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좀비 에이지 백수 생존기-101화 (101/145)

# 101

“진탁아. 좀 어떠냐?”

“형님 오셨어?”

“놈들 좀 어때?”

“그냥 저러고 있어.”

공격을 유도하겠다고 최 선생에게 말했던 규석은 동쪽 도로가 보이는 한 동의 꼭대기 층으로 올라왔다. 20층에서 공사가 멈춘 그곳에는 자신과 같이 탈영한 진탁이 보초를 서고 있었다.

사회에서 양아치 짓이나 하고 살던 백수라는 공통점과 동기라는 점으로 자대 배치 후 급속도록 친해진 둘이었다. 그런 둘이 사태 발발과 함께 분대원을 다 죽이고 무기를 수거해 탈영했었다. 그리고 이곳으로 합류 후 규석은 몸살을 겪고 진화자 그룹으로 들어가고 진탁만 군인 그룹에 남아 있었다.

반갑게 인사한 규석은 가림막의 구멍을 통해 도로에 정차한 장갑차를 흘깃 보고는 진탁에게 안부를 물었다.

“지낼만하냐?”

“뭐 그렇지. 형은?”

“나야 재미있게 살지. 흐흐. 나갈 때마다 짜릿짜릿해.”

“흐흐. 나도 소문 들어 알아. 형 죽이던데? 적당히 해요. 그러다 지옥가.”

“새끼. 지옥은 이미 열두 살 때 예약해 놨다. 크크크”

“그나저나 어쩐 일 이우?”

“니가 여기 당번이라서 한번 와 본거지. 저 새끼들 어쩌고 있나 궁금도 하고. 근데 박격포 있다던데 안 보이네?”

“장갑차에 가려서 안 보여.”

“그냐? 그럼 저기 보이는 두 놈 말고 더 있는 거야?”

“응. 전부 셋인가 그렇던데?

잠시 뜸을 들인 규석이 진탁에게 넌지시 말했다.

“야. 너 나 좀 도와주라.”

“응? 뭘?”

“저 놈들 좀 쏴 줘.”

“어? 왜? 형 미쳤어? 가만있는 애들을 왜 쏴?”

“그게···”

규석은 자신들의 계획을 설명하기 시작했다. 설명의 말미에는 진탁의 회유를 위한 당근도 붙어 있었다.

“그러니까 너도 군바리 새끼들 따까리 그만하란 말이야. 이거 잘만되면 니가 남은 군인들 지휘하게 해 준다고 최 선생이 약속했어. 알겠어?”

“잘 안되면?”

“걱정 마. 씨불. 잘 안돼 봐야 다 죽는 거지. 우리는 또 도망치면 그만이야.”

“어디로 도망친다고? 아 씨. 싫어. 그냥 여기서 살던 대로 살래.”

미적거리는 진탁을 보는 규석의 눈이 사나워지기 시작했다.

“이 새끼 봐라? 야. 좋은 말로 하니까 말이 말 같지 않냐? 싫어? 씨발. 니가 안 하면 그렇게 안될 거 같아? 이미 다른 곳도 다 사람들 갔어. 거기는 다 죽이고 시작할 거야. 너니까 내가 와서 살리려고 이러는 건데 뭐? 너도 딴 놈들처럼 죽고 싶냐?”

돌변하는 규석의 태도에 놀란 진탁은 당황했다.

“어? 어? 형 왜 그래?”

“이 씨발 새끼야. 사태 파악 좀 하라고. 니가 협조 안 해도 지금 전쟁은 나게 돼 있어. 넌 내가 시키는 대로만 하면 우리가 보호해 준다잖아. 니가 말 안 들으면 내가 널 죽여야 돼. 씨발. 최 선생 명령을 내가 어쩔 수 없는 거 알잖아? 그러니까 너도 살고 나도 나쁜 놈 안되고 좋게 좋게 가자.”

“진짜야? 정말 다른 보초병은 다 죽는 거야?”

“씨발. 너 나 못 믿어?”

“형... 믿지.”

