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좀비 에이지 백수 생존기-93화 (93/145)

# 93

이진성의 눈에 농협 안의 상황이 얼핏 보였다.

관장은 북쪽에서 내려와 마트의 뻥 뚫린 동쪽 면으로 들어오는 놈들에게 검을 날리고 있었다.

헬기가 모텔 옥상을 사격하기 시작하면서 방해받지 않고 내려와서 그런지 그쪽에는 거의 50 이상의 놈들이 몰려 있었다.

관장의 실력으로 문제 될 숫자는 아니었다.

장동건도 그래서인지 그쪽 놈들은 신경 쓰지 않고 동쪽의 길 건너에서 오는 놈들과 남쪽에서 올라오는 놈들에게만 사격을 가했다.

나머지 세 명도 장동건이 사격하는 방향을 따라 총구를 돌리고 있긴 했다. 하지만 결과는 알 수 없었다.

올려다본 2층에서도 총알은 주로 동쪽을 향하고 있었다.

달려가는 이진성에게 총에 맞지 않은 놈들이 달려들었다.

“급한데 좀!”

가장 앞에 달려오는 놈은 셋, 그들 사이로 파고들었다. 횡으로 날린 도끼날에 왼쪽 놈의 목이 떨어지면서, 동시에 정면으로 오는 놈의 관자놀이를 찍었다. 손을 뻗어오는 오른쪽 놈에게 관자놀이가 깨진 놈을 안겨주고 뒤돌려 차기로 놈의 뒤통수를 깼다.

셋을 처리하고 다시 5m쯤 가자 다시 달려드는 두 놈이 있었다. 바싹 붙어 오는 두 놈을 한 번에 처리하기 위해 마주 달리며 도끼를 우측하단으로 내렸다. 골프 스윙으로 두 놈의 상체를 한 번에 잘라낼 생각이었다.

놈들이 사정거리에 들면서 막 스윙을 시작하는데 두 놈의 몸에 총탄이 퍼버벅 날아들었다. 그리고 놈들은 상체가 걸레가 되면서 다있어 벽면에 처박혔다. 돌아본 곳에는 총을 든 진화자 둘이 이쪽을 보고 있었다.

‘다행히 막 쏘는 사람들은 아닌가 보네’

생각을 하며 다시 전진하는 이진성을 바라보는 두 사람은 식은땀을 흘리고 있었다. 이진성에게 달려드는 좀비를 보고 반사적으로 사격을 하긴 했지만, 자신이 있어 한 것이 아니었다.

정신없이 쏘다 보니 운 좋게 놈들이 죽기는 했다. 하지만 그들은 둘 다 예비군 가서도 사격이 그다지 좋지 못했던 사람이었다.

그 둘도, 이진성도 좀비에게 맞은 총알보다 그 주위 다있소 벽면에 맞은 총알이 더 많았다는 것을 알지 못했다.

다행히도 이진성이 사거리를 건너 모텔건물에 도착할 때까지 총에 맞지는 않았다.

계단을 찾아 골목으로 들어가자 그곳에는 여태 보이지 않던 놈들이 더 있었다.

모여 있는 놈들만 스물 남짓. 놈들은 농협으로 갈 생각이 없는지 그 자리에서 움직이지 않고 있었다.

‘이것들은 또 뭐야? 까만눈 근처에서 멀어지지 않는 놈들인가?’

얼핏 봐도 수놈만 보이고 암놈은 보이지 않았다. 그냥 까만 눈을 보호하는 놈들이면 암놈도 있는 게 자연스러웠다. 놈들에게 달려드는 이진성은 생각나는 것이 있었다.

‘아까 그놈 여왕벌 놀이하는 거야? 번식기라도 되는 건가?’

잡다한 생각 하며 놈들을 도륙하는데 헬기의 기관총 소리가 끊겼다. 그리고 곧이어 박 준위의 말이 들려왔다.

