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03
“저 쳐 죽일 것들이…….”
“최 선생님. 어쩌죠? 저것들이 작정했나 본데요?”
위층에서 들린 총성에 놀라 밖으로 튀어 나가려다 실패한 진화자 그룹은 우왕좌왕하고 있었다. 제일 앞에 나가려던 한 사람은 배에 총을 맞아 쇼크로 경련을 하고 있었다. 문이 열리면서 그가 총을 맞아 다른 사람들은 다행히 총탄을 피할 수 있었다.
하지만 나가지 못하고 대치하는 상황에서 할 수 있는 것은 없었다. 10층인 자신들의 아지트에서 밑으로 뛰어내릴 수도, 다른 출구가 있어 우회할 수도 없는 상황이었다.
“저것들이 감히…….”
분을 삭이지 못하고 씩씩거리는 최 선생과 몇 명은 당장 뛰어 나가고 싶었지만 현관문은 너무 좁았다. 줄지어 나가면 또 앞에서부터 총을 맞고 쓰러질 뿐이었다.
“포격도 멎고 총성도 멎어서 이상하다 했더니 중위 놈이 눈치채고 선수를 쳤나 봅니다.”
“도대체 놈이 어떻게 눈치를 채요? 규석 씨. 뭘 어떻게 한 거야?”
“어… 저는 깔끔하게 처리하고 왔습니다. 저쪽 박격포가 날아오자마자 놈을 죽이고 왔어요. 나오면서 놈 시체가 포탄에 날아가는 것도 봤습니다.”
“그런데 저 놈들이 어떻게 눈치를 채?”
“저… 최 선생님. 지금 그거보다는 어떻게 해야 할지를 결정해야…….”
“기다려 봐요. 생각을 하잖아.”
누구 하나 나서서 총대를 매겠다는 사람이 없이 자신만 바라보는 상황에 최 선생은 더 짜증을 냈다. 그리고 마침내 생각 끝에 낸 아이디어는 자신을 짜증 나게 한 놈들의 희생을 강요하는 것이었다.
“규석 씨랑 현배 씨, 정은 씨가 선두로 서세요. 최대한 빠르게 나가면 어쩌면 총 맞지 않을 수도 있어요. 그리고 혹시 맞더라도 우리가 바로 뒤에서 따라붙으니까 살려 줄게요.”
“네? 그건…….”
“최 선생님. 살려 주세요. 왜 제가?”
“언니.”
“잔말 말고 시키는 데로 해요. 살려 준다잖아. 저 놈들 몇 명 안되잖아요. 이러고 있다가 저놈들 다 몰려오면 그땐 진짜 답 없어.”
자신의 도끼를 집어 든 최 선생과 그 상황을 보며 무기를 집어 들고 최 선생의 뒤로 모여서는 나머지 진화자의 모습에 셋은 어쩔 수 없음을 인정할 수밖에 없었다. 강제로라도 자신들을 선두로 밀어낼 것 같은 분위기였다. 그렇다고 셋이 나머지 모두를 상대로 반항할 수도 없었다.
울며 겨자 먹기로 문 앞에 선 셋은 다시 한번 뒤를 돌아봤지만 그곳에는 단호하게 굳은 표정의 사람들만 있을 뿐이었다. 더군다나 최 선생은 제일 뒤에서 그들을 쳐다보고 있었다.
“셋을 세면 문 열고 나갑니다. 다시 한번 말하지만 빠르게만 나가면 안 맞을지도 몰라요. 놈들과 섞이기만 하면 놈들도 사격할 수 없어요.”
규석이 문 손잡이를 잡았다. 잠금장치를 풀고 손잡이를 살짝 돌렸다. 그리고 뒤에서는 최 선생이 숫자를 세는 소리가 들렸다.
“하나”
“둘”
“셋”
셋과 함께 문을 밀면서 나가려는 순간이었다. 모두의 귀에는 천둥 같은 포성이 들리는가 싶더니 후끈한 열기와 함께 몸을 밀어내는 엄청난 압력이 몰려왔다.
