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10
셋은 주택단지를 벗어나 큰길로 나오면서 멈춰 섰다.
전방의 6차선 도로 넘어 오른쪽으로 시청사와 왼쪽으로 2층의 평택 남부문예회관이 보이는 곳이었다.
거기서 더 서쪽으로 들어가면 소방서와 보건소 등이 있다고 들었지만, 그곳에서는 보이지 않았다.
“저기에 엄청 있어요. 저게 문예회관 맞죠? 거기에 거의 500, 시청사에 200 정도? 저 뒤에 보건소랑 소방서 쪽은 가까이 가봐야겠지만 별로 없는 거 같아요.”
그들의 위치에서 시청사 입구나 문예회관은 150m 남짓이었다.
비록 건물 내부지만 폭주 후의 이진성에게는 놈들의 수를 충분히 파악할 수 있는 거리였다.
“저기 육교 위에서 봐요. 여기서는 담장에 가려 돌아다니는 놈들이 안 보이네요.”
셋이 멈춰선 곳에서 약간 남쪽으로 육교가 보였다.
육교를 건너면 바로 시청 출입문으로 이어지고 그 안은 주차장이었다.
살금살금 올라간 육교에서 보이는 시청사의 정문에는 놈들이 부지런히 왔다 갔다 하고 있었다.
한 마리씩 다니는 놈들이 대부분이고 간혹 일부는 서너 마리가 짝지어 다니기도 했다.
“문예회관 출입문은 안보이네…….”
500 이상이 있는 곳이다. 까만눈이 있을 가능성이 컸다.
침투가 가능한지 가늠하기 위해 출입구 모습이나 주변 구조를 확인해야 했다.
“저쪽으로 가 봐요.”
사방을 둘러보던 이진성이 사람들을 끌고 다시 육교를 내려갔다.
그리고 온 길을 되짚어 도로변의 아파트 단지로 들어갔다.
단지와 도로 사이에는 꽤 높은 조경수들이 자리 잡고 있어 시청 놈들의 눈에 띌 염려가 없는 곳이었다.
남쪽으로 달린 셋은 아파트 단지를 나와 차도를 하나 건넜다.
다시 서쪽으로 6차선 도로를 건너 시청 건물의 남쪽 블록으로 넘어간 셋은 소방서 맞은편 건물 옥상으로 올라갔다.
“오! 여기 좋은데요.”
“그러게요. 시청 정문, 문예회관 정문에 소방서, 보건소 정문까지 다 보여요.”
이진성과 홍수진이 감탄하는 동안 박두식이 쌍안경을 꺼내 들고 주위를 살폈다.
“문예회관 정문 안쪽은 넓은 홀인데요? 저긴 아무래도 침투가 힘들 것 같네요. 홀에도 가득한 거 보니…….”
ㄱ 자로 생긴 건물이었다. ㄱ자의 안쪽으로 반원형의 공간이 볼록하게 붙어 있는 형상이었다.
출입문은 그 원형 공간에 있었어야 했는데 문이 없었다.
대신 그 앞에는 온통 깨진 유리였다.
“저기 전면이 다 유리였나 봐요.”
“문도 유리문이었나 본데요? 저기 회전문 같은 철골 있네요.”
유리가 있었어야 할 곳은 뻥 뚫려 1, 2층이 다 들여다보였다.
유리 프레임으로부터 안으로 10여 미터는 됨직한 복도 겸 홀이 있었다.
그 안쪽으로 벽이 있고 몇 개의 출입문이 보였다.
그 문 안쪽이 공연장임이 분명했다.
석양의 햇살이 비춘 그곳에는 좀비들이 바글바글했다.
“저기 보이는 것만 1층 2층 합쳐서 100이 넘네요.”
박두식이 어림잡아 센 것이 대략 맞았다. 이진성이 냄새로 인지한 것도 그 정도였다.
“돌아다니는 놈들을 꽤 빨리 세시네요?”
“군에 있을 때는 더 잘했는데 이젠 많이 느려진 거죠.”
