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95
타들어 가는 마음으로 입술을 잘근잘근 씹는 김현희는 전방에 서정역이 보인다는 차장의 목소리를 들었다. 기찻길로 접어든 지 6분 만이었다.
그 소리가 나고 곧 장갑차가 잠시 요동쳤다. 역에 진입하기 전에 선로 몇 개를 넘으면서 팬스를 뚫고 나온 것이었다.
스피커로 다시 박 준위의 목소리가 흘러나왔다.
<놈들 사방에 퍼져 있음. 1호차 부터 5호까지 각 차량은 북진 후 역 주차장에서 우회전 직진. 나머지 산개해서 골목 진입할 것>
그리고 금방 장갑차가 차량을 들이받는 소리와 함께 기관총 소리가 들려왔다.
안에서 소리만 듣고 있는 김현희는 바깥 상황이 그다지 좋지 않게 느껴졌다.
“상황이 어때 보여요?”
<농협 주위에 좀 있습니다. 멀리서 오는 놈들은 안 보입니다. 올 놈들은 다 온 것 같습니다>
“까만눈은요?”
<진성 씨가 놈을 아직 상대하고 있습니다.>
“어때 보여요?”
박 준위의 목소리는 잠시의 시간이 지난 후 다시 들려왔다.
<좋아 보이지는 않습니다. 버거워 보입니다>
좋지 않은 소식에 속이 바싹 탔다. 김현희는 차장을 불렀다.
“우리 진성이 있다는 건물로 바로 가 줘요.”
“알겠습니다. 박 준위님 어딘지 알려주세요.”
<거기서 바로 직진하면 좌측에 농협. 그 농협 지나서 나오는 사거리에서 대각선 건물>
다시 장갑차는 차량과 충돌하는지 요동을 치면서 전진했다. 흔들리는 캐빈에서 걸터앉은 철제의자의 끝을 꽉 잡고 있는 김현희의 손에는 힘줄이 툭툭 불거져 있었다. 그리고 손으로 잡고 있는 부분이 살짝 우그러지는 것을 김현희 자신도, 옆의 이택진도, 맞은편의 박두식도 알지 못했다.
<1호차 열외, 활강포와 2호부터 5호 까지 농협으로. 나머지 주변 정리>
다시 박준위의 말이 들릴때, 김현희가 타고 있는 1호차는 박 농협 앞을 지나고 있었다.
* * *
자신에게 달려드는 놈의 상반신을 2등분 시킨 관장이 주위를 둘러봤을 때 마트 안에 더는 서 있는 놈들이 없었다. 한쪽의 장동건과 세 명의 진화자도 마트 밖에 보이는 놈들만을 쏘고 있었다.
인도로 나와 북쪽을 살펴봤지만, 그쪽에서도 더 밀려오고 있지는 않았다. 다시 자신을 향해 달려드는 네 놈의 목을 가볍게 잘라준 관장이 뒤를 돌아보고 소리쳤다.
“난 진성 씨한테 가보겠소.”
마침 사격을 멈추고 있던 장동건이 그 소리를 듣고 손을 들어 알겠다고 표시하는 순간이었다.
두두두두 두두두
쾅 쾅 콰콰콰콰
관장과 장동건은 갑자기 들리는 기관총성에 장갑차가 도착했음을 알 수 있었다. 기관총 소리는 역 쪽에서 부터 점차로 농협 쪽으로 가까이 오고 있었고 남쪽과 북쪽에서도 들리는 듯했다. 그리고 총소리와 더불어 크지 않은 폭음도 들렸다.
“저 폭음은 뭐요?”
어느새 다가온 관장의 물음에 장동건이 알려줬다.
“장갑차에서 유탄발사기도 쏘나 봐요.”
다섯 명이 남쪽 인도를 향해 걸어 나갔다. 그런데 갑자기 고막이 터질듯한 굉음과 함께 길 건너 그리스 모텔 앞의 차가 폭발했다. 그리고 연이어 사거리 건너 건물들의 1층이 터져 나가기 시작했다.