<탄알 떨어졌어. 놈은 아직 옥상에 있어. 옥상에 물탱크도 있고 숨을 곳이 많아. 우리는 장갑차 쪽으로 갈 테니 조심하게>

“알겠어요. 조심하세요.”

짧은 교신을 마쳤을 때 이진성의 앞에 서 있는 놈들은 일곱이었다.

“비켜. 이 잡것들아”

그 일곱의 대가리가 깨지고 목이 잘리고 심장이 터지는데 걸린 시간은 2분이 되지 않았다. 그리고 이진성은 숨을 몰아쉬며 계단을 달렸다.

6층은 순식간에 올랐다. 6층까지 오르는 동안 계단에 숨어있던 놈들은 다행히도 없었다. 밑에 있던 놈들이 여왕벌 놀이하는 이놈의 추종자 전부가 아닌가 싶었다.

옥상의 문은 열려 있었다. 놈이 도망가지 않았다면 저 문을 나서면 거기에 있는 것이다.

마음을 다잡고 마지막 몇 계단을 건너뛰며 옥상으로 달려나갔다.

갑자기 밝아지면서 찡그려지는 눈을 억지로 치켜뜨고 사방을 훑었다. 역시나 이놈도 냄새는 나지 않았다. 숨어 있다 덤비면 불리한 쪽은 이진성이었다.

총탄에 박살이 난 FRP 물탱크 너머에는 아무것도 없었다. 둘러봐도 보이는 곳에는 놈이 없었다.

“씨불. 그새 도망갔나?”

주위를 살피며 난간으로 향했다. 동쪽과 북쪽의 옆 건물까지는 고도차도 크고 거리도 멀었다. 뛰어내리기는 무리가 아닌가 싶었다.

놈이 있을 만한 곳이 한 곳 남았다. 서쪽 농협 쪽 코너에 엘리베이터실로 보이는 곳이 있었다. 놈이 있다면 그 뒤에 숨어 있어야 했다.

이진성은 천천히 발걸음을 옮겼다. 그곳까지 약 3m를 남겼을 때였다. 그의 코로 밑에서 올라오는 놈들의 냄새가 들어왔다. 달큰시큼한 냄새가 다섯. 아직은 3층 높이.

‘다시 내려가 놈들을 잡고 올까?’

하지만 그 생각과 동시에 까만 눈의 그놈이 다가가던 엘리베이터실 뒤에서 툭 튀어나왔다. 내려가다가는 뒤를 잡히고, 가만있으면 올라오는 놈들의 협공을 받아야 하는 상황이 되어 버렸다.

“썅. 곤란하게 됐네”

밑의 놈들이 올라오기까지 혹시라도 운이 좋아 놈을 잡기라도 한다면 나머지는 크게 문제가 아니었다. 금방 잡을 수 있으리라고 기대는 하지 않았다. 하지만 놈이 지금까지 본 까만눈 중에 가장 체격이 작은 것에 희망을 걸었다. 놈은 분명히 10대의 여자아이가 변한 것이었다.

중학생이나 고등학생 정도로밖에 보이지 않았다.

“여왕벌 놀이하기엔 너무 어린 거 아니냐?”

이진성은 쓸데없는 소리를 외치며 긴장을 풀면서 도끼를 부여잡고 달려들었다. 하지만 첫 타격에서 어리고 작아도 까만 눈은 까만 눈이라는 것을 절감해야 했다.

역시 은빛의 광채가 타격지점의 피부에 어리는 듯 하면서 나는 소리는 쇠를 때리는 소리였다. 손에 전해져 오는 반탄력도 그전 두 놈과 비슷했다.

체구가 작아서 그런지 파워는 둘보다 약했지만 스피드는 오히려 더 빠른 듯했다.

