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94
‘내가 지치기를 기다리는 건가?’
마치 사냥감을 교대로 공격해서 힘을 빼는 사자처럼, 놈들은 서넛이 공격하는 동안 두셋은 뒤로 빠지고 있었다.
그렇다고 치고 빠지는 놈들이 정확하게 로테이션을 지키는 것도 아니었다. 어떤 때는 빠질 놈이 안 빠지고, 어떤 때는 들어올 놈이 안 들어왔다.
놈들의 그런 행동은 이진성의 공격과 수비의 강도에 따라 결정되는 것 같았다.
‘빌어먹을. 까만 년 하나만 해도 어떻게 될지 장담할 수 없는데 이건 무슨 지랄인지…….’
검붉은 눈만 있었다면 순식간에 끝났을 놈들인데 거기에 까만눈 하나가 끼자 한 놈도 잡을 수가 없었다.
검붉은 눈을 공격하려 하면 반드시 까만 눈의 공격이 들어왔다. 결코 무시할 수 없는 공격이었다.
까만 눈의 움직임에 신경의 대부분이 쏠려 있다 보니 검붉은 눈의 공격을 방어하기에만 급급했다.
이미 몸에는 여러 긁힌 상처들이 있고 출혈도 점점 늘고 있었다.
한 놈이 이빨을 들이밀면 반대쪽의 놈이 주먹을 휘두른다거나 잡으려고 덤빈다거나 하면서 이진성이 피하는 것을 방해했다.
놈들의 공격은 집요했고 한 번씩 거의 물릴 위기를 겪기도 했다.
정신없이 손톱을 찔러넣고 이빨을 들이미는 놈들을 피하면서 드는 이런저런 생각은 부정적인 것뿐이었다.
‘씨불. 관장님하고 같이 왔어야 했어.’
동탄의 그 암컷과 1호 같은 경우는 똑똑하다고 하지만, 결국은 부하들을 거의 잃고서야 혼자 나섰다. 그런데 지금 이진성의 눈앞의 이놈은 협공을 택한 것이다.
놈들의 행동에 아무런 패턴이 없으니 예측할 수 없었다. 그저 막고 피하기에 급급했다.
‘이대로는 안 돼. 놈들의 공격 방향이라도 줄여야 해’
자신을 360도 둘러싸고 있는 여섯 놈의 공격을 피하자니 기회를 잡을 수가 없었다.
보이는 쪽은 어떻게 어떻게 하겠는데 등 쪽에서 오는 공격이 문제였다. 몇 번의 위기도 모두 그것들 때문이었다.
폭주 이후 감이 더 좋아진 것인지, 아니면 관장과의 대련을 통해 전투 감각이 좋아진 것인지 알 수 없었다.
뒤에서 오는 공격도 냄새를 통해 손의 위치나 머리의 위치를 감 잡으면서 어쩌어찌 피하고는 있었다.
하지만 자신이 지치고 움직임이 조금만 둔해지면 좋은 꼴로 끝나지 않으리라는 것을 충분히 알고 있었다.
주위에는 벽이 많이 있었다. 계단 출구의 벽도 있었고 엘리베이터실의 벽도 있었다. 또 옥상의 난간도 충분히 벽으로 이용할 수 있었다.
문제는 어떻게 거기까지 가느냐였다. 이동하려면 최소한 한 놈은 잡고 그 구멍으로 순간적으로 움직여야 했다.
이진성은 놈들의 공격을 막으며 바로 그 한 놈을 잡을 기회만을 노리기 시작했다.
왼쪽에서 바디어택이 들어왔다. 동시에 앞의 까만 눈의 손톱이 배를 향해 찔러 들어왔다. 오른쪽 전방과 후방의 두 놈은 허리와 목으로 이빨을 들이밀었다.
이진성은 도끼로 들어오는 손톱이나 이빨을 쳐내면서 뒤로 몸을 빼야 했다. 그러나 그랬다가는 뒤에서 대기하는 놈들에게 맞거나 물리거나 할 것이 뻔했다.
