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15
문예회관 입구의 뻥 뚫린 공간으로 달려 나오는 놈들의 1차 저지선은 장갑차의 총탄이었다.
하지만 이미 네 대의 탄알은 모두 소진되어 뒤로 물러났고, 그 자리는 김현희와 정신무, 장진, 병 출신 셋이 차지하고 있었다.
장동건은 한참 뒤에서 그들이 놓치는 놈들을 하나하나 저격하는 임무를 맡았다.
밖으로 튀어나오는 놈들이 많은 것은 아니었다. 몇 분에 한 번씩 서너 마리가 튀어나오지만 그 정도는 지키고 있는 사람들에게 문제가 되지 않았다.
간혹 김현희와 정신무가 방패로 찍고 정글도로 가르는 놈들도 있었지만, 대부분은 세 명의 기관단총으로 해결되었다.
피트니스 강사 출신이라서 힘이 세다는 이유로 방패를 들고 있는 정신무는 불만이었다.
자신도 군대 다녀와서 총만 주면 되는데 굳이 방패와 정글도를 들고 싸우라고 하는 것이 마음에 들지 않았다.
“신무씨. 정신 안 차려?”
정신무의 방패에 맞은 놈이 다시 덤비지 않고 뒤로 빠져나가자 바로 김현희의 호통이 떨어졌다.
‘나만 맨날…….’
전에도 기지 앞에 첫 출동 후 미군들에게 특수훈련을 받아야 했다.
‘드럽고 치사해서.’
자신이 왕따당한다고 생각하는 정신무의 태도는 그때 이후 크게 나아지지 않고 있었다.
“저는 저쪽 오른쪽 끝으로 갈게요.”
오른쪽은 장갑차가 있는 곳이었다. 그 장갑차 너머로 가겠다는 말이었다.
“장갑차 오른쪽으로 빠져나가는 놈들도 있을 거 아니에요. 제가 잡는다고요.”
“알았어. 근데 긴장 풀지 마.”
설렁설렁 달려가는 그의 뒷모습을 보는 김현희의 눈이 곱지 않았다.
“에이 몰라. 이제 나오는 놈들도 뜸하고 아직 장갑차도 있고…”
남아 있는 장갑차를 믿은 김현희는 이내 정신무에게서 신경을 끄고 앞에서 미친 듯이 달려오는 놈에게 시선을 돌렸다.
다섯이 튀어나와 셋은 총탄에 쓰러졌다. 쓰러지는 놈들의 뒤에서 운 좋게 총알을 피한 두 놈이 김현희 앞으로 달려 나왔다.
소리를 지르며 주둥이를 벌리고 눈을 빛내며 달려드는 놈은 어디서 묻었는지 피를 뒤집어쓰고 있었다.
팔 하나도 덜렁거리는 것이 부러진 것이 분명했다.
“그냥 안에서 죽지 그랬니?”
방패를 들어 놈의 상체를 막음과 동시에 역수로 잡은 정글도를 배에 쑤셔 넣었다.
쭉 옆으로 그은 정글도의 궤적을 따라 창자가 쏟아져 나왔다.
피와 창자를 뿜어내며 척추가 끊긴 놈을 밀어 버린 김현희는 그 바로 뒤에서 덤비는 놈의 정수리에 정글도를 꽂아 넣었다.
파각~
두개골을 뚫고 들어간 정글도가 턱 밑을 뚫고 나오면서 축 늘어진 놈은 저절로 칼에서 빠져 바닥에 엎어졌다.
칼에 묻은 피를 바닥에 뿌리고 옆에서 느껴지는 뜨거운 시선에 돌아본 김현희는 자신을 바라보는 장진과 다른 사람들을 볼 수 있었다.
제일 가까운 장갑차의 사수까지도 자신을 보고 있었다.
“뭐?”
김현희의 물음에 사람들의 시선은 다시 앞으로 향했다.
‘좀 곱게 죽여 줄 걸 그랬나? 다음부터는 그냥 목만 따지 뭐. 대가리만 부수던가.’