“그럼 그냥 내 말만 들어. 다른 사람 아니고 내가 온 게 너 살리려고 온 거라니까?”

“진짜··· 지?”

“이 새끼가 진짜.”

때리려는 듯 번쩍 들린 규석의 손에 움찔한 진탁이 그의 들린 손을 잡으며 급하게 말했다.

“알았어. 알았어. 할게. 대신에 진짜로 나중에 내가 지휘관 하는 거다?”

“그래 씨발새끼야. 송 중위하고 니 위에 새끼들 다 제거해 줄 거니까 걱정 마.”

다시 안전막의 구멍을 통해 본 아래에는 둘만 왔다 갔다 할 뿐 나머지 하나는 장갑차 뒤에서 계속 나오지 않고 있었다.

“형. 둘 밖에 없는데 어쩌지?”

“뭘 어째?”

“셋 다 죽여야 하는 거 아냐?”

“야. 이 새끼. 아직 이해 못했네. 저 놈들 죽이라는 게 아니잖아. 저 놈들이 안으로 들어오게 하는 게 목적이라고. 그리고 어차피 니 실력에 맞추지도 못하는데 뭔 걱정이야?”

“어? 그런가?”

덥수룩한 머리를 글적글적한 진탁은 총을 들었다. 그리고 기왕 쏠 거 화끈하게 쏜다며 연사로 조정 간을 돌렸다. 규석은 진탁의 등을 한번 더 토닥여 줬고 진탁은 그와 함께 방아쇠를 당겼다.

* * *

이재규와 이진성은 총성이 들리자 작업 중단을 외치며 사람들을 대피시키기 시작했다. 비록 총성은 멀리서 들렸지만 교전이 시작되면 이쪽으로도 놈들의 공격이 올 수 있다. 팬스에 붙어 작업하고 있는 사람들을 안전하게 대피시키는 것이 우선이었다.

다행히 올라가다 만 건물이 있으니 그 안으로 피하면 안전했다. 경계서고 있던 운전병을 불러 저만치 서 있는 육공트럭으로 사람들을 나르게 한 이재규는 장갑차를 호출했다.

“무슨 일이야? 상황 보고해.”

“3호차입니다. 사격이 시작되었습니다. 응사합니까?”

“가만있어봐. 다른 차량 상황 보고해”

“2호차 이상 없습니다.”

“1호차 이상 없습니다”

“뭐야? 한쪽에서만 공격이야? 3호차. 자세히 말해봐”

“그게··· 한 명이 쏘고 있는 것 같습니다. 조준 사격도 아니고 그냥 갈기고 있는데요?”

아직 총성은 들리고 있었다. 타다다 소리는 분명 연사를 끊어 쏘고 있는 것이었다. 한 명이라고 했다. 이 재규는 놈들이 무슨 수작인지 이해가 되지 않았다.

‘이것들이 우리가 어떻게 할지 간 보는 건가?’

아직 적의 규모를 모르는 상태에서 섣불리 응전하기도 곤란했다. 출발 전에 예측한 대로 적의 병력이 100명 이상이라면 피곤한 전투가 될 수 있었다.

“사격 위치는 확인했나?”

“그렇습니다. 전방의 아파트 꼭대기입니다. 가림막 중간에서 총구 화염 보입니다.”

“거기 박격포 날려줘. 그리고 모든 장갑차 현 위치 대기. 다른 쪽에서도 공격 있을 시, 위치 파악되면 응사한다. 아니면 무시한다.”

방어 명령만 내린 이재규의 험비는 막 사람들이 피신한 아파트로 향했다. 그리고 이재규는 차량에서 내릴 때 박격포탄이 터지는 소리를 들을 수 있었다.

* * *

이재규가 침착하게 대응하는 것과 달리 중위는 총소리에 혼비백산했다. 막 쪽문을 지나 자신들의 영역으로 들어서는데 동쪽에서 총성이 들려온 것이다.

자신의 계획에 없던 총성이었다. 처음에는 저쪽에서 사격을 시작한 것이 아닌가 생각됐다. 하지만 곧 그 총성이 한 명에 의한 것임을 알아챘다. 그리고 그것은 소총 소리였다.

