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97
Anti Zombie Field
박 준위는 매일 같이 평택으로 날아가 전단을 살포했다. 전단의 내용은 농협 원정 후 약간 바뀌었다. 정보만 간단명료하게 적시했던 딱딱한 공문서 느낌에서 신장개업 가게 홍보 전단 같이 문구가 수정됐다.
<안전한 숙소 제공, 충분한 식량 제공, 평택 미군기지로 오세요. 새로운 삶이 시작됩니다. >
로 시작해서 온갖 미사여구로 범벅된 전단의 내용은 용인 쉘터에서 진화자 모집을 위해 뿌렸던 것과 별로 다르지 않게 유치했다.
식사 중인 이진성과 나현주의 앞에는 그 전단 한 장이 놓여 있었다.
“이거 왜 이렇게 오글거리냐?”
“그러게요. 이거 보고 누가 올까 싶네.”
“이거 동건이가 작성했다고요?”
“혜진이랑 같이 했데요.”
“혜진이는 그래도 동건이 보다 난 줄 알았는데…”
“걔가 아직 10대 감성이 품품 하나 봐요.”
기지 내에 새 종이가 많지 않다 보니 전단은 주로 수거해온 종이에 프린트되었다. 이면지 또는 뭔가 잔뜩 인쇄된 양식에 출력된 전단은 내용만큼이나 허접해 보였다.
그런 전단을 보고 과연 사람들이 위험한 길을 떠나 기지로 올까 의문이 들었지만 누구도 크게 상관하지 않았다.
지금 당장은 와도 그만, 안 와도 그만이라는 것이 대부분 사람의 마음이었다.
“빈 집 거의 없다면서요?”
“그렇다나 봐요. 조만간 저쪽 타운하우스 쪽으로 이주할 사람 모집할 거 같아요.”
“거기 보니까 집 엄청 좋아 보이던데.”
“마당도 있고 집도 크고…”
“우리 거기 가면 개 키울래요?”
이진성과 나현주는 한가한 소리를 하고 있었지만 숙소 부족에 이재규는 골머리를 싸매고 있었다.
외부에 널린 게 집이지만 안전과 경비 문제로 선뜻 이주를 못하는 상황이었다. 안전시설을 설치할 자재가 부족했고, 경비할 인원이 모자랐다.
따라서 평택에서 이주민이 한 번에 많이 오면 그것도 문제였다. 일반인을 준비되지 않은 상황에 외부 숙소로 보낼 수도 없었다. 한 집당 거주 인원을 늘리거나 다른 건물을 이용해야 하는 상황이 온 것이다.
결국 진화자들이 우선적으로 기지 밖의 주택이나 아파트 등으로 옮겨야 하는데 그쪽은 아직 안전시설 공사를 시작도 안 한 상태였다.
일반인 이주 목적은 그들을 구한다기보다는 좀비가 될 재료를 줄이는 것이 더 컸다.
하지만 한 번에 많이 와서 생기는 문제보다는 그들이 좀비가 되는 편이 더 편하다는 생각이 지배적이었다.
어차피 변해도 대부분이 빨간 눈이고 일부만 검붉은 눈이 될 것이었다. 그들의 처리는 지금의 전력으로는 약간의 수고로움 정도로 충분했다.
* * *
전단 살포와 함께 진행된 정찰에서 아직까지 대규모 군집의 흔적은 발견되지 않았다. 검붉은 눈 몇 마리가 뭉친 십수마리 군집은 제법 많았다. 하지만 평택기지에서 타깃으로 하는 것은 백 단위 이상의 군집이었다.
작은 군집은 건드려 봐야 놈들이 뭉치는 계기만 만들어 줄 뿐이었다. 이미 크게 뭉쳐 있는 군집을 제거하는 게 더 효율적이라는 판단이었다.