“뭐야? 뭐야?”
놀란 다섯이 가만히 고개를 빼고 본 바깥 길에는 대포가 달린 장갑차 한 대가 이쪽으로 오면서 포격을 하고 있었다.
“헐. 저놈도 왔어? 이 대위가 작정하고 보냈네요. 저건 포탄 때문에 평소에 안 쓴다던데.”
관장은 포격이 끝나기를 기다렸다. 자신이 가려는 바로 그 모텔과 그 주위에 포격하고 있으니 지금 갈 수는 없었다. 그렇게 잠시 상황을 보는데 대포 달린 놈과 다섯대의 장갑차가 농협으로 다가오는 것이 보였다.
그중 한대가 앞으로 나오는가 싶더니 포격이 멈췄다. 그리고 그 한대는 속도를 내더니 농협을 지나쳐 갔다.
‘저건 뭐냐?’
그 장갑차를 따라 고개가 오른쪽에서 왼쪽으로 돌아가는 다섯 사람의 공통된 생각이었다.
장갑차는 길 건너 그리스 모텔 앞에 급정거함과 동시에 문이 열리면서 두 사람이 튀어나왔다.
세 명의 능력자가 보기에는 방패든 40대 아줌마와 50대 아저씨 하나가 모텔 건물로 달려 들어가는 것이었다.
하지만 관장과 장동건이 보기에는 김현희와 박두식이 다급한 얼굴로 달려들어 가는 것이었다.
“형님 잘못된 거 아냐?”
말과 함께 튀어 나가는 장동건을 관장이 잡았다.
“여기서 상황 정리해 주시오. 장갑차가 놓치는 놈도 잡아야 하고.”
관장은 뛰어가고 장동건은 남아 발만 동동 굴렀다. 다른 세 사람은 뭐가 어떻게 돌아가는지 하나도 알 수 없어 답답하기만 했다.
그런 그들의 눈이 다시 돌아간 곳에는 장갑차에서 내린 병사들이 박격포를 설치하고 있었다.
* * *
김현희와 박두식은 장갑차에서 헤드셋 하나씩을 차고 나왔다. 계단을 오르며 이진성을 계속 불렀지만, 대답은 없었다.
헤드셋에서는 치고받는 소리와 이진성의 욕설이 들려오기는 했다. 하지만 그는 이쪽의 호출에 대답하지 않고 있었다.
답답한 그들이 3층에 갔을 때였다.
<박격포 준비 다 됐는데 진성 씨가 대답이 없습니다>
“아직 잘못 된 건 아니죠?”
<아직은 아닙니다. 놈들 몇 놈을 잡았습니다. 남은 건 셋입니다>
4층에 도착하자 다시 박 준위의 말이 들렸다.
<도끼 자루가 부러졌고 부상도 입었습니다. 더 있다가 당할지도 모릅니다.>
그 말에 이어 헤드셋에는 ‘발사’라는 소리가 들렸다. 그리고 5층에 도착할 때 폭음이 들리며 먼지지 우수수 떨어지고 발밑으로 진동이 전해왔다.
동시에 두 사람은 계단을 내딛는 말에 박차를 가했다. 그런 김현희가 막 6층을 지날 때, 헤드셋에서 이진성과 박 준위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들려요. 오신지 몰랐어요>
<박격포 날아갈 거야. 어서 피해>
반 층을 더 올라 옥상 출입구가 보이자마자 김현희는 안으로 뛰어드는 이진성과 그 뒤에서 터지는 화염을 볼 수 있었다. 몸을 던진 이진성은 폭발의 폭압에 밀렸는지 자신을 향해 그대로 날아왔다. 그대로 두면 벽에 머리를 부딪칠 판이었다.
‘빌어먹을’
들고 있던 방패를 던지고 두 손을 앞으로 뻗었다. 날아오는 이진성의 상체를 잡을 수 있었다. 상체를 감싸 안으며 몸을 돌렸다. 날아오던 힘이 컸는지 김현희 힘으로도 세바퀴를 돌고서야 그 힘을 죽일 수 있었다.
