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좀비 에이지 백수 생존기-121화 (121/145)

# 121

회의실에서는 확대 회의가 진행되고 있었다. 이진성과 각 부장뿐만 아니라 각 팀의 팀장까지 참석해서 도만수의 입에 귀를 기울였다.

“…해서 저들의 요청은 이 정도로 요약할 수 있겠네.”

“그러니까 공주, 대전 수복에 우리 인원 100명을 지원해 달라는 거네요?”

“그렇다네.”

세종에서 온 공문의 주요 골자는 공주, 대전 수복을 같이 해 주면 천안, 아산에 전차와 병력을 지원한다는 것이었다.

“그럴 필요 있나요? 거긴 우리 영역도 아닌데? 천안, 아산 정리에 전차와 병력을 지원한다지만 그거 없어도 못할 것도 아니고…….”

겨울이 지나는 동안 평택 자치구에는 120명이 넘는 진화자와 500이 넘는 생존자가 더 합류해 왔다. 듣기로는 전국에서 가장 많은 진화자가 있는 단일 세력권이라는 것이다.

캘리 소령이 알아본 바에 의하면 미국이나 일본, 또 인구 대국인 중국, 인도 등의 나라에서도 단일 세력에 그 정도의 진화자가 모인 곳은 파악되지 않고 있다고 했다.

“우리한테 지금 있는 진화자면 세종의 도움 없이 천안 아산 정리할 수 있지. 하지만 알다시피 지키는 게 문제 아니겠나? 상당한 총기와 탄알이 필요해. 그것도 세종에서 지원해 준다는 거지.”

“자기들끼리 하지 않는 이유는요? 거기도 진화자 있잖아요?”

“저들은 겨울 동안 독자적으로 대전공략을 했었는데 그 결과가 동탄만큼 좋지가 않았다는군. 아무래도 진화자의 질의 차이가 결정적이라는 분석이야. 그래서 차선책으로 군인의 수를 더 늘리는데 그것 때문에 오히려 일반인 생존자가 무리해서 우리한테 오는 것도 있네.”

정보에 의하면 세종에서는 합류하는 사람 중 노약자를 뺀 나머지 모두를 군병력으로 편입시킨다는 것이다.

남녀의 구별은 없었다. 기본적인 체력만 된다면 모두 전투병으로 차출하고 있었다.

“이거 참. 진화자가 너무 많아도 문제네.”

가까이 천안, 아산은 물론이고 멀리는 대전에서 온 사람도 있었다.

평택자치구의 소문이 어떻게 멀리까지 퍼졌는지 알 수 없었지만, 그들은 가까운 세종을 놔두고 굳이 평택자치구까지 목숨을 걸고 오고 있었다.

그런 현상은 세종으로의 진화자 유입을 방해했다. 현재 세종의 진화자 수는 67명이었다.

조금 늘긴 했지만, 그나마도 능력치가 낮은 사람들이 대부분이었다.

일부는 평택자치구에서 인성검사에 떨어져 합류 거부 된 사람도 있었다.

“여기 자료 보면 소총 1만 정에 탄약 200만 발 지원? 거기에 수류탄, 박격포탄, 크레모어 같은 것들까지? 엄청 다양한데요? 이거 가능해요?”

배포된 자료를 뒤적거리던 장동건이 물었다. 거기에 대한 대답은 이재규가 했다.

“세종의 영역권 내에 치장물자 비축기지가 포함되어 있었습니다. 거기에는 포장도 안 뜯은 M1부터 시작해서 M-16, K-2까지 수십만 정의 소총과 엄청난 탄약이 비치되어 있습니다. 개인화기 측면에서는 아쉬운 게 없다고 보시면 됩니다.”

“와. 로또네.”

부러운 얼굴로 자료의 세부명세를 들여다보는 장동건에게 나현주가 슬쩍 물었다.

“넌 중사였으면서 몰랐냐?”

“누나도 참. 그런 게 있다는 것만 들었지 위치는 몰랐지. 중사 나부랭이가 저런 거 알면 우리나라 사람 전부 다 아는 거예요. 저런 거 위치는 군사기밀이야.”

핑계 아닌가 의심스러운 눈으로 쳐다보는 나현주에게 이재규가 웃으며 말했다.

“동건 씨 말이 맞습니다. 위치는 군사기밀입니다.”

그 말에 김현희가 물었다.

“우리 지역에는 없나요?”

“하하. 없습니다. 있었어도 해당 기지는 쉘터화 되어 있어서 접근이 불가능 했을 겁니다.”

“다른 곳에는요?”

“남부 지역에 동쪽으로 대구 지역과 서쪽으로 광주 지역에 하나씩 있습니다. 다만 아쉽게도 아직 그쪽에는 세력권이 형성되지 않아 쓸 사람 없이 그냥 방치되고 있죠.”

대구나 광주 지역은 평택 사람들의 관심 밖 영역이었다. 그곳에는 뭐가 있든 상관없었다. 이내 토의는 다시 연계 작전의 내용으로 돌아왔다.

“근데 게네는 이렇게 많이 주면서까지 우리한테 매달려야 하나?”

