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좀비 에이지 백수 생존기-117화 (117/145)

# 117

“들었지?”

“네. 들었어요.”

다섯의 시선이 일제히 안으로 돌아갔지만 움직이는 것은 보이지 않았다.

<누님. 무슨 일 있어요?>

“어. 여기서 무슨 소리가 나서.”

<무슨 소리?>

“뭔가 떨어지는 소리 같았는데…….”

<잠깐만요. 확인 좀 해 볼게요.>

잠시 후 이진성의 목소리가 다시 들렸다.

<거기에 좀비 냄새는 없어요. 여기 폭발에 뭐 떨어졌나 봐요.>

“그래? 알았어.”

다시 몇 분의 시간이 지났다. 더는 총성도 폭음도 들려오지 않았다.

그저 쇠가 부딪치는 소리와 이거 치워 저거 들어 하는 소리만이 헤드셋을 통해 들려올 뿐이었다.

“주방 안이 난장판인가 봐요. 그쵸?”

“그런가 보네. 주방에 수류탄 터트리고 하면서 다 뒤집어졌나 봐.”

무료한 이지은과 김현희가 잡담을 나누는데 안쪽에서 다시 소리가 들려왔다.

쨍그랑~

“그릇 깨지는 소린데?”

“쥐나 고양이 그런 거 아닐까요?”

“내가 갔다 올게. 혹시 생존자라도 있는 거 아닌가 싶어.”

“사람이면 이 난리가 났는데 여태 안 나오고 있었겠어요?”

“혹시 모르잖아.”

이지은의 어깨를 한번 두드려준 김현희는 안으로 향했다.

“보이는 건 없는데…….”

연회장 내부에는 아무리 둘러 봐도 아무것도 없었다.

“저쪽인가?”

한쪽 구석으로 큰 미닫이문이 보였다. 손잡이가 없는 문에는 작은 창이 달려 있었다.

김현희는 창으로 안을 들여다봤다. 안쪽은 조리대와 선반들이 몇 줄로 나란히 뻗어 있을 정도로 큰 주방이었다.

끼이이~

미닫이문은 기분 나쁜 소리를 내며 힘없어 밀렸다.

끼릭 끼릭

문이 닫히는 스프링 소리와 함께 안으로 들어선 김현희의 코에는 썩는 냄새가 훅하고 들어왔다.

“후. 지독하네.”

동시에 뛰어다니는 쥐들이 다다닥 소리를 내기 시작했다.

“누구 있어요?”

혹시나 생존자가 있을까 김현희가 작게 소리 내 봤지만 들려오는 소리는 없었다.

조리대 몇 개를 지나 안쪽으로 들어가 살펴봤지만 역시 움직이는 것은 없었다.

‘깨진 그릇이 어디 있나…?’

조금 전 그릇 깨지는 소리의 출처가 이곳 주방인지 확인하려고 바닥을 훑고 다니던 김현희가 입구에서 대각선으로 가장 안쪽에 도착했을 때였다.

‘이건?’

야시경으로 보이는 바닥에는 희미하게 빛나는 액체가 점점이 묻어 있었다. 액체는 바닥에서 조리대로 이어지고 다시 구석의 벽으로 이어졌다.

흔적을 따라간 벽에는 구멍이 하나 뚫려 있었다. 그 구멍 안에는 훨씬 많은 액체가 희미한 빛을 내고 있었다.

“거기 누구 있어요?”

역시 들리는 소리는 없었다. 아무 소리가 없자 김현희는 방패와 정글도를 앞세우고 구멍으로 다가갔다.

‘음식 엘리베이터?’

금속제 셔터는 열려있었고 들여다본 안쪽은 위로 뻥 뚫려 있었다.

김현희는 등골이 싸했다. 급하게 뒤를 돌아봤지만 여전히 아무것도 움직이는 것은 없었다.

다만 희미하게 빛나는 액체가 저 앞으로 점점이 이어진 것이 보일 뿐이었다.

그리고 그 끝에는 다른 문 하나가 보였다. 창고같은 그곳에서는 더 심한 썩는 냄새가 나오고 있었다.

