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04
다섯에게 저런 수의 좀비 떼는 처음 보는 것이었다. 여태 시내와 주택가에서 단 한 번도 저만큼의 놈들이 몰려 있는 것을 본 적이 없었다. 앞 남자의 말이 사실이라면 아직 더 많은 놈이 오고 있다는 것이다. 몸이 떨려왔다.
그들이 나온 공사 차량 진출입로는 이미 닫혔다. 펜스를 뜯어냈다고 하는 곳은 막 트럭이 구멍을 막고 있었다. 도망갈 길도 막혀 버린 것이다.
기관총 소리와 작은 폭음이 계속 들렸지만, 사거리에서 이쪽으로 오는 놈들은 점점 늘어갔다. 길 건너 아파트 사이사이에도 점점 더 많은 놈이 길을 메우며 달려오고 있었다.
“도, 도망가야 해요.”
“군인들 없이는 안 돼요. 다 죽어요.”
떨리는 목소리로 외치는 그들을 돌아본 이진성은 난감했다. 진화자라지만 저 상태로는 제대로 싸울 수 없는 것이 명확했다.
‘씨불. 그동안 싸워 왔다면서 겨우 이거에 얼어 버리냐?’
자신이 수백의 떼를 처음 접한 것은 동탄이었다. 그때 이미 세 번의 진화를 거친 후였지만 그래 봐야 당시는 두 번 한 관장이나 나현주보다는 아래였다. 그런데도 자신은 미친 듯이 싸웠다.
‘특별한 동료가 있었기 때문인가?’
잡생각을 떨쳐 버리려 고개를 한번 흔든 이진성이 다가오는 좀비를 바라보며 말했다.
“몸 풀릴 때까지 저기 저 차 안에 들어가 있어요.”
이진성은 도끼를 돌리며 앞으로 뛰어나갔고 다섯은 도로에 버려진 승합차로 달려들었다.
제일 먼저 마주친 세 마리의 허리를 한 번에 동강 내며 이진성은 혹시나 있을 까만눈의 존재를 걱정했다. 놈들의 특이한 울부짖는 소리는 듣지 못했지만, 총소리에 묻혀 못 듣는 것일 수도 있었다.
‘이만한 숫자가 까만눈 없이 오는 경우는 없었는데…….’
하지만 놈들을 지휘하는 까만눈이 없다면 200이건 300이건 시간문제일 뿐이었다.
벽을 등진 이진성은 자신을 둘러싼 놈들을 침착하게 잡아 나갔다. 놈들은 한 번에 서너 마리씩 몸을 던지고 그보다 많은 놈이 손톱과 이빨을 들이밀었다. 몸을 던진 놈들은 목이 잘리고 몸이 반으로 갈라졌다. 손톱과 이빨을 들이미는 것들은 팔이 떨어져 나가고 대가리가 박살나야 했다.
도끼가 번쩍 할 때마다 서너 마리의 몸이 동시에 박살났다. 그렇게 얼마 되지 않는 시간이 지나며 이진성의 주위로 놈들 시체의 산이 쌓이기 시작했다. 이진성은 그 와중에도 자신의 탐지거리 내의 냄새를 확인하며 놈들이 많고 적은 지역을 계속 확인하고 있었다.
‘저 단지 안에 총성이 나는 곳은 아직은 잘 버티나 보네. 그쪽 좀비 수가 꾸준히 줄고 있어.’
단지 저 깊은 곳에서 한 덩이의 좀비가 느껴졌다. 수는 50 미만. 착실히 숫자가 줄어들었고 그쪽으로 유입되는 놈들은 줄어드는 숫자보다 적었다. 그쪽은 나름대로 버틸 것 같았다.
앞에 쌓인 시체에서 나온 피와 지방 때문에 바닥이 미끄러워지자 자리를 옮기며 길 건너 진화자 그룹을 살폈다.
‘저쪽도 아직은 버티고 있네. 열 명이나 돼서 그런가?”
