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16
째쟁~
길을 건너 서쪽 블록으로 들어선 후 피의 흔적을 놓친 장진이 발자국이라도 찾으려 안간힘을 쓸 때였다. 갑자기 들린 크지 않은 유리 소리는 모두의 주의를 끌었다.
“유리 떨어진 소리입니다. 저쪽이요.”
“거기도 특별한 냄새는 없어요. 그놈들이 맞나 봐요.”
일행은 몇 개의 낮은 건물 너머로 조금 더 높은 건물을 볼 수 있었다.
“이쪽으로”
장진은 건물 사이의 2차선 간선도로로 일행을 이끌었다. 도로를 달려 건물 셋을 지난 그는 도로변의 한 건물 앞에 멈춰 섰다.
“웨딩홀?”
정문 위에는 티웨딩홀이라고 적혀 있었다.
1층 외벽은 양쪽 다 유리로 되어 있었는지 깨진 유리가 바닥에 널려 있고 내부가 훤히 들여다보였다.
“이래서야 어디로 들어갔는지 알 방법이…”
야시경으로는 방금 떨어진 유리조각을 찾을 수 없었다. 그렇다고 맨눈으로 보기에는 너무 어두웠다.
장진은 두 건물을 왔다 갔다 하며 세심히 살폈다. 그러기를 10여분이 지났을까.
“여기가 맞는데….”
장진은 오른쪽 건물의 실내 주자장 입구 옆 사무실로 보이는 곳을 가리켰다.
“먼지 위로 새로 난 발자국이 있어요.”
장진은 흔적을 찾고도 들어가기를 주저하며 자꾸 옆 건물을 돌아 봤다.
“왜요?”
“두 건물이 이어져 있잖아요. 우리가 이쪽으로 들어갔다가 놈들이 저쪽으로 나오기라도 하면…”
장진이 두 건물 사이로 자리를 옮겨 손가락을 가리켰다.
“헐. 층마다 다 이어져 있네.”
놈들이 안에서 연결 통로를 찾기라도 한다면 닭쫒던 개 꼴이 날 수도 있었다.
“나랑 몇명이 여기 지키고 있을게. 혹시라도 이쪽으로 오면 잡고 있을테니까 빨리 와서 협공 해.”
불쑥 튀어나온 김현희의 목소리였다.
“보니까 저기 1층 연결통로 하고 위에서 내려오는 계단만 틀어 막으면 되겠네. 나랑 지은씨, 만기씨, 저 두 친구만 남겨줘. 잡지는 못해도 길은 막고 있을테니까.”
김현희는 이지은과 강만기와 함께 방패를 앞세워 놈들이 오면 막겠다는 것이었다.
놈들을 발견 했을 때 이진성, 나현주, 박두식이 싸운다면 방패 든 자신들은 2선으로 물러나는 것이 나았고, 그렇다면 차라리 도주로를 막는 것이 낫다는 생각이었다.
“알겠어요. 그럼 장갑차 오라고 해요. 도착하면 우리 올라갈게요.”
* * *
몇 분 지나지 않아 세대의 장갑차가 도착했다. 남은 탄약을 모두 모아온 장갑차는 로비로 라이트 불빛을 밝히고 자리를 잡았다.
“언니. 조심해. 위험하다 싶으면 그냥 후퇴하고. 놓쳐도 상관 없어. 그죠? 아저씨?”
“그래요. 누님. 놓쳐도 되니까 무리 하지 마요.”
“알았어. 어서가기나 해.”
방패 세명과 병 출신 두명을 남기고 이진성과 나머지가 놈들이 흔적을 남긴 곳으로 들어섰다.
“발자국이 있는 곳에서는 렌턴 쓰겠습니다.”
장진은 장갑차에서 받아온 렌턴으로 앞을 비췄다.
먼지 위에 남은 발자국을 쫓는 것이었다. 증폭할 열이 없는 발자국을 야시경으로 쫓는 것은 불가능 했다.