벽면의 있는 대형 모니터에 뜬 지도를 여러 사람이 쳐다보고 있었다. 컴퓨터 앞에는 병사 하나가 앉아 있었다. 그 병사가 마우스를 클릭하는 데로 지도에는 군집의 발견 위치와 숫자 등의 정보가 표시되어 나왔다.
“저곳들은 검은 눈은 없다고 봐야겠죠?”
이재규가 지도를 보면서 입을 열었다.
“거기는 그렇겠네요. 더 찾아봐야죠. 평택 정도 도시면 기본적으로 인구수가 있는데 설마 전에 잡아온 그 년 하나겠어요?”
역시 지도를 바라보고 있던 이진성의 대답에 나현주가 덧붙였다.
“아직 주택가나 인구 밀집 지역은 안 갔잖아요. 그쪽에는 분명 있을 거예요”
“누나는 무슨 그런 걸 확신하고 그래? 없으면 좋지.”
“없겠냐? 평택시 인구가 몇인데?”
“몇인데?”
“몰라. 하여간 동탄보다는 많겠지.”
이재규가 노트북을 두드리고 말했다.
“여기 미군 데이터에 의하면 40만에서 50만 정도네요. 동탄 두배쯤입니다.”
“거봐. 많잖아. 동탄에 하나 있었으니까 여긴 둘은 있겠네. 하나 잡아 왔으니 하나는 더 있겠지.”
“동탄에서 우리가 확인한 것이 하나지 하나만 있다는 보장은 없소. 거기에 더 있었을 수도 있고 그렇다면 여긴 몇 마리가 더 있을지 모르오.”
“관장님. 너무 비관적으로 보지 말자고요. 힘 빠져요.”
“동건아. 항상 최악을 생각해 둬야지.”
“현희 누나 까지…”
대화를 듣던 이진성이 박 소장에게 물었다.
“그런데 말씀하신 대로 까만 눈을 먼저 제거하면 나머지는 흩어질까요?”
“일단 추측은 그렇게 합니다. 하지만 해 봐야 알겠죠. 놈들이 모이는 것이 까만 눈이라는 존재 때문이니까 구심점이 없으면 흩어질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빨간 애들은 검붉은 눈을 만들어서 모이잖아요?”
“그건 사냥을 원활하게 하고 자신들을 보호할 강한 개체가 필요해서라고 판단합니다. 그런데 까만 눈 밑으로 수백이 모이면 사실 군집이 너무 크거든요. 오히려 충분한 먹이를 확보하기 힘들어요. 자연계에서 충분한 먹이가 없는 상태에서 포식자의 개체수는 자연적으로 줄어듭니다. 아니면 흩어지던가요.”
“그래서 저것들도 흩어질 것이다라는 말씀이신가요?”
“당장은 아니어도 시간을 두고 흩어진다고 봅니다.”
박 소장의 이야기를 들은 장동건이 입을 삐죽 내밀었다.
“참 나. 흩어지기 전에 다 잡으려면 까만 눈만 먼저 폭격으로 잡거나 하지도 못하겠네요.”
“폭격으로 까만 눈을 잡기도 힘들겠지만, 개체수를 한 번에 줄이려면 그렇게 안 하는 게 좋겠죠.”
* * *
까만 눈이라는 위험 요소를 찾고 동시에 진화자라는 아군을 늘리기 위한 노력과 함께 기지의 영역을 넓히는 작업도 진행되었다. 기존에 하고 있던 농경지를 커버하는 팬스 공사의 영역을 넓히기로 한 것이다.
그동안 인근 마을의 수색과 정리는 어느 정도 됐다고 판단되었다.
생각보다 적은 생존자가 발견되어 기지로 이주했다. 그 과정에 생각보다 많은 남은 좀비가 처리되었다.
원래 주민이 변해서 둥지 튼 놈들이라면 그 보다 적었어야 했다.
“1호 무리에서 낙오한 것들 아닐까요?”
“그럴 수도 있겠습니다. 아니면 먹이 때문에 스스로 이탈한 놈들도 있겠죠.”
