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좀비 에이지 백수 생존기-109화 (109/145)

# 109

“잠깐만요.”

아파트 단지를 가로질러 내려온 셋이 고등학교를 100m 정도 앞두었을 때 이진성은 사람들을 세웠다. 막 다세대 주택촌에 들어가기 직전이었다.

“더 갈 필요는 없겠어요. 저 학교에는 거의 없어요. 근데 여긴 이상하게 좀비 밀도가 낮네?”

아파트 단지를 지날 때도 앞을 막는 놈들이 없어 쭉 직진으로 내달렸다. 전방의 주택 단지도 썩는 냄새만 지독할 뿐 돌아다니는 놈들은 많지 않았다.

이상하게도 집안에 갇혀 있어야 할 놈들의 냄새가 많지 않은 것이었다.

“다 어디론가 간 거 아닐까요?”

“집안에 갇힌 놈들이 더 있어야 정상인데…….”

“여기 사람들이 약탈하면서 다 죽인 것일 수도 있잖아요?”

“문이 잠긴 집은 소리 나는지 확인하고 안에 있으면 안 털었다고 하던데…….”

지나온 아파트와 앞에 있는 주택단지는 전초기지에서 가장 가까운 주거지역으로 송 중위 일당이 가장 먼저 약탈했던 지역이었다.

송 중위는 문 잠긴 꽤 많은 집에서 좀비 소리를 확인했었다고 했다. 그런데 지금은 이진성이 좀비를 느낄 수 있는 집이 별로 없었다.

“놈들이 잠긴 문을 연 건 아니겠죠?”

“에이. 설마.”

“확인하고 가는 게 좋겠어요. 문 잠긴 집 열 집 정도만 확인하면 될 거 같아요. 변이 비율로 봐서 열 집에 최소한 두세 마리는 나와야 정상인데… 아저씨 혹시 잠긴 문 열 수 있으세요?”

“그런 건 못하는데? 창문으로 들어가는 게 어때요?”

“방범창 없는 집이 있으려나?”

“2, 3 층이면 방범창 없는 집들 꽤 있을 거 같은데?”

“거길 어떻게 올라가요?”

“그런 건 또 내가 잘하죠.”

마을은 을씨년스러웠다. 좀비 냄새가 나는 집들이 간혹 있긴 했지만 대부분 빈집이거나 시체 냄새만 날 뿐이었다.

문이 잠겼으면서 내부에 좀비 냄새가 안 나는 집 서너 곳을 확인했다. 박두식은 능숙하게 가스관을 타고 올라가거나 옥상에 매달린 채 조용히 창문을 깨고 들어갔다.

몇 집에서는 굶어 죽은 시체가 나오기도 했다. 그냥 빈집도 있었다. 확실하게 냄새가 없는 집은 좀비도 없었다.

“저 집 어때요?”

이진성이 가리킨 집은 4층짜리 다세대였다. 층층이 작은 베란다가 있어 바로 창 안을 들여다볼 수 있었고 방범창도 1층에만 달려 있었다.

1층의 문은 열려 있었다. 도망을 간 건지 약탈당한 것인지 난장판이었지만 시체는 없었다. 대충 둘러보고 나온 셋은 2층으로 향했다.

2층에는 두 세대가 있었다. 한 곳은 문 열린 채 1층과 같은 꼴이었다. 다른 한 곳은 문이 잠긴 채 아무런 냄새도 나지 않았다.

“보이는 건 없는데요?”

“들어가 볼 건가요?”

“그러죠. 주위에 놈들 없으니까 그냥 깨고 들어가요.”

창에 머리를 박고 안을 들여다보던 세 사람은 뒤로 물러섰다. 이진성은 도끼로 창을 톡톡 두드린 후 가볍게 내리쳤다.

조용한 세상에 퍼지는 유리 깨지는 소리가 작지 않았지만, 그 소리가 나고도 느껴지는 움직임은 없었다.

들어간 방은 정돈된 채로 먼지만 자욱했다. 학생 방으로 보이는 그곳은 침대마저 정돈된 것으로 봐서 사태 전에 집을 나간 것으로 보였다. 방문도 잘 닫혀 있는 상태였다.