“이쪽으로!”
바닥의 먼지에는 희미한 발자국이 이어지고 있었다. 장진이 짚어주지 않았다면 다른 사람은 알 수 없었을 그런 자국이었다.
중간 중간 여러 발자국이 섞여 있는 곳도 있었지만 장진은 그 자국들 사이에서 신기하게도 가장 최근에 난 것을 찾아 앞으로 나아갔다.
“발자국이 더 이어지지 않네요.”
5층에 도착했을 때였다. 계단에서 안으로 이어진 발자국을 따라 들어온 장진은 렌턴을 끄고 야시경을 내렸다.
계단을 통해 들어온 공간은 식장 로비였다. 로비 안쪽으로 예식홀이 보였고 한쪽에는 안쪽으로 들어가는 복도가 있었다.
“이제부터 우리가 선두에 설게요.”
이진성과 나현주, 박두식이 앞으로 나섰다. 장진은 바로 뒤에서 놈들이 숨었을 만한 곳을 살폈고 장동건이 그들을 엄호했다. 그 뒤로 병 출신 두명이 기관단총을 들고 따르기 시작했다.
“조심!”
예식홀에는 뭔가가 많았다. 중앙 통로의 천장에는 뭔지 모를 것이 물결치듯 주례석을 향해 나가가는 것이 달려 있었다. 또 통로 옆에는 말라죽은 화분들이 하객석과 통로를 구분하고 있었다.
“샹들리에 같은 거네요.”
장진이 렌턴을 다시 켜고 천장의 물체를 확인했다. 유리알이 촘촘히 박혀 조명을 받도록 되어 있는 은하수 장식이었다.
좌우 하객석에는 원형 테이블들이 놓여 있었다. 놈들이 있다면 그 테이블 밑 말고는 숨을 곳이 보이지 않았다.
이진성은 사람들을 왼쪽 하객석 뒤로 이끌었다.
“두 사람. 우리가 준비 되면 저 테이블 전부 쏴 버려요.”
굳이 하나하나 접근해서 테이블커버를 들쳐볼 필요는 없었다. 총을 갈기고 밑에서 튀어 나오는 것이 있으면 잡으면 되는 것이다.
“총알은 충분해요?”
“충분 합니다.”
“동건아. 넌 계단 입구를 막아줘. 놈들 혹시 튀어 나오면 바로 우리 부르고.”
다시 밖으로 나가 로비 입구를 막아 서는 장동건을 보고 이진성, 나현주, 박두식이 달려 들어갈 준비를 했다.
“쏴요!”
드드륵 드르르륵~
나무 테이블이 뚫리며 파편이 날아 올랐다. 총알을 뒤집어 쓰는 테이블이 늘어 갈 수록 시야는 뿌옇게 변했다.
안개같은 파편 먼지를 뚫고 밝은 선을 그리며 날아가는 총알이 한쪽 테이블들을 다 뚫을 때 까지 움직이는 어떤것도 보이지 않았다.
“오른쪽으로.”
자리를 옮긴 두 정의 기관단총이 다시 불을 뿜었다. 일행의 앞에서부터 하나씩 하나씩 앞으로 나가며 총알을 퍼부었지만 역시 움직이는 것은 없었다.
“안으로 가 봐요. 저기 저 방. 주례 대기실 같은건가?”
단상의 옆에는 작은 방문이 하나 열려 있었다. 예식홀 내부에서 눈으로 확인 되지 않은 곳은 그곳 뿐이었다.
기관단총을 든 둘은 입구에 남기고 이진성과 나현주, 박두식, 장진이 주례 단상으로 향했다.
“이걸 쓰죠.”
단상 밑에 도착하자 박두식이 수류탄을 하나 꺼내 들었다. 그 모습에 장진도 하나를 꺼내 들고 이진성은 나현주를 끌고 주례대를 등지고 주저않았다.
핑~
날아가는 수류탄에서 안전손잡이 빠졌다.