“진성아.”

<네?>

여전히 쇠 부딪히는 소리 속에서 이진성의 대답이 들려왔다.

“여기 2층 주방인데, 거기 혹시 놈 핏자국 있니?”

<네. 근데 지금은 많이 식어서 거의 안 보여요. 왜요?>

“주방 서북쪽 구석에 구멍 하나 있지 않아? 거기에 핏자국 없어?”

<잠시만요. 서북쪽 구석? 거긴 지금 엉망이라서 안 보이는데?>

김현희는 식료품 창고의 반대쪽으로 조심스럽게 걸음을 옮겼다.

“거기 음식물 엘리베이터 있거든. 놈이 거기로 해서 여기 떨어졌나 봐. 여기 새로 생긴 액체가 드문드문 떨어져 있는데 이게 놈이 흘린 피 같아.”

김현희가 식료품 창고 문에서 대각선 코너까지 왔다. 이제 앞으로 나가면 주방 문이었다.

<누님. 거기 지금 누구랑 있어요?”>

“나 혼자.”

<당장 나와요. 우리 지금 갈 테니까!>

다급한 이진성의 목소리가 들렸다.

<지은 씨. 만기 씨. 현희 언니 지원 들어가요.>

나현주가 두 사람에게 소리치는 소리도 들렸다.

주방 문은 20m 정도. 김현희가 달리기 시작하자 동시에 식료품 창고의 문이 벌컥 열리며 인간 모습의 생물이 튀어나왔다.

‘빌어먹을’

놈의 위치에서 주방 문은 김현희보다 가까웠다.

달리는 그녀의 헤드셋에는 이진성 일행이 집기 던지는 쇳소리가 더 크게 들려왔다. 아직 주방을 나서지도 못하고 있는 것이었다.

김현희가 주방 문까지 반쯤 갔을 때 놈은 이미 그곳에 도달했다.

달리는 도중 몇 번 조리대를 들이받기도 했지만 그래도 거리가 가까워 김현희보다는 빨랐다.

“지은, 만기. 들어오지 마!”

조리대 사이 통로로 옆으로 몸을 빼며 김현희는 밖에서 달려오는 두 사람을 말렸다.

한번 진화한 그들이 들어와 봐야 방해만 될 가능성이 컸다. 차라리 4층 사람들이 내려올 때까지 주방에서 도망 다니는 것이 낫다는 판단이었다.

쾅~

어느새 조리대에 올라 몸을 날린 놈이 그녀의 방패에 맞고 저만치 날아가 벽에 꽂혔다.

벽을 치고 바닥에 떨어진 놈은 바로 몸을 일으켜 김현희를 노려보기 시작했다.

까만색의 놈의 눈이지만 야시경에는 라이트를 켜 놓은 것 같이 그 부분만 밝았다.

* * *

4층 주방의 사람들은 마음이 급했다. 소리를 질러가며 입구를 막고 있는 집기들을 치웠지만 서로 엉켜 있는 놈들은 좀처럼 잘 빠지 않았다.

들어서면서 놈이 안에 있다는 확신 때문에 출구를 막는다는 생각에 널브러진 집기들을 쌓아 문을 막은 것이었다.

그런데 그것이 오히려 발목을 잡고 있었다.

김현희가 이지은과 강만기에게 들어오지 말라고 소리치는 것은 들었다. 그 직후 격돌의 소리도 들렸다.

현명한 결정인 것은 틀림없었다. 하지만 혼자서 놈을 상대하는 것은 불가능한 일이었다.

“누나. 나왔어요?”

선반 하나를 끌어내며 장동건이 물었다.

<아니. 못 나가고 있어.>

들려오는 김현희의 목소리는 오히려 차분했다.

<밖에 식탁이라도 가져다 문 막으라고…>

그녀의 말이 멈추면서 다시 한번 커다란 충돌음이 들려왔다.

그녀의 말은 자신이 잘 못 되었을 때 놈이 주방에서 나가지 못하도록 문을 막으라는 말이었다.

“언니. 조금만 버텨요. 빨리 갈 거니까.”

