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22
천안으로의 진격은 순조로웠다. 공중에서의 광역 정찰과 진화자들의 세부 정찰에 이은 병력의 투입, 섬멸은 좋은 효과를 내고 있었다.
헬기 정찰은 박 준위의 수리온과 세 대의 아파치가 담당했다. 헬기 소리에 숨는 놈들이 있다는 것은 이미 평택시에서 확인한 것이다. 따라서 헬기는 고고도 광역 정찰로 작전을 바꿨다.
헬기가 한 번 훑은 곳은 다시 진화자들이 투입돼서 건물 내부를 하나하나 확인했다. 수색 결과 전차 등으로 쓸어 버릴 곳은 쓸어 버리고 인력이 투입되어 할 곳은 진화자와 병력이 적절하게 나뉘어 투입되었다.
“열흘 만에 천안 제4, 3, 2 산업단지를 정리했어요. 상당히 빠릅니다.”
세종에서 나온 김지훈 중장이 상황판을 보면서 감탄하고 있었다. 자신들은 한 번도 그런 속도로 그 정도 면적을 정리한 적이 없었다.
항상 선두에 선 평택 광역시의 진화자들은 빠르게 놈들을 찾아내 깨끗하게 정리해 내고 있었다.
그중 이진성이 가는 곳은 누구보다 빠르고 효과적으로 놈들을 발견 섬멸했다.
“아직은 공단지역이라서 놈들이 많지 않습니다. 그래서 빠르지만 이제 주택지역으로 들어가면 좀 늦어 질 겁니다.”
역시 상황판을 보던 이진성은 지도를 짚으며 말하기 시작했다.
“내일부터 이쪽 두정 마을이라는 곳으로 들어갑니다. 전차가 주택가 골목골목 들어가는 건 불가능하겠죠?”
“구획정리가 잘 되어 있어 웬만한 곳은 들어갈 텐데 들어가 봐야 큰 의미는 없을 겁니다. 큰 도로에서 원거리 포격 지원하는 게 더 낫습니다.”
전차가 골목 안으로 들어가봐야 좌우로 건물에 둘러싸이기만 한다. 행동반경에 제약만 받을 뿐, 좋을 것이 없다는 장군이 설명이었다.
“헬기에서의 미사일 공격이 더 낫겠네요.”
“그렇습니다.”
헬기에도 미사일은 있었다. 수리온은 이택진이 붙여 놓은 토우미사일이지만 아파치에는 헬파이어 미사일이 원래 구비되어 있었다.
작은 건물 하나 쓱싹하기에, 충분한 화력의 미사일이었다. 아쉬운 것은 재고가 많지 않아 급할 때나 써야 한다는 것이었다.
“이 노란 표시가 은행들인가요?”
이진성의 물음에 김 장군은 쑥스럽다는 듯이 웃었다.
“그렇습니다. 충분히 설명을 들었지만 그래도 군인이 은행을 턴다는 게 여전히 편하지는 않네요.”
“하하. 수거라고 생각하라잖아요. 편하게 마음먹으세요.”
“그렇긴 한데 그게 그러네요. 허허.”
은행이 나오면 반드시 군인들이 진입했다. 대여금고를 털어 보석과 골드바를 모두 챙겨야 했고 은행 금고는 파괴해 버렸다.
지폐 따위는 불타버려도 상관없었기에 벽을 뚫어 폭약으로 날려 버렸다.
“저번에 공단 내 은행에서는 나온 게 없어서 세종에서 많이 아쉬웠겠어요.”
“그렇지도 않습니다. 공단에 있는 은행에 금이 있으리라고 생각도 안 했었으니까요.”
“이제 주택가로 들어가니까 좀 나아지겠죠.”
“그래야죠.”
주택가의 정리도 순조롭게 시작되었다. 200이 넘는 진화자들이 적게는 둘, 많으면 열 명씩 흩어졌다.
그렇게 흩어진 각 조는 몇 개 블록을 담당했고, 수색은 빠른 속도로 진행되었다.
어쩌다 발견되는 큰 둥지라고 해 봐야 놈들 20~30마리가 모여 있는 정도였다.
