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13
장동건 일행은 시청 주차장 너머 휴식 공간의 벤치에서 이진성을 기다리고 있었다.
“어떻게 됐어?”
“보시다시피 보이는 놈들은 거의 잡은 거 같아요.”
이진성은 장동건의 손을 따라 시선을 돌렸다.
이미 포격은 멈췄고 기관총으로 남은 놈들을 찾아 쏘고 있었다.
배를 뚫고 지나가는 총알에 산산이 조각난 살과 내장 부스러기를 휘날리며 상하체가 분리되는 놈이 보였다.
그 맞기 힘들다는 기관총탄을 대가리에 몇 발이나 맞고 분해되는 놈도 있었다.
어쩌다 유탄에 직격한 놈의 사지가 날아가기도 했다.
홀과 문예회관 앞에는 피떡이 된 시체가 바닥을 메우고, 흘러내리는 피가 배수구를 넘어 주위로 번지고 있었다.
1층과 2층의 공연장 벽은 포격에 숭숭 뚫려 있는 것이 공연장 내부도 꽤 망가졌을 것으로 보였다.
“그래도 아직 많네.”
이진성의 코에는 여전히 300 이상의 놈들이 여기저기 흩어져 있는 것이 느껴졌다.
“생각보다 안에서 밖으로 나온 놈들이 적었나 보네.”
문예회관을 바라보는 이진성의 입에서 나오는 아쉬운 소리에 박두식이 한마디 붙였다.
“포는 쏘지 말 걸 그랬나 봅니다. 놈들이 겁먹고 안 나왔나 보네.”
입맛을 한번 다신 이진성이 사람들을 돌아봤다.
“자! 들어가 보죠. 저기 정면으로 보이는 곳 안쪽으로 150 정도, 저쪽 오른쪽으로 2층에 70 정도, 나머지는 흩어져서 돌아다니고 있어요.”
이진성이 가리키는 곳은 중앙의 대공연장과 오른쪽의 소공연장이었다.
“저랑 현주 씨가 가운데로 갈게요. 나머지는 두식 아저씨랑 수진 누님, 씬디가 책임져 주세요.”
“나는?”
자기 이름이 안 불리자 장동건이 물었다.
“너랑 현희 누님. 장진 하사님은 외곽을 맡아 줘요. 도망치는 놈들 다 잡아 줘요.”
“아 왜? 도망치는 놈들 얼마 있지도 않을 거 같은데.”
“얌마. 여기저기로 도망치면 니 사격 실력 말고 누가 커버해. 너밖에 못 하니까 그런 거 아냐?”
“그런가? 음… 그런 거 같기도 하고.”
장동건은 찡그렸던 얼굴이 금방 펴지며 헤벌쭉 웃었다.
그 모습에 김현희가 혀를 끌끌 찼다.
“통신 항상 켜 놓고요. 까만눈 나오면 상대하지 말고 전부 모일 때까지 잡고만 있어요. 알았죠?”
“밖으로 나오면?”
“장갑차랑 같이 쏴. 그래도 놓치면 다 합류할 때까지 쫓기만 해.”
방패를 든 이지은과 강민기, 병 출신 진화자 셋이 박두식을 따라가기로 했다.
나머지 정신무와 역시 세 명의 병 출신 진화자는 김현희 쪽으로 남았다.
그동안 알렉스 일행에게 훈련받은 병 출신 진화자들은 기관단총으로 무장하고 있었다.
처음에는 총을 안 쓰게 할 생각이었지만, 무술과 총기를 같이 쓰는 것도 나쁘지 않다는 의견에 따른 것이다.
“누님. 그 정글도는 뭐예요?”
이진성은 김현희와 더불어 방패를 들고 있는 이지은, 강만기, 정신무가 정글도를 하나씩 다리에 차고 있는 것을 보고 의아했다.
“이거? 방패만으로 공격하려니까 좀 아쉬웠는데 두식 아저씨가 같이하면 어떻겠냐 해서. 그래서 그동안 아저씨한테 배웠지.”
“괜찮겠어요? 익숙하지 않으면 오히려…….”
“우리 꽤 해. 걱정 마. 자기는 처음에 중식도 들고…….”
“그만. 그 얘기 하지 마요.”