규석은 잡고 있던 문에 처박혔다. 동시에 문이 열리면서 밖으로 내동댕이 쳐졌다. 그의 뒤로 몇 명인지 모를 사람들 역시 폭압에 밀려 밖으로 쏟아졌다.
그들에게는 다행스럽게 현관 앞에 모두 모여 있었기에 직격은 피했다. 하지만 연이은 폭발로 날아오는 콘크리트 파편에 맞은 몇몇은 팔이 없어지거나 다리가 부러지거나 하면서 전투력을 잃었다.
* * *
요청한 포격을 초조한 마음으로 기다리던 중위의 귀에 드디어 포성이 들렸다. 그런데 포성과 거의 동시에 놈들 아지트 문이 열리면서 사람과 화염이 같이 쏟아져 나왔다. 그리고 화염과 함께 몰아치는 폭풍은 문에서 겨우 2m 정도 떨어져 있던 병사들에게도 들이닥쳤다.
계단 위에서 상황을 보고 있던 중위에게도 후끈한 열 폭풍이 몰려왔다. 뒤로 자빠지는 중위의 눈에 병사들이 등지고 있던 벽으로 날아가 처박히는 것이 보였다. 동시에 문이 열리면서 던져진 놈들의 뒤를 뛰어나오면서 병사들에게 무기를 휘두르는 진화자도 보였다.
놈들은 벽을 치고 다시 바닥으로 떨어지는 병사들을 순식간에 도륙하고 계단 밑으로 내 달렸다. 그리고 그 자리에는 겨우 정신을 차리는 병사 셋이 주섬주섬 일어나고 있었다. 그 앞에는 규석을 포함한 진화자 다섯이 버둥거리는 것이 보였다. 다섯 중 셋은 거동하기 힘든 부상을 입고 소리를 고래고래 지르며 피를 뿜고 있었다.
정신을 차린 중위가 계단을 내려가 병사들을 일으키고 자빠져 있는 진화자들의 얼굴을 확인했다.
“씨발. 최 선생도 도망갔네. 뭐 하고 있어? 가서 주민 감시하는 놈들도 다 나오라고 해서 쫓아.”
버둥대는 다섯 중에 최 선생은 없었다. 다만 규석이 정신을 못 차리고 있는 것이 중위는 너무도 반가웠다.
“이 개잡놈 새끼. 너 잘 걸렸다.”
놈의 머리를 발로 밟은 중위는 나머지 넷의 머리에 총알구멍을 내고는 총구를 규석의 다리로 돌렸다.
“그동안 진짜 좆같았다. 이 씹새야. 넌 곱게 죽을 생각 마라.”
두 다리와 양팔에 각 세발씩의 총알을 먹은 규석은 고통에 정신이 들었는지 고래고래 소리를 질렀다. 그런 그를 뒤로한 중위는 놈을 남겨두고 계단을 달리기 시작했다.
달려 내려가는 중위의 머릿속은 복잡했다. 놈들이 팬스 밖으로 나가지는 않을 것 같았다. 나가봐야 군대와 맞닥뜨려야 하는데 그렇게 미련한 짓을 할 바보들은 아니었다.
그렇다면 그들이 택할 방법은 단지 내로 흩어져 숨거나, 아니면 북쪽의 입주단지로 건너가 숨는 것이었다. 그것도 아니면 북쪽 블록으로 군대가 들어간 것을 놈들은 알지 못하는 놈들이 그쪽으로 들어갈 수도 있었다.
‘씨발. 왜 하필 그때 문이 열려 가지고.’
자신의 계획은 포격에 죽을 놈들 죽고 남은 놈들만 제압해서 부려먹을 생각이었는데 어그러져버린 것이다. 그는 달리면서 다시 한번 이재규를 호출했다.
“들리십니까?”
<네. 포격은 만족하셨습니까?>
“그게… 포격과 동시에 놈들이 탈출해서 얼마 잡지 못했습니다. 그래서 병력 지원을 요청드리려 합니다.”