또 약간의 소강상태가 지속 되었다. 안에서는 총소리가 계속 나는 것으로 봐서 아직 끝나지는 않은 것 같은데 나오는 놈들은 없었다.
하암~
제일 뒤에서 앞의 사람들이 드문드문 나오는 놈들을 잡는 것을 바라보던 장동건은 지루했다.
그동안 그가 쏴야 할 놈들은 셋밖에 없었다. 장갑차와 장갑차 사이를 빠져나온 놈들이었다.
‘정신무는 잘하고 있나?’
“현희 누나. 나 남쪽으로 가 볼게.”
<왜?>
“장갑차 오른쪽으로 빠지는 놈들 정신무씨 혼자 커버하기 힘들까 봐.”
<어 그래. 니가 가봐라. 여기는 신경 안 써도 되겠다.>
김현희도 장동건이 가서 정신무가 농땡이 피지 못하게 봐주는 게 좋다고 생각했다. 장동건이 그쪽으로 가면 뒤가 비어버리지만 나오는 놈들이 거의 없으니 문제 될 것은 없었다.
* * *
뒤로 흘러나오는 놈들이 있는지 전방을 주시하며 걷는 장동건이 막 세 번째 장갑차의 후미를 지나칠 때였다.
꽈아아앙~
엄청난 폭음이 메아리치며 남쪽 도로변을 바라보는 벽면에서 화염이 뻗어 나왔다.
화염은 그때까지 깨지지 않고 있던 유리 파편을 날리며 건물에서 거의 30m를 뻗어 나왔다.
“와 씨. 눈부셔”
순간적으로 조도가 낮아진 야시경 화면에는 조금 전까지 보이던 남쪽의 차도 위에 있던 정신무가 사라졌다.
콘크리트 바닥을 두드리는 유리 파편들이 깨지는 소리가 들렸지만 아직은 화면에는 화염만이 밝게 빛나고 있을 뿐이었다.
장동건이 그 화염을 보면서 몇 발자국 더 걸었을 때였다.
크아아악~
좀비의 포효소리였다.
으아악~
사람의 비명이었다.
장동건이 자신의 야시경을 올렸다. 하지만 홍채는 아직 닫혀 세상은 깜깜하기만 했다.
그는 일단 아까 봐둔 방향으로 달렸다. 정신무가 있던 곳까지 장애물은 없었던 것으로 기억했다.
달리면서 1~2초가 지나자 장동건은 서서히 사물을 볼 수 있었다. 그의 눈에 보이는 것은 목을 부여잡고 피를 뿜는 정신무와 그를 향해 달려오는 여덟의 좀비였다.
놈들의 몸에는 불이 붙어 있었다. 정확하게는 놈들의 옷에 불이 붙은 것이었지만 장동건의 눈에는 화염을 달고 오는 지옥의 악마로 보였다.
일단 셋이 보이고 그 뒤의 놈들은 셋에 가려 보이지 않았다.
타타탕
늘 하던 대로 보이는 세 놈에게 총탄을 날려줬다. 날아간 총알은 세 놈의 미간에 정확하게 꽂혔다.
달려오던 놈들은 그 관성으로 몇 발자국을 더 나오다가 앞으로 엎어졌다.
놈들이 쓰러지면서 다시 보이는 다섯. 거리는 40m 남짓.
탕
장동건의 손가락이 방아쇠를 한 번 당기고 두 번째의 총탄을 날리려는 참이었다.
제일 뒤에서 달리던 놈이 갑자기 남쪽으로 방향을 틀었다. 그와 함께 살아남은 놈들도 같이 방향을 틀었다.
타타타탕~
네발을 다 쏘기 전에 2층 창에서 뻗어 나오던 화염이 사그라들었다.
두 놈의 대가리에서 피와 뇌수가 터지는 것까지는 봤다.
나머지는 다시 어둠에 적응이 안 된 눈 때문에 어떻게 됐는지 보지 못했다.