사람들 사이에서 웅성거림과 킥킥 소리가 작게 흘러나왔다. 중식도 어쩌고 하는 소리였다.
“가요. 움직여요. 날 샐 거예요?”
당황한 이진성은 사람들을 흩어버리고 문예회관으로 달렸다.
* * *
처벅 처벅
흥건한 피와 널려있는 육편을 밟을 때마다 기분 나쁜 소리가 들려왔다.
그 소리를 만들며 홀을 통과해 들어간 공연장 내부는 거의 정상이었다.
무너진 벽의 구멍으로 포탄 한 발이 들어왔는지, 무대 옆의 벽에 구멍 하나가 뚫려 있을 뿐이었다.
벽에 총탄 흔적은 좀 보였지만 많지는 않았다.
공연장은 컸다. 객석은 1층과 2층으로 나뉘어 있었고 1층만 봐도 대충 400석은 넘어 보였다.
1층의 놈들은 무대에 모여 있었다. 홀에서 가장 먼, 그래서 가장 안전한 곳이었다.
통로를 따라 무대까지 점점이 박힌 탈출로 안내 야광 표지판만이 빛을 발하고 있지만, 야시경을 쓴 둘에게는 별문제 없었다.
놈들은 포격에 겁을 먹은 듯 들어온 둘을 보고 그르렁거릴 뿐이었다.
“2층에 서른여덟이네.”
이진성은 머리 위 2층 객석이 있을 천장을 가리켰다.
“까만눈은 여기 없나 봐요. 놈 특유의 소리가 안 나. 그런데 시큼달큰이가 62마리야. 주력이 여기 있나 본데…….”
이진성은 무대 앞 놈들의 냄새를 다 확인했다. 놈 중에 냄새가 안 나는 놈은 없었다.
통로로 걸어 나가 2층을 올려다봤다.
놈들도 난간에 모여 이진성을 내려다봤다.
“저기도 냄새 안 나는 놈은 없어요.”
상황을 살피는 중에 건물 내부에서 총성이 들리기 시작했다. 병 출신 진화자들의 기관단총 소리였다.
“자. 우리도 시작해 볼까요?”
나현주를 보고 씩 웃어준 이진성이 도끼를 들고 객석 통로를 달렸다.
나현주 역시 마주 웃어 주고 객석을 가로질러 또 다른 통로로 들어갔다.
무대의 놈들도 두 사람을 향해 갈라져 달려 나오기 시작했다.
일부는 통로를 타고, 어떤 놈은 의자를 타넘으며 앞으로 나왔다.
2층의 놈들도 뛰어내렸다. 놈들은 영리하게 객석 위로 뛰지 않고 통로로만 뛰어내렸다.
덕분에 놈들이 한꺼번에 들이닥칠 위험은 없어졌다.
의자를 타 넘는 놈들은 제대로 넘지 못하고 자빠지는 놈들도 많았다. 그 덕에 늦을 수밖에 없었다.
이진성과 마주 보고 달리던 놈이 점프했다.
성큼성큼 몇 발짝 뛰더니 뽑아 올린 몸은 거의 2m 이상으로 치솟았다.
“높이뛰기 선수라도 되냐?”
이진성의 외침과 함께 사선으로 쳐 올라간 도끼는 떨어지는 놈의 허리로 들어가 어깨를 뚫고 나왔다.
놈의 상체는 피비를 내리며 뒤로 날아갔고 하체는 공중에서 피와 내장을 뿌리며 이진성에게 떨어져 내렸다.
돌려차기로 그 하체를 저만치 날려 버린 이진성이 원심력을 살려 또 몸을 던져오는 한 놈의 상체를 쪼개 버렸다.
크와아악~
놈들의 단체 포효가 시작되었다. 소리를 지르며 달려오는 놈들에게 이진성도 마주 소리치며 앞으로 한 걸음 내디뎠다.
방금 상체를 쪼갠 놈의 시체가 발에 걸렸다. 그 시체를 차올려 달려드는 놈에게 선사했다.
콰르르~
놈은 날아오는 동료의 시체를 쳐냄과 동시에 도끼에 대가리가 쪼개져 나갔다.
한 놈의 대가리를 쪼갠 이진성이 뒤로 도끼자루를 뻗었다.