나현주가 세워 놓았던 조리대 하나를 뽑아 뒤로 던지며 소리쳤다.

“밑에 네 명. 테이블 끌어다 문 앞에 엄폐물 쌓도록 하게. 좌, 우 어느 쪽이든 한쪽으로 길을 터 넣고 그 앞은 지은 씨랑 만기 씨가 막고 있게”

박두식은 그 와중에 침착하게 네 명에게 할 일을 지정해 줬다.

* * *

날아오는 발을 방패로 쳐내고 정글도로 놈의 디딤발 무릎을 찍고 물러선 김현희는 어느새 어깨에서 피를 흘리고 있었다.

놈의 손톱에 긁힌 자국인데 전투 조끼가 없었다면 살점이 뭉텅 떨어져 나갔을 것이 분명했다.

놈의 손에 전투 조끼 주머니 몇 개가 찢어져 나갔고 그 와중에 송수신기도 뽑혀 저만치 날아갔다.

‘죽일 놈의 자식. 하필 그걸 뽑아가냐?’

조리대를 사이에 두고 눈을 빛내고 있는 놈을 마주 노려보는 김현희가 다음 공격을 대비하며 속으로 불평을 하는데 놈은 좀처럼 공격하지 않았다.

‘뭐지? 저럴 놈이 아닌데? 많이 다쳤나?’

순간 김현희의 뇌리를 스치는 것이 있었다.

‘저 새끼. 안 보이나 본데?’

그들이 있는 곳은 실내에서 다시 창 하나 없는 실내다. 완전한 어둠의 영역이었다. 자신은 야시경으로 놈을 정확하게 보고 있지만, 놈은 그렇지 못했다.

완전한 암흑 속에서 놈은 전혀 앞을 보지 못하고 냄새로 가늠만 할 뿐이었다. 거기에 식자재 썩는 냄새는 김현희의 달큰한 냄새를 어느 정도 가려 주고 있었다.

송수신기가 날아간 것이 오히려 그녀에게 다행이었다. 헤드셋을 통해 계속 들리는 소리가 없어지자 놈은 김현희의 위치를 정확하게 잡지 못하고 있었다.

그녀가 옆으로 한발 움직여 봤다. 발소리가 나자 놈이 움찔했다.

다시 반대쪽으로 정글도를 뻗어 선반을 톡 건드렸다. 역시 그쪽으로 몸을 움찔하는 것이 보였다.

놈이 자기 앞의 조리대를 손으로 짚고 섰다. 그리고 자세를 천천히 낮추기 시작했다.

‘놈. 넘어오려나 본데...’

정확하게는 보지 못하지만, 대략의 위치는 가늠하는 놈이었다. 일단 격돌이 시작되면 그다음에는 보이고 안 보이고는 상관이 없었다.

놈이 몸을 뽑아 올리는 순간 김현희는 오른손의 정글도로 조리대를 내리치면서 왼쪽으로 몸을 뺐다.

역시나 놈은 조리대를 넘으면서 소리 난 쪽으로 몸을 던졌다.

아슬아슬했다. 김현희는 놈과 거의 스치듯 옆으로 빠지면서 온몸의 힘을 모아 방패로 놈의 등을 찍었다.

퍽~

쇳소리가 아니고 고무치는 소리였다.

허리가 꺾이며 앞으로 밀려나는 놈에게 따라붙으며 정글도를 놈의 목에 꽂아 넣었다.

퍽~

다시 한번 들리는 반가운 소리였다.

‘이놈. 몸도 정상이 아니고 방어도 제대로 못 한다.’

몇 번의 폭발을 뚫고 나오고 꽤 많은 총을 맞은 놈의 상태가 완벽할 수는 없었다. 자유롭게 움직이고 있기는 했지만, 분명히 놈에게는 데미지가 쌓여 있었다.

돌아서는 놈을 방패로 다시 한번 내려치면서 나는 소리는 듣기 싫은 쇳소리였지만 그래도 김현희는 자신감이 붙었다.

‘사람들 올 때까지는 버틸 수 있겠어.’

밀렸던 놈이 다시 손을 뻗어 왔지만, 몸을 숙여 피하는 김현희를 그 손이 따라오지는 않았다.

