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좀비 에이지 백수 생존기-107화 (107/145)

# 107

경이로운 모습이었다. 트럭의 사람들은 장혜진의 몸에 어린 옅은 휘광을 보고 있었다. 좀비들은 모세의 기적처럼 갈라져 밀려났다. 눈을 감고 뚜벅뚜벅 걷는 그녀의 모습은 성스럽기까지 했다.

트럭을 둘러싸고 있는 놈들도 달려드는 것은 이미 멈췄다. 마치 얼이 빠진 듯 옅게 그르렁거릴 뿐, 트럭 위로 뛰어오르는 놈은 없었다.

“조금만 더!”

놈들이 다시 공격할까 걱정에 트럭의 사람들은 장혜진이 빨리 오도록 소리쳤다.

“제발 살려 주세요.”

혹시나 장혜진이 중간에 멈출까 소리치는 사람도 있었다.

“무사해야 하는데…”

오는 도중 뒤로 밀려났던 놈들이 다시 공격할까 걱정하는 목소리도 있었다.

마침내 트럭과 그녀 사이에 남은 좀비가 하나도 안 남았다. 그녀가 한 걸음 더 내딛자 트럭 옆의 놈들이 좌우로 물러났다. 몇 걸음 더 나오자 트럭을 둘러싸고 있는 놈들은 모두 트럭 뒤로 물러났다.

그녀가 선 곳은 계단에서 30m 정도 앞. 그곳에서 다시 트럭까지는 약 50m. 계단 뒤로도 20m 정도의 안전지역을 만들고 서 있는 것이다.

트럭의 사람들은 망설였다. 이성은 내려가도 된다고 말하지만, 공포심이 그들의 발목을 잡았다.

장혜진만을 바라보며 주저하는 그들에게 송 중위가 소리쳤다.

“당장 안 오고 뭐해요? 빨리 달려요.”

소리에 정신이 번뜩 든 사람 하나가 트럭에서 뛰어내려 달렸다. 그를 신호로 나머지 사람들도 하나둘 뛰어내려 달리기 시작했다.

그들은 달려가며 장혜진을 살폈지만, 그녀는 눈을 꼭 감고 서서 지나가는 사람을 신경도 쓰지 않는 것 같았다.

“단발로 조준 사격한다. 각자 위치로!”

놈들은 일정 거리 밖에서 어정거리고만 있을 뿐이었다. 쉽게 잡을 기회였다.

탕!

“어라? 왜 안 맞지?”

분명히 조준해서 쐈는데 총알은 몇 미터나 비켜 날아갔다. 워낙 많아서 겨냥하지 않은 놈이 맞아 죽기도 했지만 그렇지 못한 총알이 더 많았다.

누군가 좀비가 없는 경계의 안쪽 지역에 한 발을 쐈다.

“안쪽에는 조준한 대로 들어갑니다.”

경계를 통과하면서 총알이 휜다는 말이었다.

“그냥 쏴. 뭐라도 맞으면 되잖아.”

또 다른 누군가의 외침에 병사들은 어림잡아 쏘기 시작했다. 그때그때 달리 날아가는 총알 때문에 오조준도 의미 없었다. 그저 쏴서 운 좋게 뭐라도 맞기를 바랄 뿐이었다.

철컥~

누군가의 총이 비었다.

철컥철컥~

또 몇 명의 총이 비었고 철컥 소리는 빠르게 번져갔다. 마침내 모두의 탄창이 비었을 때 밑에는 아직도 200은 넘어 보이는 놈들이 어정거리고 돌아다니고 있었다.

“탄통 있는 곳도 비었으면…”

아쉽게도 탄통은 좀비들이 돌아다니는 곳에 있었다.

장혜진은 여전히 한 자리에 꼼짝 않고 서 있었다. 그 모습을 2층에서 보고 있던 이택진이 옆의 병사에게 말했다.

“가서 데려와야겠어요.”

이택진과 몇 명의 병사가 계단을 달려 내려갔다.

“혜진아.”