은근하게 자부심이 깃든 목소리였다.
“안 보이는 곳에 400 정도라는 말인데… 저기 뭐가 있다고 저렇게 몰려 있을까요?”
이진성의 의문에 홍수진이 말을 건넸다.
“어쩌면 공연장 공간 때문 아닐까 싶어요. 안에 객석 의자가 있긴 하지만 전체 공간은 넓잖아요.”
“그럴지도…….”
납득되는 추론이었다.
의자는 올라가 있을 테니 의자 사이에 들어가 누울 수도 있겠다 싶었다.
“놈들 잡기 쉽겠는데요? 홀에 있는 놈들 빠르게 잡고 공연장에서 출입구로 나오는 놈들 순서대로 정리하면 되겠어요. 장갑차 몇 대만 있으면 될 거예요.”
특전사 출신이라 그런지 공격방법부터 생각하는 박두식이었다.
이진성이 보기에도 잡는 것은 어렵지 않을 것 같았다.
“홀로 안 나오는 놈들은 결국 안으로 들어가야겠죠? 저기 보면 남쪽으로 삐쭉 뻗은 곳에도 꽤 있고 건물 전체에 퍼져 있는데 공연장 아닌 곳에도 많은 거 같아요.”
“그래도 상당수는 진입 전에 잡고 들어갈 수 있을 거예요.”
둘은 몇 가지 가능성에 대해 더 얘기했다. 나중에 회의를 통해 작전계획을 짜야 하겠지만 대략적인 방법을 만들어 가기 위함이었다.
“일단 저기는 까만눈이 있는지 없는지 확인할 방법은 없겠네요. 들어가는 게 불가능하니.”
둘의 계획을 듣고 있던 홍수진의 아쉬움 섞인 말이었다.
잡기는 쉬울지라도 당장 정찰을 위한 침투는 포기해야 했다.
홀에 진을 치고 있는 놈들 모르게 통과할 방법이 없었다.
“어쩔 수 없죠. 저쪽 시청사 쪽이라도 확인하도록 합시다. 저기는 상대적으로 적고 내부 구조도 사무실이 많아서 침투 가능할 거 같으니까.”
문예회관 정찰은 포기하고 시청사라도 들어가 보자는 박두식이 이진성에게 물었다.
“놈들 후각 능력은 어느 정도나 되는지 혹시 알아요?”
“제 경험으로는 50m 정도까지가 최대치인 거 같아요. 보통은 20~30 정도? 구조물에 가려진 경우는 그거보다 더 가까이 가도 모르기도 하고요.”
“시력은요?”
“보통 사람 정도 같던데요? 특별히 더 잘 본다거나 그런 건 아닌 거 같던데…….”
“야간에도요? 짐승들은 밤에 잘 보잖아요.”
“글쎄요. 그건 잘 모르겠어요. 동탄에서 비 오는 밤에 싸워 보긴 했는데… 어땠더라?”
이진성이 그때 상황을 간략하게 설명했다. 정비소 2층에 있을 때 아래 지나가던 놈들이 2층의 자신들을 알아챈 것, 도주하다 순댓국집 실내에서 싸운 내용이었다.
“그거 가지고는 모르겠네요.”
얘기를 듣고 잠시 생각하던 박두식은 이내 고개를 저었다.
“박 소장님한테 물어보죠?”
홍수진의 의견이었다.
“아! 맞네. 거기는 실험했겠네.”
자기 머리를 한 대 쥐어박은 이진성이 바로 기지를 호출했다.
“박 소장님 아직 통신 가능해요?”
상황실에는 이재규가 없는지 병사가 받았다.
<아닙니다. 지금 보내주신 샘플 때문에 병원에 계십니다. 오시라고 합니까?">
“그럴 필요는 없고요. 전화해서 인간 좀비들 시력이 어느 정도인지, 그리고 야간 시력이 어떤지 물어봐 주세요.”
<알겠습니다.>
잠시의 시간이 흘렀다. 헤드셋에 다시 아까의 병사 목소리가 들려왔다.
