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26
“어떻소? 쓸 수 있겠소?”
몇 발 쏘고 힘이 모자라 못 쏘게 된다면 무기로서의 가치가 없다. 관장은 홍수진이 과연 저 강력한 활을 얼마나 오래 쏠 수 있을지 궁금했다.
“쓸 수 있을 거 같아요. 며칠 적응훈련만 하면 될 거 같기는 해요. 그런데 속사는 전처럼 안 될지도 몰라요.”
홍수진은 시위를 당겼다 놓았다 하면서 자신의 힘과 활의 탄성을 가늠해 보았다. 양궁 활과는 비교도 되지 않는 탄성, 당기는데 드는 시간이 더 걸렸다.
“1초에 많아 봐야 두 발 정도 쏘겠는데요?”
활을 내리고 두 사람을 돌아보며 뭔가 아쉬운 듯한 얼굴로 말하는 홍수진을 보며 명인이 기가 막힌 얼굴로 말했다.
“이걸 1초에 두 발을 쏜다고? 그게 가능한가? 허, 대단하이.”
놀라는 명인에게 관장이 귀띔했다.
“양굴 활로는 1초에 다섯 발까지 쏜 적이 있습니다.”
“진짜? 기관총이 따로 없네그려.”
수줍은 듯 얼굴이 발그스름해지는 홍수진을 보면서 관장이 말을 이었다.
“어차피 검 완성될 때까지 여기 있을 거니까 그동안 연습하면 되겠소. 화살 망가지는 건 걱정하지 마시오. 다 고쳐 주실 거니까.”
그 말에 명인이 발끈했다.
“이 사람이 뭐라는 거야? 자네 검 만드는데 시간을 다 쏟아부어야 사흘 정도 걸리는 거야.”
“하루 정도 늦어도 상관없습니다.”
“늙은이 뼈를 아주 뽑으려고?”
“그 정도로 어떻게 되지 않는 거 다 압니다. 왜 안 하시던 엄살을 피우세요?”
“이 사람아. 나도 이제 하루하루가 달라. 내 나이 돼봐.”
“정정하시기만 하면서 무슨 그런 말씀입니까? 그나저나 저 명상하던 거기는 멀쩡합니까?”
관장이 명인을 만나러 와서 머물 때 수련과 명상을 하던 곳이 있었다.
그다지 높지 않은 뒷산의 정상으로 거의 절벽에 가까운 길을 올라가면 나오는 평탄한 곳이었다.
공방의 소음으로부터 자유로우면서 사방으로 시야가 시원한 그곳을 관장은 무척 좋아했다.
“멀쩡하겠지. 산이 어떻게 되었으려고? 또 거기 가 있게?”
“네. 이번에 얻은 것 수련도 해야 해서요.”
검기의 수발과 컨트롤이 아직 미흡하다고 생각하는 관장은 최대한 빨리 적응하기를 원했다. 기다리는 사나흘 동안 검기 수련에 매진할 생각이었다.
“먹을 건?”
“두 사람 이틀 치 식량 가져왔습니다. 그거 가져가면 충분합니다. 그보다 검 두어 자루 가져가겠습니다. 혹시 검이 못 견디고 바스러질지 몰라서요.”
“그거야 공방에 있는 거 아무거나 가져가게.”
* * *
“괜찮을까요?”
“끄떡 없을 거니까 걱정 말고 이거나 먹게.”
관장이 산으로 올라간 지 나흘째 되는 날, 김이 모락모락 나는 삶은 감자를 앞에 둔 홍수진은 창밖을 바라만 보고 있었다. 추적추적 내리는 봄비가 이틀째였다.
검은 새벽에 완성되었다. 사흘 동안 거의 잠도 없이 검에만 매달린 명인이 기어코 완성한 그것은 비록 검을 모르는 홍수진이 봐도 대단해 보였다.
검신은 검은색이었다. 마치 까만눈의 눈동자처럼 짙은 검은색에서 흐르는 광택은 요사스러운 기운마저 풍기고 있었다.
기계로 돌아가는 숫돌을 세 개나 소모하고 겨우 세운 검날은 보기만 해도 베일 것 같았다.
그 검을 완성하고 새벽에 잠든 명인이 느지막이 일어나 겨우 늦은 점심을 먹는 것이었다.
“걱정하지 말래도 그러네. 전에는 한여름 태풍 속에서도 며칠을 있다 내려온 적도 있었어.”
태연하게 감자를 우걱우걱 씹어먹는 명인의 말에도 홍수진은 좀처럼 안심이 되지 않았다.
“지금쯤 왔어야 하는 거 아닌가요?”
“뭐 오늘 중에 오겠지. 이거나 어서 먹으라니까.”
억지로 홍수진의 손에 감자 하나를 쥐여주는 명인은 잠깐동안 이미 열 개 가까이 먹어 치우고 배를 두드리며 일어나고 있었다.
“어디 가세요?”
“어디 가긴 날 세우러 가지. 에잉, 좀 적당히 하지.”
관장이 산에 올라간 후 홍수진도 거의 쉬지 않았다. 그렇게 보낸 겨우 사흘 남짓한 시간이었지만 홍수진의 성취는 대단했다.
