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좀비 에이지 백수 생존기-102화 (102/145)

# 102

“그러니까 사격은 당신들이 한 게 아니다? 같은 공간을 쓰고 있는 초인이라는 사람들이 한 거다?”

“저는 내용을 모릅니다. 전달만이 임무입니다.”

이재규는 자신이 읽은 쪽지를 이진성에게 넘겨주며 눈 앞의 전령에게 쪽지의 내용을 확인했다. 하지만 전령은 아는 것이 없는지, 아니면 모른 척하는 것인지 모르쇠로 일관했다.

이진성이 받아 든 쪽지에는 갈겨쓴 구구절절한 문장이 적혀있었지만 요약하면 내용은 많지 않았다.

첫째. 자신들은 민간인으로 이곳에서 평화롭게 살아왔다. 총기는 버려진 것을 습득한 것이다.

둘째. 좀 전의 사격은 자신들이 시작한 것이 아니다. 같이 사는 과격하고 반인륜적인 특수한 능력을 가진 초인들이 한 것이다.

셋째. 150명이 넘는 민간인이 안에 살고 있다. 그들이 공포에 떨고 있다.

넷째. 침공과 점령이 목적이 아니라면 더 이상의 공격은 하지 말아 달라. 서로 얻는 것 없이 좀비만 불러올 뿐이다. 그럼 안전지역이 파괴되고 150명 이상의 목숨이 위협받는다.

쪽지를 다시 이재규에게 넘긴 이진성이 전령에게 물었다.

“초인이라는 사람들이 몇 명이나 있나요?”

“스물둘입니다.”

“150명이 넘는 사람들이 살기에 힘들지 않습니까? 전단 봤죠? 혹시 이주 원하는 사람은 없습니까?”

“좀 있기는 합니다. 그런데 초인들이 못 가게 하고 있습니다.”

“왜요?”

“그게… 아닙니다. 저는 자세한 내용은 모릅니다.”

“총도 그 사람들이 가지고 있나요?”

“총은 저희가 가지고 있습니다.”

“여기 쪽지 보면 사격은 그 사람들이 했다고 되어 있는데?”

“어… 그게… 아마 놈들이 빼앗은 것 같습니다."

전령의 모습에서 이진성과 이재규는 안의 상황을 대충 짐작할 수 있었다. 동탄의 허 대령처럼, 또는 용인 쉘터의 박 의원처럼 사람들을 착취하며 왕 노릇을 하고 있는 것이 분명했다.

민간인이라고 하지만 탈영병이 분명한 집단과 초인이라는 진화자 그룹은 서로 견제하면서 지내고 있는 것으로 보였다.

‘탈영병의 수가 많지는 않나 보군. 진화자 스물둘이 사람들을 통제하는 거 보면…….’

눈 앞의 전령도 탈영병이 분명했다. 하지만 이진성과 이재규는 일단은 모른 척하고 넘어가고 있었다.

이재규는 몇 가지를 더 물었지만 전령은 대부분 대답하지 않았다. 더 들을 내용도 없어 전령은 돌려보내기로 마음먹었다.

쪽지에 적힌 대로 사격을 진화자가 했는지 탈영병이 했는지는 상관없었다. 어차피 더 공격할 생각도 없는 그는 상대가 적대행위만 하지 않으면 그만이었다.

“그 헤드셋 벗어 줘 봐.”

이재규는 옆에 있던 병사에게 헤드셋을 받아 들더니 그걸 전령에게 건넸다.

“이거 가지고 가서 그쪽 지휘관에게 전해줘요. 아무래도 직접 얘기할 일이 있을 거 같아요.”

“알겠습니다.”

* * *

헤드셋을 받아 든 중위는 이리저리 돌려보며 신기해했다.

“야. 상민아. 이걸 거기 사람들 다 쓰고 있었다고?”

“제가 본 군인은 다 쓰고 있던데요?”