이택진이 조심스럽게 불렀지만, 장혜진은 미동도 하지 않았다. 조심스럽게 손을 뻗어 어깨를 살짝 흔들어 봤지만 그래도 반응이 없었다.

이진성이 장혜진을 처음 만났을 때 반경 10m 정도의 구역을 만들고 있었다고 들었다. 그리고 지속시간이 30분 정도라고 했다.

반경 50m 정도면 얼마나 시간이 지속될지 이택진은 알 수 없었다. 이미 5분 정도는 지났다. 그대로 쓰러진다면 모두 죽는 상황이었다.

“내가 업을 테니까 뒤에서 받쳐요!”

이택진이 등을 들이밀었다. 병사들은 그녀를 바로 그 등에 올리고 떨어지지 않게 뒤에서 받쳐 밀었다.

장혜진의 몸에 닿는 부분에서는 약간의 찌릿함이 느껴졌다. 아주 약한 전기가 흐르는 느낌이었다.

그 상태로 몇 걸음 달렸을 때 장혜진이 약한 경련을 시작했다.

“서둘러요. 뭔가 변화가 일어나나 봐!”

발걸음에 속도를 붙이는데 경련이 조금씩 심해져 갔다. 그와 동시에 놈들과의 거리는 좁혀지기 시작했다.

놈들이 20m 정도까지 다가왔을 때 계단은 아직 10m 정도 앞이었다.

그녀의 몸에서 느껴지는 찌릿함이 사라졌다. 동시에 가까이 다가와 있던 놈들이 그러렁 거리며 달려들기 시작했다.

간발의 차이였다. 사람들은 가까스로 놈들을 피하며 계단으로 뛰어올랐다. 조금만 늦었어도 놈들에게 잡혔을 것이 분명했다.

“막아. 뭐라도 던져”

어느새 2층으로 내려와 있던 송 중위가 3층에서 가져온 이동형 발전기를 계단 밑으로 굴러 떨어뜨리며 소리쳤다.

* * *

“탄 없습니다.”

장갑차의 사수가 해치를 닫고 들어오면서 차장에게 외쳤다.

“씨발. 어떻게 끝도 없이 오냐? 남은 거 뭐라도 없어? 유탄은?”

“떨어진 지 오랩니다.”

“이렇게 된 거 공사장으로 들어가면서 깔아 죽인다.”

차장의 지시에 장갑차는 방향을 돌렸다. 한 블록 너머 있는 공사장까지 전속력으로 내 달리며 앞에 보이는 놈들을 깔아뭉갰지만, 깔리는 놈들은 얼마 되지 않았다.

바퀴에 깔린 놈들을 타넘으면서 흔들리는 차체를 전속력으로 위태위태하게 몰고 들어간 공사장에는 이미 수많은 놈이 총에 맞아 죽어 있었다.

그리고 또 죽은 놈보다 많아 보이는 놈들이 저 앞으로 보이는 아파트 밑에 몰려 있었다.

“2층에서 계단에 뭔가를 던집니다. 계단 막으려는 것 같습니다”

외벽이 없어 바닥 면과 계단밖에 없는 그곳의 모습은 작은 관측 창으로도 분명하게 보였다.

“밀어붙여. 계단으로 들어가 차체로 막는다.”

차장은 아예 장갑차를 계단에 끼어 버릴 것을 지시했다. 이미 공격 수단이 떨어진 장갑차로 할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이었다.

어딘가 고장이 나고 부서지겠지만 그건 나중 일이었다.

앞에 있는 좀비들을 들이받으며 전속력으로 달렸다. 계단의 폭은 장갑차가 들어갈 정도는 되어 보였다.

“충돌합니다.”

쾅!

계단을 반 정도 올라가서 머리를 들고 선 장갑차의 내부에는 머리에서 피를 흘리는 차장과 사수가 해롱대고 있었다. 운전수만이 상처 없이 앉아있었지만, 그도 제정신은 아니었다.

계단으로 뭔가를 정신없이 집어 던지던 사람들은 화들짝 놀랐다. 갑자기 장갑차가 계단으로 돌진하더니 그대로 쑤시고 들어오는 것이었다.