다시 야시경을 내린 장동건은 처음 잡은 셋 뒤에 다시 셋이 자빠져 있는 것을 확인했다. 그 뒤로는 정신무가 이미 정신을 잃고 경련하고 있었다.
“정신무 물렸어요! 경련 중.”
정신무에게 달려가는 장동건이 헤드셋에 대고 소리소리 질렀다.
<어디?>
<어디요?>
<어디야?>
사람들의 다급한 목소리가 헤드셋에서 나왔다.
“문예회관 남쪽 도로 위.”
장동건이 격렬하게 경련하는 정신무를 받쳐 무릎에 올렸다. 그의 경련은 지금까지 본 어느 물린 진화자의 경련보다 심했다.
“얘는 왜 이래?”
어차피 끝을 내줘야 하지만 사람들이 올 때까지는 기다려 줘야 할 것 같아 경련하는 그를 다시 차도에 내려놓았다.
“동건아!”
잠시 후 뒤에서 이진성의 목소리가 들렸다. 장동건이 돌아보니 이진성 뒤로 나현주와 회관 밖에 있던 사람들이 달려오고 있었다.
“어. 여기.”
달려오는 사람들에게 손을 흔드는 장동건은 몇 걸음 더 온 이진성의 눈이 갑자기 커지는 것을 볼 수 있었다.
“피해!”
‘뭘?’
갑자기 피하라고 소리치는 이진성의 말에 어리둥절한 장동건이 한 발 앞으로 나서는데 뒤에서 소리가 났다.
크아아악~
“뭐야?”
장동건은 왼쪽으로 몸을 던지며 공중에서 뒤로 틀었다. 돌면서 보인 그곳에는 바로 전에 경련하던 정신무가 눈을 이글거리며 자신을 향해 달려들고 있었다.
타타탕~
너무 놀라 세 발이나 날린 장동건은 놈의 눈이 터지고 뒤통수가 박살이 나는 것을 보면서 엉덩방아를 찍었다.
“씨발. 뭐야? 뭔데?”
물리면 경련을 한 시간을 해야 정상이다. 그것만 생각하고 있던 장동건은 까만눈이 물면 그 시간이 몇 분으로 단축된다는 것을 잊고 있었다.
“까만눈! 까만눈에 물린 거야. 너 봤어? 혹시 1호였어?”
장동건을 잡고 다그치는 이진성을 바라보며 장동건이 자신 없게 대답했다.
“1호는 아니었던 거 같아. 근데 워낙 잠깐 봐서 잘 모르겠어.”
“잡았어?”
“아니. 도망간 거 같은데...”
사람들은 널브러진 여섯의 시체를 살폈다. 거기 자빠진 놈 중에 까만눈의 피부를 가진 놈들은 없었다.
“어디로 갔어?”
“저, 저쪽.”
장동건이 가리키는 길 건너 남쪽에는 건물이 많았다. 당장 21세기 병원이라는 제법 큰 건물이 눈앞에 있었다.
그 옆으로 몇 개의 건물이 있고 다시 서쪽으로 길을 건너면 이진성이 정찰하던 곳과 그 주변으로 당장 열댓 개의 건물이 있었다.
거기서 또 블록을 넘어갔다면 냄새도 안 나는 놈을 찾을 길이 없었다.
“몇 놈이나 갔어?”
“두, 둘.”
“둘?”
이진성은 의아했다. 남쪽으로 가까운 곳에서 나는 냄새는 하나도 없었다.
둘 중 하나가 빨간눈이나 검붉은눈이라면 냄새가 나야 했다.
그 시간 동안 이진성의 탐지 범위를 벗어날 수도 있었다.
만약 그게 아니라면 까만눈이 둘이라는 소리였다.
“씨발. 까만눈이 둘인가?”
이진성의 혼잣말을 들은 사람들은 가슴이 철렁했다.
한 마리라면 지금의 이진성, 나현주, 김현희의 협공으로 잡을 수 있다.
놈들에게 총알이 잘 안 통하지만 장동건까지 가세하면 좀 더 쉽게 잡을 수도 있다.
