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06
꺅~
엄마야~
사람 살려~
우왕좌왕하던 사람들은 장갑차의 사격 소리에 금방 패닉에 빠졌다. 놀란 사람들은 우르르 몰려가 트럭에 달라붙었다. 옆에서 뒤에서 올라가 보려고 안간힘을 썼지만 쉽지 않았다.
서로 밀치고 떠밀리면서 제대로 올라가는 사람은 몇 없었다. 그나마 경험 있는 젊은이들만 다른 사람들을 밀치고 올라타고 있었다.
군인들의 통제는 먹히지 않았다. 사람들은 안전지대로 가는 차에 올라타려고만 할 뿐, 건물로 달리는 사람은 몇 되지 않았다. 그대로 두면 그 자리에서 놈들의 습격을 받을 판이었다.
타 타 탕~
중위의 공포 사격에 사람들이 일제히 바닥에 엎드렸다. 그동안 사람들을 억압하면서 통제했던 것이 지금 효과를 발휘했다.
몇 발의 총성은 그들에게 다가오는 좀비보다 더 현실적이고 가까이 있는 공포를 일깨웠다.
두 대의 트럭에는 이미 열몇 명씩의 사람이 타고 있었다. 그나마라도 태워 보내고 나머지는 건물로 피신하는 게 나았다.
사람들이 엎드려 중위의 눈치를 보는 그 잠시의 소강상태에서 중위는 트럭에 출발하라고 명령했다.
떠나는 트럭을 망연자실한 눈빛으로 바라보는 사람들을 군인들이 재촉했다. 그제야 사람들도 어쩔 수 없이 가건물과 아파트로 나뉘어 달려 나갔다.
“거기, 그쪽 말고 이쪽으로 가란 말이야.”
중위와 함께하던 네 명의 병사는 강압적이었다. 반말과 더불어 폭행도 서슴지 않았다. 가건물로 수용 능력을 초과하는 인원이 몰린다 싶어지자 그들은 그 중간을 끊으려 했다. 그래도 많은 사람이 그나마 안전해 보이는 가건물로 가려고 버둥댔다.
일부는 군인들을 피해 달려 가건물로 몰려들었다. 좁은 출입문으로 몰려든 사람들은 서로 들어가겠다고 밀쳐대면서 제대로 들어가지도 못하고 몸싸움만 하고 있었다.
“저쪽은 놔둬. 나머지만 인솔해.”
이쪽으로도 저쪽으로도 가지 못하고 망설이고 있던 사람들을 아파트 건물로 몰았다. 그곳에는 이미 이택진과 기지에서 온 공사 인원, 장혜진이 피신해 있었다. 그리고 처음부터 그쪽으로 달렸던 반 정도의 인원이 거의 다 3층으로 올라서고 있었다.
나머지 사람들을 몰아 그쪽으로 달리는 바로 그때, 사방을 경계하고 있던 병사들의 소총이 불을 뿜었다.
“빌어먹을.”
중위는 사방을 둘러봤다.
동쪽과 북쪽은 이미 펜스가 다 철거되어 뻥 뚫려 있었다. 그 너머 저편에서 달려오는 놈들의 모습이 보였다.
북쪽은 블록 너머 있는 공원에서 놈들이 쏟아져 나왔고 동쪽에는 이미 정리한 아파트 단지에서 놈들이 튀어나오고 있었다.
그동안 그 두 방향에서는 놈들의 습격이 없었는데도 이상하게 많은 숫자가 달려 나오고 있었다.
남쪽과 서쪽은 놈들의 습격에 대비해 공사의 우선순위를 늦췄었다. 그래서 아직 서 있는 서쪽의 펜스 너머에서는 이미 장갑차가 사격하고 있다.
사격할 인원이 없는 남쪽에서도 총소리가 났다. 펜스에 가려 보이지 않았지만, 트럭에 한 명씩 타고 간 병사들이 사격하는 게 분명했다.
“사방에서 포위했다고? 가능해?”