“어쩌면 자기 동네에 먹이가 없어서 이주한 놈들일지도 몰라요.”
놈들이 많은 이유에 대해 다양한 추측이 나왔다. 어떤 것이 맞는지는 아무도 알 수 없었다. 하지만 이유는 그다지 중요하게 생각되지 않았다. 이유가 어찌 됐든 인근으로 유입되는 놈들이 있을 것이라면 미리미리 막는 것이 좋다고 의견이 모였다.
더불어 기지 외부 주택의 안전 확보 측면에서 겸사겸사 영역 확장의 필요성이 있었다.
거기에 한 가지 이유가 더해졌는데 현재 기지 주변에 안전한 농토가 너무 적다는 것이었다.
“앞으로 비료나 농약도 없이 농사를 지어야 하는데, 수확량은 훨씬 떨어질 겁니다. 따라서 가능한 넓은 농토를 확보해야 합니다.”
인근 마을의 생존자는 대부분 농민이었다. 그들은 향후 각종 작물의 재배를 책임질 사람들이었다.
그런 그들이 단위 면적당 수확량이 현저하게 떨어질 것을 예상했다. 현재 논에서 자라고 있는 벼도 가을 작황이 그다지 좋게 예상되지는 않는다고 했다. 또한 밭에서 자라는 몇 가지 작물도 마찬가지였다.
이번에 몇 년 치의 곡식을 확보하긴 했지만, 입이 늘어난다면 그 기간은 단축될 것이다. 따라서 해가 가기 전에 더 많은 농토를 확보하는 것이 필요했다.
지금도 빈 땅은 널려 있지만 안전이 문제였다. 사람들이 일하러 갈 때마다 군인들이 따라붙는 것은 현실적으로 불가능했다.
그들의 의견에 따라 설정한 지역은 남쪽으로 둔포천과 군계천을 경계로 하고, 동쪽으로 경부고속선 철로까지였다.
서쪽은 아산호였고 북쪽도 안성천이 워낙 넓어 그쪽은 천연의 방벽이 이미 존재했다. 일부 교량만 막아 놓으면 그만이었다.
둔포천은 제법 넓은 하천이었다. 겨울에 놈들이 얼음 위를 걸어오는 경우를 제외하면 헤엄쳐서 와야 했다.
놈들이 헤엄까지 쳐가며 건널지는 모르는 일이지만, 그렇다 해도 물소리로 놈들이 오는 것을 쉽게 알 수 있다는 장점이 있었다.
따라서 그쪽에는 하천변에 있는 집들을 몇 개 선정, 경비 포스트로 만들고 하천변에는 레이저 와이어만 설치하기로 했다.
군계천은 경부고속선 밑에서부터 서쪽으로 약 2km 정도는 팬스 공사를 해야 했다.
그 구간은 하천의 폭도 2~3m 정도에 깊이도 깊지 않았다. 놈들이 건너온다면 첨벙거리며 걸어서도 금방 건너올 수 있었다.
더군다나 그쪽은 하천변에 논만 있고 농가가 없어 경비 포스트로 삼을만한 곳이 없었다. 따라서 팬스에는 진동센서가 설치되기로 했다.
경부고속선 철도는 대부분 구간이 논밭 위의 고가철로였다. 지면을 지나가는 구간은 이미 높은 벽이 존재해서 막을 필요가 없었다. 아닌 곳이 문제였다.
고가 밑의 기둥과 기둥 사이는 2m 정도 높이의 철조망 팬스가 있는 곳도 있기는 했다. 그런 곳은 작은 마을을 지나는 구간이었다. 대부분 농지를 지나는 곳은 그냥 뻥 뚫려 있었다.
그곳을 막으면 동쪽에서 오는 놈들은 막을 수 있다. 문제는 막아야 할 구간이 거의 6km였다.
충분한 양의 팬스를 구하기가 어려웠다. 지난 며칠간 기지 내 대부분의 병력과 민간인들은 팬스 확보 작업에 매달리고 있었다.