‘장갑차에서 소총을 쏘지는 않을 텐데, 그럼 우리 쪽에서 쏘는 건가? 왜? 누가?”

빨리 확인해야 했다. 이쪽에서 시작한 사격이라면 그 미친놈을 당장 말려야 했다. 쪽문에서 대기하고 있던 상민과 함께 동쪽으로 달리기 시작한 중위는 무전기가 너무 아쉬웠다. 배터리가 없어 쓰지 못하고 있었다.

아쉬움을 가지고 달리는 그가 목표로 하는 동이 보이는 코너를 막 돌았을 때였다. 그는 저 앞에 보이는 건물의 꼭대기층을 둘러싸고 있던 가림막이 화염과 함께 터져 나가는 것도 볼 수 있었다.

“씨발. 총 몇 발 쐈다고 포격을 하네. 무식한 새끼들.”

폭발은 딱 열 번이었다. 열 번 이후 더 이상의 폭발이 없자 그는 포격에 멈췄던 발걸음을 재촉했다. 그의 생각에 그곳에 있던 놈이 살아 있을 것 같지는 않았다. 하지만 만약에라도 부상 입은 채 살아있다면 구해와야 했다.

“빨리 가자. 이제 장갑차 밀고 들어오면 진짜로 좆된다.”

그들이 막 몇 걸음 옮겼을 때였다. 그들은 그곳에서 나와 아지트 쪽으로 달리는 한 사람을 볼 수 있었다. 그는 진화 후 자신들을 떠난 놈이었다. 요즘 너무 심한 행동에 몇 번 주의를 줬더니 바락바락 대들기까지 하는 바로 그놈이었다.

“저 새끼가 왜 저기서 나와?”

“그러게요? 그것도 혼자서?”

생각지도 못했던 놈의 출현에 중위가 당황해하고 있을 때, 그가 남기고 온 넷은 어떻게 해야 하나 망설이고 있었다.

이미 총성과 포격 소리를 들었다. 교전이 시작된 것이었다.

“어쩌지?”

“그러게? 형님은 그냥 보고 있으라 그랬는데···”

“교전 시작되면 어쩌라고 말이라도 하고 가지···”

“지훈아. 니가 선임이잖아. 어떻게 해?”

“아 형은 지금 선임을 왜 따져? 이판국에 선임이 왜 나와?”

“씨발. 그래도 누가 총대를 매야 할거 아냐?”

“우리도 사격해야 하는 거 아냐? 저기 민간인들은 이미 다 숨었잖아. 나머지는 군인이니까 쏴도 문제없는 거 아냐?”

“그럴까? 쏠까?”

“에이 몰라. 일단 쏘고 봐. 그냥 있다가 저 놈들 밀고 오면 그게 더 문제잖아.”

넷은 사격을 시작했다. 당연히 아래에서 경계를 서던 병사들도 응사했다.

그 상황은 다른 곳의 보초들도 오판하게 만들었다. 포격이 진행되는 동안 갈등하던 그들은 포격이 끝나자 다시 들리는 총성에 너도 나도 방아쇠를 당기기 시작했다.

그들의 귀에 들리는 소리는 분명히 쌍방의 교전 소리였다. 전투가 시작된 것으로 오해한 놈들은 저마다 자신의 위치에서 사격을 시작했고, 세 방향의 장갑차는 기관총과 박격포로 대응하기 시작했다.

중위는 사방에서 다시 들리는 총성과 폭음에 당황했다.

“이건 또 뭐야? 이 새끼들 왜 지들 마음대로 사격질이야?”

들리는 교전 소리에 망연자실해서 그 자리에 멈춰 선 그의 머릿속은 하얗게 비어갔다. 상황이 점점 나빠지고 있었다. 이대로 가다가는 끝장난다는 생각이 들었다.