200m가 넘는 거리의 나무를 한발로 두어 개씩 관통시키는 것은 물론이고 명중률도 90%를 넘어섰다.
근거리 표적은 시위를 반만 당겨 속사 속도를 높여 1초에 세 발 정도로 10여 초를 지속할 수 있게 되었다.
이미 굳은살이 두껍게 박인 손가락이 터져 피가 흐르도록 연습하자, 보다 못한 명인이 급하게 쇠로 된 골무를 만들어 줘야 했다.
그리고 그것 때문인지 명중률은 더욱 높아지고 지속시간도 더욱 길어지는 기대치 않은 효과도 얻었다.
하지만 그런 피나는 연습의 결과, 화살의 15% 정도는 굽어 버렸고 대부분은 날을 다시 세워야 했다.
“저도 도울게요.”
“그래야지. 일단 그 감자부터 다 먹고.”
두 사람이 그러고 있는 그 시각, 관장은 비를 맞으며 빛나는 검을 들고 살벌한 검술을 펼치고 있었다.
그의 주변으로는 잘려나간 돌과 나무가 널려 있고, 땅바닥에는 수백 개의 날카롭게 베인 줄들이 얼기설기 엉켜 있었다.
바닥에 있는 작은 돌조각을 차올려 그것을 다시 반으로 가르는 관장의 검에는 전보다 약간은 커진 듯한 검기가 빛나고 있었다.
빗속에서 은은하게 빛나는 그것은 신비롭고 성스럽기까지 했다.
살벌하게 몰아치던 검술이 갑자기 사그라지는 빛과 함께 멈췄다.
“이제 지속시간이 10분이 넘는 건가?”
흐르는 땀으로 몸에서 수증기가 피어오르는 관장이 어느새 검기가 사라진 검을 바라보며 아쉬운 듯 말했다.
‘과하게 밀어 넣으면 검이 가루가 나고, 적당하게 넣어도 고작 10분 남짓이군.’
관장이 바라보는 바닥의 한구석에는 손잡이만 남은 검조각이 네 개가 널려 있었다. 가져왔던 다섯 자루 중 네 자루가 이미 가루가 난 것이었다.
처음에 기의 강도를 조절하느라 두 자루를 날려 먹었다. 검이 버티는 적당한 강도를 찾고서 본격적으로 시작된 수련에서 결국 버티지 못하고 박살 난 것이 또 두 자루였다.
‘그래도 처음에 5분 정도에서 두 배 정도 시간이 늘었어. 쉬어야 하는 시간도 30분이면 충분하고. 이 정도면 쓸만해.’
처음에는 기운이 빠져 검기가 사그라들고 다시 검기를 끌어올리기까지 한 시간 가까이 쉬어야 했다. 그러던 것이 쉬어야 하는 시간도 반 정도로 준 것이다.
‘한 번만 더 하고 가자.’
관장은 다시 앉아 명상에 잠겼다. 봄비에 금방 땀은 식었지만, 명상 내내 그의 몸에서는 수증기가 끊이지 않았다. 땀 대신 빗물이 그의 기에 반응하여 증발하고 있는 것이었다.
몸에서 피어오르는 수증기가 점점 많아지며 관장의 몸이 흐릿해지는가 싶더니 어느 순간을 기점으로 다시 줄어들기 시작했다. 그리고 거의 몸에서 피어오르는 수증기가 멈췄을 때 관장은 다시 눈을 떴다.
‘이번에도 30분 정도.’
손목시계의 시간을 확인한 관장이 고개를 끄덕이며 다시 일어나 검에 검기를 밀어 넣었다.
다시 영롱한 빛이 일어나는 검을 황홀하게 잠시 바라보던 관장이 검술을 펼치기 위해 검을 들어 올리던 순간이었다.
“응?”
그의 기감에 좀비들이 잡혔다. 멀지 않은 곳, 자신이 있는 봉우리에서 밑으로 100m 이내였다.
“50이 넘는 것 같은데?”
놈들은 움직이고 있었다. 어디서 왔는지 알 수는 없으나 동쪽으로 전진하고 있었다.
“저놈들 상대로 연습하고 가면 되겠군.”
마지막 연습은 놈들을 상대로 하기로 한 관장이 가파른 봉우리를 미끄러져 내렸다. 완만한 경사지에 도착하고는 울창한 나무를 헤치고 놈들이 느껴지는 방향으로 달렸다.
놈들은 빠른 속도로 움직이고 있었고 거기에 따라 관장도 방향을 바꿔가며 추격해 나가야 했다.
놈들이 계속 움직인 덕에 생각보다 긴 시간이 걸린 후 관장은 놈들의 꼬리를 잡을 수 있었다. 놈들은 무엇인가를 쫓는 것인지 숲속을 전력으로 달리고 있었다.
그렇게 관장이 놈들을 발견했을 때, 놈들은 이미 산을 벗어나 작은 마을로 접어들었다.
“여긴? 대동리?”