자신을 둘러싸고 있는 놈들 때문에 보이지는 않았지만, 저쪽의 진화자 그룹 쪽에도 거의 100에 가까운 놈들이 붙어 있었다. 그곳도 자기보다는 느리지만 빠른 속도로 좀비의 수가 줄고 있었다.
공사장 안쪽의 이재규 대위 쪽에서도 많지는 않지만 꾸준한 총성이 들려오고 있었다. 이 대위 말대로 그쪽은 쉽게 침입 당하지는 않을 것 같았다.
이진성이 있는 북쪽과 남쪽 블록 사이의 길은 이미 좀비로 가득했다. 그리고 단지 안에도 여전히 많은 놈이 있었다.
하지만 놈들은 네 지점에서 착실히 죽어 나갔고, 서쪽에서 새로 유입되는 놈들의 냄새는 더는 없었다.
다시 몇 분이 지났다. 서쪽의 사거리에서 장갑차 한 대가 이쪽으로 진입하는 것이 보였다. 장갑차는 들어오면서 도로 위에서 서로 부대끼고 있는 놈들에게 기관총과 유탄을 쏟아내기 시작했다.
‘이쯤 되면 까만눈은 없나 보다. 그럼 힘을 아낄 필요는 없겠네.’
까만눈이 없다고 확신한 이진성이 걱정하는 것은 눈앞의 좀비보다 눈먼 총탄이었다. 부디 군인들이 잘 해 주길 바라며 그는 눈앞에 자신을 둘러싸고 있는 놈들을 향해 힘껏 도끼를 휘둘렀다.
이진성의 파워가 고스란히 실린 묵직한 양날 도끼는 좀비를 학살하기 시작했다. 도끼는 팔방으로 휘몰아치며 그 궤적에 걸리는 모든 것을 잘라내고 터트렸다.
순식간에 앞과 옆의 놈들을 쓸어버린 이진성은 서서히 앞으로 걸음을 옮겼다. 등지고 섰던 벽에서 떨어져 놈들이 자신을 둘러쌀 수 있는 위치까지 일부러 전진한 이진성은 다시 한 번 힘을 끌어 올렸다.
회전하는 도끼의 원심력에 몸을 실어 같이 날리는 킥에 걸린 놈들의 몸은 그곳이 어디든 터져나갔다.
뒤에서 덤비는 놈의 눈을 뾰족한 도끼 자루가 뚫고 들어갔다.
동시에 옆에서 달려는 놈의 갈비뼈에는 이진성의 팔꿈치가 내리꽂혔다.
이진성의 사방에서는 거의 동시에 갈리고 잘린, 또는 터져나간 목과 팔다리 몸통이 흩날렸다.
달려들던 놈, 그 뒤에서 앞으로 밀고 나오려던 놈들에게 피가 뿌려지고 죽은 놈들의 내장이 걸쳐졌다.
놈들의 피와 살을 뒤집어쓴 이진성 또한 온통 시뻘건 혈인이 되어 눈만 번쩍이고 있었다.
“저, 저거 사람 맞아요?”
“나, 나도 몰라. 저런 사람 처음 봤어.”
“최 선생이 제일 무서운 줄 알았는데, 저기 대면 그년은 보통사람이잖아?”
승합차 안에 숨어있던 다섯은 전방 유리 밖으로 보이는 모습에 경악했다.
남들보다 뛰어난 신체 능력을 가지게 되면서 초인이라고 불리며 자부심을 가지고 있었다. 비록 다른 초인들처럼 패악을 저지르지는 않았지만, 그들도 자신들은 우월하다는 시선으로 보통 사람들을 바로 보기는 했다.
그런 그들은 이진성의 모습을 보면서 새로운 세상에 눈을 떴다. 자신들이 지금껏 안전한 지역에서 편하게 살면서 한 번씩 자랑한 능력이 달빛 밑의 반딧불임을 알았다.
그들 다섯이 뭉친다 해도 눈앞의 저 남자 하나의 살육 속도를 따라갈 수 없음을 확실하게 알 수 있었다.
“저기… 우리도 나가야 하지 않을까요?”
“그렇기는 한데…….”