퍽~

놈의 팔을 방패로 걷어내며 동시에 정글도를 꽂아 넣은 허리에서는 분명히 살을 때리는 소리가 들렸다.

손에 전해지는 느낌도 분명히 살을 가르는 느낌이었다.

크아악~

소리 지르며 조리대를 한번 받고 뒤로 물러서는 놈의 허리에는 가늘지만 빛나는 줄이 새겨져 있었다. 피가 분명했다. 그 빛은 정글도의 칼날에도 묻어 있었다.

‘좋아!’

김현희의 방패와 정글도가 빛발 치듯 놈을 가격하기 시작했다.

퍼벅 깡 깡 퍼벅 퍼버벅

쇳소리 속에서 살을 치는 소리의 빈도가 점점 늘었다. 놈은 방패의 궤적에 따라 나는 바람 소리에 민감하게 반응하면서 칼을 놓치는 경우가 점점 늘어갔다.

그녀는 근육이 찢어지는 것 같은 고통에 입술을 피가 나도록 물었다. 머릿속에는 이미 생각이 없어졌다.

그저 사람들이 올 때 까지 공격의 고삐를 늦추면 안 된다는 생각 한 가지밖에 없었다.

얼마나 시간이 지났는지 감각도 잊었다. 근육 깊숙이 남아 있는 모든 에너지를 뽑아 때리고 또 때렸다.

빠각~

놈의 갈비뼈가 부러졌다. 비록 가장 밑의 두 대여서 치명상은 주지 못했지만 움직임에 약간의 제약은 준 것이 분명했다.

상체의 움직임이 자연스럽지 못하게 되면서 김현희는 더 많은 기회를 만들어 냈다.

어느새 그녀의 방패는 놈의 공격을 흘리는 경우가 없어졌다. 느려진 놈의 스피드 덕도 있지만, 그보다는 김현희의 스피드가 점점 빨라지고 있었다.

방패로 때리고 밀고 막으면서 정글도 역시 정신없이 놈을 두들기고 갈랐다.

놈의 피부에는 점점 더 혈선이 늘어났고 근육이 갈라진 상처도 하나둘 늘어나기 시작했다.

다시 한번 놈의 손톱을 방패로 걷어냄과 동시에 놈의 배를 갈랐다.

‘좋았어.’

확실하게 뱃가죽이 갈라지는 느낌이 났다. 그곳에서는 선명하게 피가 흘러나왔다.

캬아악~

뒤로 물러서는 놈을 따라 몸을 날렸다. 다시 한번 방패를 크게 휘두르며 놈의 주의를 끌었다.

뒤로 물러나던 놈의 한 손이 다시 방패를 걷어내려고 움직이기 시작했다.

김현희는 그 모습을 보며 정글도를 찔러 넣기 위해 팔을 뒤로 뽑았다.

쾅~

주방 문이 활짝 열렸다. 그 소리에 놈의 고개가 문 쪽으로 돌았다.

놈은 고개를 돌리면서도 파공성을 울리며 날아오는 방패를 쳐내는 것을 잊지 않았다.

하지만 동시에 배의 상처를 찌르고 들어오는 칼을 막지는 못했다. 놈의 다른 한 손이 칼날을 잡았지만 이미 칼은 10cm 정도를 뱃가죽을 뚫고 들어간 후였다.

타 탕~

칼이 배를 뚫음과 동시에 두 발의 총성이 울렸다. 그리고 김현희는 자신의 뒤통수에 떨어지는 후끈한 액체를 느낄 수 있었다.

김현희의 무릎이 꺾이며 바닥을 찍었다. 정신이 흐려지며 그녀의 몸은 앞으로 넘어갔다.

엎어지는 그녀의 눈에는 희미하게나마 두 눈구멍으로 피를 흘리며 뒤로 넘어가는 놈이 보였다. 그녀의 귀에 들리는 자신을 부르는 사람들의 소리는 점점 작아져 갔다.

달려온 나현주가 안아 올린 정신을 잃은 김현희의 얼굴에는 미소가 어려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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