“와 씨. 미군기지에 있다더니 이런 거 막 같이 쓰나 보네. 씨불. 부럽네.”

“그거 미군 거예요?”

“당연하지. 너 이런 거 본 적 있냐? 없지?”

“첨 보죠.”

“이런 거 쓰는 거 보면 물자는 정말 풍부하나 봐. 과거만 없으면 가고 싶다. 정말…….”

“그러게요. 그러니까 적당히 하시지 좀…….”

“허, 이 새끼 봐라. 나 혼자 했냐? 나 혼자 했어?”

중위라는 계급이 무색하게 병장과 투닥거리던 그는 마음을 다잡고 헤드셋의 파워를 켰다.

“여보… 세요?”

잠시의 시간이 지난 후 상대의 대답이 흘러나왔다.

<아. 미안합니다. 잠시 회의하느라고…>

“아닙니다. 괜찮습니다. 그런데 직접 할 말이 있으시다고…?”

<그렇습니다. 일단 전달 내용에 답부터 드리겠습니다. 우리는 여러분이 어떻게 살든 관여하지 않습니다. 여기 온 목적은 이곳에 있는 크레인 차량과 공사장의 팬스의 확보입니다. 그러니까 걱정 안 하셔도 됩니다.>

“정말입니까? 그렇다면 저희도 가만있을 겁니다. 볼일 보시고 조용히 돌아가시기만 하면요.”

<그런데 우려되는 점이 있긴 합니다.>

“네? 무슨…?”

<그 초인이라는 사람들 말입니다. 쪽지에 적힌 대로 그 사람들이 공격한 것이면 지금 통신하시는 분이 통제 가능합니까? 제가 그 사람들과 통신해야 하는 거 아닙니까?>

중위는 당황스러웠다. 책임을 돌리기 위해 한 거짓말이었는데, 상대는 이곳의 실질적 통제가 초인 그룹에 의해 이루어진다고 생각하는 것 같았다.

“아. 걱정 안 하셔도 됩니다. 그 사람들은 저희가 통제할 수 있습니다. 그리고 아까의 총격에 대한 책임도 물을 겁니다.”

<책임을 묻는다고요?>

“네. 내부 사정이라 자세한 말씀은 안 드리겠습니다. 하지만 저들의 도발이 저희를 위험하게 한 것이니까 책임을 물어야죠.”

<알겠습니다. 혹시라도 저희 도움이 필요하면 말씀하십시오. 도와 드릴 수 있는 부분은 도와 드리겠습니다.>

중위는 사격의 시작이 진화자 그룹의 농간임을 확신하고 있었다. 그게 아니면 아까 봤던 규석이라는 진화자가 그곳에서 혼자 내려올 이유가 없었다. 놈의 사주에 의한 것이거나 놈이 보초를 죽이고 직접 한 것이 분명했다.

상민의 보고에 의하면 그곳은 폭격에 초토화돼서 시체를 찾지도 못했다고 했다. 어쩌면 폭격이 없었어도 시체는 놈이 인멸했을 거라는 생각이었다.

‘이것들이 우리하고 군대를 충돌하게 유도했단 말이지. 우리 세력을 줄이려나 본데… 니들 맘대로 되진 않을 거다.’

부랴부랴 전령을 보내 더 이상 충돌을 하지 말자는 요청부터 했다. 더불어 총격의 책임을 그쪽으로 돌렸다.

다행히도 군대의 목표는 점령 같은 것이 아니었다. 그들은 놔두면 조용히 물러갈 사람들이었다.

일단 사태를 진정시켰으니 이번에는 자신이 진화자 그룹에 역공을 할 생각이었다.

‘여태 니들이 필요해서 지랄을 해도 그냥 보고 있었지만 이렇게 나오면 얘기가 다르지.’

저쪽에서 이쪽의 세력 약화를 노린다면 더 이상의 공존은 물 건너간 것이다. 이쪽도 상대의 세력을 줄여 다시는 도발하지 못하게 만들 필요가 있었다.

