기 갈 일도 없고, 유일하게 관련 있는 사람이 아까 그 농협 지점장이니까요.”

“참나. 결국 1층에 내려 가 봐야 한다는 말이네.”

“그런데 그동안 식량은 어떻게 해결했어요?”

“아까 옥상에 있던 지점장하고 남자들이 가서 가져왔어요. 여기 2층 사람들한테는 가져온 식량을 조금씩 나눠 줬고요.”

“그래도 야박하게 굴지는 않았나 봐요?”

듣고 있던 진화자 중 하나가 나섰다.

“야박하지 않은 건 아닙니다. 저희가 아래에서 올라오는 놈들을 막아줬기에 식량을 나눠 준거지요. 그렇지 않았다면 글쎄요.”

장동건은 아까 자신들만 살겠다고 3층 입구 문을 잠그고 도망친 지점장을 생각하며 그의 말이 맞는 것 같다고 인정했다.

그때 이진성이 물었다.

“원래 좀비들이 이렇게 많아요? 도대체 여기 뭐가 있다고 그렇게 몰려와요?”

“그게 좀 이상하긴 합니다. 여기 1층 마트에 시체가 많아서 놈들이 항상 있긴 했는데, 얼마 전부터 갑자기 많아지고 자주 오는 것 같습니다.”

“갑자기라고요?”

“네”

이진성은 불안한 생각이 스치는 것이 있었다. 그리고 그 생각은 이진성 혼자만의 생각이 아니었다. 관장이 남자에게 물었다.

“혹시 말이오. 그 갑자기 많아지면서 놈들이 올 때 어떤 짐승의 포효 같은 거 듣지 못했소?”

“짐승 소리요? 어떤?”

“그게… 늑대 울음소리 같다거나 고릴라 소리 같다거나 그런, 그 비슷한?”

남자는 잠시 고민하더니 다른 사람들에게 물었다. 그리고 자기들끼리 몇 마디 하고는 그중 여자 하나가 앞으로 나왔다.

“들은 것 같아요. 그리고 오늘도 헬기 오기 전에 몇 번 들렸던 거 같고요”

여자의 말을 들은 셋은 일제히 한숨을 내쉬었다.

“또야?”

“그러게요.”

“우연인지 악연인지 모르겠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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