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12
고작 몇 십 미터를 달리는데 난리도 아니었다.
파자작~
흔들리는 건물을 이기지 못하고 복도의 유리창과 천장의 형광등이 터지면서 유리와 하얀 가루를 뿌려 댔다.
“어구야.”
발 딛는 곳 바로 밑 2층에서 포탄이 터지면 콘크리트 바닥이 들썩였다.
“우 씨.”
디디려고 하는 곳이 갑자기 내려앉으며 솟구치는 화염을 뛰어넘어야 했다.
“피해요!”
2층 천장이 내려앉으면서 무너지는 3층 사무실 벽도 피했다.
“으어어”
술에 꼴은 것처럼 휘청이며 벽에 부딪히기도 했다.
첫 탄이 터지고 방에서 나와 다섯 번째 탄이 터질 때 놈들이 있는 곳에 도착했다.
분당 6발이 최대 발사속도인 포다. 10m를 10초 정도에 간 것이었다.
“와 씨. 화끈하게 쏘네. 포탄도 얼마 없다면서.”
부디 2층에 있던 놈들이 많이 죽었기를 바라며 셋은 방 안으로 들이닥쳤다.
방안의 놈들도 포격에 정신이 없었는지 우왕좌왕할 뿐이었다.
한눈에 보기에도 전부 암컷, 그중에는 제법 배가 볼록한 것들이 있었다.
이진성과 박두식이 놈들의 안으로 달렸다.
그들의 옆으로 화살도 같이 날았다.
박두식은 정글도 대신 여전히 두 개의 대검을 들고 있었다.
그는 막 화살에 쓰러지는 놈의 뒤에서 자신을 향해 달려드는 놈에게 뛰어갔다.
퍼버벅~
놈과의 거리가 2m 남짓이 될 때 몸을 공중에 띄운 박두식은 놈의 배에 두 발을 교차하며 킥을 날리고 동시에 안면에 정권을 날렸다.
순식간에 몇 번인지 모를 주먹을 맞은 놈은 코와 입술이 터지면서 그대로 뒤로 넘어갔다.
넘어가는 놈의 배를 타고 같이 떨어지던 박두식은 역수로 잡고 있던 양손의 대검으로 놈의 목과 가슴 옆구리와 배를 한순간에 찍어 내렸다.
박두식이 놈에게서 점프해서 다음 놈의 양쪽 어깨를 찍어 갈 때, 놈은 바닥에 뒤통수를 찍으며 자빠졌다.
목은 너덜너덜했고 심장과 폐는 찢어졌으며 배는 횡으로 갈라져 내장을 쏟아 내고 있었다.
박두식의 싸움은 나현주와는 달랐다.
그녀는 속도와 힘이 조화롭게 발전했다면 박두식은 칼을 사용한 속도에 더 특화되어 있었다.
그가 지나간 곳에는 어김없이 몸 서너 군데 이상에서 피를 뿜으며 쓰러진 시체가 남았다.
간혹 주먹으로 혹은 킥으로 뼈를 부수기는 했지만 터져 나갈 정도의 파워를 쓰지는 않았다.
덕분에 피와 살을 뒤집어쓰는 것도 면하면서 빠르게 놈들을 잡아 나갔다.
날렵하게 움직이며 놈들의 공격을 피하고 또 공격하는 모습이 마치 스턴트맨 같았다.
홍수진은 방에 들어설 때를 날린 네발 이후에는 속사를 날리지 않았다.
넓지 않은 방에서 이진성과 박두식이 종횡무진 움직이는데 화살이 방해가 될 수 있다는 생각이었다.
대신 지켜보다 이진성 또는 박두식의 뒤를 노리는 놈들 뒤통수를 깨끗하게 뚫어줬다.
들어간 화살은 뒤통수 뼈를 깨고 들어가 소뇌를 뚫고 신경을 자르며 대가리에 깊숙이 박혀 들었다.
간혹 한 발로 신경 다발을 끊지 못한 놈에게는 속사로 한 발을 더 먹여 확실하게 주저앉혔다.
배가 볼록한 한 놈과 별 티가 안 나는 한 놈이 화살에 꽂혀 자빠지는 것을 보며 이진성은 도끼를 찍어갔다.