언뜻 봐서 셀 수 없는 숫자의 놈들이 오고 있는데 그것들이 사방에서 오고 있었다. 중위는 이런 경우를 단 한 번도 경험하지 못했었다. 바로 며칠 전의 대규모 습격도 그가 처음으로 겪은 숫자였다.
하지만 미군기지에서 온 사람들은 달랐다. 그들은 동탄에서의 까만눈 습격 이야기도 들어 알고 있었고, 얼마 전 1호의 습격 내용도 잘 알았다.
“여기도 까만눈이 있나 봐요.”
“그런가본데… 좋게 끝나지는 않겠어.”
바들바들 떨고 있는 장혜진의 손을 꼭 잡아준 이택진이 불안한 마음으로 사방을 살폈다. 그가 보기에 상황이 좋지 않았다.
한곳으로 몰려온다면 효과적인 사격이 가능했겠지만, 놈들은 사방에서 달려오고 있었다. 열심히 총구를 돌리며 쏴대고 있지만, 장동건도 아닌 병사들이 백발백중의 사격을 하는 것은 불가능했다.
총에 맞아 자빠지는 놈들을 뒤로하고 달려 나오는 나머지 놈들의 거리는 착실히 줄어들고 있었다. 거기에 맞춰 병사들도 뒷걸음치며 점점 더 아파트로 다가왔다.
놈들의 선두가 약 150m 정도 거리에 도달했을 때 중위는 외쳤다.
“후퇴. 후퇴. 아파트로 올라가서 대응한다.”
때를 맞춰 남쪽과 서쪽의 남아 있는 펜스 좌우로 놈들이 밀려들기 시작했다. 장갑차를 피해 달려온 놈들이 서쪽으로 들어오는 것이었다. 남쪽에서는 애초에 트럭에서 한 사격 말고는 저지 자체가 없었다.
서쪽 펜스를 돌아 들어온 놈들의 앞에는 아직도 가건물로 들어가려고 발버둥 치는 사람들이 있었다. 그들은 몰려드는 좀비를 보고 소리를 지르며 더 아수라장을 만들었다.
그나마 힘이 있는 사람들은 앞을 막고 있는 사람을 힘으로 뜯어내고 안으로 들어가려 했다. 당겨지는 사람은 자리를 지키겠다고 자기 앞의 사람에게 매달렸다.
결국 안으로 들어가는 사람 없이 몸싸움만 하던 가운데 출입문은 닫혀 버리고 말았다.
그 이후 남은 것은 들이닥친 좀비에게 살이 뜯기는 것뿐이었다. 문이 닫히고 사방으로 도망치는 사람들을 좀비들을 쫓았고, 사람들은 몇 걸음 가지 못하고 잡혔다. 잡힌 사람들을 비명을 지르며 반항해 봤지만, 놈들의 이빨을 피하지 못했다.
건강한 사람도 피하지 못하는 것을 그동안 제대로 먹지도 못해 노역 중에 픽픽 쓰러지던 그들이 막는 것은 불가능했다.
물리는 사람도 또 지켜보는 사람도 정신이 없어 몰랐지만, 놈들은 먹잇감으로 사냥을 하고 있지 않았다. 고소한 냄새의 사람은 검붉은눈이 물고 지나갔고, 달큰한 냄새는 빨간눈이 물고 지나가고 있었다.
쓰러진 사람은 경련을 시작했고 놈들은 그런 사람들을 놔두고 다른 목표에 달려들었다. 놈들은 먹이를 찾아온 것이 아니고 자신들의 수를 불리기 위해 온 것이었다.
아파트 3층의 사람들은 그런 모습을 보면서 달려오는 나머지 사람과 군인들에게 어서 오라고 소리쳤다. 이미 자리를 잡은 군인들이 사격하고 있지만 죽는 놈보다는 다가오는 놈이 더 많았다.
가까운 놈들과의 거리는 채 몇 십 미터도 안 됐다. 달리는 놈들이 도달하는데 몇 초면 충분했다. 연사로 바꾸고 총을 갈겨대지만, 명중률만 떨어질 뿐이었다.
“어서 막아!”