아무리 많이 가지고 있다 해도 무기는 많으면 많을수록 좋은 것이다. 사람들의 생각에는 줘도 너무 많이 준다 싶었다.

“청와대에서 빨리 실적을 내라고 쪼는 모양이더군. 자기네 계산에 우리 도움이 무기 값 이상의 가치가 있다고 생각한 거 아니겠나?”

세종에서 요청한 지원 인력에는 당연히 이진성, 나현주, 관장, 김현희가 포함되어 있었다.

세종의 판단은 그들 하나하나의 가치가 소총 몇 천 자루 이상이었기에 자신들은 오히려 싸게 먹히는 장사라고 생각하고 있는 것을 평택에서는 알지 못했다.

도만수는 찬성 의견을 냈다.

“이건 할 만하다고 보네. 공주시는 크지도 않으니까 문제 될 것도 없고, 대전이 좀 위험하기는 하지만 철저하게 전차와 병력을 앞세우는 조건으로 하면 어려움은 없을 거세.”

이재규도 한마디 거들었다.

“저쪽에 아파치헬기 조종사와 부조종사 몇 팀도 있다고 합니다. 우리 쪽에 놀고 있는 아파치를 운용할 수도 있습니다. 그것도 전력에 큰 도움이 될 겁니다.”

“혹시… 헬기 그냥 넘겨 달라는 거는 아니죠?”

“처음에는 그런 요청이었습니다만, 단칼에 거절했습니다. 일단 우리 품 안에 있는 걸 그냥 줄 이유가 없죠. 우리가 아쉬운 것도 없는데. 하하.”

역시 이재규다웠다. 도만수와 이재규의 말에 의하면 원정에서 어려움은 그다지 없었다.

몸이 피곤하기는 하겠지만 덕분에 평택 자치구의 도시들을 빨리 정리하게 된다면 거기서 만회하면 된다.

그런데도 이진성을 포함한 다른 사람들을 그래도 그만, 아니어도 그만이었다. 시큰둥한 표정으로 듣고 있는 사람들에게 도만수는 자꾸 찬성 쪽으로 의견을 몰고 갔고, 그런 도만수의 말을 듣던 이진성은 이상한 생각이 들었다.

도시 두 개, 그것도 대전 같은 대도시를 수복하는데 드는 수고와 지원받는 무기를 비교하면 아무래도 수지가 맞지 않았다.

무기의 양이 많다고는 하지만 또 전체 도시에 나눌 것을 생각하면 많은 것도 아니었다.

그런데 다른 사람도 아닌, 이익이 너무나 민감한 도만수가 굳이 찬성하는 데는 다른 이유가 있다 싶었다.

“부장님. 단순히 무기 때문에 찬성 하시는 건 아니죠? 다른 거 있어서 그러시는 거 아니에요?”

도만수는 이진성의 말에 잠시 말을 멈추더니 미소를 머금고 이진성을 바라보았다.

“허허. 이제 우리 지사님이 상황 분석도 잘하시네 그려. 이건 아직 협의 중이라서 나중에 보고하려고 했는데 지금 말함세.”

잠시 뜸을 들인 도만수가 목을 축이고 다시 입을 열었다.

“사실은 협업의 대가로 금을 요구하고 있네.”

전혀 생각하지 못한 말에 사람들은 놀랐다. 이진성은 속으로 도만수가 뭔가 저쪽에 요구하는 것이 있다고 예상하기는 했지만, 그것이 금이라는 말에 의아했다.

이재규를 돌아보니 그도 모르고 있던 내용인지 역시나 의문이 가득 담긴 표정을 짓고 있었다.

“금이요? 무슨 금? 웬 금? 금 가지고 뭐하게요? 먹지도 못하는데?”

금이라는 말에 장동건이 웬 쓸데없는 것을 요구하냐며 타박을 놓았다.

“지금은 당장 쓸모없는 똥이지. 하지만 길게 보면 그렇지 않아. 미래에는 과거보다 더 중요하게 쓰일 게 금이야.”

도만수의 설명에 의하면 우리나라뿐만 아니라 세계 각국에서 수복의 움직임이 활발하게 일어나고 있다는 것이다. 그리고 언제가 될지 모르지만 머지않은 미래에 인간은 다시 국가 간 교역을 시작할 것이 분명하다고 전망했다.

“산업을 다시 일으키려면 자국의 자원만으로 뭘 할 수 있는 세상이 아니지 않나? 물자의 수출입이 필수적이지.”

이해되는 말이었다. 당장 우리나라도 자원의 수입 없이는 아무리 기존 공장들을 수복해도 가동할 수 없다는 것은 모두 아는 사실이었다.

“그런데요?”

“앞으로 미래에는 기축통화라는 게 없지 않겠나? 미국 달러가 여전히 국제통화가 될까? 아니야. 어느 나라의 화폐도 통화로서의 의미를 가지지 못해.”

따라서 중요한 것이 현실 금의 보유가 절대적이라는 것이 도만수의 말이었다.

당연히 국가 간 물물 교환이 많겠지만 모든 것을 물물교환에 의존하는 것은 불가능하다는 것은 자세한 설명 없이 모두 이해했다.