목표는 눈앞의 배불뚝이. 가장 큰 배를 가지고 있는 놈이었다.
크아아악~
놈은 거칠게 소리치며 마주 덤벼왔다.
도끼 한 방에 끝장날 주제에 미친 듯이 돌진해 오는 것이다.
콰앙~
또 한 번의 포성과 함께 이진성과 놈의 몸이 움찔했다.
덕분에 도끼는 놈의 대가리를 찍지 못하고 어깨를 지나 팔 하나를 끊어 내는 데 그쳤다.
놈은 팔이 잘림과 동시에 오히려 몸을 던져 이진성에게 달려들었다.
아직 상처에서 피가 뿜어지지도 않을 짧은 시간이었다.
내려친 도끼를 순식간에 횡으로 돌려 쳤지만, 놈은 이미 도끼날의 궤적 안으로 들어왔다.
“으헉!”
임신해서 몸이 느리리라 생각한 이진성은 식겁했다.
부랴부랴 몸을 뺐지만, 놈을 때린 것은 도끼자루였다.
빠가각~
자루는 팔도 없는 갈비뼈를 직격하면서 몸의 반을 파고들었다.
그 충격에 옆으로 튕겨 나가는 놈을 이진성은 다시 따라붙어 기어이 반쪽을 내고 말았다.
“와. 새끼 배서 그런지 졸라 사납네.”
야시경이라서 그런지 보통 놈보다 눈이 더 빛나는 것 같았다.
손톱도 훨씬 날카롭고 강해 보였다.
배가 갈라지고 양수가 터져 나왔다.
그리고 떨어져 나온 태아는 사람 머리 정도의 크기였다.
“엄호해 줘요!”
소리친 이진성이 떨어진 태아를 살폈다.
비록 눈도 못 뜨고 있었지만, 놈은 역시 인간이 아니었다.
꼭 쥐고 있는 손에는 날카로운 손톱이 발달되어 있었고 발톱도 마찬가지였다.
야시경을 올리고 새끼의 눈꺼풀을 억지로 열었다.
빨간색을 예상했는데 검붉은 색이었다. 흐린 달빛이지만 색의 구분은 분명했다.
그리고 냄새도 시큼달큰했다.
“빌어먹을. 빨간색이 검붉은 색을 낳기도 하나 보네.”
이진성은 다시 도끼를 들고 남은 놈들에게 달려들었다.
이미 열여덟이 죽고 남은 것들은 여섯, 박두식은 여유롭게 상대하고 있었다.
나머지 놈들을 잡는 동안 포격은 더 없었다.
시청사 앞에는 일반 보병 장갑차 두 대만 남고 나머지는 전부 문예회관으로 이동한 상태였다.
이제 남은 놈들이 흩어지지 않게 빠르게 잡아야 했다.
그런데 이진성은 내려갈 생각을 않고 시체들을 바라보고 있었다.
* * *
진화자들은 포격이 끝나고 처참하게 망가진 시청사 건물을 바라보았다.
건물의 전면 유리는 남아 있는 것 없이 다 까져 안이 훤하게 들여다보였다.
2층 곳곳에는 불이 붙어 있었고 어떤 곳은 2층 천장이, 어떤 곳은 1층 천장이 뚫려 잔해가 아래가 떨어져 쌓여 있었다.
1층의 왼쪽으로는 유리가 깨지면서 밖으로 나온 놈들의 시체가 깔려 있었다.
포격이 시작되면서 장갑차에서 내려 대기하고 있던 그들에게 달려든 놈들이었다.
서른 마리 남짓의 놈들은 다른 사람이 나설 것도 없이 장동건 혼자서 다 쓸어 버렸다.
공중에서 선회하던 헬기도 지원할 것이 없어 보였는지 남쪽의 문예회관으로 기수를 돌렸다.
이미 기관총과 유탄 세례를 받고 있던 문예회관에는 공중에서의 토우미사일과 105mm 강선포의 포격까지 더 해지고 있었다.
“아저씨. 우리 왔어요.”
<현주 씨 왔어요?>
“거긴 어때요?”