<병력이요? 뭐 하시려고요?”>
“놈들이 건물에 숨으면 수색할 인원이 모자랍니다. 좀 도와주십시오”
<음… 병력 지원은 곤란합니다만…….>
“부탁드립니다. 지원만 해 주신다면 향후에 저희가 도와 드릴 수 있는 거 해 드리겠습니다.”
<글쎄요. 그런 게 뭐가 있을까요?>
답답한 마음에 중위는 어느새 달리기를 멈춰 섰다. 트럭이 열대가 왔다고 들었다. 한 차에 열명씩만 있어도 백 명이었다. 그중에 일부만이라도 지원받으면 놈들의 색출이 훨씬 쉬울 것 같았다.
설마 그 열대의 트럭이 전부 빈차라고는 생각도 못하는 중위는 이재규가 뭔가를 뜯어 내려고 튕긴다고 생각했다.
“나중에라도 평택에서 작전하실 때 이곳을 전진기지로 쓰실 수 있게 해 드리겠습니다. 그리고 필요한 물자가 있으면 저희가 구해서 공급도 해 드리겠습니다. 다른 조건이 있으면 말씀하시면 최대한 협조하겠습니다.”
대답 없이 잠시의 시간이 지났다. 대답을 기다리며 밑으로 걸었다. 그리고 두층 정도를 더 내려갔을 때 상대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진화자 다섯 명을 보내셨더군요. 그들과 저희 쪽 진화자 한 명을 같이 보내겠습니다. 그들이 숨었다면 병력보다는 이 사람들이 더 효과적일 겁니다.>
이재규가 듣기에 중위의 제안은 큰 메리트는 없었다. 전진기지는 아무 곳에나 약간의 수고로 구축할 수 있었다. 단지 상주인원을 남길 수 없어 일회성이 되겠지만 평택에서 작전할 일이 얼마나 있겠나 하는 마음이었다.
그리고 물자는 자신들이 더 풍부했다. 노동력의 제공이라는 것 밖에 메리트는 없었다. 그래도 빚을 지워 놓는 것이 나쁘지는 않다는 생각으로 할 수 있는 만큼 해 주기로 한 것이었다.
중위는 마음에 들지 않았지만 어쩔 수 없었다. 그나마 도와준다니 없는 것보다는 낫다 싶었다. 아쉬운 마음을 달래며 계단을 다 내려간 중위에 앞에는 그를 기다리는 한 명 말고는 아무도 없었다.
“뭐야? 다 어디 갔어?”
“놈들이 저쪽 입주단지로 넘어갔습니다. 그래서 다 쫓아갔습니다.”
“그래? 열여섯 전부?”
“네.”
저쪽 군대를 감시하라고 남겨두고 온 106동의 넷과 각 초소의 병력을 제외한 모두였다. 초소 병력은 처음 교전에서 포격으로 다 죽었다고 중위는 생각하고 있었다.
“씨발. 나랑 저 위에 놈들 다해봐야 스물둘 인 거냐? 앞으로 험난하겠구먼.”
한숨을 내 쉰 중위는 다시 이재규에게 통신을 보냈다.
“놈들이 그쪽과 이쪽 사이의 단지로 들어갔다고 합니다. 놈들은 열명입니다. 저희 인원 열여섯도 쫓아갔습니다. 거기는 변이체가 있는 집이 많아서 놈들이 그쪽으로 넘어갈 수도 있습니다. 길목을 막아 주세요.”
* * *
다섯의 진화자와 함께 길목을 막으러 건물을 나서는 이진성을 이재규가 잡았다.
“응. 그래. 얼마나?”
“그래? 알았어. 1 호차하고 2호차 그쪽은 어때?”
“그렇단 말이지? 그럼 둘 다 서쪽 도로로 이동한다. 이 앞 사거리는 여기서 막을 테니까 그 밑으로 100m 간격으로 서서 대응하도록 한다.”
