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14
막 계단에 첫발을 디딘 박두식이 주먹을 들어 정지신호를 보냈다.
“What?”
바로 옆에 있던 씬디의 나직한 물음에 박두식은 손가락으로 계단 위 2층을 가리켰다.
잠시 귀를 기울인 씬디의 귀에 뭔가 움직이는 소리가 들렸다.
그녀가 박두식을 바라보자 그는 자기 자신과 그녀를 가리키고 계단의 반 층 위를 가리켰다.
고개를 끄덕하는 씬디를 향해 박두식이 손가락을 들었다. 그 손가락이 앞으로 향함과 동시에 둘은 달리며 뒤로 돌았다.
크르르르~
아니나 다를까 2층의 난간에는 아래를 바라보고 있는 놈들이 있었다. 놈들은 두 사람이 달려 나옴과 동시에 몸을 던졌다.
야시경으로 보는 놈들은 마치 눈에 불이 붙은 것 같았다.
그런 놈들이 아가리를 벌리고 위에서 뛰어내리는 모습은 충분히 공포스러웠다.
드르륵 드르르
두 사람의 기관단총이 불을 뿜었다. 뒷걸음질로 계단을 오르며 떨어지는 놈들을 순식간에 벌집을 만들었다.
넷은 떨어지면서 머리가 없어졌다. 둘은 배가 뚫린 채 떨어졌다. 하지만 운 좋은 세 놈이 치명상 없이 떨어질 수 있었다.
배가 뚫린 두 놈이 비척거리며 계단 위의 두 사람에게 달려드는데, 멀쩡한 세 놈은 계단 아래로 몸을 던졌다.
사람들은 이미 대비하고 있었다. 이지은과 강만기는 방패를 세우고 버티고 섰고 홍수진의 활에는 이미 화살이 걸려 있었다. 그 뒤 셋의 총도 앞을 향하고 있었다.
쾅~
놈들이 방패에 부딪혀 왔다. 방패에 걸려 바닥에 떨어진 놈들이 재차 일어설 때 이지은과 강만기가 자리에 앉아 버렸다.
드르륵 드르륵 드르르르
다시 몸을 날리려던 세 놈은 빗발치는 총탄에 터져 나가며 사방에 피를 뿌려야 했다.
“와. 연습한 대로 하니까 먹히네요.”
3조가 훈련하던 좁은 지역에서 초근접 시를 대비한 대형이었다.
“잘했네. 그런데 총알은 좀 아끼게. 셋한테 너무 많이 썼어.”
간단한 주의를 준 박두식이 다시 일행을 이끌고 2층으로 올랐다. 2층에 70 정도가 모여 있다고 들었는데 당장 복도에 보이는 놈은 없었다.
“이쪽으로!”
박두식은 벽에 붙어 전진했다. 그가 가는 곳의 저만치 앞에는 열려있는 커다란 문이 보였다. 공연장의 방음문이었다.
가까이 갈수록 놈들의 소리가 들려왔다. 소리만으로도 꽤 많은 놈이 있는 것을 알 수 있었다.
열린 방음문 5m가량 앞에 멈춰선 박두식은 씬디의 수류탄을 가리켰다.
손가락을 동그랗게 말아 OK를 표시한 씬디가 수류탄을 꺼내 들고 다른 셋을 돌아봤다. 그들의 손에도 이미 수류탄은 들려 있었다.
씬디가 한 명 한 명의 포지션을 지정했다. 바로 문에 붙어서 문 안쪽 왼쪽으로 하나, 하나는 오른쪽으로 나머지 하나는 안쪽으로 굴려 넣도록 했다.
안전핀을 뽑았다.
하나. 둘.
씬디가 달렸다.
셋.
세 명이 문으로 달렸다.
수류탄을 던져 넣는 씬디의 눈에 안에서 달려 나오는 놈들이 보였다. 게다가 문 옆에서 나오려는 놈도 보였다.
“Fuck!”
문 옆의 놈부터 잡아야 세 명이 안으로 굴려 넣을 수 있었다.
날아가는 수류탄을 보면서 바로 총을 들어 방아쇠를 당겼다.
드르르륵~
총을 맞은 네 놈이 더 나오지 못하고 풍선 허수아비 춤을 췄다.