다 죽일 필요는 없었다. 수만 줄여 힘의 우위를 통한 통제권 장악이 목표였다. 자신들의 안전을 위해서도 놈들이 적당히 남는 것이 좋았다.

‘뭐… 싸우다 다 죽어도 어쩔 수 없는 일이긴 하지만… 그러나 저러나 어떻게 기회를 만들지? ‘

놈들이 문을 잠그고 나오지 않는다면 잡을 방법이 없었다. 놈들의 아지트에서 나오게 할 구실이 필요했다. 그리고 가능한 흩어지게 해야 하는데 그럴만한 구실이 쉽게 떠오르지 않았다.

서성이던 중위는 한참만에 문득 떠오른 생각에 표정이 확 밝아졌다.

‘아! 그 다섯 명!’

항상 삐딱하던 다섯 명의 진화자가 생각났다. 그들은 약탈 나가서도 좀비만 상대했을 뿐 다른 민폐 행위는 하지 않았다.

그런 태도 때문에 진화자 그룹 내에서 항상 따로 놀았고 군인들과도 그다지 가깝지 못했다.

노역하는 민간인들에게 혹시라도 가혹 행위하는 군인이나 진화자가 있으면 그들이 나서 말리기도 했다.

그 사람들이 전단을 본 후 저쪽으로 가고 싶어 한다는 것을 중위도 알고 있었다.

“야. 그 사람들 있잖아. 저쪽으로 가고 싶어 하는 초인 다섯 명.”

“네. 그 사람들 왜요?”

“지금 어디 있냐?”

“모르죠. 왜요?”

“너 이리 와봐.”

가까이 다가온 상민에게 아무도 듣는 사람도 없는데도 귓속말을 시작했다. 길지 않은 몇 마디 말에 고개를 끄덕이던 상민은 총은 놔두고 빈손으로 방을 나섰다. 그리고 중위는 다시 생각에 잠겼다.

‘그 사람들을 저쪽으로 보내버리면 간단하게 다섯을 줄이는 거잖아. 나머지 놈들이 못 가게 하면 그것만 막아 주면 돼.’

다섯을 보내면 열일곱만 남는다. 두어 명만 더 제거해도 굳이 최 선생까지 제거하지 않아도 통제할 수 있겠다 싶었다.

‘규석이 그놈은 이번에 제거하자. 그리고 두어 명 더 죽이면 되겠어.’

생각 중에 상민이 다시 들어왔다.

“그 사람들 11층에 있어요. 그런데 그 사람들만 있는 건 아니고요. 다른 초인 두 명도 같이 있어요.”

“분위기는?”

“별다른 거 없던데요? 제가 가니까 총소리 뭔지 폭격은 뭔지 묻던데요?”

“그렇단 말이지? 아무것도 모르고 있다는 건데… 야. 서두르자. 너 밑에 가서 감시인원 남기고 올라올 수 있는 애들 다 올라오라 그래. 급해”

* * *

“니들은 여기서 문 열리면 쏴버려. 죽일 필요 없어. 못 나오게만 하면 돼.”

10층의 놈들 아지트 현관문 앞에 병사들 여덟을 배치한 중위는 상민을 데리고 위로 향했다. 그리고 놈들이 있는 집 현관문을 두드렸다. 안에서는 금방 누구냐고 묻는 소리가 들려왔다.

“접니다. 송 중위”

“중위님이 어쩐 일로?”

문을 열며 바깥을 본 진화자는 총을 든 중위의 모습에 약간은 놀랐지만 다른 의심은 하지 않는 듯 안으로 들어갔다. 좀 전에 총격과 포격이 있었으니 총을 들고 있는 것이 이상해 보이지는 않았다. 단지 다시 올라온 상민도 이번에 총을 들고 있었지만 그 역시 별 신경 쓰지 않았다.

“무슨 일 있어요?”