다시 2주의 시간이 지나고 4월 중순이 되었을 때 원정대는 천안역 지역으로 진격하고 있었다.
“점점 놈들이 많아지네요.”
“그렇습니다. 군집의 크기도 점점 커지고요.”
천안시의 중심으로 갈수록 좀비는 점점 더 많아지고 더 자주 마주치고 있었다.
상황실은 쏟아져 들어오는 무전으로 시장통같이 시끄럽고 분주했다.
정찰 나간 진화자에게 들어오는 무전도 있었고 작전 중인 병력에서 들어오는 무전도 있었다.
병력의 작전은 크게 섬멸 청소와 건물 폭파 두 가지였다. 건물 폭파는 처음에는 시행하지 않았던 것인데, 도심으로 들어오면서 시작하게 되었다.
진입 정리 후 일부 건물은 완전히 폭파할 필요가 있었다. 대부분 나둬봐야 다시 쓰기에 너무 허름하거나 사람이 다시 쓸 수 없을 정도로 오염된 곳들이었다.
불로 태우기도 했지만 깔끔하게 폭파해 버리는 것이 더 나은 곳은 병력이 투입되어 폭약으로 날려 버렸다.
* * *
“멋있어요.”
굉음과 함께 치솟는 화염을 바라보는 홍수진의 짧은 감상이었다. 그 옆에는 역시 불타는 건물을 바라보는 관장이 서 있었다.
막 한 블록의 수색을 끝내고 잠시 쉬던 두 사람은 어느 건물의 옥상에 올라 저 멀리 폭음과 화염을 뿜어내는 집들을 바라보고 있었다.
“다시는 불꽃놀이는 못 볼 텐데 저걸로 대신해야겠어요.”
“언젠가 다시 볼 날이 오지 않겠소? 그때가 되면 같이 가서 봅시다”
불꽃놀이 아닌 불꽃놀이를 감상하는 둘은 겨울 동안 상당히 가까워져 있는 사이였다.
사람들에게 좀처럼 곁을 주지 않는 관장이 홍수진에게만은 이거저거 챙기는가 싶더니 둘 사이에 묘한 감정이 흐르기 시작한 것이다.
“그때가 언제일까요?”
“글쎄요. 알 수 없겠지. 하지만 열심히 하다 보면 당겨지지 않겠소?”
황혼 속에서 타오르는 불길을 바라보던 중년의 두 남녀는 불길이 사그라지면서 다시 현실로 돌아왔다.
“저쪽 서너 블록만 보면 되는 건가요?”
“그렇소. 후딱 보고 갑시다.”
“그래요. 슬슬 배도 고파요.”
둘은 상업지역으로 달렸다. 높지 않은 건물들이 줄지어 있는 지역이었다.
건물 사이의 골목에는 온통 쓰레기와 깨진 유리가 널려 있고 군데군데 썩어가는 시체도 보였다.
몇 개의 건물을 뒤졌다. 서너 놈씩 튀어나오는 놈들은 가볍게 처리했다. 그러면서 두 사람은 점점 상업지구 중심으로 들어서고 있었다.
“여기는 냄새가 엄청나네요.”
“어딘가 놈들 둥지가 있을지도 모르겠소.”
들어갈수록 냄새는 심해졌다. 4월인데도 그 정도 심하다면 상당한 시체가 모여 있는 곳이 있다는 말이었다.
둘은 긴장했다. 이미 주택가에서의 가벼웠던 마음은 없어졌다.
갈수록 버려진 인간의 뼈가 많아지는 것이 둥지에 가까이 가고 있다는 방증이었다.
홍수진이 관장의 어깨를 잡아내려 앉으며 한쪽을 가리켰다.
50 정도 되는 놈들이었다. 놈들은 골목을 조용히 움직이고 있었다. 주위에서 들렸던 폭음과 사냥의 소리를 의식한 것인지 놈들은 두리번거리며 신중하게 움직이고 있었다.
‘그냥 갈까? 잡고 갈까?’