“여기도 빈집인가 봐요. 그것도 사태 이전부터 비어 있던.”

“부모는 있었을 수 있겠죠.”

안을 대충 둘러본 셋은 거실로 나가려고 방문으로 향했다. 박두식이 문손잡이를 잡고 돌리려는 그때였다.

“잠깐만요.”

그 손을 잡으면서 말리는 이진성을 둘은 의아한 얼굴로 돌아봤다.

“잠깐만요. 좀 이상해서 그래요. 시큼한 냄새가 나는데 너무 약해요. 신경 써서 맡지 않으면 모를 만큼.”

이진성은 처음 겪는 경우에 당황스러웠다. 나가기 전에 확인차 다시 한번 주의를 기울여 냄새를 맡았는데 약한 냄새가 느껴졌다.

멀어서 약한 것이 아니었다. 분명히 집 안에 있는데 그 냄새가 너무 약했다.

“움직이지 않아요. 가만 한자리에 있어요. 까만눈은 냄새가 안 나는데 혹시 그 비슷한 거 아닌지 모르겠어요.”

셋은 바싹 긴장했다. 만약 까만눈이거나 그와 비슷한 새로운 개체라면 어려운 싸움이 될 수 있었다. 유리 깨진 소리를 듣고도 움직이지 않고 기다리고 있다면 보통 영악한 놈이 아니었다.

“누님은 일단 여기 계세요. 총알도 잘 안 먹히는 놈들인데 화살은 먹히지도 않을 거니까.”

“눈이라도 쏘면…….”

“동건이도 잘 못 맞출 정도로 빨라요. 일단 계시다가 상황 봐서 나오세요.”

이진성이 도끼를 쳐들었다. 박두식도 다리에 달려있던 정글도를 꺼내 들었다.

이진성이 한 손으로 문손잡이를 살며시 돌리고 박두식과 눈을 맞췄다.

쾅~

벌컥 열린 문이 벽을 치는 소리와 함께 둘은 튀어 나갔다. 서로 거리를 벌리며 오른쪽의 부엌 방향으로 달렸다.

냄새는 부엌 안쪽.

아직 보이지 않았다.

놈의 움직임도 아직 없었다.

“죽어!”

부엌으로 꺾어지는 코너를 돌면서 도끼를 내리치려던 이진성은 그 자리에 멈췄다.

그를 따라 부엌으로 들어온 박두식도 내리치려던 정글도를 멈췄다.

“이건 뭔가요?”

박두식의 물음에 이진성은 대답할 수 없었다.

그들 앞에는 살이 쪽 빠져 날씬하다기보다는 앙상한 여자 하나가 눈을 감고 있었다. 움직이지도 않았다.

아주 약하지만 분명하게 좀비의 시큼한 냄새가 났다. 입고 있는 홈웨어 원피스에는 핏자국이 선명했다.

더군다나 그 옆에는 살점은 하나도 남지 않은 인간의 뼈가 널려 있었다. 부엌 바닥도 온통 핏자국이었다.

“이거 죽은 건가요?”

꼼짝도 안 하는 걸 봐서는 죽은 거 같은데 냄새가 나고 있었다. 더군다나 죽었으면 썩어야 할 놈의 피부는 멀쩡했다.

“아닌 거 같은데요?”

말한 이진성이 도끼 끝으로 놈을 슬쩍 건드렸다. 그래도 놈은 미동도 없었다.

“허, 그놈. 아예 핥아먹었나 보네.”

놈의 옆에 있던 뼈를 들고 살피던 박두식이 너무도 깨끗한 뼈의 상태에 감탄했다. 은근한 광이 날 정도로 뼈는 깨끗했다.

“변이 후에 가족 한 명 잡아먹고 여태 이 안에 있었나 본데… 이건 무슨 상황인지 모르겠네요.”

“죽일까요?”

“잠깐만요.”

이진성은 자신이 주택가에 마지막으로 간 것이 언제였는지 생각했다.

6월 초에 기지 근처 농가 정리하러 다닌 것이 마지막이었다. 그때는 이런 경우가 없었다.