안으로 들어온 마지막 사람이 2층으로 오르자 2층에서 대기하던 사람들이 들고 온 자제와 집기 등을 계단으로 쏟아 부었다.
그걸로 계단을 막을 수는 없었지만, 최소한 놈들의 발걸음을 방해라도 해 보겠다는 생각이었다.
그래도 거의 50이 넘는 사람들이 저마다 가져온 것들을 쏟아 넣자 계단은 반 정도는 막혔다. 그 정도면 올라오는 놈들을 총으로 잡을 수 있을 정도는 됐다.
군인의 반은 3층에서 바깥에서 다가오는 놈들에게 사격했고, 나머지 반은 계단에서 장애물을 비집고 올라오는 놈들에게 총알을 먹이기 시작했다.
그때, 사람들을 태우고 갔던 트럭 두 대가 다시 남쪽 펜스 너머에서 들어오는 것이 보였다.
트럭은 좀비의 꼬리를 달고 오고 있었고 두 대 모두 적재함에서 총을 쏘고 있어야 할 병사는 보이지 않았다.
적재함에 있는 사람의 수도 출발할 때에 비해 반 정도밖에 되지 않았다.
“저건 또 뭐야?”
황당한 모습에 사격을 멈추고 트럭을 바라보는 송 중위는 애가 탔다.
지금은 트럭이 아파트로 와도 올라올 수 없었다. 계단은 막힌 데다가 밑에는 좀비가 가득했다.
트럭도 아파트로 접근하면서 가득한 좀비를 보고는 접근이 어렵다는 것을 알았는지 계속 맴돌면서 앞에 보이는 좀비를 치고 밟고만 있었다.
그런 트럭의 적재함에 놈들은 계속 몸을 날렸고 일부 매달린 놈들은 사람들이 트럭에 실려있던 쇠파이프, 삽 등으로 내리쳐댔다.
“왜 다시 왔을까요?”
그 모습을 바라보던 이택진의 의문에 송 중위가 답했다.
“저쪽 출입문을 열지도 못한 것 같습니다. 너무 늦었던 거겠죠. 어쩌면 열려고 하다가 몇 명 당했을지도 모르고요.”
트럭에 달려드는 놈들을 조금이라도 줄이려고 다시 방아쇠를 당긴 송 중위는 금세 철컥 소리를 들었다.
“탄. 탄 가져와.”
뒤를 돌아보고 병사들에게 소리쳤는데 옆에 있던 한 녀석이 자신의 조끼에 있던 탄창 하나를 건네는 것이었다.
“이거 주면 너는? 탄통 어딨어?”
병사는 대답 대신 손가락을 들어 저 멀리 땅바닥을 가리켰다. 배식대가 있던 그곳, 공구 등을 놔두었던 그곳이었다.
“씨발.”
절로 욕이 나오는 상황이었다. 아직 놈들은 얼마나 더 있는지 모르게 계속 공원에서, 길 건너 아파트 단지에서 나오고 있었다.
병사들이 가진 탄도 얼마 남지 않은 것이 분명했다. 분명히 장갑차에서 미군기지로 통신을 보냈겠지만 거기서 오기까지 버틸 수 있을지 의문이었다.
그때였다. 엎친 데 덮친 격으로 뱅뱅 돌던 트럭 한 대가 들이받은 좀비가 재수 없게 앞 유리를 뚫고 들어갔다. 운전석으로 뚫고 들어간 놈은 이미 죽었지만 놀란 운전병은 그대로 직진했고 트럭은 다른 트럭을 정면충돌하고 말았다.
두 대가 좀비들 한가운데 멈춰 선 상황. 차량이 보이는 방향에 있던 병사들은 사격을 멈추고 중위를 바라보았다. 트럭 주위의 좀비를 쏴야 할지 어떻게 할지 결정해야 했다.
없는 총알에 차량에 탑승한 사람들을 구한다고 그곳을 쏴 봐야 결국 그들이 당하는 것은 시간문제였다. 중위는 결단을 내리고 소리쳤다.
“저기는 포기하고 이쪽으로 오는 놈들만 잡아.”