세 사람이 무사히 수류탄을 안으로 집어넣었다.
자신이 던진 수류탄이 문과 무대의 중간쯤 달려 나오는 놈들의 발치로 떨어지는 것도 보였다.
피해야 했다. 안 그러면 씬디 자신도 안전하지 못하다.
총을 쏘며 옆으로 몸을 던지는 순간 폭음이 터졌다.
콰앙~
쾅 쾅 쾅
자신이 던진 것이 터지고 세 명이 굴려 넣은 것들이 연이어 터졌다.
활짝 열린 문으로 나오는 수류탄 파편을 가까스로 피한 그녀의 눈에 화염 속에서 터져나가는 놈들의 실루엣이 보였다.
바로 수류탄 주위에 있던 몇 놈의 팔과 대가리는 저만치 객석으로 날아갔다.
그 주위에 있던 것들도 다리가 없어지거나 걸레가 된 채 다른 놈에게 날아갔다.
“Fire!”
박두식과 세 명이 문 앞으로 달려들며 안으로 총알을 퍼부었다.
사그라드는 수류탄의 화염 때문에 언뜻 보이는 놈들은 여기저기로 흩어지고 있었다.
문안으로 박두식과 한 녀석이 전방을 커버하고 다른 둘은 좌우를 맡았다.
뒤늦게 들어온 씬디도 보이는 놈들을 향해 총알을 쏟아 넣었다.
이지은과 강만기는 문 앞에서 방패로 막고 서서 복도에서 오는 놈이 있는지 감시했다.
홍수진은 그 뒤에서 활을 겨누고 대기했다.
퍼퍽퍽퍽~
객석 의자 사이로 들어가 숨는 놈들이 많았다. 총탄은 엄한 의자를 두드려 깨고 있었다.
“전진!”
다섯은 중앙 통로와 양쪽 벽의 통로로 나뉘어 앞으로 나갔다.
드르륵 드륵 드륵
총성은 계속 울렸다. 의자 사이에서 순순히 맞아 죽어 주는 놈들도 있었지만, 대부분은 어떻게든 해 보겠다고 총알을 맞으며 몸을 던졌다.
“근성 하나는 끝내주는군.”
놈들의 무모함에 감탄하며 바로 옆에서 주둥이를 들이미는 놈의 대가리를 터트린 박두식이 씬디의 발목을 잡으려는 놈의 손을 날렸다.
“Thanks”
손목이 날아간 놈의 대가리를 날려준 씬디는 객석 건너 벽 쪽의 한 명에게 몸을 날리는 다섯의 등짝을 걸레로 만들어 줬다.
“57마리?”
보이는 놈을 모두 잡았을 때 그 숫자는 박두식의 기대치보다 적었다.
수류탄에 산산 조각난 놈들까지 넉넉잡아도 60 남짓이었다.
“아직 80마리 이상 남은 거 같은데요?”
“밖으로 안 나갔으면 그렇겠네요.”
“이 중에 까만눈이 있었을까요?”
“아닌 거 같아요. 있었다면 이렇게 쉽게 잡지는 못했겠죠.”
“각자 남은 탄 확인하게.”
흩어져 있는 놈들을 찾아 잡는 것은 총알이 더 많이 소모된다. 남은 총알로 다 잡을 수 있기를 박두식은 바랐다.
아니면 육박전을 해야 하는데 자신은 몰라도 다른 사람에게는 부담 가는 일이었다.
“자네들 C-4 가져왔지?”
“네. 지금 드려요?”
백팩에 넣어온 C-4를 꺼내는 세 명을 박두식은 말렸다.
“아니. 적당한 자리가 나오면 함정을 파세나. 거기에 깔아 놓고 놈들 유인해서 날려 버릴 수 있으면 그렇게 하자고.”
남은 탄을 확인하고 탄창을 나눠 가지는데 문 앞의 이지은이 외치는 소리가 들렸다.
“놈들 와요!”
돌아본 그곳에는 홍수진이 이미 화살을 날리고 있었다.
“몇 마리?”
“일곱? 아니 여섯… 다섯이요.”
