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좀비 에이지 백수 생존기-111화 (111/145)

# 111

“혹시 까만눈이 있으면 전력으로 도망치는 겁니다.”

청사 입구에서 안을 다시 확인한 이진성이 두 사람에게 당부했다. 위아래로 협공이라도 당하면 답이 없었다.

“1층 놈들과 2층 놈들은 움직임이 없어요. 저놈들도 이 시간이면 다 자나 봐요.”

이진성이 확인하고 박두식이 선두를 섰다.

최대한 발소리를 죽인 셋은 정문 계단을 올라 벽에 바짝 붙어 천천히 앞으로 나갔다.

정문을 지나 안으로 들어가자 박두식이 이진성의 어깨를 두드리고 바닥을 가리켰다.

바닥에는 시체가 끌려가면서 남긴 핏자국이 야시경으로도 분명하게 보였다.

그 핏자국은 놈들이 모여있는 곳으로 가장 많이 이어져 있었다.

‘세정과?’

큰 유리문의 위에 세정과라고 적혀 있는 그곳은 넓었다. 민원인 대기 공간뿐만 아니라 창구 넘어 사무공간도 널찍했다.

놈들은 그곳 바닥에 서로 포갠 듯 다닥다닥 붙어 자고 있었다.

‘여기 문은 다행히 깨지지 않았네.’

멀쩡한 문에는 D자 형태의 쇠 손잡이가 달려 있었다.

이진성은 두 사람을 돌아보고 손잡이를 가리키며 무엇인가 끼우는 시늉을 했다.

그걸 본 박두식이 한쪽에 서 있는 화분으로 다가갔다.

화분에는 2m 좀 안되는 행운목이 심겨 있었다. 두께는 10cm 정도로 딱 들어갈 것 같이 보였다.

그는 잎사귀를 칼로 쳐내고 밑동 주위를 칼로 쑤시며 한 바퀴 돌아 뿌리를 끊어냈다.

그 모습을 본 이진성과 홍수진이 열려 있는 문 한 짝씩을 잡았다.

혹시나 소리가 날까 두 사람은 천천히 그리고 조심스럽게 문을 밀었다.

끼긱

몇 달간 움직이지 않던 문은 비록 크지 않았지만 분명한 소리를 냈다.

소리가 남과 동시에 두 사람은 멈추고 자세를 낮췄다. 그러면서 내려놓았던 무기를 집어 들었다.

‘조용하네?’

다행히 그 소리에 반응하는 놈들은 없었다.

‘이놈들이 이렇게 무뎠나? 잠귀가 어두운가?’

잠시 후 약간의 소음과 함께 결국 문은 닫혔다.

문고리에 끼워진 행운목은 쉽사리 부러질 것 같지 않았다.

놈들이 나오려면 유리를 깨거나 문이 떨어져야 했다.

“소란이 일어도 나오지 말고 있어라.”

나직하게 말한 이진성이 문 안을 한번 힐끔 보고 계단으로 향했다.

2층에는 방이 많았다. 놈들도 많은 방에 여기저기 흩어져 있어 1층 같이 하는 것은 불가능했다.

‘여기 까만눈이 있다 해도 뒤지기는 위험해.’

이진성은 2층은 포기했다. 위험요소를 두고 3층으로 가는 것도 꺼려졌다.

‘3층에는 돌아다니는 놈도 있다. 아까 끌려간 사람도 있고… 싸움이라도 나면 2층 놈들이 올 텐데… 어쩌지?”

다시 내려갈까 하던 이진성이 자리에 멈춰서 다시 3층을 올려다봤다.

알 수 없는 찜찜함이 그의 발목을 잡았다.

‘마치 뭔가를 지키는 것 같잖아?’

다 자는데 3층에만 깨어 있는 놈들이 있는 것이 이상했다.

식량이라면 서쪽에 있는 놈들이 지킨다 쳐도 동쪽 놈들은 뭘 지키는지 궁금했다.

시큼한 놈들이 주제넘게 까만눈을 지키고 있을 것 같지는 않았다.