중위의 지시에 병사들이 다시 아래를 향해 총알을 날릴 때, 한구석에서 아이들을 달래고 있던 장혜진이 벌떡 일어섰다. 그리고는 갑자기 계단으로 달리기 시작했다.
그 모습을 본 이택진이 깜짝 놀라 그녀를 잡으려고 달려갔지만 이미 그녀는 2층으로 내려서고 있었다.
2층에서 아래로 총을 쏘던 병사들은 갑자기 위에서 달려 내려오는 장혜진의 모습에 깜짝 놀랐다.
그녀는 2층에 내려서더니 병사들 사이를 지나 그대로 1층으로 향하는 것이었다.
밑에는 여전히 틈을 비집고 올라오는 좀비들이 있는데 그녀가 내려가자 사격을 할 수가 없었다.
“뭐야? 왜 저래?”
밥을 가져오고 또 사람들 분위기를 풀어주던 그녀였다. 호감 가던 그녀의 갑작스러운 미친 짓에 어쩌지도 못하고 바라만 보고 있었다.
그녀는 이미 계단을 반이나 내려갔고 바로 앞에는 좀비 하나가 이빨을 들이밀고 있었다.
병사 하나가 총을 들었다. 그는 그녀를 피해 좀비를 잡을 자신은 없었지만, 본능적으로 총구를 올렸다. 그가 막 방아쇠를 당기려는 순간이었다.
갑자기 터져 나오는 광채에 병사들은 모두 눈을 감았다. 그리고 몸을 뚫고 지나가는 강한 바람에 한순간 휘청해야 했다.
찰나의 순간이었다. 삽시간에 지나간 바람과 광채는 그런 게 있었나 싶을 정도로 짧았다.
그 시간이 지나고 다시 눈을 뜬 병사들은 놀라운 모습을 바라봐야 했다. 장혜진은 여전히 살아 있었다. 살아 있을 뿐만 아니라 이미 계단을 다 내려가 1층을 나가고 있었다.
그런 그녀의 주위에 있던 좀비들은 다급하게 그녀에게서 멀어졌다. 마치 무엇인가에 밀려나듯 놈들은 우르르 뒷걸음치거나 달려서 그녀에게서 멀어졌다.
그 모습을 바라보는 병사들은 무엇인가 따끔따끔한 기운이 피부를 찌르는 것 같았다. 하지만 그런 감각을 인지하기에는 눈앞에 보이는 모습이 너무 놀라웠다.
계단 밑으로 사격하던 2층의 병사들은 전부 장혜진이 가는 방향으로 달려가 밑을 내려다봤다.
2층까지 내려온 이택진도 마찬가지로 그들과 함께 서서 아래에서 좀비들을 뚫고 전진하는 장혜진을 바라보았다.
그것은 3층에서도 마찬가지였다. 아래로 사격하던 군인들은 갑자기 몰려들던 좀비들이 뒤로 물러서더니 원형의 빈틈이 생기고 그곳으로 장혜진이 걸어 나오는 것을 봤다.
장혜진이 앞으로 걸어가자 계속 물러나던 놈들은 반경 50m의 큰 원을 만들고 그 밖에서 어정거리기만 했다.
장혜진이 가는 방향과 다른 쪽을 담당하던 병사들도 갑자기 좀비들이 주춤하다가 뒤로 물러서자 무슨 일인가 싶었다.
그들이 뒤를 돌아보자 대피해 있던 사람들과 군인들이 한쪽 끝에 모여 아래를 내려다보고 있었다.
궁금해 그쪽으로 달려간 그들도 아래의 신기한 모습에 입을 벌려야 했다.
장혜진이 한발 앞으로 가면 놈들은 한발 뒤로 물러났다. 그렇게 보이지 않는 거대한 막으로 놈들을 밀고 나가는 장혜진이 향한 곳은 두 대의 트럭이었다.
그곳에는 죽었다 살아난 사람들이 눈물을 흘리며 다가오는 장혜진을 바라보며 외치고 있었다.
“살려 주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