<보통 사람 시력이랍니다. 야간에도 특별하지 않다고 합니다.>
“알았어요. 고마워요. 수고.”
“그렇다는데요?”
“그렇군요. 그럼… 더 있다가 해지고 청사로 들어가 보죠. 우리는 야시경 있으니까 조금이라도 유리할 겁니다.”
이미 석양은 그 빛을 잃어가고 있었다. 어둑한 하늘은 오래지 않아 깜깜해질 것이었다.
“진성 씨, 저것 좀 보세요.”
옥상 난간에 기대앉아 시간을 죽이는 이진성에게 박두식이 망원경을 건넸다.
받아든 망원경으로는 시청사 입구에는 들어가는 좀비 다섯이 보였다.
놈들은 사람 하나를 질질 끌고 들어가고 있었다.
“어디서 사냥해 왔나 보네요. 왜요?”
이진성이 보기에 특별한 것은 없었다. 놈들이 사냥한 먹이를 끌고 아지트로 돌아오는 것은 몇 번 본 일이었다.
고시원에 있을 때 길 건너 약국 건물 아저씨 좀비도 먹다 남은 시체를 끌고 들어가는 것을 봤었다.
끝방 놈 일당도 관장이 도륙하고 내다 버린 시체를 가져다 먹기도 했다.
‘끝방 놈은 잘 사나?’
뜬금없이 끝방 놈의 안부를 궁금해하는 이진성의 귀에 박두식의 말이 들려왔다.
“피가 없어요.”
“네?”
“끌려가는 사람한테서 나오는 피가 없다고요.”
이진성은 다시 망원경을 들었다.
그 사람은 상처가 없는지 어디에도 피가 없었다. 옷도 피로 물들지 않았다. 땅바닥에도 끌린 핏자국이 보이지 않았다.
“어디서 사체를 주워서 끌고 가는 거 아닐까요?”
끝방놈 패거리처럼 득템(?)이라도 했으려니 하고 별일 아닐 거라 생각한 이진성이었다.
하지만 다시 망원경을 받은 박두식은 고개를 저었다.
“시체 아닌 거 같아요. 피부색이 시체로 보이지 않아요.”
“죽은 지 얼마 안 될 수도 있잖아요.”
“그럴 수도 있지만, 놈들이 직접 죽이지도 않았는데 우연히 그런 시체를 찾아올 확률은 높지 않지 않을까요?”
놈들이 사람을 목 졸라 죽일 리는 없었다. 놈들에게 죽었다면 분명히 출혈이 많아야 했다.
“그럼 저놈들이 기절만 시키고 생포해 온다고요? 왜?”
이진성의 반문에 박두식은 대답하지 못했다. 좀비 경험이 일천한 그가 좀비 습성에 관해 이진성이 모르는걸 알 수는 없었다.
“혹시 먹이를 비축하는 것 아닐까요?”
홍수진이 조심스럽게 추측을 내놓았다.
“비축이요? 왜?”
“음… 먹이 사정이 안 좋아서 사냥이 힘들거나 아니면 먹이 사냥을 하지 못하는 놈들이 있다거나…….”
이진성의 생각에 그런 이유일 가능성은 적었다.
고릴라가 먹이를 모아 놓는 것은 다큐멘터리에서 본 적은 있다. 그래도 왠지 그건 아닌 것 같았다.
또한 사냥하지 못하는 놈들이 있다 해도 죽은 고기만 줘도 충분하지 않을까 싶었다.
“모르겠네요. 아무래도 좀 더 지켜보다 들어가야겠어요. 또 저런 경우가 있는지.”
하늘은 더 어두워져 거의 깜깜했다. 셋은 야시경을 내렸다.
“와. 진짜 잘 보인다.”
이진성은 작동법만 교육받고 실제 보기는 처음이었다.
야시경을 통해 본 세상은 영화에서 본 것과는 달랐다.
녹색의 치직거리는 영상을 예상했었다.
하지만 눈에 보이는 것은 잔디밭에 자란 잡초의 윤곽까지 구분될 선명한 화질의 영상이었다.
