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23
“이 지사님. 이선정 수석교관님이 쓰러지셨답니다.”
다급한 상황병의 보고에 이진성과 김지훈 중장은 깜짝 놀랐다. 전혀 예상하지 못했던 보고였다.
순간 쓰러졌다는 것이 무슨 의미인지, 혹시 다른 의미가 아닌지 의심이든 이진성이 물었다.
“관장님, 아니 수석교관님이 쓰러지다니요?”
“그게 홍수진 씨가 그 말씀만 하셔서 자세한 상황은 파악 못 했습니다.”
“연결해 줘요. 직접 말해 볼게요.”
이진성이 헤드셋을 쓰자 곧 홍수진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얼마나 당황하고 있는지 알 수 있을 정도로 떨리는 목소리로 계속해서 관장님만을 외치고 있었다.
“누님. 접니다. 제 목소리 들리세요?”
그녀는 흐느끼며 소리칠 뿐 대답이 없었다.
“누님! 대답하세요. 제 목소리 들려요?”
이진성의 몇 번의 호통에 겨우 정신을 차린 홍수진이 대답해 왔다.
<들려요. 큰일 났어요. 관장님 기절했어요.>
“거기 어디예요? 무슨 일인데요?”
<여기… 유흥가… >
정신이 나간 홍수진이 자신의 위치를 정확하게 말 못 하고 머뭇거리자 병사 하나가 모니터를 가리켰다.
“이곳입니다.”
모니터에는 두 점이 반짝이고 있었고 점 위에는 홍수진과 관장이 식별부호가 떠있었다.
“거기가 어디죠?”
“이곳에서 직선거리로 1.8km 지점입니다. 쌍용동 로데오거리라는 곳입니다.”
김 중장이 물었다.
“가장 가까운 특급 진화자는? 그리고 가장 가까운 헬기는?”
병사는 이미 스캔했는지 즉시 대답했다.
“500m 거리에 나현주 씨 계십니다. 2분 거리에 아파치 1기 있습니다.”
“아파치 즉시 이동해서 엄호한다. 나현주 씨에게 위치 전달하고 이동하게 하고 장갑차 출동시켜.”
중장이 지시를 내리는 동안 이진성은 홍수진에게 있었던 일을 간략히 전해 들었다. 관장 혼자서 까만눈을 잡았다는 것과 건물에서 좀비들이 튀어나오고 있다는 것이다.
홍수진이 쓰러진 관장을 끌고 건물 안 편의점으로 피신해 문을 잠그고 있지만, 밖에 모여드는 좀비가 계속 늘어나는 상황이었다.
“얼마나 버틸 거 같아요?”
<모르겠어요. 저 유리가 얼마나 버틸지.>
편의점의 유리 출입문은 밀어대는 놈들 때문에 계속 덜컥거리고 있었다. 홍수진이 급한 대로 상품진열대를 끌어 문을 막았지만, 유리가 깨지면 놈들이 비집고 들어올 수 있었다.
“어떻게든 버텨봐요. 지금 지원 가고 있어요. 2분 내로 헬기 가서 공중지원할 거니까 조금만 버텨요.”
<알았어요.>
교신하는 중에도 유리에 몸을 부딪치는 퉁퉁 소리가 계속 났고 놈들의 그러렁 소리도 들려왔다.
이진성이 상황병에게 소리쳤다.
“현주 씨 연결해 줘요.”
상황병은 키보드를 두드리고 고개를 끄덕였다.
“현주 씨. 지금 어디?”
<다 와 가요. 한 100m만 더 가면 돼요.>
“혼자 가는 거예요?”
<네. 저랑 같이 있던 사람은 그곳에 대기하라고 했어요.>
나현주는 한 명의 세종 진화자와 수색 중이었다. 그 사람과 같이 움직인다면 최대속력으로 달릴 수 없다고 판단한 그녀는 혼자 가는 쪽을 택했다.
“조심해요. 까만눈이 나왔었어요. 관장님 혼자 잡았다는데, 혹시 다른 놈이 더 있을 수도 있어요.”