‘계단에서 동쪽으로 20m 정도에 셋, 서쪽으로 10m 정도에 둘. 서쪽 놈들은 방이고 동쪽 놈들은 복돈데… 그리고 동쪽 저 안쪽으로 누워 있는 게 스물여섯. 소리 없이 다섯만 처리하면 되겠는데…’

무엇인가 고민하는 이진성을 뒤로하고 둘은 2층의 방들을 바짝 경계하고 있었다.

그런 그들의 등을 이진성이 두드렸다.

그리고 손짓발짓으로 놈들의 위치와 수를 설명하고 소리 없이 해치울 것을 강조했다.

계단을 오르면 동쪽 복도 놈들은 분명히 냄새를 맡을 것이다.

놈들이 어떤 행동도 취하기 전에 잡아야 했다.

이진성은 그 셋을 홍수진의 활 실력에 맡겼다.

서쪽 두 놈은 방 안에 있어 냄새를 조금은 늦게 맡을 수 있다.

박두식과 이진성이 달려들어 가기로 했다.

활시위를 당긴 홍수진을 선두로 이진성과 박두식은 계단을 올랐다.

홍수진은 입에 두 대의 화살을 물고 있었고, 박두식은 정글도 대신 두 대검을 양손에 쥐고 있었다.

반 층 올라간 셋은 나머지 반 층을 달렸다. 3층에 발을 디디면서 좌우로 방향을 틀었다.

홍수진의 시야에 막 계단 쪽으로 몸을 돌리는 놈들이 들어왔다.

동시에 시위를 떠난 화살이 한 놈의 주둥이로 들어가 뒤통수를 뚫고 나왔다. 그 순간 다른 화살 하나가 또 한 놈의 심장으로 날았다.

놈의 심장이 뚫리는 그때, 마지막 화살은 다른 놈의 눈알을 파고들기 직전이었다.

화살집에서 다시 화살을 뽑아 시위에 젠 홍수진이 확인사살을 위해 놈들에게 다가갈 때 이진성과 박두식은 열린 방문으로 들이닥치고 있었다.

‘씨풀. 뭐야?’

이진성은 방으로 들어서며 생각지도 못한 광경에 놀랐다.

방 안의 사람은 아까 끌려온 둘만이 아니었다. 다해서 열여덟, 그들 중 깨어 있는 열둘이 들이닥치는 이진성과 박두식을 보고 놀라고 있었다.

‘소리 지르면 좆되는데…….’

도끼는 실패 없이 깔끔하게 좀비의 대가리를 가르고 몸통도 두 쪽을 냈다.

그런데 이게 문제였다.

그 모습에 놀란 사람 셋이 소리를 지르려는 듯 입이 열리는 게 보였다.

‘안돼.’

이진성은 그들이 소리를 지르게 하느니 차라리 죽일까 하는 생각을 찰나 간에 했다.

으악!

마침내 한 사람의 입에서 비명이 터져 나왔다.

더 두면 전부 위험하다는 생각에 이진성이 몸을 날리려는 순간이었다.

퍼퍼벅

소리치려는 사람에게 번개같이 달려드는 박두식의 모습에 이진성은 멈춰 섰다.

순식간이었다.

세 사람의 뒤통수를 주먹과 발 그리고 팔꿈치로 때리자 그들은 패대기쳐진 개구리처럼 뻗어 버렸다.

나머지는 그런 모습에 다행히도 얼이 빠진 듯 입만 벌리고 있었다.

일단은 비명이 울렸다. 밑에서 또는 동쪽 방에서 놈들이 올 수 있었다.

재빨리 문에 붙어 냄새를 맡는 이진성을 두고 박두식은 사람들을 급하게 단속했다.

“아무 소리도 내지 마세요. 놈들이 오면 다 죽습니다. 쥐죽은 듯 있어 주세요.”

사람들은 눈만 끔뻑 거릴 뿐 움직임은 없었다.

죽을 순서만 기다리던 그들은 놀라기도 했지만 제대로 움직일 기운도 없었다.