그곳에는 뒤에서 가장 먼저 달려온 놈의 벌어진 주둥이가 있었다.
으적~
뾰족한 강철 도끼자루의 끝단은 놈의 입을 통과해 뒤통수를 뚫고 나왔다.
다시 도끼를 뽑아내면서 그대로 앞에서 덤비는 놈의 목을 찌른 이진성은 몸을 돌리며 뒤에서 몸을 던진 놈의 멱살을 잡아 아래로 내리꽂았다.
빠가각~
목뼈가 부러져 혀를 내밀고 축 늘어진 놈을 밟고 덤벼드는 두 놈의 허리를 한 번에 끊어주고 다시 뒤에서 달려드는 놈의 목을 끊었다.
이진성의 주위에는 끊어진 팔다리와 분리된 상하체가 쌓여 갔다.
바닥을 구르던 대가리는 달려오는 놈들의 발에 차여 날아갔다.
무대를 향해 약간 경사진 통로를 따라 놈들의 피가 흘러내렸다.
놈들은 그 피를 철퍽이며 달려와 덤벼들었고, 이진성은 그런 놈들을 무섭게 도륙해 나갔다.
폭주 이후, 두 번의 까만눈과 전투와 얼마 전의 대형집단의 살육을 통해 이진성은 또 달라져 있었다.
지금의 파괴력은 폭주 당시의 그것에 거의 근접하고 있었다.
오히려 물불 안 가리는 폭주상태 보다, 생각하며 싸우는 지금의 이진성이 그때보다 더 위협적이었다.
이진성은 놈들을 박살 내면서 동시에 나현주를 살피는 여유까지 부렸다.
그녀는 항상 그렇듯 놈들을 분쇄하며 사방으로 뼈와 살 그리고 피를 뿌려대고 있었다.
이진성은 씩 한번 웃어주며 오른쪽에서 달려드는 놈의 관자놀이를 팔꿈치로 가볍게 깨 줬다.
이어서 앞 놈을 좌우로 양분해 놓고 뒤로 돌아 한 놈의 상체를 터트렸다.
왼쪽의 객석 통로를 기어와 발을 잡으려는 놈의 대가리도 차서 목뼈를 부러트려 줬다.
이제 놈들은 사방에서 공격하고 있었다.
어느덧 객석을 타넘던 놈들도 모두 도착해 이진성을 빙 둘러싸고 있었다.
그건 나현주 쪽도 마찬가지였다. 그녀 역시 빙 둘러싸여 더는 모습이 보이지 않았다.
두 명이 양쪽에서 도륙한 놈들이 반에 가까웠지만, 여전히 남은 반이 둘을 둘러싸고 덤벼들었다.
막 한 놈의 허리를 발로 차서 끊어 버린 나현주는 양옆에서 대가리를 들이미는 놈들에게 돌려차기를 먹여주면서 생각했다.
‘방금 놈은 두 번 진화하고 변한 놈 같았어. 느낌이 그래. 그런데 이제는 그다지 어렵지 않네.’
뒤에서 손톱을 들이미는 놈의 팔을 잡아 뽑으면서 몸을 띄워 앞 놈의 대가리를 터트렸다.
‘안 보고도 어디로 공격이 들어오는지 느껴지기도 하고…….’
한 놈의 풍만한 유방을 뚫고 들어간 손날이 갈비를 부수고 심장을 뽑아냈다.
‘안산에서 사시미가 기가 거의 다 찼다고 했었지.’
뒤돌려 차기를 먹이면서 동시에 바로 옆의 놈에게 팔꿈치를 찍었다.
‘다음 단계가 멀지 않았다고 했었어.’
앞으로 몸을 뽑으며 정권으로 한 놈의 상체를 곤죽을 냈다.
‘지금 다시 그 단계인가? 다시 한번 성장할 수 있을까?’
어느덧 이진성은 자신을 앞질렀다. 관장과는 비슷했다.
그녀는 다시 한번 진화 후의 그 희열을 느끼고 싶었다.
‘이번에는 몸살을 한 번 더 할 수 있을까?’
과거 관장이 강함을 탐했다면 나현주는 순수하게 그 희열을 느끼고 싶었다.
