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좀비 에이지 백수 생존기-108화 (108/145)

# 108

“제 불찰입니다.”

“저도 잘한 건 없네요.”

병력을 열 명만 남기고 온 이재규도, 남아 있지 않고 철수한 이진성도 자책하고 있었다.

“아저씨. 그럴 거 없어요. 그렇게 올 줄 몰랐잖아요. 처음처럼 서쪽에서만 왔으면 충분히 대피할 수 있었어요.”

나현주는 쭈그러져 있는 이진성을 다독였지만 별 효과는 없었다.

“이 대위 자네도 그럴 거 없네. 그쪽 말 때문에 철수한 거 아닌가?”

도만수는 제공 받은 정보에 의한 결정이었다는 것을 강조했다. 그래도 이재규는 기분이 개운하지 않았다.

그들은 이택진과 장혜진에게 미안해하고 있었다. 공사 인원과 장혜진이 위험에 처했던 것이 문제였다. 장혜진의 능력이 없었다면 그들도 잘못될 수 있었다.

저쪽 민간인의 손실은 상관없는 일이었다. 애초에 그들을 구하러 간 것도 아니고, 오히려 많은 좀비를 잡았고 그걸로 만족할 수도 있었다.

‘괜찮다’, ‘운이 나빴다’라고 사람들은 격려했지만 둘의 기분은 좀처럼 풀리지 않았다. 그런 중에 회의 테이블에 엎드려 있던 장동건이 고개를 들었다.

“공중정찰에서도 그 정도 큰 군집이 보인 적이 없었잖아요. 어디서 온 걸까요?”

모두가 궁금한 부분이었다.

“어떻게 여태 발견 안 된 거죠? 정찰 비행을 한두 번 한 것도 아닌데. 그리고 여태 가만있다가 왜 지금에야 공격했을까요?”

이어지는 장동건의 의문에 도만수는 자신의 추측을 말했다.

“200에 가까운 사람이 노출돼서 그랬겠지. 놈들 이번 습격이 먹이 사냥이 아니라 자기들 숫자 불리기였다며? 좋은 기회잖아.”

“안 그래도 거대집단인데 그렇게까지 수를 불리려고요?”

“역시 까만눈의 개입이라고 봐야 하지 않겠나?”

그때 박 준위도 근래 놈들의 움직임이 조금은 달라졌음을 알렸다.

“생각해보니 좀 이상해요. 처음에는 헬기 소리에 건물에서 나오는 놈들도 있었거든요? 요즘은 그런 놈들은 거의 없어요. 오히려 길에 있다 놀라서 어딘가 들어가는 놈들이 보입니다.”

박 준위의 말에 잠시 생각하던 도만수가 이진성에게 물었다.

“아무래도 자네들이 도보 수색을 병행하는 게 좋지 않겠나?”

“저희가요?”

“저래서는 공중정찰로는 찾기 어렵지 않겠나?”

“지상 정찰이라면 군인들이 장갑차로 해도 될 거 같은데요?”

“탐색이라면 군인들보다 자네들이 더 낫지 않나? 탐지능력도 그렇고, 싸워도 소리도 안 나고 또 근접전에는 군인보다 훨씬 뛰어나고.”

“그렇기는 한데 시간이 오래 걸릴 텐데요?”

“놈들의 대규모 집단이 있을 만한 곳 몇 군데만 확인하면 되네. 시내 전체에서 몇 군데 안될 거야.”

그 말에 이재규가 거들었다.

“일반 주택 단지나 아파트 단지는 큰 집단이 없다고 봐야 합니다. 그런 곳은 이미 송 중위가 약탈하면서 거의 확인 했거든요. 주위에 주거 밀집 지역을 끼고 있는 비거주 대형 건물 위주로 범위를 좁히면 될 겁니다.”

“그게 뭔데요?”

“학교, 관공서, 고층빌딩 같은 것들이요. 그래도 적은 수는 아닐 겁니다. 일단은 이번에 습격받은 곳 근처부터 확인 하는 게 좋겠습니다.”