장갑차가 처박으면서 계단에 던져 놓았던 온갖 물건들이 2층으로 좀비들과 같이 날아올랐다.

운 나쁘게 미처 피하지 못한 사람들은 날아오는 쇠파이프 또는 쇳덩이에 맞아 몸이 두 쪽이 났다.

몇 사람은 날아오는 좀비에 맞아 같이 저만치 날아가기도 했다.

“뭐야? 무슨 일이야?”

저만치에서 던질 물건을 가져오던 중위는 그 모습에 화들짝 놀라 계단으로 달렸다.

달려간 그곳에는 계단을 반쯤 타고 올라온 장갑차와 그 위로 쏟아져 내린 콘크리트 더미가 계단을 완전히 막고 있었다.

다시 돌아본 2층 바닥에는 척추가 접히거나 어긴가 부러진 좀비들이 버둥거리고 있었다.

“저놈들 잡아.”

중위는 가까운 한 놈에게 달려가 빈총으로 내려찍기 시작했다. 그를 따라 다른 사람들도 널브러진 놈들에게 달려들었다.

* * *

“준위님. 좀 더 빨리요.”

장동건이 헬기 안에서 박 준위를 다그쳤다. 너무 늦은 거 아닌가 조바심이 바짝 난 그는 아래를 내려다보며 안절부절못하고 있었다.

헬기에는 1팀 전원이 탑승하고 있었다. 이진성과 나현주는 안절부절못하는 장동건과 김현희를 진정시키고 있었지만, 자신들도 속이 타기는 마찬가지였다.

상황실에서 장갑차의 무전을 받은 것은 15분쯤 전이다. 긴급으로 이재규에게 보고되었지만 사람들이 모이는데 거의 10분이 넘게 걸렸다.

박 준위는 머지않은 곳을 정찰 비행 중이었기에 빨리 복귀할 수 있었다. 하지만 공사 현장에 나가 있던 이진성과 나현주, 그리고 사격장에서 병사들 사격훈련을 시키던 장동건이 모이는데 그만큼의 시간이 걸린 것이다.

“이제 다 왔어. 저기 보여.”

상공에서 내려다본 현장은 좋지 않았다. 조금 올라온 아파트 건물 주위로 자빠져 있는 시체만 대략 보기에도 200은 되어 보였다. 그리고 그 주위에 몰려 있는 것들이 아직도 300은 되지 싶었다.

“더 밀려오는 놈들은 없나 봐요.”

다행히 멀리서 달려오는 놈들은 보이지 않았다. 공사장 안에 모여 있는 놈들이 전부였다.

“미사일 날려 줘요. 우리 내릴 자리에.”

옆문이 열리고 토우미사일이 놈들이 모여 있는 곳을 겨냥했다. 사수는 저번의 농협 작전 때의 그 이병이었다.

몇 번의 경험이 있어 그런지 녀석은 선회비행하는 헬기에서 능숙하게 미사일을 날렸다. 그동안 발사관을 개조해서 완전하게 헬기에 고정한 덕도 보았다. 미사일은 원하는 곳을 정확하게 때렸다.

폭발과 함께 놈들이 날아간 자리에 헬기가 급강하했다. 약 3m 상공에서 1팀이 뛰어내린 후 헬기는 다시 상승해서 이곳저곳에 미사일을 날리기 시작했다.

장동건의 미친 듯한 사격이 시작됐다. 순식간에 딱 총알 수만큼의 놈들을 죽이고 탄창을 가는 그는 총을 쏘면서도 장혜진의 생각만 하고 있었다.

그리고 이진성과 나현주, 김현희의 공포스러운 돌격이 시작되자 몰려 있는 놈들은 물에 씻겨 나가듯 줄어들었다.

그 모습에 환호하며 감탄하는 사람 중에 다섯의 진화자도 있었다.

놈들이 몰려온 후 아파트로 피신한 후 아무것도 하지 못하고 있던 그들이었다. 군인들이 있었고 또 놈들이 너무 많기도 했다. 분명히 그들의 능력 밖의 상황이었다.