<알았어요. 도착해서 연락할게요.>
* * *
상황병의 지시에 따라 코너를 돈 나현주는 저 앞에 떼로 몰려 있는 좀비를 볼 수 있었다. 놈들은 한 건물 앞을 둘러싸고 있는데 그 안에 홍수진과 관장이 있는 편의점이 있는 것이 분명했다.
놈들은 계속해서 주위 건물에서 쏟아져 나왔다. 나현주가 대충 보기에 길에 나와 있는 것들만 200이 넘는데 계속해서 여기저기서 나오고 있었다.
나현주가 멈춰 선 곳 바로 앞 건물에서 나오던 놈들이 그녀를 발견하고 달려들기 시작했다.
“비켜. 급하단 말이야!”
달려오는 네 놈을 향해 몸을 띄운 나현주의 두 발이 공중에서 네 개의 대가리를 터트렸다. 그것을 신호로 이미 나와 있던 놈들과 어딘가에서 나오던 놈들이 나현주에게 달리기 시작했다.
“그래. 나한테 다 와라. 나도 몸살 한 번 더 해보자. 전부 이쪽으로 오란 말이야!”
'편의점 앞에 있는 놈들도 나한테 덤벼야 두 사람이 시간을 벌 수 있어.'
놈들의 이목을 끌자 나현주는 오히려 더 소리치며 아직 자신을 돌아보지 않는 놈들을 도발했다.
나현주의 킥은 한 번에 서너 놈을 터트렸다. 그녀의 손날은 배를 뚫고 들어가 척추를 끊고 등으로 빠져나왔다. 배가 뚫는 놈은 그대로 다른 놈에게 던져져 달려오던 놈의 목뼈를 부러트렸다.
놈들을 척살하며 한발 두발 뒤로 물러났다. 가능한 놈들을 편의점에서 멀리 떨어트리기 위함이었다.
다행히 놈들은 수없이 죽어 가면서도 도망치지 않고 그런 나현주를 따라 골목에서 큰길 쪽으로 착실히 따라와 주고 있었다.
그녀가 지나온 길은 피가 강처럼 흐르기 시작했다. 곱게 죽은 놈은 찾아보기 힘들었다.
폭발적인 그녀의 주먹과 발에 맞은 놈들은 예외 없이 뼈가 산산이 조각나면서 살이 터져나갔다.
손날은 칼처럼 몸을 잘라냈으며 팔꿈치는 상체를 으스러뜨리고 무릎은 내장을 전부 파열시켰다.
1분 정도 놈들을 학살했을 때 하늘에서 로터 도는 소리와 함께 그녀의 헤드셋에 목소리가 들려왔다.
<밑에 있는 진화자님 미사일 공격 있을 겁니다. 도로 오른쪽으로 피하십시오. 몸을 빼시면 바로 발사하겠습니다.>
아파치가 도착했다. 급강하한 헬기는 골목 안에서 달려오는 놈들을 향해 기관포부터 날리기 시작했다.
골목을 빼곡히 채우고 있던 놈들은 피할 수도 없었다. 무시무시한 30mm 기관포탄은 놈들을 벌집으로 만들며 한 발 한 발이 몇 놈씩을 관통해 아스팔트 바닥에 박혔다.
그 모습을 보며 나현주도 도로에서 옆으로 이동했다. 여전히 나현주에게 붙어 따라오는 놈들은 아직도 200 정도. 도착해서 약 1분 동안 50 넘는 놈들을 잡았는데도 여전히 많았다.
콰아아앙~
지축을 울리는 폭음이 터져 나오기 시작했다. 헬기에서는 오렌지 섬광의 꼬리를 끌고 미사일이 계속 날아갔고 하나하나가 건물 깊숙이 뚫고 들어가 안에서부터 엄청난 폭발을 일으켰다.
두 사람이 대피한 건물을 제외한 그 주위의 건물에 16발의 헬파이어가 골고루 날아가며 안에 있던 놈들을 박살을 내기 시작했다.
폭발과 함께 주위 모든 건물의 유리가 터져나갔다. 유리 조각은 또 하나의 총탄이 되어 좀비들을 덮쳐갔다.