‘1호 만났을 때 폭주 당시의 느낌을 살려내지 못했으면 지금 이 년한테 밀리고 있을 수도 있었겠네’

순식간에 이진성의 도끼와 놈의 살벌한 손톱이 몇 차례 부딪히고 주먹과 주먹이 오갔다. 이진성의 발이 놈의 목에 꽂혔고 놈의 발이 이진성의 배에 꽂혔다. 둘의 움직임은 보통 사람의 눈으로 따라갈 수 없이 빨랐다.

순식간에 수십번의 공격과 수비를 주고받은 둘이 갑자기 뒤로 물러섰다.

“씨발. 늦은 건가?”

이진성의 나지막한 욕설과 동시에 그가 올라왔던 계단으로 밑에서 올라오던 놈들이 튀어 나왔다.

놈들은 튀어나오면서 흩어지면서 이진성의 뒤를 감쌌다. 퇴로를 차단한 것이다.

눈앞의 까만 눈은 놈들이 위치를 잡는 것을 바라보고 있었다. 그 잠시의 순간이 이진성이 마지막으로 휴식을 취한 시간이었다.

놈들이 전부 자리를 잡자 까만 눈은 바로 몸을 날렸다. 그리고 이진성은 놈과 뒤의 다섯의 정신없는 협공을 받아 내야 했다.

* * *

장갑차 행렬이 농협의 상황을 박 준위에게 전달받았을 때, 그들은 38번 국도의 안성천1교 위를 지나고 있었다.

국도상에 빠져나갈 곳이 많이 있었다면 정체가 그렇게까지 심하지 않았겠지만, 현재 위치 전후로 한참 동안은 읍 단위 작은 마을조차도 없이 논을 지나는 길이었다. 빠져나가지 못하고 국도를 꽉 막고 있는 차량을 지금까지 뚫고 왔다. 앞으로도 그렇게 나아갈 수밖에 없는 상황이었다.

애초 계획은 현 지점 약 1km 앞 신대사거리를 통해 동진하여 1번 국도를 타고 다시 북진할 계획이었다. 하지만 그 길 전체가 꽉 막혀 있다고 했다.

차량 내부의 스피커를 통해 도로 상황을 알려 주는 박 준위의 다급한 목소리가 계속 흘러나왔다.

<내려오면서 봤지만 마땅한 길이 없습니다. 거기서 북진해서 고덕국제도시 건설 구간으로 들어가면 거의 빈 땅이어서 장애물이 거의 없긴 하지만 거기까지 가는 게 문제입니다. 신대사거리에서 빠지지 않고 계속 전진해서 45번 국도를 타고 가야 하는데 거기까지도 만만치 않게 막혀 있습니다>

김현희는 난감했다. 1호는 아니지만 까만 눈이라고 했다. 빨리 와 달라고 하지만 방법이 없었다.

현재도 행렬의 선두는 활강포 장갑차가 박살 낸 차들을 좌우로 치우는 작업을 하고 있었다.

그런 행렬의 공중에서 지형을 살피던 박 준위의 목소리가 다시 들려왔다.

<거기서 더 직진해서 가다 보면 또 작은 하천이 하나 나옵니다. 그거 지나고 논으로 들어가십시오. 논을 가로질러 가는 방법밖에 없을 것 같습니다>

그 말에 김현희가 타고 있는 차량의 차장이 응답했다.

“직선으로 계속 갈 수는 없을 겁니다. 바퀴가 빠질 정도 폭의 농수로가 나오면 우회해야 합니다. 공중에서 길을 잡아 주셔야 합니다.”

논의 농수로가 큰 경우에는 장갑차의 차륜이 빠져 걸릴 수도 있다. 그것을 우려해 위에서 계속 봐 달라는 요청이었다.

<알겠네. 그렇게 하지>

스피커를 통해 교신을 듣고 있던 이택진이 물었다.

“그렇게 가면 시간이 얼마나 걸릴 것 같아요?”

“얼마나 우회해야 할지 모르겠습니다. 직선으로 간다고 해도 논밭을 지나가면 아무리 빨라야 평균 시속 50km 정도 될 겁니다.”