그런 생각 속에 차분히 놈들의 수를 줄이던 한 순간이었다.
“어라? 도망을?”
두 사람에게서 멀리 떨어져 있던 놈들은 벽에 포탄으로 뚫린 구멍으로 몸을 던지고 있었다.
싸우다 도망치는 놈들을 보는 것은 둘에게 처음이었다.
까만눈의 지시에 의해 후퇴하는 놈들은 있었지만 저건 완전한 도망이었다.
마지막으로 덤비는 놈을 끝낸 둘이 놈들이 도망친 구멍을 황당하게 바라보았다.
“헐. 저놈들도 쫄기도 하나 보네.”
“그러게요.”
공연장 안에 서 있는 것은 두 사람 밖에 없었다.
1층과 2층이 완전히 비었다.
“쫓아가야죠?”
“가야지.”
구멍을 통해 들어간 곳은 출연자 대기실이었다.
넓은 방의 한쪽 벽면으로 거울이 쭉 붙어 있고 조명시설과 테이블이 거기에 붙어 있었다.
놈들은 보이지도 냄새도 없었다.
“이쪽이요.”
분장 테이블을 지나 왼쪽으로 또 넓은 공간이 나왔다. 그 안쪽으로 활짝 열린 문이 있었다.
“저쪽에서는 썩는 냄새가 너무 지독한데요.”
손으로 코를 막은 나현주가 얼굴을 찡그렸다.
그녀 말대로 문으로는 시체 썩는 냄새가 진하게 풍겨오고 있었다.
“이래선 냄새도 못 맡겠네. 일단 가 봐요.”
문을 나서자마자 보이는 건 산처럼 쌓인 시체조각과 뼈였다.
야시경으로 봐서 얼마나 썩었는지는 알 수 없지만 하여간 냄새는 지독했다.
두 사람은 복도를 가득 메우고 날아다니는 파리를 뚫고 전진해야 했다.
냄새를 못 맡으니 가다 나오면 잡아야 하는 상황이었다.
와장창~
30m쯤 걸었을 때 뭔가 넘어지는 소리가 들려왔다.
둘은 서로를 돌아보고 고개를 한 번 끄덕인 후 소리 난 곳으로 달렸다.
달리는 동안에도 고맙게도 소리는 계속 나 줬고 그곳은 하나의 방이었다.
“VIP 대기실?”
현판을 슬쩍 보고 나현주가 문손잡이를 잡았다.
이진성이 도끼를 치켜들었다.
하나. 둘. 셋!
문을 박차고 들어갔다.
“이건 또 뭐야?”
구름 같은 파리가 날았다. 그 뒤 구석에 사람 형상의, 하지만 사람보다 훨씬 두꺼운 뭔가가 자빠져 있었다.
“파리네요.”
야시경으로 보기에 놈이 꿈틀댈 때마다 희미한 점들이 떨어져 올랐다 다시 붙었다.
그 점은 날아다니고 있는 파리와 같은 색이었다.
“가까이 가 봐요.”
나현주가 놈에게 다가갔다. 동시에 붙어 있던 파리가 일제히 날아올랐다.
“여자?”
눈은 풀리고 침은 질질 흘렀다. 몸에는 주위 시체의 피와 살점이 잔뜩 묻어 있었다.
“정신 나간 거 같아요.”
나현주 말대로 제정신이 아니었다. 사람이 들어온 것도 모르는 것 같았다.
“이 안에 갇혀 있으면 미칠 만도 하겠네요.”
놈들이 식사하는 꼴을 옆에서 보면서 안 미치기는 힘든 환경이었다.
“어쩌면 아까 청사에서 구한 사람 동생일지도…….”
여자의 두 다리는 뼈가 뚫고 나와 있었다. 살은 이미 썩어 가는지 시체의 색과 같았다.
“어쩌죠?”
“보내 줍시다. 지금 구조하기도 그렇고, 구조해도 저 상태로 살 수도 없을 거고.”
이진성이 여자에게 다가갔다. 여전히 정신이 없는 여자의 머리를 잡았다.
으드득~
약간은 굳은 얼굴의 이진성과 나현주가 방에서 나왔다.
그리고 둘은 총성이 들리는 방향으로 말없이 달려 나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