다행히 포격은 금방 멈췄다. 남은 것은 북쪽의 네 녀석의 교전 소리뿐이었다. 선 자리에서 소리를 듣고 있던 중위는 정신이 퍼뜩 들었다. 사격이 끝난 쪽에서 밀고 들어오면 자신들은 농성전을 해야 한다. 빨리 가서 농성전을 위한 병력 배치를 해야 했다.

“상민아. 저기 올라가서 살았는지 확인하고 그다음에 장갑차 밀고 들어오는지 확인하고 와. 이미 들어왔으면 아지트로 오지 말고 적당한데 숨어있어.”

확인을 지시한 그는 다시 달려 나갔다. 아지트 건물에 도착해 계단을 달려 올라가는 그는 심장이 터질 것 같았지만 지체할 수 없었다. 젖 먹던 힘까지 짜내 겨우겨우 9층의 자신들 구역에 도착하자마자 소리치며 달려들어갔다.

“전원 수비 위치로.”

그들은 좀비 떼 또는 강력한 약탈자 집단의 습격에 대비해 농성전 계획을 짜 두었었다. 짜면서도 그런 일이 발생하지 않기를 바랐지만 결국 써먹게 된 것이었다.

폭음과 총성에 긴장하고 있던 탈영병들은 저마다 무기를 챙겨 들고 밑으로 위로 달리기 시작했다. 중위는 그들을 바라보며 입술을 잘근잘근 씹었다.

“제발 들어오지 마라. 니 놈들이 들어오면 전투가 길어지고 그러면 좀비들이 소리 듣고 몰려온다. 제발 오지 마라.”

중위가 걱정하는 것은 전투보다는 그 이후의 좀비 침입이었다. 군대의 공격은 막을 자신이 있었다. 장갑차는 건물 내부의 자신들을 잡을 수 없다. 활강포를 단 한대가 신경 쓰였지만 놈이 건물 전체를 파괴할 수는 없다. 병력이 투입되면 자신들이 훨씬 유리하다.

하지만 장시간 포성과 총성이 나면 분명히 좀비 떼가 몰려올 것이라는 생각이었다. 안 그래도 요즘 서쪽 아파트 단지 너머에서 수차례 대규모 좀비를 목격했었다. 만약 놈들이 몰려와서 장갑차가 밀고 들어온 구멍으로 들어온다면 이곳은 더 이상 안전구역이 될 수 없다는 생각이 들었다.

입술을 씹으며 생각에 잠겨 있던 중위는 갑자기 자신의 방으로 달려 들어갔다. 한편에 아무렇게나 널려있는 자신의 물건을 헤집어 한참만에 찾아든 것은 볼펜과 자신의 수첩이었다. 거기에 뭔가를 한참 적고 수첩 몇 장을 북 찢어내고는 밖으로 달려 나온 그의 눈에 막 안으로 들어서는 상민이라는 놈이 보였다.

“어떻게 됐어?”

“어느 쪽에서도 놈들이 들어오지 않고 있어요.”

급격하게 밝아진 얼굴의 중위는 자신의 손에 있는 종이를 상민에게 쥐어 주고는 다시 주위를 두리번거렸다. 그리고 구석에 대충 널려있는 흰색 수건 하나를 들고 와 상민의 소총 총신에 묶었다.

“너 이거 가지고 북쪽에 있는 놈들한테 가. 가서 지휘관 찾아서 이 종이 전해 줘. 빨리.”

영문도 모른 채 등 떠밀린 상민은 다시 계단을 달려 내려가야 했다. 소총에 매달린 흰 수건은 백기라고 만들어 준 것 같았다.

“씨발. 난데없이 전령은 또 뭐야? 뭐라고 적은 거야?”

종이에 적힌 내용이 궁금했지만 지체할 시간이 없다는 것은 자신도 알고 있었다. 전속력으로 달려 아까의 쪽문을 통과해 좀비가 달려들지도 모르는 아파트 단지를 다행히 별일 없이 지난 상민은 백기를 흔들며 도로를 건넜다. 그리고 그는 길 건너 공사장 안쪽에서 자신에게 총을 겨냥하고 있는 병사들에게 소리쳤다.

“쏘지 마. 전령. 전령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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