많지는 않았다. 그 정도면 홍수진이 금방 끝낼 수 있었다. 앞으로 걸어 나가는 그 순간에도 홍수진은 착실히 활을 쐈다.
“화살 챙겨야 해요?”
화살집에 세대 남은 화살을 보고 박두식이 물었다.
“아뇨. 저것들 더 못 쓸 거예요. 그냥 가요.”
* * *
일행은 분장실, 소품실 등이 있는 곳을 지나고 있었다.
복도에는 시체와 함께 온갖 쓰레기들이 널려있어 발에 계속 걸렸다.
지나오면서 좌우의 공간에서 튀어나오는 놈들 열댓 마리를 잡은 일행의 꼴도 그다지 좋지는 않았다.
손톱에 뜯긴 상처 두어 개는 다 있고 병 출신 한 명은 발목을 삐어 쩔뚝이고 있었다.
홍수진의 화살은 다 떨어지고 없었다. 남은 탄창도 백팩에 있는 것 까지 다 해서 열다섯이 다였다.
캬아아악~
이번에는 셋이었다. 여자 화장실 문을 열자마자 안에서 튀어나왔다.
드르르륵 드르륵
박두식이 놈들의 대가리를 날려 버리고 비어 버린 탄창을 빼서 버렸다.
“안에 확인 좀 해주게.”
탄창을 가는 박두식과 홍수진이 밖을 지키는 동안 사람들은 두 패로 갈려 남자 화장실과 여자 화장실로 들어갔다.
“생각보다 큰데요?”
이지은이 방패를 앞세우고 병 출신 둘이 따라 들어간 여자 화장실에는 석 줄로 12개의 칸이 있었다.
입구 정면으로 보이는 세면대를 마주한 네 칸의 문은 전부 열려 있었다.
“이쪽은 깨끗하네요.”
안쪽 줄로 이동한 그들은 한 명이 첫 번째 칸 문 앞에 섰다. 발목 삔 녀석은 한 발 뒤에서 엄호 준비했다. 이지은은 그들을 등지고 반대편 칸에서 나올 놈을 대비했다.
끼이~
총으로 밀어 연 문 안에는 아무것도 없었다.
두 번째 세 번째도 마찬가지였다.
가장 안쪽 네 번째 칸에 도달해 문을 총으로 지그시 밀던 녀석은 뒤를 돌아보며 말했다.
“여긴 더 없나 봐… 억. 으악!”
반쯤 열린 문 안에서 손 하나가 갑자기 나와 총을 잡아끌었다. 녀석은 그 총과 함께 안으로 끌려 들어가 버렸다.
태권도를 평생 했다던 녀석은 아무것도 못 하고 순식간에 물어뜯겼고, 대기하던 녀석은 동료가 맞을까 쏘지도 못했다.
“뭐 하는 거예요?”
이지은이 정글도를 치켜들고 화장실 안으로 달려들었다. 방패로 문을 쳤지만 문은 놈에게 걸려 더는 열리지 않았다.
억지로 비집고 들어간 곳에는 놈이 막 목의 살을 한 움큼 뜯어내고 있었다.
퍽~
정글도가 놈의 목에 박혔다. 한 번에 끊어지지 않았다. 이지은은 문으로 놈을 밀어붙이며 재차 삼차 목을 찍었다.
결국 놈의 목이 떨어졌을 때 바닥에는 놈의 목에서 뿜는 피를 맞으며 비명을 지르는 동료가 있었다.
“제가 보내 줘요?”
“아뇨. 제가 하겠습니다.”
이지은이 밖으로 나오고 남은 하나는 절뚝이며 안으로 들어가 문을 닫았다.
드드륵~
잠시 후 문을 열고 나온 녀석의 손에는 죽은 녀석의 피 묻은 백팩이 들려 있었다.
“백팩 챙겨야 해요.”
쓰러진 녀석의 백팩에는 C-4와 탄창뿐만 아니라 제일 중요한 무선격발기까지 들어 있었다.
그게 없다면 폭탄 함정은 물 건너 가는 것이었다.
* * *
그들이 들어간 사무실에는 문이 두 개였다. 서로 마주 보고 있는 철제 방화문 사이는 널찍한 통로로 이어져 있고 좌우로 책상과 집기가 빼곡했다.