이진성의 모습을 보면서 피가 끓어오른 다섯은 어느새 떨림이 멈춰 있었다. 그리고 더는 공포도 느끼지 않았다.
이진성만큼은 하지 못하지만 그래도 어느 정도 기여는 할 수 있다는 자신감이 들었다.
한 사람이 차 옆의 슬라이딩 도어 문고리를 잡았다. 그를 본 나머지 넷도 몸에 힘을 넣으며 준비를 했다.
문이 열리면 그 앞은 인도다. 그 위에는 제법 많은 좀비가 있다는 것도 알고 있었다. 하지만 최소한 후방은 신경 쓸 필요 없이 인도 위에 있는 놈들만 상대하면 되는 상황이다.
다섯은 그 정도는 전에도 해 본 적이 있었다.
드르륵~
문이 열렸다. 차 앞에 있던 좀비들이 갑자기 열리는 문에 시선을 돌렸다. 다섯은 그런 놈들에게 몸을 던지고 무기를 날리며 그들만의 싸움을 시작했다.
눈앞의 엄청난 모습에 끓어 오른 피는 지금까지의 그들 이상의 능력을 끌어냈다.
다섯은 정신없이 눈앞의 놈들을 때리고 가르고 잘라냈다. 스스로 느끼기에 그전과 다른 스피드에 파워였다.
그전에 느껴보지 못한 희열이 찾아왔다. 그 희열 속에서 그들은 점점 생각을 놓고 무아지경에 빠져들었지만 누구도 인지하지 못하고 있었다.
그리고 그들 주위의 좀비들은 급속도로 줄어들었다.
그들 다섯은 어느 순간 장갑차의 사격이 멈춰 있다는 것도 알지 못했다. 장갑차는 싸우고 있는 사람들 주위에 붙어 있는 좀비들에게는 사격하지 못했다. 잘못하다 사람을 맞출 수 있었다.
충분히 사람들에게서 떨어져 있는 놈들에게만 총알을 퍼붓고 나니 더 쏠 놈도 남아 있지 않았고 총알도 거의 남지 않았다.
더군다나 장갑차의 군인들도 이진성의 모습을 넋을 잃고 바라보며 어느새 사격해야 한다는 것도 잊고 있었다.
* * *
이진성의 모습에 놀란 것은 최 선생 일행도 마찬가지였다. 하지만 이쪽에서는 다섯과 반대의 효과가 나오고 있었다.
그들에게 이진성은 좀비와는 또 다른 적이었다. 누군지 정체는 알 수 없지만 도망친 다섯과 함께 있다가 혼자 뛰어나간 그는 그들이 보기에 학살자였다. 1인으로 자신들 열이 하는 것 이상을 하고 있었다.
어느 순간이 되면 인간이 아닌 인간과 싸워야 한다는 생각이 그들 모두에게 들었다. 그 생각은 사람들의 손발을 점점 어지러워지게 했다. 그리고 그것은 치명적 실수를 가져왔다.
결국 한 명이 좀비들의 손에 끌려 순식간에 놈들 무리 속으로 빨려 들어가 사라졌다.
아직 그들 주위에 남은 놈들은 많았는데 자신들의 수는 줄었다. 사람들은 더 당황하기 시작했다.
그러면서 하나씩 하나씩 놈들에게 끌려갔고, 그 시간 간격은 조금씩 조금씩 짧아지고 있었다.
‘뒤에 군인 놈들도 아직 총을 쏘고 있다. 저놈들도 살아남았는데 우리는 여기서 움직이지도 못한다.’
최 선생은 다급해졌다. 남은 인원은 자기까지 다섯. 더 수가 줄면 자신도 어떻게 될지 자신이 없었다.
더군다나 시간이 지나면 저쪽의 괴물 같은 인간과 싸우거나 뒤에서 쫓아오는 군인들과 싸워야 할 것이 분명했다.
괴물 같은 인간의 주위에는 별로 남은 것들이 없었다. 고작 스물 남짓. 지금까지 보여준 모습이면 눈 깜빡 사이에 끝날 숫자였다.