하지만 동시에 둘이라면 알 수 없었다. 단순히 난이도가 두 배가 되는 것은 아닐 것이라는 게 공통된 생각이었다.
“에이. 설마. 그놈들끼리 뭉쳐서 군집을 만들까?”
장동건은 이진성의 말을 부정했지만, 단지 그러지 않기를 바라는 마음의 표현일 뿐이었다.
“이러나저러나 냄새가 없으니 뭘 어떻게 하지도 못하겠네.”
놈들은 놓친 것이라는 생각에 이진성이 아쉬운 발걸음을 돌렸다. 나머지 사람들도 그를 따라 다시 문예회관으로 향했다.
“잠깐만요. 여기 흔적이 있어요.”
10m 정도 앞으로 나간 사람들은 일제히 소리 나는 곳으로 고개를 돌렸다.
그곳에는 장진 하사가 땅바닥을 내려보며 두리번거리고 있었다.
“흔적이요?”
“저쪽으로 향하는 핏자국이요. 방금 흘린 겁니다. 흔적으로 봐서 한 놈이 총 맞았나 봐요.”
이진성과 나현주, 장동건, 김현희의 얼굴이 밝아졌다. 동시에 병 출신 세 명의 얼굴은 급격히 어두워졌지만 아무도 그들의 얼굴은 살피지 않았다.
네 명이 미소를 띠고 장진에게 달렸다.
“우와. 특수부대 아저씨가 다르긴 다르다.”
장동건이 호들갑을 떨며 장진이 가리키는 핏자국을 살폈다.
“보이지도 않는데 그 힘들다는 까만눈 몸을 뚫은 거야? 와씨. 나 너무 대단한 거 아냐?”
자화자찬하는 장동건의 방탄모를 한번 두드려준 나현주가 장진에게 물었다.
“추적할 수 있으시겠어요?”
“이런 건 제 전문입니다. 전에도 말씀드렸잖아요. 몸살 이후에 추적 능력이 훨씬 좋아졌다고.”
일어선 장진이 병원 앞 인도로 달렸다. 인도에 올라선 그가 다시 좌우를 살피더니 오른쪽으로 몇 걸음 가서 바닥을 손으로 쓸었다.
“이쪽입니다. 다행히 이 건물로 들어가지는 않았네요.”
이진성도 동감이었다. 냄새도 없는 놈들이 건물 안에 숨으면 답이 없었다.
장진은 다시 병원 끝까지 달렸다. 그를 사람들은 일렬로 쫓아만 갔다.
“여기서 이 안쪽으로.”
병원에서 왼쪽으로 꺾어 건물 사이로 들어간 장진은 그때부터 걷기 시작했다.
그 모습에 이진성은 마음이 탔지만 그렇다고 재촉할 수도 없는 일이었다.
그저 묵묵히 그를 따라 걷는데 헤드셋에서 박두식의 목소리가 들렸다.
<어딥니까? 우리 밖으로 나왔는데.>
“저희 남쪽 길 건너에 있어요. 거기 조경수 지나 나오시면 병원 건물 하나 있어요. 그 오른쪽 끝으로 골목 안쪽이요.”
장진은 족발집이라고 적힌 가게로 들어가는 듯하더니 다시 나왔다. 다음으로 블록 한가운데의 주차장을 한번 훑고는 사람들 쪽으로 돌아왔다.
“놓쳤나요?”
“잠시만요.”
다시 여기저기를 살피고 다니던 그가 건물 사이 골목으로 들어갔다. 그리고 조금 있다가 박두식 일행도 도착했다.
“어? 왜 사람이 이것 밖에?”
“홍수진 씨는 화살이 떨어져서 남겼어요. 한 명은 발목을 다쳐 같이 남았고, 한 명은 아쉽게 잃었네요.”
그 말에 다들 씁쓸한 표정을 지을 때 골목에서 다시 불쑥 튀어나온 장진이 소리쳤다.
“여깁니다. 길을 건넜어요. 서둘러요. 피가 말라가고 점점 더 적어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