콰앙~
폭음과 함께 방안에서 터진 수류탄은 얇은 석고보드 간이벽을 깨버리면서 밖으로 파편을 뿜어냈다.
“우씨. 큰일 날 뻔 했네”
터지면 바로 달려 들 준비를 하고 있던 네 사람이 쏟아지는 파편에 움찔 해 잠시 주춤 하는 사이였다.
방이었던 곳에서 파편의 뒤를 이어 튀어 나오는 것이 있었다.
“놈들이다!”
이진성과 나현주가 바로 몸을 뽑았다. 놈들과의 거리는 10여 미터. 말라 죽은 화분을 넘어 두 줄의 박살난 원형 테이블 너머였다.
“쏴요!”
이진성이 입구의 두 사람에게 외쳤다.
두 사람 만큼 빨리 달릴 자신이 없던 박두식과 장진도 등에 있던 기관단총을 잡았다.
드르르륵~
드르륵 드륵~
동시에 네자루의 총이 불을 뿜었지만 빠르게 달리는 놈들을 제대로 맞추지는 못했다. 몇 발 몸에 맞긴 했지만 가죽만을 뚫을 뿐 제대로 된 상처를 주지 못했다.
어느덧 놈들은 입구의 둘에게 거의 가까워 졌다. 그 거리는 이진성과 나현주와 놈들과의 거리와 거의 같았다.
“피해!”
이진성이 외쳤지만 너무 늦었다. 두 사람은 달려오는 두 까만눈을 보며 그저 총을 쏘고만 있을 뿐 피할 생각도 자신들의 무술을 쓸 생각도 못하고 있었다.
앞선 놈이 한 녀석의 총신을 잡았다. 놈이 그 총을 잡아채면서 총과 함께 들리는 팔을 물어뜯었다.
또 한 놈은 점프해서 다른 한 녀석의 가슴을 걷어 차 넘어뜨리며 밖으로 뛰었다.
타타탕 타타탕~
놈이 예식홀 입구를 나가자마자 밖에서 대기하던 장동건의 K-2가 불을 뿜었다.
홀 안에서는 이진성이 막 팔의 살점을 한 움큼 뜯어낸 놈의 등에 도끼를 꽂아 넣고 있었다. 거기에 몸을 날려 공중에서 돌려찍기를 하는 나현주의 발도 놈의 정수리를 향하고 있었다.
장동건은 놈들의 몸통에는 쏴봐야 별 소용 없다는 것을 알았다. 그가 노리는 것은 눈이었다.
달려 나온 놈은 장동건을 보자마자 복도 쪽으로 방향을 틀었다. 그러면서 약간이나마 늦어진 달리는 속력이 장동건에게는 찬스였고 놈에게는 치명적 실수 였다.
퍼퍼퍽
얼굴에 맞은 몇 발 중에 한 발이 놈의 오른쪽 눈을 뚫었다. 눈을 뚫고 들어간 총알은 그대로 뇌로 들어갔지만 까만눈의 두개골은 뚫지 못했다.
하지만 총알은 두개골 안에서 방향을 틀어 이미 박살난 놈의 뇌를 곤죽을 만들어 버렸다.
놈이 앞으로 몇 발자국 더 내디디고 자빠지려는 참이었다. 갑자기 예식홀 안에서 한 놈이 더 튀어나왔다.
이진성의 도끼에 등을 맞으며 가까스로 상체를 비틀어 나현주의 발을 피한 바로 그놈이었다.
놈은 등에 떨어진 두 공격의 힘을 이용해 앞으로 몸을 던져 등뒤 두 사람의 공격을 가까스로 벗어난 것이다.
장동건이 다시 놈의 얼굴로 총구를 돌렸지만 각도가 좋지 않았다. 쏘아지듯 튀어 나온 놈과 장동건의 사이를 눈알이 뚫린 놈이 가로막고 있었다.
놈은 자빠지는 놈을 잡더니 그대로 복도 쪽으로 달렸다.
