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좀비 에이지 백수 생존기-124화 (124/145)

# 124

다시 이틀이 지났다. 그동안 관장은 천안시 오토바이 가게 몇 곳을 뒤졌다. 쓸만한 오토바이는 많았다. 원래 관장이 탔었던 BMU 투어링 바이크 종류도 있었고, 할리도 있었다. 간혹가다 거대한 홍다 실버윙도 나왔다.

그런데 관장은 그런 편안한 바이크를 다 마다했다. 그리고 굳이 고른 것이 미끈하게 빠진 두카티 레이싱 레플리카 한 대였다.

“왜 굳이 불편하게? 두 분 타셔야 하잖아요?”

물어보는 사람들에게 관장은 날렵하고 빠른 놈이 낫다고 말했고 사람들은 그런가 보다 했다.

이진성은 이택진에게 부탁해 그 바이크에 중대용 무전기를 부착시켰다. 필요 없다고 관장은 만류했지만 만약의 경우를 대비한 조치였다.

“통달 거리가 8km 정도는 된데요. 거기 위치가 그 정도 되니까 아슬아슬하게 될 거 같아요. 무슨 일 있으면 혼자 해결하지 말고 연락하세요.”

연료통 위에는 보기 흉하게 무전기가 자리를 차지하고 있었다. PRC-77, 소위 중대장 무전기라고 불리는 그 덩치만 크고 못생긴 놈이었다. 관장은 인상을 찌푸렸지만 어쩔 수 없었다.

“갔다 오겠소.”

“갔다 올게요.”

홍수진은 두 사람의 이틀 치 식량을 담은 백팩과 활, 화살, 관장의 검까지 등에 메고 뒷자리에 아슬아슬하게 앉았다.

관장은 그녀의 손을 잡아 자신을 꼭 끌어안게 한 다음 바이크를 출발시켰다.

“관장님, 노렸네. 노렸어. 저러려고 저런 오토바이 골랐구나.”

그 모습에 빈정대는 장동건과 저 양반이 저런 면도 있나 하며 놀라는 일행을 뒤로하고 두 사람은 빠른 속도로 멀어졌다.

바이크는 이미 정리한 도시 지역을 통해 외곽으로 접어들었다. 목적지는 현충사 밑의 백암리. 가구 수 몇 호 안 되는 작은 마을이었다. 그 마을의 안쪽 깊숙이 공방이 있었다.

가야 할 길은 복잡하지 않았다. 천안시 경계를 벗어나자 금방 낮은 야산이 있는 시골 마을이 나왔다. 그곳을 지나는 624번 국도로 접어든 바이크는 길에 버려진 차들 사이를 빠져나가며 천천히 전진했다.

“불편하지는 않소?”

“괜찮아요.”

“이렇게 바깥에 나와본 게 오랜만이지요?”

“그러네요.”

사태 발발 후 안전지역 밖을 마음 편히 나가 본 적이 없던 그녀였다. 평택 시청에 나갔었고 지금 천안에 나와 있지만 모두 작전 때문이었다.

1년 만에 느껴보는 자유와 편안함이었다. 비록 길에는 처참하게 버려진 차들과 더 썩을 것도 없는 시체들이 널려있었지만 그래도 그녀는 좋았다.

“논밭은 이미 다 없어졌네요.”

평야 지대로 접어든 그들에게 보이는 것은 논이 있었을 자리를 가득 덮고 있는 풀이었다. 완전히 초지로 변해 농로조차 보이지 않는 곳에서 바이크 소리에 놀란 새들이 날아오르고 고라니가 뛰었다.

“1년 만에 이렇게 되는군요.”

어느덧 바이크를 세우고 도로 좌우로 펼쳐진 광활한 초지를 바라보는 두 사람의 감회는 묘했다.

자연은 인간의 흔적을 지우기 시작했다. 그 모습에 드는 아쉬움도 있었지만 동시에 인간이 다시 자연을 파괴할 일이 없기를 바라는 마음도 들었다.