이재규는 구석의 병사에게 평택시 지도를 띄우도록 지시했다. 이내 벽면의 모니터에 뜬 지도에서 전초기지 부근을 확대할 것을 지시한 그는 지도로 걸어가 설명하기 시작했다.

“여기서부터 시작하는 게 좋겠습니다.”

그가 짚은 곳은 전초기기 바로 서쪽의 공원을 지나 있는 학교였다. 거기서 350m 남쪽으로 학교가 하나 더 있었고 다시 서쪽으로는 평택시청이 있었다.

그것들의 주위로는 아파트 단지 또는 주택단지였다. 인구밀도가 높은 곳, 즉 좀비가 될 자원이 충분한 곳이었다.

또한 그런 건물은 출입도 어렵지 않았다.

“우리가 처음 갔을 때 놈들은 서쪽에서만 공격해 왔었습니다. 이것들이 우리 전초기지에서 서쪽으로 가장 가까운 대형건물입니다.”

놈들이 있을 가능성이 높은 곳이라는 것에 모두 동의했다.

이진성이 다시 박 준위에게 물었다.

“박 준위님. 저기서 놈들 못 봤어요?”

“음… 몇십 마리씩 돌아다닌 건 봤지. 하지만 수백 마리씩은 못 봐서 무시했지. 내가 가면 건물 안으로 들어가긴 했었어.”

“그럼 일단 가 보죠. 놈들 찾는 거야 냄새로 찾으면 되니까 몇 군데만 갈 거면 시간 많이 안 걸리겠네요.”

도만수가 고개를 저었다.

“까만눈은 냄새가 안 난다면서. 까만눈의 존재를 확인하는 것이 좋네. 그러려면 아무래도 침투하는 게 좋지 않겠나? 박두식 씨와 함께 가게. 특전사 출신이니까 그런 거 잘할 거야. 유사시에 사격도 문제 없을거고.”

거기에 관장도 한마디 거들었다.

“저격수로 홍수진 씨가 가는 게 좋겠소. 활이 소리가 안 나니까.”

* * *

전초기지 앞의 도로에 장갑차 한 대가 정차했다. 잠시 기관총을 잡은 병사 한 명이 두리번거리더니 이내 해치를 열고 이진성과 박두식, 홍수진이 내렸다.

이진성은 내리자마자 숨을 깊게 들이쉬었었다. 근처에 돌아다닌 놈들은 감지되지 않았다.

8월의 덥고 끈적끈적한 공기 속에 썩는 냄새만이 강하게 풍겨올 뿐이었다.

“새는 참 많네요. 매미도 많고.”

매미는 세상에 아무 일도 없었다는 듯 여느 해와 똑같이 귀를 찢을 듯 울어댔다. 올려다본 하늘에는 새들이 정신없이 날아다녔다.

얼핏 평화로운 모습이었다. 하지만 실상은 동족을 잡아먹는다고 비둘기, 참새 주제에 발톱을 내밀고 공중에서 공격하고 또 그걸 피하고 있는 것이었다.

그리고 새, 다람쥐 등의 일부가 좀비화되면서 천적이 줄자 매미 개체 수가 전년보다 훨씬 많아진 때문이었다.

“저 숲을 지나가야 하는 거죠?”

“저 안에 놈들이 없기만 하다면 도로보다 낫지요. 놈들의 시야에서 가려지니까.”

“일단 제가 탐지하는 범위 내에는 없어요.”

셋은 길 건너 공원의 숲을 바라보았다. 원래는 드문드문 나무만 있었을 공원이었다. 인적이 끊긴 몇 달 동안 나무 사이에는 잡초가 빼곡히 자라 있었다.

“가 볼까요?”

이진성이 먼저 길 건너로 달려나가고 두 사람도 이내 그를 따랐다.

셋은 야시경과 헤드셋이 장착된 미군 방탄모를 쓰고 등에는 군용 백팩을 메고 있었다. 건물 내부까지 뒤지면 며칠은 걸릴 것을 예상하고 약간의 식량과 기타 필요한 소품을 챙겨 나선 것이다.