타타탕 타타탕~
이미 죽어 피부의 방어력을 잃은 놈에게서 피가 튀었다. 하지만 고기방패를 세우고 달리는 놈에게는 전혀 피해를 주지 못했다.
안에서 뛰어 나온 이진성과 나현주가 놈에게 달려들었지만 이미 복도 앞까지 달려간 놈은 자신의 동료였던 놈의 시체를 둘에게 던지고 복도 안쪽으로 내달렸다.
타타타타타탕
달려가는 놈에게 장동건과 박두식, 장진이 계속 쐈지만 놈은 등에서 약간의 피만 날리며 복도 안쪽 옆동과의 연결 통로를 지나 안보이는 곳으로 들어가 버렸다.
“쫒아요.”
장진은 생생한 핏방울을 따라 달렸다. 그를 따라 이진성과 나현주, 장동건도 따라 달렸다.
그들이 몇 발자국 갔을 때 였다.
드르륵 드르륵~
갑작스러운 총소리에 뒤를 돌아보자 박두식이 복도로 들어서고 있었다.
“두 사람 다 보내 줬습니다.”
팔을 뜯겨 경련하는 녀석과 더불어 나머지 하나도 가슴이 함몰되어 살아 날 수 없었다. 둘에게 안식을 주고 오는 박두식을 보며 아차 싶었던 넷에게 박두식이 재촉했다.
“뭐해요? 빨리 안가요?”
* * *
<누님. 한 놈 잡았고 한 놈 그쪽 건물로 넘어 갔어요. 5층에서 넘어 갔는데 내려갈지도 모르니까 조심해요.>
“알았어.”
이진성의 무전을 받은 김현희는 다시한번 사람들의 위치를 잡았다.
1층의 연결통로는 비워도 됐다. 오로지 계단만 지키고 있으면 되는 상황이었다.
그녀는 안으로 라이트 빛을 쏘고 있는 세대의 장갑차를 돌아봤다. 장갑차에서는 사수들이 기관총을 계단으로 향하고 있었다.
‘우리가 여기서 놈을 막으면 장갑차는 우리 때문에 못 쏘는거 아냐?’
어차피 안 맞을 장갑차의 기관총이었지만 놈이 내려서지 못하게 견제는 해야했다. 그런데 자신들 때문에 못 쏘면 단지 조명일 뿐 아무것도 아니게 되는 것이다.
“2층으로 가자!”
사람들을 이끌고 달려 올라간 2층에는 연회장 하나 밖에 없었다. 자신들이 제대로 막기만 한다면 놈이 도망쳐 봐야 연회장 안으로 들어갈 뿐이었다.
“OK. 도망쳐 봐야 독안에 든 쥐네.”
방패 셋이 계단을 막고 그 뒤에 기관단총 셋이 포진했다. 그리고 잠시 후 위에서는 총 쏘는 소리가 계단을 타고 내려오기 시작했다.
첫 소리는 멀었다. 계단 공간에 울려서 선명하지도 않았다.
그런 소리가 나다 말다 하더니 약 5분 후에는 좀 더 선명해 졌다. 4층 정도로 내려 온 듯 들렸다.
좀 지나자 수류탄 터지는 소리도 들렸다.
“난리 났나 보네.”
위에서 들려오는 소음에 귀를 기울이고 언제나 내려오나 기다리던 사람들의 헤드셋이 이진성의 다급한 목소리가 들려왔다.
<누님. 놈이 없어졌어요.>
“없어지다니?”
<몰라요. 여기 4층 연회장인데 주방 안에 수류탄 몇발 날리고 들어가 보니까 없어요.>
“주방에서 어딜 가? 그냥 곤죽 된 거 아냐?”
<까만애들은 수류탄도 안 먹혀요. 어딘가 숨었을 테니까 대기하세요. 찾으면 다시 연락할게요.>
그때였다.
쿵~
연회장 저 안쪽 깊은 곳에서 나는 소리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