“나도 이런 건 처음이네요.”
50대의 박두식이다. 그가 특전사 시절에 경험한 것과는 차원이 달았다.
요즘 나오는 동물 다큐멘터리의 걸어가는 사자의 근육 움직임까지 보이는 그런 퀄리티였다.
영상의 선명함에 감탄하며 셋은 다시 전방 감시에 몰두했다.
건물 밖뿐만 아니라 시청사 현관 안에 돌아다니는 놈들까지 보였다.
밤이 깊어질수록 오가는 놈들은 점점 줄었다. 어느덧 시청사 입구에도 보이는 놈들이 없어졌다.
그렇게 자정이 가까워지고 지루함에 몸부림이 날 참이었다.
“옵니다. 역시 산 사람이네요.”
이번에는 바로 길 건너 소방서와 보건소 사이로 지나가고 있어 더 잘 볼 수 있었다.
놈들이 발목을 잡고 끌고 가는 것은 성인 여자였다.
상처가 없다는 것은 확실히 알 수 있었다.
다 찢어진 원피스 조각이 땅에 끌리면서 말려 올라가 맨몸이 다 드러나 있었기 때문이었다.
핏자국 하나 없이 끌려가는 그녀는 소리는 없었지만 끌려가면서 충격을 받을 때마다 버둥거리고 있었다.
“기절시키지도 않았네요.”
“놈들이 기절시키는 방법까지는 모를 거 같아요. 아깐 잡혀 오다 기절한 거겠죠”
홍수진과 박두식의 대화를 듣던 이진성이 살며시 일어났다.
“저놈들 따라가 봐요.”
셋은 놈들을 놓칠까 봐 계단을 달렸다. 후다닥 내려와 차도를 건너자 놈들은 머지않은 곳에서 천천히 걸어가고 있었다.
다행히 문예회관과는 거리도 떨어지고 시야도 가려진 길을 통해 시청사로 가고 있었다.
“주위에 냄새도 저놈들뿐이네요.”
30m 정도 거리를 유지한 이진성이 둘을 이끌고 놈들을 따랐다.
놈들은 뒤의 사람 냄새는 맡지 못하고 앞으로 나아갈 뿐이었다.
“지하에 100 정도, 1층은 현관 왼쪽으로 30 정도, 2층에 70, 3층에 30 남짓이네요. 저놈들 계단 올라가요.”
시청사 40m 앞에 멈춰선 이진성이 둘에게 내부 놈들의 상황을 알렸다.
“돌아다니는 놈들은요?”
“거의 없어요. 대부분 꼼짝도 안 하는 게 자는 거 같아요.”
“그럼 들어가기는 쉽겠어요?”
“글쎄요. 놈들이 얼마나 깊게 잘지 모르죠. 쉽게 깨지 않아야 할 텐데…….”
얘기하는 사이에 사람을 끌고 간 놈들은 3층의 왼쪽 한 곳에 당도해 있었다.
기다렸지만 비명은 들리지 않았다. 3층 오른쪽에 모여있는 놈들도 그 자리에서 움직이지 않았다.
“정말 비축 식량인가 봐요. 다른 놈들 먹이로 가져온 것도 아니고…….”
놈들은 다시 내려와 2층의 한 곳에서 멈췄다. 그곳에서 눕는 것까지 확인한 이진성이 다시 앞으로 나섰다.
“3층에 까만눈이 있는 거 같아요. 수가 적은 것도 그렇고 거기 식량 비축하는 것도 그렇고.”
3층까지 안 들키고 갔다 오는 것이 부담스럽기는 했다.
200 남짓은 어찌 할 수 있지만 까만눈에게 들키면 사정이 달라진다.
더군다나 문예회관 놈들마저 몰려든다면 살아가기 어려워진다.
‘제발 조용히 끝나길’
이진성은 속으로 빌고 또 빌었다. 그 뒤를 정글도를 든 박두식과 화살을 잰 홍수진이 조용히 따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