통신 중계를 위해 장갑차가 일정 거리를 유지하며 따라다니기로 되어 있었다. 그 안에도 식량과 응급처치 용품 등이 있지만 만일의 경우를 대비하여 약간은 들고나온 것이다.

“와. 나 어렸을 때도 이렇게 메뚜기가 많지 않았는데.”

잡초를 헤치고 나가자 사방에서 메뚜기가 뛰었다. 그 모습을 신기해하는 이진성에게 박두식이 조용히 속삭였다.

“진성 씨가 냄새로 파악하고 있으니까 다행이지, 안 그랬으면 곤란할 수도 있었겠어요. 이렇게 메뚜기가 많을 줄을 나도 생각 못 했어. 놈들이 근처에 있기라도 했으면 우리 가는 걸 알았을 거예요.”

“나 어렸을 때 여름이면 메뚜기 잠자리 잡고 놀았는데.”

“에? 누님이요? 여자들도 그러고 놀았어요?”

“그땐 그랬죠. 시골에서 컸거든. 남자고 여자고 다 몰려다녔지.”

그녀는 날아가는 메뚜기를 능숙하게 손으로 잡았다 놓아줬다 하면서 어린 시절 이야기를 했다. 셋은 그 이야기를 들으며 한가로운 분위기에 젖어 들었다. 그렇게 공원을 반 이상 지났을 때였다.

파사삭~

무엇인가 풀을 지나는 소리와 함께 홍수진의 손이 움직였다. 등에 있는 화살집에서 뽑힌 화살이 시위에 걸리고 날아가기까지는 눈 깜짝할 사이였다.

깽~

번개같이 날아가 길게 자란 잡초 사이로 화살이 사라짐과 동시에 들린 소리는 개의 짧은 비명이었다.

이진성과 박두식은 깜짝 놀랐다. 뭔가 움직이는 소리를 들었지만 신경 쓰지 않았다. 이미 좀비가 없다는 것을 알고 있었으니까. 그런데 홍수진이 화살을 날린 것이다.

그녀가 평온하게 얘기하고 있었지만, 사실은 크게 긴장하고 있었다는 것에 놀랐다. 그리고 두 번째로 그녀의 활 솜씨에 놀랐다.

순식간에 발사하는 스피드도 대단했지만 보이지 않는 목표물을 소리만으로 잡아낸 것이 더 놀라웠다.

“누님. 긴장 안 해도 돼요. 긴장하고 있었어요?”

“언제 그만큼 실력이…?”

물음과 함께 두 사람이 그녀를 돌아봤다. 그 모습에 자신의 실책을 깨닫고 얼굴이 빨개진 홍수진이 손사래 쳤다.

“긴장 한 건 아닌데 좀 놀라서… 활은 그동안 계속 연습했어요. 새 화살에 적응도 해야 해서…….”

그녀가 보여준 화살은 이택진이 만들어준 나무 화살이었다. 기존의 선수용 화살보다 훨씬 무겁고 두꺼운 그 화살에 적응하려고 매일같이 종일 연습했다는 것이다.

“얼마 전이었어요. 연습 중에 갑자기 몽롱해지더니 화살이 날아갈 궤적이 보이듯 느껴지더라고요. 또 움직이는 표적도 소리만으로 어디로 쏴야 할지가 느껴진다고 할까…….”

“몸살은 또 하지 않고요?”

“안 했어요.”

“그럼… 발현될 능력이 늦게 발현된 건가?”

이진성도 몸살 없이 폭주로 능력이 비약적으로 발전했었다. 홍수진이 그런 케이스는 아니지만, 관장과 나현주는 싸우는 도중에 몇 번이나 무아지경 상태에서 새로운 경지로 나간 적이 있었다.

“동건이 상태와 비슷해지셨나 봐요. 동건이도 그냥 느껴진다던데.”

“안 그래도 관장님한테 얘기했더니 동건 씨랑 비슷하다고…….”

“그래요? 관장님은 이런 중요한 얘기를 왜 안 했지?”