화염과 함께 건물에서 밖으로 퉁겨지는 놈들은 이미 몸뚱이가 산산이 조각난 채 맞은편 건물 벽에 피떡을 칠하고 있었다.
편의점의 유리도 다 깨졌다. 하지만 놈들은 안으로 들어갈 수 없었다. 아파치의 기관포탄이 편의점 앞에 있는 놈들에게 집중되기 시작하면서 남아있던 놈들이 걸레가 되는 것은 순식간이었다.
기이이잉~
아파치의 1200발의 기관포탄이 다 떨어지고 빈 소리가 나면서 골목 안에 움직이는 폭발에 어딘가 터지고 부러져 꿈틀대고 있는 놈들밖에 없었다.
나현주를 따라 도로로 나왔던 놈들은 처참한 시체의 산을 만들고 20마리 남짓 남았을 뿐이다. 그것들도 다른 놈들과 같이 피와 살을 사방에 뿌리기까지 얼마 걸리지 않았다.
“말이 안 나오네. 평택 특급들이 인간이 아니라는 말은 들었지만 저 정도일 줄은…….”
“그러게 말입니다. 저는 지릴 뻔했습니다.”
아파치의 조종사와 부조종사는 밑에서 맨몸으로 수백의 좀비를 피떡으로 만든 여자를 보며 감탄하지 않을 수 없었다.
온몸에 피를 뒤집어쓰고 마지막 한 놈의 배에 주먹을 꽂아 넣어 목으로 주먹을 뽑아내 상체와 대가리를 한 번에 터트린 그녀는 더 움직이는 놈이 안 보이자 골목 안으로 달려 들어갔다.
그리고 그때가 되어서야 두 대의 아파치가 더 도착하고 이진성이 탄 험비와 장갑차가 속속 도착했다.
* * *
“기분이 어떠세요?”
이틀 만에 일어난 관장은 자신을 바라보는 사람들의 초롱초롱한 눈동자가 부담스러웠다.
또 한 번의 몸살과 진화. 이진성과 나현주, 장동건, 김현희는 더이상의 진화는 없을 것 같았던 관장이 한 단계 더 나가자 뭐가 어떻게 달라졌는지 궁금해 죽을 지경이었다.
홍수진에게서 관장이 쓰러지기 전 검에서 빛 같은 것이 났다는 것은 이미 들었다. 그것이 한계를 넘게 한 것인지, 검은눈이 한계를 넘게 한 것인지 하여간 관장은 한계를 넘은 것이다.
관장도 자신이 다시 한번 더 진화한 것이 믿어지지 않았다. 내심 끝이라고 포기하고 있었는데 그게 아니었다.
“기분은… 좋소. 저번과 느낌은 다르지 않소.”
담담히 말했지만, 속으로는 흥분되고 있었다. 서 있는 사람들의 기의 크기가 색으로 느껴지는 것이다.
이진성은 투명한 흰색, 자신은 그보다 약간 탁한 흰색. 나현주는 자신보다는 약간 회색. 김현희도 그보다 약간 진한 회색. 장동건은 거의 검은색이었다.
진화자가 아닌 보통 사람들은 특별한 색이 없었다. 그냥 약간의 아지랑이 같은 것이 몸에 있을 뿐이었다.
그 얘기를 들은 사람들은 신기한 눈으로 관장을 바라보았다. 특히 장동건은 보이는 모습이 어떤지 자세히 설명해 달라고 꼬치꼬치 물었다.
“그러니까 사람 주위로 어떤 투명한 피막 같은 게 있는데 그게 색이 있다는 거네요? 두께도 다르고? 진성 형이 그 두께가 제일 두껍고?”
“그렇네.”
“투명하다면서요? 그래도 두께가 보여요?”
“완전 투명은 아니고…….”
“색이 옅을수록 더 센 거 같은데 진성형은 혼자 까만눈 못 잡았잖아요. 저번에 농협 때. 근데 관장님은 이번에 혼자 잡고. 그것도 진화 전에…….”
장동건은 색과 능력의 관계에 대해 따졌다.