몇 번 그렇게 하다 위기를 맞고 겨우겨우 피해 냈었다. 놈들도 이제는 그 패턴을 더 자주 쓰고 있었다.
“씨발것들아. 또 당할 거 같냐?”
이진성은 소리치며 오히려 앞으로 튀어 나갔다. 앞은 까만 눈이었지만 계속 위기상황에서 다른 검붉은 눈 쪽으로 피한 이진성이었기에 놈은 이진성의 공격을 대비하지 않고 있었다.
뒤로 상체를 빼는 듯하던 이진성이 갑자기 앞으로 튀어 나가자 나머지 놈들은 타격지점을 놓쳤다.
왼쪽 놈의 바디어택은 아슬아슬하게 이진성의 등 뒤를 지나쳤다.
그 덕에 뒤에서 이진성이 물러날 것을 대비해 손톱을 세우고 있던 두 놈은 자신 동료의 어깨를 찍어 버리고 말았다. 그리고 오른쪽 뒤에서 이빨을 들이밀던 놈은 그놈의 대가리에 이빨을 부딪쳤다.
놈들의 동선이 순간 꼬였다. 왼쪽 놈의 바디어택 실패로 왼쪽에 구멍이 뚫린 것이다. 이제 이진성은 왼쪽으로 빠지기만 하면 한숨 돌릴 수 있었다. 그러려면 급격히 가까워지는 눈앞의 까만 눈의 손톱 처리가 먼저였다.
손톱은 이미 몸 앞 30cm 정도. 도끼로 내려치기에는 너무 가까운 거리다.
앞으로 나가면서 도끼의 면을 세워 놈의 손톱이 들어올 곳을 막았다. 한 손으로 면을 받치고 자루를 잡은 다른 한 손을 앞으로 뻗어 자루 끝을 놈의 얼굴로 향하게 했다. 놈이 계속 공격하면 손톱은 도끼 면에 막혀 옆으로 흐르고 놈의 얼굴은 도낏자루에 찍혀야 하는 자세였다.
놈은 손톱의 앞에 도끼면이 오는 것을 보고는 급격하게 손의 방향을 꺾어 올렸다. 동시에 상체를 옆으로 기울이면서 도낏자루를 피했다. 꺽어올린 손은 심장 부위를 찍어 오기 시작했다. 그리고 놈의 기울어진 상체가 우측 전방에서 들어오는 놈의 동선을 방해했다.
“걸렸어. 씨발년아.”
이진성이 예상한 움직임이다. 이제 도끼날을 놈에게 향하게 돌리면서 밀어 쳐내면 놈의 겨드랑이를 찍을 수 있다. 놈의 스피드에 밀리지 않을 자신이 있어 택한 작전이었다.
앞으로 나가던 몸을 왼쪽으로 틀었다. 동시에 도끼날을 쳐올렸다. 온몸의 근육이 비명을 지르는 것 같았다. 순간적으로 다리와 허리 등 근육이 터지는 것 같았다. 그래도 그 덕에 몸은 왼쪽으로 빠져나갔고, 도끼는 가까스로 놈의 겨드랑이를 찍었다.
쩍~
쇳소리가 아니었다. 놈도 미처 방어하지 못한 것이었다. 분명히 살을 찍는 소리였다.
비록 팔을 잘라내지도 못했고 심지어 깊은 상처를 주지도 못했지만 일단 상처를 입힌 것이 중요했다.
놈의 왼팔은 앞으로 파워가 떨어지거나 스피드가 떨어지거나 아니면 그 둘 모두일 것이었다.
놈들의 포위에서 빠진 이진성은 좌전방의 계단실 벽으로 달렸다. 계단으로 내려갈 수 있으면 좋겠지만 계단 입구는 반대 방향이었다.
일단은 벽을 등지고 놈들의 숫자를 줄이는 것이 우선이었다.
까만 눈과 한 놈이 이진성의 전방을 막으려고 달렸다. 그리고 서로 부딪히면서 뭉쳤던 네 마리가 이진성의 뒤를 따랐다. 뒤의 놈들과의 거리는 약 2m. 벽에 닿을 때까지 잡히지는 않을 것 같았다.