놈의 물음에 중위는 대답 대신 내부를 둘러봤다. 거실에는 삐딱선을 탄 진화자 다섯과 그들의 감시역인 둘이 같이 있었다.

“아. 포격에 놀라셨죠? 상황 설명해 드리려 왔습니다. 일곱 분이 전부이신가요? 다른 분 없으세요?”

“아까 상민 씨 와서 대충 설명했는데 뭐 하러 중위님까지 오셨어요? 수고스럽게. 저희가 전부입니다. 말씀하시면 됩니다.”

저쪽을 마음에 두고 있던 다섯은 저들이 왜 공격했는지, 성향이 어떤지 궁금했고 나머지 둘은 무료함에 지쳐있던 차에 얘깃거리가 생긴 것이 반가웠다.

그런 일곱은 이야기를 들으려 저마다 편한 자리에 주저앉았다. 그들 누구도 무기를 가까이 둔 사람은 없었다. 그런 그들을 한차례 둘러본 중위는 사람들이 생각하지 못한 말을 꺼냈다.

“미안합니다.”

갑작스러운 뜬금없는 사과에 어리둥절한 사람들은 더 뜬금없이 총을 드는 중위의 모습과 두발의 총성과 함께 가슴이 뚫려 자빠지는 진화자 둘을 봐야 했다.

깜짝 놀라 후다닥 일어나는 다섯의 진화자에게 중위는 총구를 돌렸고 상민도 그를 따라 총을 들었다.

“어, 어, 이거 왜 이래요?”

“놀라지 마세요. 여러분께 위해를 가하러 온 게 아닙니다. 시간이 없으니까 간단하게 말하겠습니다.”

중위는 놀라서 얼어있는 다섯에게 빠르게 말했다. 그들이 저쪽으로 갈 수 있게 도와주겠다는 내용이었다. 저들의 포격은 오해에서 시작되었고 그 오해는 이쪽의 진화자가 초래했다는 말도 덧붙였다.

“우리가 가는 걸 밑에서 알면 가만있지 않을 텐데요?”

“우리가 막겠습니다. 갈 거면 서둘러 주세요. 총소리가 났습니다. 10층 문이 언제 열릴지 모릅니다.”

“이렇게 갑자기? 짐도 챙겨야 하는데.”

“짐이 무슨 필욥니까? 저기는 물자가 넘쳐 나는데. 그냥 몸만…….”

그때 아래층에서 총성이 터져 나오기 시작했다.

“놈들이 나오려나 봅니다. 지금 우리 병사들이 못 나오게 막고 있지만 어떻게 될지 모릅니다. 서둘러요.”

다섯은 정신이 없었지만 도망칠 기회라는 것은 알 수 있었다. 일단은 현관으로 달렸다. 무기를 쓰는 사람은 자신의 무기를 집어 들고 달렸다.

그렇게 다섯이 현관으로 나갔을 때 10층의 현관문은 다시 닫히고 병사들은 문을 노려보고만 있었다.

“지금입니다. 빨리 가세요.”

중위의 재촉에 다섯은 계단을 달려 내려가기 시작했다. 그 모습을 내려다보며 그들의 발소리조차 들이지 않게 되자 중위는 헤드셋을 켰다.

“접니다. 한 가지 도와주셨으면 하는 게 있습니다.”

<말씀하세요.>

“서쪽 도로변 북쪽으로부터 세 번째 건물입니다. 그곳 10층 도로 쪽 집에 포격 부탁드립니다.”

<포격이요?>

“네. 거실과 방으로 서너 발만 부탁드립니다. 거기에 아까 말씀드린 초인들이 있습니다.”

통신을 마친 중위는 현관문을 노려보며 병사들을 계단으로 물렸다. 그곳에서 튀어나오는 놈들만 제압할 작정이었다.

“다 죽으면 어쩌죠?”

“뭐 어쩔 수 없는 거지. 우리가 좀 불편하고 말지 뭐.”

포격을 기다리는 중위의 얼굴에는 미소가 번져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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