분명하게 좀비가 있으면 냄새가 강하게 났다. 그리고 놈들은 잘만 움직였다.

“아무래도 연구소장님한테 물어봐야겠어요.”

이진성이 헤드셋을 켜고 기지를 호출했다.

“전데요. 박 소장님 좀 불러 주세요”

<이재규입니다. 소장님은 왜요? 지금 병원에 계신데?”>

“어… 그게… 여기 이상한 게 있어서요. 소장님 얘기를 들어야 할 거 같아서요.”

<그래요? 잠시만요. 10분 정도만 기다려 주세요>

어느새 밖으로 나온 홍수진도 미라 아닌 미라 같은 좀비를 보고 있었다. 그녀도 화살 끝으로 쿡쿡 찔러봤지만 움직임이 없는 그것의 모습을 신기해했다.

“굶어서 이렇게 된 걸까요?”

“굶어서 이렇게 된 건지 아닌지는 모르겠지만 굶기는 했겠네요. 3월에 변했으면 넉 달 넘게 굶었을 거고 최근에 변했어도 두어 달은 넘게 굶었을 거고.”

움직임은 없지만 혹시나 몰라 놈을 묶기로 했다. 박두식은 화장실에서 가져온 수건을 찢어 꼬아 금방 로프를 만들었다.

“그거 약하던데…….”

수건 로프에 묶여본 경험이 있는 이진성이 걱정했지만, 박두식은 걱정 마라며 완성된 로프를 보여줬다.

로프는 훌륭했다. 탈영병들이 이진성을 묶었던 것과는 비교도 되지 않았다.

촘촘하고 질긴 그것을 후딱 만든 박두식이 새삼 대단하다 싶었다.

이진성이 놈의 목에 도끼를 겨냥하고 박두식과 홍수진이 발목과 손을 묶었다.

그리고 재갈도 물리고 있는데 헤드셋으로 박인화 소장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진성 씨. 무슨 일?>

“아. 소장님. 여기 이상한 게 있어요.”

이진성은 놈의 상태를 설명했다.

죽은 듯 움직이지 않지만, 상태가 죽은 것 같지 않으며 앙상하게 말라 있다는 내용이었다.

<옷이 맞지 않나요?>

“잠시만요.”

소장의 물음에 대답한 것은 홍수진이었다. 그녀는 박두식의 대검을 빌려 놈의 홈웨어 원피스를 찢었다. 그리고 놈의 속옷을 확인하는 듯했다.

“원래 이렇게 마른 사람은 아니었어요. 속옷이 커요. 굶어서 말랐나 봐요.”

<혹시 심장은 뛰나요?>

이번에는 박두식이 놈의 맥을 짚었다.

“뛰는 것 같습니다. 하지만 맥박이 약하고 느립니다. 분당 10회 미만입니다.”

잠시의 시간이 지난 후 박인화의 목소리가 다시 들렸다.

<살아 있고 가사상태 같은데… 이런 경우는 겪어 보질 못해서…>

ITL이 생기고 많은 실험을 했었다.

1호가 탈출하면서 정상적인 연구 활동은 전부 멈추긴 했다. 연구를 더 할 수 없게 되면서 남아있던 동물 샘플은 모두 폐기했다.

하지만 12월에 설립되고 4월의 1호 탈출까지의 동물실험에서 가사상태에 빠진 경우는 없었다.

이진성이 물었다.

“굶기는 실험은 안 하셨어요?”

<했죠. 가장 먼저 한 건데요. 동물 실험에서는 한 마리가 성체 하나를 먹으면 석 달 정도까지는 못 먹어도 버텼어요. 그다음에 급격하게 활동량이 줄기는 했는데 가사상태까지 가진 않았어요.>

“그래도 그 기간이 최대 넉 달이었다는 거네요?”

<그렇죠. 그 이후는 1호 덕분에 관찰할 수 없게 된 거고>

"여기 이놈이 3월에 변이한 놈이면 거의 다섯 달이잖아요? 어쩌면 그보다 일찍 일 수도 있고.”