“진성아! 정신 차려!”
이진성은 정신이 하나도 없었다. 머리는 윙윙거리고 눈앞은 빙빙 돌았다. 김현희가 자신을 안고 뭐라고 소리를 치는 것 같은데 왜 김현희가 지금 자신 앞에 있는지 이해가 안 가는 그였다.
이진성을 안고 뺨을 두드리고 소리치던 김현희는 자신의 어깨를 잡는 손을 느끼고 돌아봤다. 거기는 언제 왔는지 관장이 서 있었다. 그리고 관장의 검은 전방의 위를 향하고 있었다.
검을 따라 올려본 곳은 옥상의 계단 입구였고, 그곳에는 까만눈의 암컷 하나와 검붉은눈의 수컷 하나가 이쪽을 내려다 보고 서 있었다. 어느덧 폭격은 멎었는지 세상은 조용하기만 했다.
“진성이 부탁해요”
말없이 먼저 달려 올라가는 관장을 따라 일어선 김현희는 방패를 찾아 들고 그 뒤를 따랐다.
계단 입구의 두 놈은 두 사람이 올라오자 다시 뒷걸음질 쳐 옥상으로 물러섰다.
박두식은 그 모습과 누워있는 이진성을 번갈아 보며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고 섰다.
* * *
관장과 김현희는 헐떡이며 눈앞의 까만눈을 바라보고 숨을 돌리고 있었다. 옥상에 올라오면서 놈들과 붙은 지 이미 10분은 지난 것 같은데 그동안 검붉은눈 하나밖에 못 잡았다.
이진성이 이런 놈들 여섯과 10여 분 넘게 싸워서 넷을 잡았다는 게 신기하게 느껴졌다.
관장도 김현희도 까만눈의 경험은 동탄에서밖에 없었다. 그때 둘 다 상처를 입어 끝까지 싸우지도 못했었다.
1호와 싸운 이진성에게 당시의 이야기도 자세하게 들었지만, 역시 듣는 것과 실제의 차이는 대단했다.
이진성이 입힌 오른쪽 겨드랑이의 부상은 놈이 오른손을 쓰는데 상당한 제약을 주고 있었다. 거기에 포격에 당한 것인지 왼쪽 다리의 움직임도 어색했다. 원래 없었는지 포격에 날아갔는지 옷이 남아 있지 않은 몸 군데군데 시커먼 상처도 있었다.
그런데도 놈은 둘에게 많이 밀리지 않았다. 관장의 얼마 전 깨달음과 한층 진보한 검술이 아니었다면 둘은 이미 많은 상처를 입고 있었을지도 몰랐다.
“난 놈의 오른팔을 노리겠소. 현희 씨는 왼쪽 다리를 노려주시오.”
관장도 김현희도 싸우며 놈의 약점은 간파했다. 단지 여태 둘이 말을 맞출 여유가 없어 그 약점에 효율적인 공격을 못 하고 있었다.
그래도 각자 알아서 그 약점을 공격한 덕에 놈의 부상은 조금 더 심해져 있었다. 그 덕에 놈이 잠시 물러났고 이쪽도 숨을 고르고 합을 맞출 기회가 생겼다.
서로를 노려보던 셋은 누가 먼저랄 것 없이 한순간에 다시 달려들었다. 관장은 놈의 오른쪽으로, 김현희는 왼쪽으로 달려들었다. 놈은 관장을 향해 손톱을 세운 왼손을 찔러왔다.
그것은 실수였다. 김현희는 놈의 다리 대신 휘둘러 오는 놈의 왼손을 방패로 막아 쳐냈다. 놈의 왼팔은 그 힘을 이기지 못하고 튕겨 나갔고 오른팔은 공격 자세를 취하지도 못하고 있었다. 상체가 활짝 열린 것이다.
놈은 뒤로 다시 물러나는 대신 김현희에게 오른발의 킥을 날렸다. 하지만 상체는 열리고 중심이 제대로 잡히지 않은 상태에서, 더군다나 디딤발이 부상으로 불편한 상태의 킥은 원래의 파괴력을 내지 못했다.