그리고 뒤에서 들리는 총성은 점점 가까워지고 있었다.
‘왼쪽은 괴물 인간, 뒤는 군인 놈들. 오른쪽밖에 길이 없는데…….’
하지만 자신들을 둘러싼 좀비들을 처리하지 못하면 오른쪽으로도 갈 수 없었다. 조금 더 힘을 내 자신 앞의 좀비에게 도끼를 찍어가는데 그 좀비의 대가리가 총에 맞아 뚫리는 것이 보였다.
군인들이 온 것이다. 그리고 총알은 무차별로 날아들었다.
중위는 최 선생 일당과 좀비를 구분하지 않고 사격하라고 지시했다. 자신들도 남은 인원이 다섯밖에 되지 않았다. 최 선생 일당 중 일부를 남겨 부려먹는다고 생각은 이미 접었다.
지금 다섯이 다 살아남으면 그들 한두 명은 통제할지도 모른다. 하지만 그러느니 없는 게 낫다는 생각이었다.
진화자를 둘러싸고 있는 좀비는 30 남짓. 온전하게 그들에게만 집중된 총알에 놈들은 순식간에 녹아내렸다.
그리고 그 와중에 남은 진화자 다섯 중 셋이 죽고 최 선생과 다른 한 명도 복부와 가슴에 관통상을 입었다.
탈영병들이 자신들 앞의 마지막 좀비를 쐈을 때, 이진성은 이미 자신 주위의 놈들을 다 잡고 그 모습을 지켜보고 있었다.
다섯 명도 그들 주위의 놈들을 다 잡고 남은 셋에게 마지막 일격을 날리고 있었으며, 이 대위 쪽은 할 일이 없는 장갑차가 이미 그쪽을 틀어막고 있었다.
이진성이 몸에 묻은 살과 뼛조각을 털며 사람들 쪽으로 걷기 시작했다. 그 모습에 군인들은 순간 흠칫했다.
온통 피에 절은 뭔가가 자신들에게 다가오는데 쏴야 하나 싶었다. 하지만 그가 도끼를 들고 오는 것을 보고 들어 올리던 총을 내렸다.
이진성은 그들 앞에 다가가 몸의 상처와 입으로 피를 흘리고 있는 두 사람의 진화자를 내려다봤다.
놔둬도 얼마 가지 못할 그들의 몸에서 달큰한 냄새와 함께 약간의 시큼한 냄새도 같이 나고 있었다.
“이것들도 식인했네.”
갑자기 들려온 뜬금없는 소리에 중위와 병사들은 뭔 소린가 싶었다. 이진성은 어리둥절한 표정으로 그를 바라보는 그들의 냄새도 맡았다. 전부 고소했다. 다행히 시큼한 냄새는 나지 않았다.
“이것들 사람 잡아먹는 거 몰랐어요?”
“무슨 말씀이신지……?”
표정으로 봐서 거짓은 아닌 것 같았다. 그들은 뭐를 상상했는지 몸서리치면서 얼굴을 찌푸렸다.
“이놈들 사람 먹는 놈들이에요.”
“어떻게… 알고……?”
중위는 황당했다. 마음에 안 들던 놈들이지만 그런 짓까지 하리라고는 생각하지 못했다. 물론 앞 남자의 말을 믿는 것도 아니었다.
“이것들 살릴 거예요? 어차피 살기는 힘들 텐데 빨리 처리하죠?”
그들 간의 일에 상관할 생각은 없던 이진성이지만 식인 한 놈들이라면 죽이는 게 낫다 싶어 귀띔했다. 그리고 돌아서 다섯의 진화자에게 발걸음을 옮겼다. 부상은 없는지 확인해야 했다.
몇 발자국 안가 뒤에서 들리는 두 발의 총성을 들으며 생각했다.
‘앞으로 전단 보고 오는 사람은 일일이 확인해야겠어. 식인종이라도 들어오면 골치 아프잖아.’
또 일거리가 느는 거 같아 얼굴이 찌푸려지는 이진성을 보며 다섯의 진화자는 식은땀을 흘려야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