“제가 아직 아무한테도 말하지 말라고 했어요. 며칠 되지 않았고 이게 계속 이럴지 몰라서…….”

관장이 홍수진과 같이 가라고 할 때 이진성은 약간의 걱정이 있었다. 아무리 정찰이라지만 싸울 수도 있는데 과연 홍수진이 안전할까 싶었었다. 그래도 그동안 진화자들의 훈련을 책임지다시피 하고 있던 그였기에 그럴 만하니까 같이 가라고 하겠지 싶었다.

“이래서 관장님이 누님도 같이 가라고 한 거였구나.”

이진성은 마음이 놓이는 것을 지나서 홍수진이 든든하게 느껴지기까지 했다. 방금의 그 실력이면 소리 없는 장동건이나 마찬가지였다. 물론 총의 연발 속도에 미칠 수는 없지만 상당한 속사가 가능해 보였다.

“두식 아저씨는 달라진 거 없으세요?”

“난 딱히 별로…….”

등에는 기관단총을 메고 허리에는 권총과 대검 두 자루가 있었다. 또 어디서 구했는지 정글도까지 다리에 차고 있는 그 모습은 충분히 위압적이기는 했다.

‘그래도 좀 더 육체 능력이 좋아졌으면 좋았을걸…….’

아쉬운 마음을 숨기고 걸음을 옮긴 이진성과 그를 따르는 둘이 첫 목표지점인 소사벌 초등학교가 저만치 보이는 곳에 도착했다.

운동장을 넘어 교사건물까지 130m 정도. 하지만 더 갈 필요는 없었다.

이진성의 코에 들어오는 냄새는 교사 앞에 서성이는 넷밖에 없었던 것이다.

이진성이 홍수진을 다시 돌아봤다.

“거리는 어느 정도나 커버 되세요?”

“150m 정도는 돼요. 활도 약간 보강해서 그 정도 까지는 버티더라고요.”

과연 활에는 철판 같은 것들이 붙어 있었다. 객관적으로 흉한 모습이지만 덕분에 전투력이 늘어났으니 그것도 멋져 보였다.

“저기 저 넷 보이시죠?”

“잡으라고요?”

“네. 여기서 확인하고 가는 게 좋을 거 같아서.”

홍수진이 화살을 재더니 물었다.

“가서 화살 뽑아 와야 하나요?”

“넷인데 그냥 버리고 가죠. 놈들 피해 다닐 거니까 저격할 일 많지는 않을 거예요.”

고개를 끄덕인 홍수진이 가만히 놈을 겨냥했다. 그런데 이진성과 박두식의 기대와 달리 그녀는 쏘지 않고 시간을 끌고 있었다.

‘왜지? 멀리는 속사가 안 되나?’

거의 1분 정도가 흘렀다. 왜 그러는지 이진성이 물어보려는 순간이었다. 홍수진은 시위를 놓음과 동시에 다시 한발을 번개같이 날렸다. 그렇게 두 발을 쏘고는 활을 내리는 것이었다.

“왜?”

“뽑아 오지 않을 거면 아깝잖아요. 그래서 한발에 두 놈씩 꽂았어요.”

그녀의 손가락을 따라 고개를 돌렸더니 서 있는 놈은 없었다.

이진성과 박두식은 달렸다. 화살을 회수할 목적이 아니라 현장을 보고 싶었다.

도착한 현장에서 둘은 감탄사를 터트렸다. 한발은 앞 놈의 눈을 뚫고 들어가 뒷놈의 심장을 뚫었고, 또 한발은 정확하게 목뼈를 뚫고 들어가 뒷 놈의 관자놀이에 박혀 있었다.

“와우. 죽인다.”

“그러게요.”

뒤늦게 도착한 홍수진은 그런 그들의 모습에 쑥스러워하며 화살을 뽑아내고 있었다.

“안 가요? 서둘러야죠.”

화살을 점검한 그녀가 남쪽으로 달렸다.

“어, 같이 가요.”

두 사람도 후다닥 그녀를 따라 남쪽의 고등학교로 달리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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