날아오는 발목을 김현희는 방패 날로 내리찍었다. 여전히 깡 하는 쇳소리가 났지만, 그 발은 더 진행하지 못하고 오히려 왔던 자리로 밀려갔다.
동시에 중심이 완전히 무너진 놈의 상체가 앞으로 숙이면서 팔이 들리는 순간, 관장의 검이 아래에서 위로 놈의 겨드랑이를 파고들었다.
퍼억~
쇳소리가 아니다. 그리고 관장은 분명히 느꼈다. 뼈가 갈리는 느낌이었다. 비록 팔을 잘라내지는 못했지만, 놈의 겨드랑이에서는 피가 뿜어나오기 시작했다.
관장과 김현희가 놈에게 달라붙었다. 김현희가 방패로 놈의 시선을 끌면서 왼쪽 무릎과 골반을 집중적으로 때렸다. 그동안 관장은 오른 겨드랑이와 어깨에 집중했다. 둘은 한 번씩 목이나 얼굴, 배등에 공격을 넣으며 놈의 신경을 분산시켰다.
깡깡 쇳소리 사이에 퍽퍽 소리가 섞이는 빈도가 점점 늘었다. 그러기를 다시 5분쯤 지났을 때였다.
빡~
놈의 왼쪽 다리가 무릎에서부터 안쪽으로 꺾이면서 놈이 중심을 잃었다. 동시에 관장의 검이 눈 깜짝할 사이에 수십번을 놈의 오른쪽 어깨에 작렬했다. 그동안 김현희는 계속 놈의 다리를 방패로 때리고 찍었다. 놈의 왼손이 김현희를 때리고 찍었지만 제대로 힘을 쓰지 못했다.
김현희는 더는 치명적이지 않은 놈의 손 공격을 무시하고 계속 때렸다. 그녀의 몸 여기저기서 피가 튀고 살이 파였지만 동시에 놈의 왼쪽 다리도 점점 더 골절 부위가 많아졌다. 결국 다리 하나가 없는 것이나 마찬가지 되었을 때 놈의 오른쪽 팔은 어깨에서부터 잘려 날아갔다.
오른쪽 팔 하나와 왼쪽 다리를 잃은 놈은 더는 둘의 적수가 되지 못했다. 그로부터 몇 분 지나지 않아 놈의 남은 오른 다리는 골반 밑에서 깊게 잘리고 고관절이 탈골되어 그 잘린 살을 뚫고 나왔다. 왼쪽 팔은 김현희에 의해 셀 수 없는 조각으로 박살 났다. 결국 놈은 바닥에 자빠져 두 사람을 노려보고 있었다.
“이년은 곧 죽을 텐데도 여전히 살기등등하네요.”
“그러게 말이오. 기가 꺾이지 않는 독종들이오.”
관장은 검으로 놈의 살을 찔러봤다. 단단하기는 했지만 더는 검이 들어가지 않는 몸은 아니었다.
“신기하오. 힘이 다 빠지면 몸이 더는 방어를 못하게 된다는 것이.”
“신기하긴 하네요. 이러나저러나 빨리 끝내고 가요.”
“그럽시다”
관장은 놈의 목을 베기 위해 검을 들었다. 그때 그 모습을 지켜보는 김현희가 갑자기 관장의 팔을 잡았다.
무슨 일인가 눈을 동그랗게 뜨고 김현희를 돌아보는 관장에게 그녀는 헤드셋을 벗어 넘겨줬다.
그 헤드셋에서는 이재규 대위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잠깐만요. 아직 죽이지 말아 주세요. 박 인화 소장님이 놈을 그대로 생포해 달랍니다. 놈의 약점을 찾을 수 있는지 연구해 보겠답니다>
말이 끝남과 거의 동시에 옥상으로 올라온 병사들의 손에 수갑과 쇠사슬이 들려 있었다.
그것을 본 관장은 검을 내리고 돌아서 계단을 향해 걸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