“갈까요?”

“갑시다.”

잠시의 감상에서 벗어난 두 사람은 다시 길을 따라 전진했다. 서두르지는 않았다. 길이 뻥 뚫린 것도 아니었지만 급하게 갈 이유도 없었다.

관장과 홍수진은 보기 좋은 자연 속에서 둘만의 한적함을 좀 더 즐기고 싶었다.

천천히 간다고 하지만 워낙 얼마 되지 않는 거리였다. 목적지인 마을 입구에 도착하기까지는 채 한 시간이 걸리지 않았다.

“여기는 누가 이렇게…….”

마을이 보이는 곳에 바이크를 세운 두 사람은 온통 불타버린 집들을 볼 수 있었다. 눈에 보이는 집은 모두 새까맣게 탔고 어떤 집은 무너지기까지 했다.

“한번 둘러봅시다.”

관장은 마을 안쪽으로 헤집고 다니기 시작했다. 집들은 마을 입구에서 시작해서 안쪽으로도 남김없이 불타있었다.

자연 화재로는 보이지 않았다. 그랬다면 붙어 있는 몇 집만 탔었어야 했다. 길을 건 너 또는 밭을 건 너 드문드문 떨어진 집들까지 다 탈 수는 없었다.

당연히 사람은 단 한 명도 보이지 않았다. 모두 탄 덕분에 동네에서 악취도 나지 않았다. 집 안에 숨은 좀비조차도 존재하지 않았다.

“누가 마을을 소각한 거 같은데…….”

“주민들이 피난 가면서 그랬을까요?”

“글쎄요. 떠나면서 굳이 불까지 지르고 가지는 않지 않았겠소?”

관장은 공방만은 무사하기를 바랐다. 공방도 불에 탔다면 안에 있는 검이 무사할 수는 없었다.

공방은 마을 제일 안쪽 집에서 500m 거리. 서둘러 바이크를 몰았다.

“이건…….”

두 사람은 공방의 모습에 놀랐다. 다행히 공방까지는 불에 타지 않았다. 공방 주위로 풀이 빼곡히 자라 있기는 했지만, 건물은 모두 멀쩡해 보였다.

그보다 그들을 놀라게 한 것은 공방 주위를 감싸고 있는 바리케이드였다. 날카로운 쇠가 삐죽삐죽 튀어나오고 철조망이 얼키설키 엮인 급조한 것이 분명한 바리케이드가 공방을 삥 둘러 전체를 감싸고 있었다.

바리케이드 여기저기에는 완전히 썩어 문드러진 채 걸린 시체들도 보였다.

“혹시 사람은 아니었겠죠?”

“사람이 저기에 걸렸겠소? 좀비들이었겠지.”

포장된 진입로를 제외하고는 바리케이드를 따라 풀이 무성했다. 둘러보려면 풀을 헤치고 걸을 수밖에 없었다.

“사람이 설치했다면 어딘가 출입구가 있을 거요.”

관장과 홍수진은 바이크에서 내렸다. 이미 허리 높이 이상으로 자란 풀을 헤치고 바리케이드를 따라 진입로에서 반대편 뒤쪽에 도착했을 때였다.

“여기 있군.”

관장이 발견한 문은 절묘하게 바리케이드와 이어져 있어 얼핏 보면 문인지 모를 모습이었다.

역시나 온통 칼날과 쇳조각이 붙은 그곳에는 가려진 경첩이 있었고 그것으로 문인지 관장은 알 수 있었다.

관장이 경첩을 살폈다. 다른 모든 곳에 있는 녹이 보이지 않았다.

“조심하시오. 안에 누가 있소. 이 문은 최근까지 계속 사용되고 관리되었소.”

문에는 깡통이 여러 개 달려 있었다. 문을 열면 소리가 나도록 만들어 달아 놓은 것들이었다.