이진성은 벽에 다다르자 몸을 띄웠다. 벽을 박차고 떠오른 그는 공중에서 몸을 180도 틀었다. 아래로는 막 자신의 밑으로 들어오면서 자신을 향해 고개를 드는 놈이 보였다. 그 뒤로 다시 세 놈이 따르고 있었다.
제일 앞의 놈을 향해 도끼를 찍어 내렸다. 풀스윙의 힘에 몸이 도는 원심력까지 더해진 도끼는 밑에 놈의 왼쪽 머리에서 오른쪽 머리로 뚫고 나왔다.
도끼의 회전에 몸을 맡긴 이진성이 공중에서 다시 한 바퀴를 돌고 착지 했을 때, 대가리가 앞뒤로 이등분된 놈은 달려가던 힘 그대로 계단실 벽에 충돌하고 벽에 거대한 핏자국을 남기고 자빠졌다.
착지하자마자 몸을 뒤로 튕겨 놈이 남겨 놓은 핏자국을 등지고 선 이진성에게 놈들은 틈을 주지 않고 공격해 들어왔다. 하지만 다섯 모두가 눈에 보이는 공격이었다. 커버해야 할 각도도 360도에서 180도 이내로 줄었다.
“니들은 이제 다 죽은 거야. 씨발것들아!”
이진성은 다시 한번 기합을 주며 까만 눈에서 제일 멀리 있는 오른쪽 바깥 놈에게 도끼를 찍어갔다.
놈은 이빨을 들이밀면서 상체의 중심이 너무 앞으로 쏠렸다. 갑자기 외곽으로 몸을 트는 이진성을 따라 몸을 돌리려고 했지만 여의치 않았는지 대가리는 앞으로 빠지면서 손만 이진성에게 뻗었다.
이진성은 뻗어오는 손을 도끼를 들면서 쳐내고는 다시 놈의 목에 도끼를 찍어 내렸다. 놈의 목은 잘라 달라는 듯 쭉 빠져 있었고 도끼는 그 목을 깔끔하게 잘라 줬다. 그리고 동시에 놈의 남은 몸을 발로 차 이진성에게 달려드는 나머지 놈들에게 안겨줬다.
놈들이 자신들에게 날아오는 목 잃은 동료의 몸뚱이를 쳐내는 동안 다시 벽을 등지고 자세를 잡은 이진성은 그 몸뚱이에 눈이 가려진 놈의 다리를 향해 도끼를 날렸다. 놈의 두 무릎을 정확하게 잘라낸 도끼는 다시 방향을 틀어 날아오는 까만 눈의 발을 쳐갔다.
깡~
쇳소리였다.
“빌어먹을. 이번에는 안 통했네”
다시 한번 도끼를 크게 휘둘러 검은 눈과 나머지 두 놈을 한발 물린 다음, 다리가 잘려 바닥을 기는 놈의 대가리를 쪼갰다.
셋을 잡는 것은 눈 깜짝할 새였다. 순식간에 상황이 변하자 놈들이 두어 발짝 물러나 기회를 보기 시작했다.
까만눈 하나와 검붉은 눈 둘이 이진성의 눈치를 보기 시작한 것이다.
이진성은 이미 많이 지쳤다. 시간을 더 끌어봐야 자신에게 좋을 것이 없었다.
‘기세를 잡았을 때 선제공격을 해야 하나? 관장님이면 이럴 때 치고 나갔으려나?’
아직 혼자서 주도적으로 전투를 해 본 경험이 없는 이진성이었다. 본능적인 전투가 되기에는 아직 멀었다. 그렇지만 다시 한번 수세에 몰리면 위험해진다는 것은 알 수 있었다.
마음을 다잡고 제일 왼쪽의 검붉은 눈에게 몸을 날리려는 순간이었다.
그 잠시의 망설임이 놈들에게 기회가 되었던 것인지 놈들이 먼저 움직였다.