잠시 망설이던 관장은 잡고 가는 것으로 마음먹었다. 50 정도면 한순간에 처리할 양이었다. 만약 둥지에 놈들이 더 있다 해도 관장에게는 문제 되지 않았다.
“쫓아가 봅시다.”
놈들이 들어간 곳은 평범한 상업 건물. 카페와 노래방 등의 간판이 어지러이 붙은 5층 건물이었다.
“조심하시오.”
관장이 조심스럽게 발을 디뎠다. 안은 어두웠다. 현관 양쪽은 편의점과 카페였는데 그 안이 들여다보이지는 않았다.
1층에는 놈들이 없었다. 있는 것이라고는 곳곳에서 썩어가는 먹고 남은 시체였다.
“놈들 둥지가 분명해 보이오.”
가만히 귀 기울이자 위층에서 뭔가 부산하게 움직이는 소리가 들려왔다.
다시 발걸음을 옮긴 둘이 깔려 있는 시체 사이로 조심스럽게 계단을 올라 3층에 도달했을 때 홍수진이 나직하게 말했다.
“저쪽이요.”
카페의 유리 벽을 통해 놈들이 모여 있는 것이 보였다. 수는 대략 서른 남짓.
“나머지는 더 위층에 있나 봐요.”
“여기서 싸웁시다. 소리가 나면 이리로 모이겠지. 카페가 공간이 커서 싸우기 좋겠소.”
카페는 널찍했다. 3층의 전체를 쓰고 있었다. 놈들이 오가며 던져 놨는지 테이블, 의자는 한쪽 구석에 아무렇게나 쌓여있고 중앙에는 제법 넓은 공간이 만들어져 있었다.
관장은 카페로 달려 들어갔다. 놈들도 관장을 보고 달려들었다. 대부분 빨간눈, 일부 검붉은눈. 겨우 몇십 마리로 관장의 상대가 될 수 없었다.
일방적인 도륙이 시작되었고 놈들의 수는 빠르게 줄어 나갔다. 홍수진은 몇 발 남지 않은 화살로 관장을 방해하는 놈들을 하나하나 제거했다.
남은 놈은 열넷, 숨 몇 번 쉬면 끝날 상황이었다. 관장이 숨을 한 번 고르고 다시 놈들에게 달려드는 순간이었다.
끼리리 캬아악~
“이건?”
까만눈의 소리가 분명했다. 소리가 멀지도 않았다. 건물 안 어딘가에 있는 것이 분명했다.
관장은 다급해졌다. 둘이서 놈을 잡는 것은 분명히 힘들다. 혹시 잡는다고 해도 홍수진이 무사하기는 어려운 것이 분명했다.
‘도망쳐야 한다. 계단으로 나가다가는 놈과 마주칠 수 있다.’
생각과 함께 카페 안쪽의 유리를 깼다. 내려다본 밑은 골목이었고 별다른 움직임은 없었다.
“여기로!”
3층이지만 관장과 홍수진이라면 충분히 뛰어내릴 수 있었다.
막 달려드는 놈들의 목과 배를 가른 관장이 홍수진의 허리를 잡고 밑으로 몸을 날렸다.
윽~
홍수진이 신음을 내뱉었다. 떨어지며 바로 뒤에서 같이 몸을 던진 놈에게 화살을 날리느라 착지가 불안했다. 한쪽 발목을 접질린 것이다.
“달릴 수 있겠소?”
“네.”
하지만 정상 속력이 날 수 없었다. 둘은 몇십 미터도 가기 전에 다시 한번 놈의 기분 나쁜 소리를 듣고 뒤돌아서야 했다.
놈은 저만치 떨어진 골목에서 튀어나와 달려왔다. 기분 나쁜 검은 눈동자는 보석처럼 반짝였고 양손의 기다란 손톱은 열 개의 칼날같이 빛났다.
“뒤로 서시오.”
홍수진을 뒤로 물린 관장이 검을 세워 들고 달려오는 놈을 마주 노려봤다.
놈은 달려오면서 바닥에 손가락을 꽂아 뭔가를 뽑아냈다. 맨홀 뚜껑이었다.