“박 준위님. 직선거리로 어느 정도나 됩니까?”

<현재 위치에서 7km? 8km 정도 될 겁니다.>

잠시 생각하던 이택진이 다시 입을 열었다.

“그럼 국도를 벗어난 후 아무리 빨라야 10분은 걸린다는 말이군요. 박 준위님. 혹시 오면서 전철 1호선 선로 보셨나요? 1번 국도랑 나란히 있는 기찻길이요.”

농협은 1호선 서정역 바로 옆이었다. 그 선로는 계속 1번 국도와 함께 내려와서 세교동을 지나며 갈라진다.

이택진이 기억을 더듬는데 선로는 단선도 아니었다. 복복선인지 그보다 많은지 정확하게 기억은 못 했지만 자신이 알기로 선로 구간의 전체 폭이 20m 정도 되는 것으로 생각됐다.

이택진은 어쩌면 그쪽이 더 빠를 수도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어? 그쪽은 신경 써서 안 봤는데 지금 생각해 보니 깨끗했던 것 같습니다. 그쪽을 이용하면 훨씬 빨리 갈 수 있겠네요. 제가 금방 확인하고 오겠습니다>

말과 함께 헬기는 다시 빠른 속도로 상승하면서 동북방으로 날아갔다. 그리고 이택진은 차장에게 말했다.

“여기 다리 건너서 오른쪽 논으로 들어가서 동쪽으로 직진하세요. 그럼 기찻길 나올 겁니다. 거기선 거의 최고 속도로 달릴 수 있을 거예요.”

김현희가 물었다.

“그럼 얼마나 걸려?”

대답은 차장이 했다.

“넉넉잡아 10km라고 잡아도 7분 정도면 됩니다. 더 걸려도 최대 10분 정도면 충분할 겁니다.”

철로를 따라가면 바로 서정역까지 갈 수 있다. 일반 차량은 곤란하지만, 장갑차라면 문제가 안 된다. 조금 흔들리기만 하면 되는 길이었다.

단선 구간이 아니기 때문에 혹시라도 중간에 전철이나 기차가 서 있다 해도 지나갈 공간은 충분하고도 넘쳤다.

직진하면 최소 10분 이상이고 철로를 따라가면 최대 10분 정도였다. 선택은 분명했다.

제일 후미의 장갑차가 막 교량을 벗어나는 시점이었다. 박 준위의 들뜬 목소리가 스피커를 통해 나왔다.

<철로는 깨끗합니다.>

“OK”

이택진은 밝아진 얼굴로 차장의 어깨를 짚었다.

“잠깐 모두 정지하라고 해요. 나가서 논으로 진입할 수 있는지 확인하게.”

장갑차에서 내린 이택진은 가드레일을 넘어 키보다 높게 자란 풀을 뚫고 경사를 미끄러져 내려갔다. 내려간 곳에는 다행히 장갑차의 진행을 방해할 깊은 농수로나 다른 장애물이 없었다.

이택진이 논으로 들어가 봤다. 잡초만 무성한 논은 바싹 말라 있었다.

다시 장갑차로 올라온 이택진의 말에 그들이 탄 장갑차부터 우회전하며 가드레일을 부수고 풀을 뚫고 논으로 내려섰다. 그리고 그 차량을 선두로 나머지도 줄줄이 논으로 들어서 먼지를 날리며 달리기 시작했다.

그렇게 달리기를 약 1.6km, 드디어 논이 끝나면서 일행을 가로막는 철책이 나왔다.

그 철책의 너머로 높게 자란 관목과 풀이 있었다. 그리고 그 너머 공중에는 열차에 전기를 공급하는 전차선이 지나고 있었다.

“맞게 왔네요. 이리로 뚫고 들어가요”

철책을 밀어 쓰러트리고 들어간 장갑차는 쭉 뻗은 철길을 따라 탄탄한 평지를 내달렸다. 처음 논으로 들어선 지 2분 정도 지난 때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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