<3층은 다 끝냈는데 좀 살펴볼게 있어. 1층 정리 좀 해 줄래요?>
“1층에 남은 놈들이 있을지 모르겠네요. 일단 알았어요. 빨리 와요.”
<다 끝나면 2층으로 와요. 그리고 까만눈 있을지 모르니까 조심하고.>
나현주는 사람들을 돌아봤다. 그녀의 앞에는 장동건과 김현희, 그리고 동탄 이주민 중에 합류한 3팀의 이지은, 정신무, 강만기와 병사 출신 6명이 있었다.
“여긴 저랑 현희 언니만 들어가도 될 거 같아요. 동건아 니가 다른 사람들 인솔해서 저쪽으로 가.”
“저기 지금 포격 중인데?”
“여기처럼 빠져나오는 놈들 있을 거 아냐. 도망가지 못하게 다 잡아 죽여.”
“참. 아줌마 됐으면 이제 말도 좀 곱게 해. 다 잡아 죽여가 뭐야?”
“까분다. 얼른 가. 안 가?”
“가요. 가요. 쫌. 그 손 좀 들지 말라고!”
투덜대며 문예회관으로 가는 장동건에게 그다지 긴장감은 없었다.
그건 다른 사람들도 마찬가지였다.
까만눈이 있다 해도 건물 안에 있다면 이 정도 화력에 버틸까 하는 생각이 모두의 마음속에 있었다.
* * *
교신하는 내내 시체를 이리저리 보던 이진성이 두 사람에게 물었다.
그가 내려다보는 시체들은 묘한 차이점이 있었다.
“이상하지 않아요?”
“뭐가요?”
“배가 많이 나온 놈들은 옷을 입고 있어요.”
이진성은 배가 나오지 않은 것들을 가리켰다.
“그런데 저것들은 다 옷이 없어요.”
옷이 없는 것들은 스물하나였다. 놈들은 공통적으로 배가 거의 나오지 않았다.
어떤 것은 상의를 입고 있었지만, 하의는 전부 없었다.
“배 나온 것들은 최소한 임신 6개월 이상의 상태였어요. 사람의 임신 6개월.”
홍수진이었다. 그녀는 이진성이 처음에 보던 태아를 내려다봤다.
“이 정도 크기면 6개월에서 7개월 사이예요.”
“그럼 3월 전에 임신이라는 말이네요?”
“임신 상태에서 변이한 것이라고 봐야죠.”
“변이하면서 태아도 같이 변이했다?”
둘의 대화를 듣던 박두식이 다른 것들을 가리켰다.
“그럼 저것들은 변이 후에 짝짓기를 한 것들이고요?”
“그런 거 아닌가 싶어요. 그게 아니면 저 상태로 변이하진 않았을 거 같은데요?”
홍수진이 가리킨 시체는 상의만 입고 있는 것이었다. 그 상의는 블라우스에 정장 재킷이었다.
이진성도 아예 전신 나체로 변이한 경우는 자주 봤지만, 상의는 다 입고 하의만 없이 변이한 경우는 보지 못했다.
“그리고 좀 더 이상한 것도 있네요.”
시체를 바라보던 이진성과 박두식은 홍수진에게 다시 시선을 돌렸다.
그녀는 태아의 시체를 들고 바라보고 있었다.
“인간 아기는 이렇게 털이 없어요.”
그녀는 야시경을 올리고 그 시체를 만져보고 있었다.
그 모습에 둘이 맨눈 상태로 다가갔다.
“어… 뭐야. 아까는 안이랬는데?”
“아깐 양수에 젖어 있어 몰랐겠죠.”
시체에는 털이 빼곡했다. 피부색과 거의 같은 털이었다.
“토끼털 같아요.”
털을 만지던 홍수진의 감상이었다.
“2세대는 진짜 짐승으로 진화하는 건가 봐요.”
옷이 없는 동물에게는 벌레와 추위를 막아줄 털이 필요하다.
좀비도 그 진화를 하는 것 같았다.
“일단 밑에 정리하고 여기 죽은 것들 샘플 챙겨서 박 소장님 갖다 드리면 좋아하겠네요.”
이진성과 박두식은 챙길 샘플을 눈으로 짚으며 문으로 향했다.