셋은 동시에 앞으로 튀어나오면 거리를 좁히고 이진성의 다리와 배 목을 향해 공격해 들어왔다.
다리를 잡으려고 뻗어오는 검붉은 눈의 대가리를 차서 터트리면서 몸을 돌렸다. 배에 손톱을 꽂으려는 또 다른 검붉은 눈의 손을 가까스로 피해냈다. 하지만 목으로 이빨을 들이미는 까만 눈의 대가리는 피하기가 어려웠다.
몸의 중심을 무너트렸다. 급격하게 옆으로 자빠지면서 가까스로 이빨을 흘렸다. 동시에 도끼를 45도 각도로 올려쳤다.
놈은 이미 너무 가까웠다. 도끼날은 놈의 뒤를 향했고 놈의 손은 도낏자루 한가운데를 향했다.
빠작~
도낏자루가 두 동강이 났다. 도끼가 달린 부분은 저만치 날아가 버렸고 이진성의 손에 남은 것은 그냥 30cm 남짓의 나무토막이었다.
당황할 틈도 없었다. 놈은 그 기세를 놓치지 않고 손톱을 찍어왔다. 스스로 몸의 중심을 무너트린 이진성은 그 손톱을 피하기 어려웠다.
왼팔을 들어 놈의 손톱을 막았다. 손톱은 팔에 깊숙이 박혔다. 불로 지지는 듯한 통증과 함께 살이 한 움큼 뜯어져 나갔다.
살 한 움큼을 주고 바닥을 구른 이진성은 목숨을 구할 수 있었다.
도끼도 없고 왼팔은 통증 때문에 쓸 수 없었다. 이제 두 발과 한쪽 팔로 싸워야 했다. 과연 남은 두 놈을 잡고 인간의 모습으로 옥상에서 내려갈 수 있을까 하는 의문이 들었다.
이진성은 약해지는 마음을 억지로 다잡으면서 눈앞의 놈에게 돌려차기를 꽂아 넣었다. 나현주의 특기인 바로 그 돌려차기가 이진성의 몸에서 깔끔하게 재현되고 있었다.
그리고 이진성의 뒤꿈치가 까만 눈의 팔에 막히는 순간 엄청난 폭음이 울려 터졌다.
콰앙 쾅 쾅 ~
자신의 발과 놈의 팔이 충돌해서 날 수 없는 소리였다. 이진성은 급하게 몸을 뒤로 뺐다. 그리고 다행히 두 놈도 몸을 뒤로 뺐다.
동시에 다시 한번 폭음이 터져 나왔다. 소리는 밑에서 나는 소리였다.
건물 밑이 보이는 위치가 아니어서 확실히 알 수는 없었다. 하지만 그건 분명히 무엇인가 터지는 소리였다.
동시에 이진성의 귀에 헬기의 로터 소리도 들려왔다. 그리고 헤드셋에서도 다급한 목소리가 들려왔다. 박 준위의 목소리였다.
<피해, 어서 피하라고, 고장 난 거야? 못 듣나 본데 어쩌지?>
하늘을 올려 보자 언제 왔는지 헬기가 자신의 상공에서 날고 있었다. 여태 너무 집중해서 아무 소리도 못 듣고 있었던 것이다.
다시 앞을 보자 놈들도 헬기 때문인지 어쩌지 못하고 우왕좌왕 하고 있었다.
“들려요. 오신지 몰랐어요”
<박격포 날아갈 거야. 어서 피해>
‘이런 씨불’
피융 소리가 들리는 듯하더니 옥상 저쪽 편에서 폭발이 일어났다. 폭발은 한 번으로 그치지 않고 점점 다가왔다.
피할 곳이 어디 있다고 박격포를 날리는지 알 수 없었다. 일단은 숨고 봐야 했다.
두 좀비 놈은 첫 폭발과 함께 이미 폭발에서 먼 곳으로 몸을 날렸다.
앞이 뚫린 것을 확인한 이진성은 계단 입구를 향해 달렸다. 그리고 이진성이 계단으로 들어가자마자 옥상은 불바다가 되기 시작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