“우와. 저 아저씨뿐만 아니라 다른 사람들도 엄청나잖아.”

“그러게. 저쪽 맨손 격투하는 여자 분도 못지않아.”

“저쪽 방패 쓰는 아줌마도 대단한데요?”

“저기 총 쏘는 아저씨는 기계야?”

“우리도 가요.”

“그럽시다.”

넷에게 자극받은 다섯이 지상으로 뛰어내렸다. 그들 다섯이 비록 이진성 일행의 한 사람 정도 몫밖에 하지 못했지만 없는 것보다는 나았다.

놈들이 정리되는 것은 그로부터 채 10여 분이 지나지 않았다. 급한 마음에 서두른 덕에 더 빨리 끝낼 수 있었다.

온통 피를 뒤집어쓴 이진성과 나현주, 김현희는 이미 저 앞에 달려가는 장동건을 따라 장혜진과 이택진을 찾아 아파트로 달렸다.

“혜진아. 정신 차려!”

장동건이 장혜진을 잡고 흔들었다. 그녀는 아직 기절에서 깨어나지 않고 있었다.

올라오자마자 이미 장혜진이 한 일을 전해 들었다. 기절하는 게 그다음 순서라고 알고 있지만, 장동건은 불안했다.

“왜 이러죠? 잘못 되는 건 아니겠죠?”

“저번에도 그랬잖아. 괜찮을 거야. 그냥 놔둬.”

“그때는 몇 마디 말이라도 하고 기절했잖아요!”

그랬었다. 저번에 이진성 일행이 장혜진을 처음 봤을 때 그녀는 일행을 기다렸다고 말하고 기절했었다. 비록 그것이 장혜진의 목소리는 아니었지만.

“택진 형님. 혜진이 기절 전에 뭐라고 말한 거 없어요?”

“어… 있긴 했어. 기절했다가 갑자기 깨어나더니 머라 하고 다시 기절했거든? 근데 그게 좀 황당한 말이라서…”

“무슨 말인데요? 그리고 자기 목소리였어요? 아니면 아기 목소리?”

“애기 목소리였어. 그리고 그 내용이… “

“아, 뭔데요?”

주저주저하던 이택진이 장동건의 독촉에 주위를 둘러보고 말했다.

“진성 씨가 세상을 구한다고 모두 그를 따르라고 하던데?”

모두는 황당한 얼굴로 장혜진을 내려다봤다.

“이번에 애기 귀신님이 뭘 한참 잘 못 짚었나 보네.”

“그러게. 접신 한다고 좋은 게 아니네.”

“나 막 걱정했던 거 후회 될라고 하네. 누님들. 나 어쩌지?”

기절 상태에서 되도 않는 이진성 얘기를 했다는 말에 빈정상한 장동건이 자리를 떴다. 그를 따라 이진성과 나현주, 김현희도 현장 정리를 위해 자리를 떴다. 이택진만이 남아 기절한 그녀를 돌봐야 했다.

그렇게 흩어진 그들은 사람들이 수군거리는 것을 듣지 못했다. 수군거림은 기지에서 와서 남아있던 10명의 병사로부터 시작되었다.

“저기 저쪽 여자가 마녀래. 그리고 저기 쓰러져 있는 성녀는 거기 사람들도 그런 줄 몰랐다네?”

“마녀랑 성녀가 같이 사는 거야?”

“몰라. 그렇다나 봐. 마녀도 나쁜 짓은 안 한대. 피만 보면 돌아 버려서 그렇지 평소에는 멀쩡하데.”

“겁나서 어떻게 살아?”

“그래? 그래도 난 성녀님 보고 거기 갈까 싶은데? 이 씨는 어때?”

“어. 나도 맘 바꿨어. 성녀님 따라가기로.”

뜻하지 않은 장혜진 효과였다. 남기로 했던 사람 대부분이 같이 가기로 마음을 바꿨고, 이재규는 더 많은 집을 확보하기 위해 뛰어다녀야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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