<진성 씨 생각은 활동량이 줄어든 이후에는 가사상태로 빠진다는 거죠? 나도 그렇게 생각해요.>

“지금 우리가 확보한 놈들은 굶기고 있어요?”

<짝짓기 실험 때문에 먹이고 있죠. 몰랐겠지만 인근 마을에서 상태가 나쁘지 않은 시체를 수거해서 먹이고 있어요. 그 시체들은 냉동상태로 보관하고 있고요.>

“이런 놈들이 이 동네에 많이 있는 거 같아요. 아니 이 동네만이 아니겠다. 지구 전체에 그럴 수 있겠다. 냄새가 너무 약해서 저도 있는지 몰랐어요. 건물 안에 들어와서야 알 수 있었어요.>

<아무래도 다른 나라 상황도 확인해 봐야겠네요. 분명히 발견한 나라가 없진 않을 텐데…>

“원래 다른 나라는 정보를 받아 가기만 하지 준거는 하나도 없었다면서요?”

<그렇긴 했죠. 하여간 그 샘플은 이리로 가져와야겠어요. 차 보낼까요?>

“아뇨. 헬기가 낫겠어요. 차는 시간 걸리니까.”

뜻하지 않은 새로운 발견이었다. 놈들이 굶어서 가사상태에 빠지는 것이라면 집안에 갇혀 있는 놈들은 앞으로 신경을 안 써도 된다는 말이었다.

헬기를 기다리는 동안 이진성은 놈들이 얼마나 될지 생각에 잠겼다.

대방동에서, 안산에서 그리고 동탄에서 본 경험에 의하면 집에서 자다 변이한 놈들의 상당수는 밖으로 나가지 못했다.

누군가 도망치면서 문이 열리면 같이 나갈 수 있었지만 그렇지 못한 경우도 많았다.

더군다나 혼자 살면서 변이한 것들이라면 밖에서 문을 열지 않는 이상 집안에 갇혀 있어야 했다.

그 비율이 얼마나 될지 모르지만 적지는 않을 것 같았다.

“어? 이거 움직이는 거 같은데요?”

갑자기 들려오는 홍수진의 말에 거실에 앉아있던 이진성과 박두식이 부엌으로 달려갔다.

홍수진은 묶여 있는 놈이 혹시라도 로프를 끊어 낼까 봐 화살을 겨누고 놈을 지켜보고 있었다.

놈은 이미 눈을 뜨고 있었다. 하지만 아직 완전히 정상은 아닌 듯 움직임은 거의 없었다. 단지 조금씩 꿈틀댈 뿐이었다.

“어떻게 다시 움직이는 거지?”

박두식의 물음이었지만 대답할 수 있는 사람은 없었다.

“우리 냄새 때문 아닐까요? 사람 냄새로 깨어난다거나 뭐 그런 건가?”

“그거 아니면 달리 이유가 없기는 한 거 같은데…….”

“우리 온 지 얼마나 됐죠?”

“15분? 20분?”

“냄새로 깨어난다 치면, 발견하고 죽일 시간은 충분하네요. 깨어나는 시간도 개체차가 있으려나?”

헬기는 곧 도착했다. 놈을 헬기에 인계하고 헬기를 떠나는 것을 바라보던 셋은 신기한 발견에 약간 고무되었다.

“굶으면 죽어 버렸으면 더 좋았을걸.”

“그러게요. 겨울잠 자는 것도 아니고 가사상태는 무슨…….”

“가사상태에 빠지는데, 반년 정도 걸린다 치면 이제부터 슬슬 시작이겠네요. 밖에 나와 있는 놈들도 다 굶길 수 있다면 좋겠는데…….”

“그러려면 생존자가 전부 어딘가 쉘터에 들어가거나 아니면 다 죽어야겠죠.”

“그건 또 그러네”

셋은 희희낙락하면서 다음 목적지인 시청으로 발걸음을 돌렸다.

“하늘에 피 뿌려 놓은 것 같네.”

“이쁘긴 한데 왠지 기분은 안 좋네요.”

어느덧 석양에 물들어 타는 듯 붉은 하늘이 그들을 맞이하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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