따라서 가장 고전적이고 보편적인 가치 기준인 금이 앞으로 많이 쓰일 것이고 금을 많이 확보한 나라가 새로운 세상에서는 앞서 나갈 것이 분명하다는 분석에도 모두는 수긍했다.

“그런데 우리가 금을 가지면 뭐 하게요? 우리가 무역할 것도 아니고?”

여전히 감이 잡히지 않는 장동건의 질문에 도만수는 다시 설명했다.

“그건 모르는 일 아닌가? 할 수도 있지. 안 한다고 하더라도 금이 현실 화폐로 쓰일 수도 있고, 금본위제 통화가 생긴다면 일단은 있는 것이 좋은 거지. 나중에 중앙정부에 넘기면서 막대한 이권을 요구할 수도 있는 거지.”

절대가치가 될 것이 분명한 것을 확보하지 않으면 바보라는 것이다. 직접 금을 사용할 수도 있고, 금을 가짐으로써 중앙정부에 발언권을 높일 수도 있다는 의견이었다.

듣고 있던 이진성이 질문했다.

“알겠어요. 알겠는데요. 금을 어떻게 확보해요? 집들 하나하나 뒤져요? 그렇게 해서 얼마나 챙긴다고?”

“그렇지. 그렇게 해서는 얼마나 챙기겠나? 게다가 그것들은 순금도 아니어서 쓸모가 없어. 우리가 노릴 곳은 은행이네.”

“은행이요? 우리 은행강도 해요?”

“강도는 무슨. 버려진 것 회수하는 건데. 허허.”

은행을 턴다는 말에 호기심을 가득 담고 묻는 김현희였다. 모두가 웃는 가운데 이진성이 다시 물었다.

“그러니까, 그 회수를 세종이랑 같이한다? 그리고 결과물을 나눈다? 그런 건가요?”

“그렇지. 지금 협의 하는 게 그거네. 우리 쪽에서 합동작전을 하는 조건으로 말이지.”

사람들은 웅성거렸다.

“와. 할아버지 스케일 보소.”

“그러게. 돈은 저렇게 버는 거구나 싶다.”

한쪽에서 수군거리는 장동건과 나현주는 다시 들려오는 도만수의 목소리에 입을 닫았다.

“저쪽에서는 이미 금 확보 작업을 하고 있더군. 정부 관료들이 많이 있으니 그 정도 생각은 누군가 했겠지. 그런데 세종시에 있는 은행에 금이 있어 봐야 얼마나 있겠나? 기껏해야 개인금고의 골드바 정도지.”

“우리 지역은요?”

“우리 지역도 크게 다를 바는 없네. 다만 우리는 중소도시라도 많으니까 그만큼 은행 점포도 많고 몇 개씩만 챙겨도 어느 정도 양은 되지. 그리고 우리가 중앙정부보다 많이 가질 필요도 없고.”

“진행 상황은요?”

“우리 지역은 금은 전부 우리가 가진다. 세종 지역의 금은 5:5로 나눈다. 이게 제시한 조건이네.”

휘파람을 부는 사람도 있었다. 세종으로서는 엄청나게 불리한 조건이었다.

“저쪽에서 그걸 받아들여요?”

“당연히 아니지. 협상이란 것은 조건을 조정해 가는 맛 아니겠나?”

“최종 목표가 어떻게 되는데요?”

“천안, 아산에는 9:1, 대전, 공주에서는 3:7일세.”

“3:7이면 너무 많이 주는 거 아니에요?”

어느새 욕심이 생긴 장동건이 물었다.

“그 정도가 적당하네. 저쪽이랑 감정 상해서 좋을 것도 없고. 또 30%라고 하지만 대전에서 나올 금의 양을 생각하면 그게 우리 지역 전체에서 나오는 양을 웃돌 수도 있네.”

웅성거림은 커졌다. 대전이 그 정도나 될까 싶었지만, 돈에 관한 한 도만수만큼 믿을 만한 사람은 없었다.

“그럼 만약에 수도권 전부 먹으면 우리가 제일 부자 되는 거잖아요?”

장동건이 눈을 동그랗게 뜨고 말했다.

“허허. 가능하다면 그렇지. 하지만 가능하겠나?”

“지금은 불가능해도 머지않아 가능할지도 모르죠. 우리 영역을 완전히 정리하고 충분한 인력만 확보 한다면…….”

기대에 찬 이진성의 말이었다.

“포부를 가지는 것은 좋지. 리더로서 좋은 일이야. 일단은 당장 이 건부터 결정하고 미래에 대한 준비는 해나가는 것으로 하세나. 허허.”

회의의 결론은 세종과 같이 작전을 수행하는 것으로 났다. 단 수복의 순서를 바꾸는 것으로 요청하기로 했다.

대전, 공주가 먼저가 아니고 천안과 아산을 먼저 하는 것으로 요청했고 약간의 실랑이 끝에 그것은 받아들여졌다.

“일단 내 집부터 튼튼히 하고 가는 게 좋잖아?”

아직 잡히지 않은 1호에 대한 이진성의 우려 때문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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