“앞으로 봐야 알겠지만, 아마 이번에 내가 쓴 검술이 결정적인 역할을 한 것 같소. 이전 상태에서 쓸 수 없는 걸 무리해서 써서 기절했던 거 아닌가 싶소.”
기의 크기보다는 기술의 차이를 말하는 관장이었다. 그럴만한 추측이었다. 그렇게 관장의 새로운 능력에 대해 한참 얘기하던 중에 김현희가 관장을 툭 쳤다.
“그건 그렇고, 언제 그렇게 됐데요?”
“뭐 말이오?”
김현희는 홍수진과 관장의 관계를 묻고 있었다. 이미 홍수진에게 다 들어 자세히 알고 있는 내용이었지만 관장을 놀릴 기회였다.
“수진 언니랑 그렇고 그렇다며?”
“헉. 무슨 말이오? 그렇고 그렇다니?”
“에이. 왜 이러실까. 다 아는데.”
김현희는 빨갛게 얼굴이 달아오른 관장을 재미있는 장난감인 양 한참을 가지고 놀았다. 그런 관장을 구해준 것은 이진성이었다.
“그나저나 검이 가루가 났어요. 아세요?”
“들었소. 이제 남은 검은 한 자루 뿐인데…….”
“앞으로 또 그 기술을 쓰시면 검이 견딜까요?”
“알 수 없소. 이번 검이 그동안 약해져서 그런 걸 수도 있고…….”
“검이 더 있는 게 좋겠네요?”
“그렇소. 그래서 말인데… 내가 좀 어딜 다녀와야겠소.”
관장은 검 공방에 관해 얘기를 꺼냈다. 평택과 아산의 중간쯤에 있는 검 공방인데 관장의 진검은 모두 그곳에서 만든 것들이었다는 것이다.
그곳의 주인이 대한민국 최고의 전통검 장인으로 한국의 내로라하는 검사의 상당수가 검을 맞추는 곳이라는 곳이다.
“그래서 그곳 선생님이 살아 계신지 아닌지는 모르지만 검이 남아 있다면 좀 가져올까 하오.”
관장이 말한 그곳의 위치는 산속이었다. 좀비들이 출몰한 지역은 아니었기에 장인이 살아 있을 가능성이 크기는 했다.
“살아 계시다면 검을 새로 맞출 수도 있겠고…….”
“맞추면 얼마나 걸리는데요?”
“그건 가봐야 알 수 있소. 짧으면 한 달, 길면 두어 달도 될 수 있고.”
“그렇게나 오래 자리를 비우시면…….”
“계속 거기 있는 것은 아니고, 그동안은 거기에 있는 것들 가져와서 쓰면서 기다리면 되오.”
이진성은 흔쾌히 그러라고 승낙했다. 당장 한 자루 검으로 관장이 싸우다 그것마저 부러진다거나 하면 가장 강력한 전력 하나를 잃을 수 있는 문제였다. 빨리 검을 확보할 필요가 있었다.
“험비 하나 내 드릴게요. 운전병하고 기관총 사수도 같이 가는 거로 하고요.”
이진성의 말에 관장은 잠시 생각하더니 고개를 저었다.
“아니오. 괜한 자원 낭비요. 그냥 오토바이 하나 타고 갔다 오겠소. 지금 상태면 까만 놈이 덤벼도 도망치는 것도 어렵지 않고, 또 가는 길이 어떤지 모르니 험비보다는 오토바이가 빠를 거요.”
맞는 말이었다. 진화 직전에 비록 기절하기는 했지만 혼자 까만눈을 잡았다. 지금은 한 마리라면 어쩌면 더 쉽게 잡을 수 있을지 모른다.
모두가 이견 없이 관장의 의견을 받아들이자 관장이 한마디 덧붙였다. 그리고 그 말에 모두는 기가 막혔다.
“그리고… 홍수진 씨랑 같이 갔으면 하오.”
“에? 관장님. 신혼여행 가는 거예요?”
비록 나현주에게 꿀밤을 맞았지만, 장동건의 말이 모두의 마음을 대변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