교신하는 이재규를 멀뚱하게 지켜보던 이진성의 코에 서쪽에서 다가오는 좀비 떼의 냄새가 들어왔다. 수가 많았다. 아직 멀어 정확하지 않지만 선두만 해도 100은 넘었다. 놈들은 남북으로 넓게 퍼져 다가오고 있었다.
교신을 끝낸 이재규가 이진성을 돌아보는데 이진성이 선수 쳤다.
“저 정도면 장갑차 세대로 다 못 막아요. 상당수는 지나칠 거예요.”
“느끼셨습니까?”
“아직 200m 밖이네요. 우리 팬스 몇 개 뜯었죠? 한 개? 두 개?”
옆에 있던 이택진이 한숨을 내쉬며 대답했다.
“두 개”
“그새 빨리도 하셨네”
다시 이 재규를 돌아본 이진성이 물었다.
“차량 진출입로는 닫으면 되는데 뚫린 곳으로 들어오는 놈들 막을 수 있겠어요?”
“트럭으로 막으면 넘어오거나 밑으로 기어 나오는 놈만 잡으면 됩니다. 여기는 걱정 안 해도 됩니다.”
“그러네. 그럼 우리는 밖에서 막을게요. 저쪽 사람들한테도 알려 주세요.”
이재규는 즉시 중위 쪽으로 상황을 알리기 시작했다. 그 모습을 보고 이진성은 다섯의 진화자를 데리고 밖으로 걸었다.
“좀비는 많이 상대해 보셨나요?”
“좀비요? 변이체 말씀이시죠?”
“네. 변이체요. 저희는 좀비로 불러요.”
“그동안 1주일에 한번 이상 외부에 나갔습니다. 그리고 두세 번에 한 번씩 놈들 상대했고요. 아마 열 번은 넘을 겁니다.”
“지금 7월 말인데 그것밖에 안돼요? 최대 몇 마리까지 상대해 보셨어요?”
“그 정도면 많은 거 아닌가요? 최대는 거의 100마리 가까이 상대했었습니다.”
100마리 가까이 상대했다면서 목소리에 힘을 주는 사람은 20대의 잘생긴 남자였다. 자신들의 업적을 꽤나 자랑스러워했다. 하지만 이진성이 보기에는 애들 장난이었였다.
“그때 이쪽 병력은 얼마나 됐었는데요?”
“군인이 열명씩 갔었죠. 저희 같은 초인도 10명씩 나갔고요.”
“스무 명이 100마리?”
피식 웃는 이진성의 모습에 다섯은 기분이 상했다. 그들 중 하나가 넌 얼마나 잘났냐고 따지려는 순간 기관총 소리가 들려왔다. 소리에 일제히 서쪽으로 고개를 돌린 다섯의 눈에는 사거리 저쪽에서 뛰어오는 좀비 몇십 마리가 보였다.
그런 그들의 귀에 이진성의 목소리가 들렸다.
“저기 남쪽에서 200 이상 올라오고 있습니다. 100 정도는 이미 저 단지로 들어갔네요. 조심하세요.”
“아까부터 놈들의 위치와 수를 말씀하시는데 무슨 근거로…?”
아까 대위가 통신 내용을 말하기 전에 그가 놈들이 온다고 말한 것을 다섯은 들었다. 뭔가 특수한 능력이 있나 생각한 그들이었지만 수와 동선까지 말하는 것은 믿기 힘들었다.
이진성의 말은 신뢰하지 못하지만 사거리에서 달려오는 놈들은 분명히 보였다. 일단은 보이는 놈들을 잡기 위해 준비자세를 잡았다.
놈들이 50m 내로 다가왔을 때, 길건 넌 아파트 단지 안에서 총성이 터지기 시작했다. 그리고 그쪽에서는 자신들과 함께 있던 진화자들이 뒤에 셀 수 없는 좀비 꼬리를 달고 달려오는 것이 보였다.
‘좆됐다’
다섯의 공통된 생각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