“잠깐만 기다려 줘요”
방을 나서려는 둘을 홍수진이 불러 세웠다.
그녀는 화살을 뽑아야 했다. 이미 그녀의 화살집은 비어 있었다.
“이건 못쓰겠네.”
하나하나 뽑아서 촉의 상태를 확인한 그녀는 결국 열두 대만 챙기고 나섰다.
“그렇게나 못쓰게 됐어요?”
“두 번 쓰면 촉이 망가져서 안 되겠더라고요. 그리고 한 번 만에 망가지는 것들도 많고.”
탄피를 두드려 만든 촉이었다. 강할 수는 없었다.
“택진 형님한테 잘 좀 만들라고 해야겠네.”
“지금 철 화살은 만드셨던데, 문제는 활이 버티질 못해서…”
바깥의 포성과 총성을 들으며 내려선 2층은 처참했다.
아까 시청을 쏠 때보다는 천천히 포를 쏘는지, 포성은 1분에 두 번 정도밖에 들리지 않았다.
남쪽 면으로는 이미 완전한 폐허였다.
전면 유리가 남아 있지 않은 것은 당연했고 사무실을 나눴던 간이 벽도 남아 있는 것이 없었다.
무너진 잔해 사이로 군데군데 불이 타오르며 검은 연기를 내고 있었다.
“어? 벌써 사람들 올라왔나 봐요. 서둘러요.”
바깥의 총성을 뚫고 북쪽의 한 방에서 약하게 좀비들의 그르렁 소리와 비명, 그리고 나현주의 기합 소리가 들려왔다.
냄새로는 빠르게 줄고 있었지만, 혹시나 까만눈이라도 있을까 이진성은 둘을 이끌고 달렸다.
“현주 씨!”
들이닥친 방에서는 이미 남은 놈들을 다 끝내고 나현주와 김현희가 걸어 나오고 있었다. 둘은 항상 그렇듯 이미 온몸에 피를 뒤집어쓰고 있었다.
“까만눈은 이쪽에는 없었나 봐요. 있었다면 포격에 당했거나.”
나현주는 피를 뒤집어쓴 얼굴로 미소 지으며 말했다.
“여기 남은 놈들 다 끝낸 거예요?”
“얼마 있지도 않았어요. 보이는 놈들은 다 잡았어요. 남은 놈들 있는지 한번 확인해 봐요.”
나현주의 말에 이진성은 다시 냄새로 확인했다. 화약 냄새가 많이 나긴 했지만 그렇다고 놈들의 냄새를 못 맡을 정도는 아니었다.
“포격에 죽은 건가? 아니면 저쪽에 있는 건가?”
뚫린 유리로 보이는 문예회관에는 엄청난 포화가 쏟아지고 있었다.
“나머지는 다 어디 있어요?”
“저쪽으로 보냈어요. 여긴 제대로 남아 있는 놈도 없는데요 뭐.”
“어? 누가 인솔해요? 동건이?”
“네. 왜요?”
이진성은 그쪽에 있을지도 모를 까만눈이 포격 중에 튀어나올까 걱정이 됐다.
“동건아. 장동건!”
<왜요? 왜 숨이 넘어가요?”>
“너 어디야 지금?”
<문예회관인지 뭔지 거기 다 와 가는데? 왜?”>
“까만눈 그쪽에 있을 수도 있어. 잠시 대기해. 우리 갈게.”
<어… 그래요. 근데 저 속에 과연 살아남을까?>
“건물 깊숙한 곳은 말짱하잖아. 끝까지 긴장 늦추지 말자. 응?”
계단을 내려가려던 이진성이 갑자기 멈춰 섰다.
“아! 생존자랑 샘플!”
“아 맞다. 사람들.”
“아 몰라. 병사들한테 챙기라고 해. 밑에 장갑차에 몇 명 있을 거 아냐.”
이진성은 다시 달려 내려갔고 사람들도 그를 따라 달렸다.
두 장갑차의 차장과 사수, 조종수 여섯은 시체나 다름없는 사람 열여덟을 부축해서 옮기고 진짜 시체 몇을 챙겨 장갑차에 실어야 했다. 욕을 바락바락해 가면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