그게 이진성과 박두식에게는 오히려 다행이었다.

그때 홍수진이 방으로 들어왔다.

“저쪽 방 안에 있는 것들 전부 암컷인데… 아무래도 전부 임신한 놈들 같아요.”

“임신? 전부요?”

“배가 불룩한 것들이 몇 있어요. 그리고 조금 나온 것들도 있고요. 티 안 나는 것들도 있긴 하지만…”

“일단 그 얘기는 좀 있다 해요. 여기서 비명이 나서 놈들 올지 몰라요.”

“나도 들었는데 저쪽 방 암컷들은 안 움직였어요.”

“그럼 밑에서만 안 올라오면 되는데…”

“저기… 안 올라 올 겁니다.”

소리 난 쪽으로 세 사람의 얼굴이 돌아갔다. 그곳에는 30대의 여자가 있었다.

“왜요?

“여기서는 비명이 허구한 날 나요. 그래도 저놈들 신경 안 써요.”

“네?”

“저놈들이 사람 데리고 올 때도, 여기 사람 끌고 갈 때도 비명이 나요. 그러니까 아까 비명도 그냥 일상적인 거예요.”

한눈에도 기력이 없는 것이 분명한 그녀는 사정을 잘 아는 듯했다.

“여기 오래 있었나요?”

이진성의 질문에 그녀는 차분히 이야기하기 시작했다.

자신이 잡혀 온 것은 딱 1주일 전이었고 자신이 왔을 때 이미 사람들이 있었으며 그 이후에도 계속 잡혀 왔다는 것이다.

잡혀 온 사람들은 저쪽 방 좀비들의 먹이로 쓰이는데 굶다 쓰러지면 끌려갔다고 했다.

자신은 아직 쓰러지지 않아 끌려가지 않고 남아 있다고 말을 마쳤다.

“혹시 그동안 여기서 눈이 온통 까만 놈 본 적 있나요?”

“있어요. 두어 번 와서 우리 둘러보고 갔어요. 그 눈이 너무 무서워서 확실히 기억해요”

“암컷인가요? 저쪽에 있는?”

“아뇨. 남자였어요”

일단은 다행이었다. 최소한 지금 3층에는 없다는 말이었다.

그리고 그녀의 말대로 아까의 비명에 반응하는 놈들도 없었다.

“여러분들은 다 어디서 잡혀 오신 분들입니까?”

“저는 저 너머 아파트에서 먹을 거 구하러 나왔다가 잡혀 왔어요. 같이 나온 사람들은 다 그 자리에 뜯어 먹히거나 일부는 좀비가 됐어요. 살아서 잡혀 온 건 저랑 제 동생뿐이에요.”

“다른 분들은요?”

“여기저기… 사정은 다 비슷하더라고요”

“혹시 평택에 이렇게 좀비들이 많이 모여 있는 곳이 또 있나요?”

“그건 잘 모르겠어요.”

웬만큼 물어볼 건 다 물어본 이진성이 입을 닫자 박두식이 슬쩍 물었다.

“이 사람들 어쩌죠?”

두고 갈지 구출할지를 묻는 게 아니었다.

기력도 없는 사람들을 데리고 탈출하는 것은 불가능했다.

전부 제거하고 조용히 빠져나갈지 농성하며 구조대를 부를지를 묻는 것이었다.

이진성도 같은 생각을 하던 중이었다. 거기에 그는 저쪽의 임신 개체에 대해 생각까지 하고 있었다.

‘임신한 놈들을 특별대우한다는 건 그만큼 중요하다는 것. 우리가 흔적을 남기고 여길 빠져나가면 둥지를 옮길 수 있어.’

놈들이 옮기면 말짱 헛일한 것이 된다.

이진성은 당장 해결을 보기로 했다.

“저예요. 이 대위님 좀 불러 주세요.”

<잠시 기다리십시오.>

이재규는 금방 나왔다.

<접니다. 무슨 일 생겼습니까?>

“생긴 건 아니고요. 지금 시청 3층인데요…….”