뗄 수는 없었다. 소리가 나도 감수해야 했다.

잠금장치는 따로 없었다. 사람이라면 잠가 놨어도 어떻게든 넘어 들어갈 수 있기에 사실 필요도 없었다.

관장이 검을 뽑아 들고 홍수진은 활을 들었다. 최대한 조심스럽게 문을 밀었지만 역시나 딸랑 소리를 막을 수는 없었다.

두 사람이 문을 열고 안으로 들어 설 때까지 안에서는 어떤 움직임도 없었다. 잠시 기다렸지만 역시 아무런 소리도 들리지 않았다.

자재 창고와 주택, 그리고 공방 세 개의 건물이 따로 떨어져 있는 구조이다. 두 사람에게서 가장 가까운 건물은 자재 창고. 창고로 조심스럽게 다가간 관장이 슬쩍 창 안을 들여다보고 문으로 향했다. 문에는 밖에서 자물쇠가 채워져 있었다.

“여기는 아무도 없군요.”

남은 곳은 주택과 공방. 주택은 3층 집으로 명인과 두 명의 제자만 상주하던 곳이다. 방은 많았지만 모두 손님방으로 쓰이고 평소에는 거의 비어 있는 곳이었다.

집 앞에 도착한 관장이 안에 누가 있는지 기감을 살폈다. 느껴지는 기는 없었다. 3층까지도 깨끗했다. 그래도 혹시나 안에 좀비라도 있을까 싶어 확인은 해야 했다.

현관문은 다행히 전자도어락이 아니었다. 평범한 동그란 손잡이. 관장이 조심스럽게 손잡이를 돌렸다.

문은 잠기지 않았다. 손잡이는 돌아갔고 소리 없이 문은 열렸다.

“누가 살고 있소.”

집안은 깨끗하게 청소되어 있었다. 바닥에 먼지도 없었다. 한쪽에는 빨래까지 걸려 있었다. 남자의 속옷이었다.

사람은 한 명 같았다. 몇 장 되지도 않았고 전부 같은 디자인에 한 치수였다.

홍수진에게 눈짓한 관장이 소리 없이 명인의 방문에 다가갔다. 홍수진은 관장의 뒤에서 활을 겨누고 섰다.

끼이~

작은 소리를 내고 열린 방문 안으로 보이는 방은 역시 깨끗했다. 잘 정돈된 침구로 봐서 깔끔한 성격의 사람이 분명했다.

다른 방을 모두 확인하도록 누구도 집안에서는 나오지 않았다. 다만 모든 방이 깨끗하게 청소되어 있는 것만을 확인했을 뿐이었다.

“혹시 명인님이 살아 계시는 거 아닐까요?”

홍수진의 물음에 관장은 고개를 저었다.

“그러기는 힘들 거요. 70이 넘은 양반이시오. 그런 분이 1년 넘게 전기도 없는 이곳에서 혼자 생존하기는 어렵지 않겠소? 식량은 어디서 조달하겠소?”

부엌에는 비축된 식량이 거의 없었다. 감자 조금과 알 수 없는 풀 뿐이었다.

“공방으로 가 봅시다.”

누군가 있다면 그곳뿐이었다. 거기에도 없다면 외출한 것이 분명했다.

관장은 공방에 도착해 바로 들어가지 않고 일단 외곽을 한 바퀴 돌았다. 돌면서 확인한 기감에 한 사람이 걸려들었다. 그는 공방 안쪽에서 움직이지 않았고 진화자는 아니었다.

끼이~

공방 문은 힘없이 열렸다. 창으로 들어오는 햇빛으로 어둡지는 않았지만 거대한 기계들이 여기저기 있어 시선을 가리고 있는 공간이 많았다.

두 사람은 서서히 안으로 들어갔다. 사람이 어디 있는지는 이미 알고 있었다.

보통의 진화자라도 관장에게 위해를 끼치기 어려운데 진화자도 아닌 사람이었기에 위험할 일도 없었다.