“빌어먹을.”
놈이 던진 맨홀 뚜껑을 피할 수 없었다. 피하면 발목을 삔 홍수진이 맞는다.
관장은 날아오는 쇳덩이에 마주 달려나가며 검을 내리그었다.
쩡~
과장의 얼굴에 순간 미소가 어렸다. 손에 전해지는 반탄력이 없었다. 생전 처음 시도하는 검으로 강철 베기. 성공이었다.
두 조각으로 갈라진 맨홀 뚜껑은 양쪽으로 날아가며 아슬아슬하게 홍수진을 비껴갔다.
“이놈!”
맨홀 뚜껑 뒤에서 달려오는 놈에게 관장이 달려나갔다. 놈도 손톱을 치켜들고 관장의 검으로 휘둘러 왔다.
검과 손톱이 부딪혔다. 마치 검과 검이 격돌하는 소리가 났다. 놈은 빨랐다. 관장의 보이지도 않는 검을 거의 막아내고 있었다.
두 손으로 검을 막으며 한 번씩 날리는 발차기는 관장의 등골을 서늘하게 만들기에 충분했다.
“피하시오!”
놈의 손톱과 발을 겨우겨우 막아가며 뒤를 향해 소리쳤지만, 홍수진은 피할 수 없었다.
통하지 않는 활이라는 것을 알면서도 그녀는 활에 화살을 제고 기회를 엿보고 있었다.
“어차피 전 도망 못가요. 관장님이 가세요.”
그녀도 관장만이라도 살기 바라며 외쳤다.
관장은 입술을 피가 나도록 물었다. 자신이 도주하면 홍수진은 죽는다. 죽더라도 같이 죽는 것을 택했다.
‘빌어먹을. 좀비가 돼서도 알아볼 수 있으려나?’
놈에게 물려 좀비가 되어도 홍수진만은 알아볼 수 있길 바라며 관장은 마지막 힘을 짜냈다.
‘이건 아직은 무린데.’
최근 깨달은 것이 있었다. 전신의 모든 기운을 검에 몰아넣는 방법이었다.
성공률도 낮았고, 성공해도 지속시간은 고작 1~2분. 그 이후에는 탈진해서 쓰러져야 했었다.
‘결국 죽는다면 시도라도.’
관장은 마지막 도박을 결심했다. 근육에 퍼져있는 모든 기운을 뽑아냈다. 그 기운을 검으로 밀어 넣었던 바로 그 느낌. 거기에 집중했다.
“검, 검에서 빛이 나는 거 같아.”
뒤에서 보고 있던 홍수진은 눈앞에 보이는 광경에 넋이 나갈 것 같았다.
점점 빨라지더니 챙챙 소리는 마치 이어지는 하나의 소리처럼 들리기 시작했다.
그러면서 관장의 검에서 희미한 빛이 나는 것이 보였다.
순식간에 팔방으로 몰아치는 검에 의해 관장은 희미했지만 분명한 빛무리 속에 들어있는 것 같았다.
서걱~
마침내 살이 베이는 소리가 홍수진의 귀에 들려왔다. 그것이 시작이었다.
놈의 팔 하나가 날아갔다. 조금 지나 놈의 발목이 잘려나갔다. 또 조금의 시간이 지나자 놈의 다른 손 하나가 잘렸다. 그리고 마침내 놈의 목에서 피가 뿜어지며 대가리와 몸이 분리되어 뒤로 자빠지는 것을 홍수진은 볼 수 있었다.
파삭~
동시에 관장의 검이 가루가 나면서 흩어졌다. 그와 동시에 빛도 사라졌다.
그리고 관장은 그대로 의식을 잃은 채 뒤로 넘어가고 있었다.
“관장님!”
놀라 달려간 홍수진은 겨우 관장을 받아 안았다. 관장의 옷은 산산이 갈라진 채 피로 물들어 있었다. 눈은 감았고 몸은 축 늘어졌다.
“관장님이, 관장님이 쓰러졌어요!”
홍수진은 헤드셋에 절규했다.
그리고 상황실은 그 소리에 발칵 뒤집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