반대쪽 문밖으로는 전방으로 30m 정도의 복도가 이어졌고 왼쪽으로도 복도가 있었다.
왼쪽 복도의 끝으로는 홀이 보였다.
“잠깐 여기 있어 볼래요?”
사람들을 안에 두고 홀로 나온 박두식이 왼쪽 복도를 따라 홀로 나가면서 살폈다.
홀까지 가는 동안은 오른쪽으로 두 개의 복도가 더 나왔고 그것들은 사무실 문에서 본 것과 평행하게 뻗어 있었다.
그 사이는 전부 사무실이나 다른 용도의 방이었다.
‘2층에 확인 안 된 곳은 여기뿐인데…’
다시 일행이 있는 사무실로 돌아온 박두식이 모두를 불러 모았다.
“함정은 여기가 좋겠어요. 저쪽은 전부 사무실인데 놈들이 숨어 있다면 저 안에 있을 겁니다. 이리로 유인해 와서 한 번에 끝내도록 합시다.”
그는 곧 책상 하나를 자빠트려 상판이 통로를 향하게 했다.
“이렇게 통로로 향하게 자빠트리고 그 밑에 폭탄을 붙여요. 파편이 복도로 쏟아지도록.”
C-4 한 덩이와 뇌관을 받아 시범을 보인 후 폭탄을 설치할 위치를 지정해준 그는 사무실 안쪽 이곳저곳에도 폭탄을 설치했다.
‘이 정도면 까만눈이 와도 살아 나오지는 못하겠지.’
“나랑 지은 씨, 만기 씨가 유인조로 갑니다. 저 문으로 들어 올 테니까 여러분은 우리 들어왔던 문밖에서 대기해 주세요.”
남은 탄창 대부분을 씬디에게 준 박두식은 둘을 데리고 왼쪽 복도를 조용히 달려 홀로 나갔다.
“조심해야 하네. 이제부터 소리치며 전속력으로 달리는 거야.”
고개를 끄덕인 둘의 손을 한번 잡아준 박두식이 일어나 심호흡을 한 번 했다.
“으아악”
셋은 소리 지르며 복도를 달렸다. 그런 그들이 지나가는 사무실에서 또는 코너를 돌 때 대여섯 놈식 불쑥불쑥 튀어나오곤 했다.
앞에서 나오는 놈은 달리면서 쐈다. 자빠지면서 뻗는 손을 이지은과 강만기가 정글도로 잘라냈다.
옆에서 나오는 놈들은 가능하면 지나쳤다. 너무 가까운 놈들은 양옆 두 사람이 잘 처리해 줬다.
두 개의 복도를 다 훑었을 때 꼬리는 제법 길었다. 코너 하나를 꺽고 이제 마지막 코너를 돌아 30m만 가면 함정 사무실이었다.
박두식은 달리며 야시경에 감사했다. 지천으로 깔린 장애물을 야시경 덕분에 피하면서 달릴 수 있었다.
칠흑 같은 어둠을 달리는 놈들은 계속 구르고 자빠졌고, 그 덕에 꼬리와는 일정 거리를 유지할 수 있었다.
“조금만 더!”
마지막 코너를 돌았다. 뒤에서는 제대로 코너를 돌지 못하고 앞의 벽을 들이받는 놈들의 소리가 들려왔다.
* * *
씬디와 홍수진은 놈들이 몰려오는 소리를 들었다. 문을 잡은 손에 땀이 차기 시작했다.
박두식 일행이 사무실에 들어섰다. 그 뒤 10m 거리에 놈들도 있었다.
박두식이 문을 통과했다. 이지은과 강만기도 통과했다.
문을 밀었다. 문이 닫힘과 동시에 놈들이 문에 부딪혀 오는 충격이 전해져 왔다.
“격발!”
박두식의 외침과 함께 사람들은 문에서 떨어져 달렸다. 홍수진의 부축을 받고 쩔뚝이면 달리는 녀석이 격발기의 스위치를 눌렀다.
꽈아아앙~
엄청난 폭음과 함께 닫았던 문이 뽑혀 벽을 쳤고 그곳으로 화염이 쏟아져 나왔다.
자동으로 어두워진 야시경에는 오로지 그 화염만이 보일 뿐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