다만 총이라도 가지고 있지 않을까 조심할 뿐이었다.

“거기 있는 사람. 앞으로 나오시오.”

관장은 어느 정도 들어가 해머 기계 뒤로 몸을 숨기고 안쪽을 향해 소리쳤다.

안에서 반응은 없었다.

“거기 있는 거 아니까 나오시오. 해치지 않을 테니까 안심하고 나오시오.”

재차 소리쳤지만 역시 그는 움직이지 않았다.

관장이 느끼는 그의 기운은 차분했다. 약간의 불안감이 섞여 있긴 했지만, 동요하거나 하지는 않고 있었다.

‘깔끔한 성격에 용감하기까지 하군’

관장이 발소리를 죽이고 앞으로 나왔다. 홍수진은 그건 관장의 뒤에서 앞으로 보이는 통로로 활을 겨눴다.

조심스럽게 관장이 다가가는 곳은 공방 내의 한 방. 명인과 제자들이 휴식을 취하던 곳이었다.

방 앞에 다가가도록 안의 사람은 미동도 없었다. 문 뒤에 차분히 서 있기만 할 뿐이었다.

관장은 다시 한번 뒤를 돌아봤다. 홍수진은 바로 그 방문을 조준하며 관장에게 고개를 끄덕했다.

문손잡이를 살며시 잡아 돌린 관장이 힘껏 문을 밀었다. 문은 아무런 저항 없이 활짝 열렸다.

하지만 열리는 문을 따라 방 안으로 달려들려던 관장은 철렁하는 가슴과 함께 옆으로 몸을 빼며 홍수진에게 소리쳤다.

“피해!’

방안에는 이상한 장치가 있었고 문이 열리자마자 그 장치에서 수십 개의 칼날이 발사된 것이다.

엄청난 속도로 날아오는 칼날을 가까스로 피한 관장이 벽에 기대어 뒤를 돌아봤다. 홍수진도 다행히 몸을 던져 칼날을 피해내고 있었다.

그 모습을 확인한 관장이 끓어오르는 분노를 머금고 방안으로 달려들었다.

장치의 정면을 피해 벽을 박차고 바로 장치를 뛰어넘었다.

장치 뒤에는 후드를 뒤집어쓴 한 사람이 뭔가 어지러운 것들을 조작하고 있었다. 다시 한번 뭔가를 발사하려는 것 같았다.

낙하하는 관장은 그를 생포하기 위해 검을 뒤집어 칼등으로 그를 내리쳐 갔다. 그리고 고개를 든 그의 얼굴을 보고는 소스라치게 놀랐다.

“명인님!”

바로 그의 머리까지 갔던 검을 급하게 회수하면서 장치를 발로 차 몸을 빼면서 충돌을 피했다.

그리고 바닥을 한 바퀴 굴러 일어서는 관장을 얼빠진 표정으로 바라보는 명인을 향해 관장이 소리쳤다.

“접니다. 이선정!”

잠시 관장을 바라보던 명인은 그제야 알아본 듯 화들짝 놀라며 관장에게 달려왔다.

“아니. 자네가 어쩐 일인가? 안 죽고 살아 있었나?”

마치 죽은 사람이 살아온 것을 보는 듯한 표정으로 관장에게 달려와 몸 이곳저곳을 더듬은 명인을 밀쳐내고 관장이 소리쳤다.

“죽기는 누가 죽었다는 겁니까? 누가 그런 소리 했습니까?”

“어? 누가 그런 소리 했더라? 가만… 그러고 보니 그런 소리 들은 적이 없는 것 같기도 하고…….”

혼자 생각에 잠긴 명인을 보며 관장은 가슴을 쳤지만, 속으로는 안심했다. 그가 알고 있던 명인 그대로의 모습이었다.

약간은 덤벙대기도 하고 약간은 철딱서니 없는 괴짜 명인. 그게 관장이 기억하는 명인의 모습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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