기지 내부의 이곳저곳에 있는 팬스는 다 뜯어졌다. 또한 지금까지 설치했던 농경지 팬스도 뜯어서 이동설치되었다.
기지 밖 농경지나 건물에 있는 철조망이나 간이 벽, 공사장의 철제 팬스 등 놈들의 발목을 막을 수 있는 것은 모조리 뜯겨 나갔다.
Anti Zombie Field 프로젝트로 이름 붙여진 그 해체와 설치 공사의 감독은 이택진의 몫이었다.
오늘도 중장비 운전이 가능한 몇몇 사람과 기지 내 포클레인과 중장비를 몰고 나와 공사를 하고 있었다. 마을에서 뜯어낼만한 것들은 거의 뜯어냈지만 며칠만 더 쓰면 더 이상은 없었다.
“이걸로는 많이 모자라는데.”
작업을 감독하면서 그는 고민에 빠졌다. 철조망 같은 것들은 놈들이 쉽게 넘을 수 있다.
비록 동작 센서를 달아서 놈들이 넘는 것을 감지한다고는 하지만 그때 출동하면 이미 넘을 놈들은 넘어서 구역 내로 들어온 후가 된다.
그래서 조금이라도 놈들을 지연시키기 위해 위아래도 두 개를 붙여 높이를 높였다. 또 그런 것들을 앞뒤로 2m 간격으로 두 겹을 설치하고 있었다. 네 배의 재료가 들어가는 것이었다. 군계천 2km는 어떻게 될 것 같은데 문제는 철로 밑이었다.
점심을 먹은 이택진이 그를 따라 나온 군인에게 다가갔다.
“저기, 나 잠깐 차 좀 쓰고 싶은데요.”
“어디 가시려고요? 제가 같이 가겠습니다.”
“아니에요. 여기 경계해야죠. 그냥 차로 저쪽 철로 쪽 가보게요. 거기 철로 건너편에 혹시 자재로 쓸만한 것들 있나 둘러보려고요.”
“혼자 괜찮으시겠습니까?”
“험비 튼튼한데 걱정은 무슨. 괜찮아요. 정 걱정되면 소총 한 자루 주던가.”
“음. 그럼 소총하고 탄약 좀 드리겠습니다. 위험하면 기지에 도움 요청하십시오.”
공사 중에 소규모 습격은 자주 있었다. 따라서 항상 1개 분대의 인원이 공사장에 따라 나와 있었다.
그들이 감당할 수 없는 숫자가 오면 모두 험비와 장갑차에 타고 지원이 오기를 기다리는 형식이었다.
이택진은 사람들을 뒤로하고 동쪽으로 천천히 험비를 몰고 가면서 연신 좌우를 살폈다.
혹시라도 아직 뜯어내지 않은 것들이 있는지 살폈지만 그런 것이 남아 있을 리 없었다.
철로 넘어서는 나가보지 않았지만 용기를 내서 가 볼 작정이었다.
어느새 저 앞에 철로가 보이기 시작했다. 그 밑으로는 철로 너머까지 논만 시원하게 펼쳐져 있었다.
답답한 마음에 교각을 따라 고개를 올려 공중을 가로지르는 철로 교량을 바라 보길 잠시, 그의 표정이 밝아지기 시작했다.
후다닥 험비에서 내린 그가 선로 밑에 내려 교각에 설치된 유지보수용 사다리를 타고 올랐다.
올라오자 마자 양쪽으로 설치된 소음차단벽을 살폈다.
금속재 벽이 설치되어 있었는데 어렵지 않게 해체해 낼 수 있는 구조였다. 높이도 충분히 높았다.
그것이라면 한 겹으로 쭉 이어 붙여도 충분해 보였다. 그리고 양쪽으로 있으니 설치된 길이의 두배를 막을 수 있었다.
어째서 여태 아무도 보지 못했는지 의문이었다.
“유레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