이진성은 지금까지 본 모든 것을 설명하기 시작했다.

이곳에 까만눈이 있고 임신한 개체들도 있으며 산 사람을 잡아 와 임신한 개체의 식량으로 주고 있다는 것, 그리고 자신들이 임신한 놈들을 보호하고 있던 좀비 다섯을 제거했기 때문에 놈들이 장소를 옮길 수도 있다는 추측을 말했다.

또한 문예회관에 500 정도의 놈들이 모여 있으면 그곳의 구조와 놈들의 공략법에 대해 박두식과 이야기 했던 것도 같이 알려 줬다.

“그래서 말인데요. 지금 바로 공격했으면 합니다.”

<알겠습니다. 병력 바로 보내겠습니다. 장갑차 전부 보내고 헬기로 갈 겁니다. 진화자도 전부 가시게 할까요?>

“아뇨. 1팀하고 3팀만 보내 주세요. 2팀하고 신입들은 기지 방어해야죠.”

<그러겠습니다. 40분 정도 걸리겠네요.>

“오면 포격은 시청사 2층부터 해 주세요. 계단부터 해서 양쪽으로 완전히 날려 주세요.”

<문예회관은요?>

“기관총부터 쏴 주시고 이쪽 포격 끝나면 거기도 해 주세요.”

<알겠습니다. 더 할 말은요?>

“지금은 없습니다.”

이진성이 교신을 마치자 박두식이 한마디 했다.

“혹시 C-4 있습니까?”

<있기는 합니다만 어디에 쓰시려고요?>

“아직은 모르겠어요. 혹시나 쓰일지 몰라서요. 좀 가져다주시면 좋겠네요.”

<알겠습니다. 같이 보내겠습니다.>

교신을 끝낸 이진성이 박두식과 홍수진을 한쪽으로 모았다.

“포격 시작되면 우리는 저쪽 임신한 놈들부터 처리해요. 2층 놈들은 못 올라오겠죠. 3층 정리하고 포격 끝나면 2층 남은 놈들 정리하고 1층 가서 끝내고 나가는 거로 해요.”

“저 사람들은요?”

“장갑차 한 대에 실어 놓으면 되겠죠.”

포격 이후의 대응에 대해 몇 가지를 더 박두식이 제안했다. 거기에 따라 해야 할 것들을 정리하고 셋은 시간이 가기만을 기다렸다.

한참의 시간이 지난 후 목소리가 들려왔다.

“저… 저희는 사는 건가요?”

아까의 그 여자였다.

“네. 여기 조용히만 계시면 살 수 있습니다. 그러니까 계속 조용히 계세요.”

여자는 주저주저하더니 힘겹게 입을 열었다.

“제 동생은 저쪽 문예회관으로 끌려갔어요. 혹시 거기도 구해 주실 수 있나요?”

셋은 이건 또 무슨 소린가 싶었다. 아까 동생이랑 끌려 왔다고 했을 때 동생은 나머지 사람 중 하나이거나 이미 잡아먹혔겠거니 했었다.

“거기도 임신한 놈들 모여 있단 말인가요?”

“아니면 다른 중요한 존재가 그쪽에 있을 수도 있겠네요. 가령 까만눈이라던가…….”

시청사 2층에 까만 눈이 있을 것 같아 우선하여 포격을 요청했다. 그런데 문예회관에 있다면 그쪽으로 진입하는 진화자들이 위험할 수도 있다.

그렇다고 확실하지 않은데 지금 작전을 바꾸기도 그랬다.

콰앙. 쾅. 쾅. 쾅.

두르르르르르르

마침 그 순간 포성과 총성이 울려 터졌다. 일단 문예회관은 나중 일이 되었다.

2층의 폭격은 건물 전체를 흔들었고 유리는 전부 깨져 나갔다.

3층의 이진성과 사람들이 있는 방도 한순간에 유리창이 터져 나갔다.

세 명은 그것을 신호로 일제히 달려 나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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