공방이 있는 곳에서 북동쪽으로 500m 정도 떨어진 작은 마을이었다. 그곳에 접어든 놈들은 망설임 없이 그대로 한 방향으로 쭉 달려만 나갔다.
놈들을 따라잡아 끝장을 내려고 발에 힘을 주던 관장은 멈칫했다.
‘또?’
마을의 작은 논밭 건너편 산자락에서 다시 100여 마리의 놈들이 느껴진 것이다. 놈들은 금세 모습을 드러내고는 관장이 쫓던 놈들과 뭉치더니 한 곳으로 달려가기 시작했다.
‘뭔가 이상한데?’
놈들이 먹이를 쫓는 것은 아닌 게 분명했다.
‘두 집단이 이유도 없이 뭉쳐서 한 곳으로 달린다. 그것도 산을 뚫고 나와서?’
관장은 놈들을 잡기보다는 일단은 쫓기로 마음을 고쳐먹었다. 이미 산을 벗어났기에, 충분한 거리를 두고 뒤따라도 놓칠 리는 없었다.
비는 점점 굵어졌다. 그 때문에 놈들이 관장의 냄새를 맡기도 어려웠다. 관장은 산자락에서 벗어나 놈들이 달린 길을 따라 빠른 속도로 달리며 놈들과 불과 50m 정도를 유지했다.
그렇게 달리기를 잠시, 관장의 검에 맺혔던 검기는 사그라들었다.
산길을 헤치고 오길 거의 1km. 마을에 진입해서 다시 몇백 미터. 검술을 쓰지 않고 달리기만 해서 조금은 더 오래 지속하였지만 그래도 15분을 넘지는 않았다.
‘보통 놈들 150 정도야.’
관장에게 검기가 없어도 어려울 것 없는 숫자였다.
놈들이 마을을 벗어나며 고가차도 밑을 통과했다. 그리고 그 너머 보이는 공장의 철조망 펜스를 타넘는 것이 보였다.
“저기는… 삼성디스플레이 공장인데?”
관장은 의아함을 지울 수 없었다. 길도 없는 산을 뚫고 놈들이 달려간 곳이 공장이었다. 먹이가 있을 장소가 아니었다. 그런 곳을 길이 아닌 철조망을 넘어 들어간다는 것도 이해 가지 않았다.
놈들을 잡을 생각은 버렸다. 공장 안을 확인하는 것이 우선이라는 생각이 강하게 들었다.
마지막 놈까지 전부 공장 안으로 들어간 것을 확인한 관장이 펜스를 넘었다. 놈들의 꼬리가 저 앞에 계속 달리는 것이 눈에 들어왔다. 그것들은 널찍한 공장부지의 가운데 방향으로 향하고 있었다.
“도대체 뭐지?”
다시 놈들을 쫓아 달리기를 몇 분, 어느덧 안으로 깊숙이 들어온 관장이 막 하나의 건물을 끼고 돌다가 헛바람을 삼키며 제자리에 서서 급하게 몸을 숨겼다.
그곳에는 엄청난 수의 좀비가 모여 있었다. 공터를 가득 메운 좀비들, 관장이 한 번도 본 적이 없는 수였다.
관장이 주위를 둘러봤다. 건물 내부로 들어갈 열린 문이 필요했다. 보이는 문이 없자 다시 온 길을 되짚어 나갔다. 그리고 건물을 끼도 놈들과 반대로 돌아 한참을 나가자 마침내 뚫린 문 하나를 발견할 수 있었다.
차량 출입구 같아 보이는 그곳을 통해 건물 안으로 들어간 관장은 2층으로 올라갔다. 다행히 건물 내부에는 좀비의 흔적도 좀비도 존재하지 않았다. 놈들이 모여있던 북쪽으로 달려 한 창 옆에 몸을 기댄 관장이 아래를 내려다봤다.
“뭐야 이게?”
밑에는 얼핏 봐도 수천은 되어 보이는 놈들이 모여 있었다. 그리고 관장이 온 반대쪽에서는 또 많은 놈이 몰려들고 있었다.
“저건?”
몰려오는 놈들의 선두에 있는 놈은 까만눈이 분명했다. 비 때문에 눈이 보이지 않았지만, 분위기가 달랐다. 거기에 분명히 까만눈의 피부색이었다.
문제는 그런 까만눈이 하나가 아니었다. 동쪽에서 오는 집단에 까만눈이 둘, 그리고 이미 모여 있는 놈들 사이에 셋.
관장은 섣불리 추적하던 놈들을 잡지 않은 것에 안도했다. 잘못했으면 수천의 좀비와 까만눈 다섯을 혼자 상대할 뻔했던 것이다.
가슴을 쓸어내리며 잠시 지켜보는데 동쪽에서 무리를 끌고 온 까만눈 둘이 가운데 있는 까만눈들에게 다가가는 것이 보였다. 어느 정도 가까이 다가간 두 놈은 갑자기 바닥을 기어서 한가운데 서 있는 놈에게 다가가기 시작했다.
놈은 오만하게 서서 다가오는 두 놈을 내려다보고 있었다. 그리고 두 놈이 발 앞까지 다가오자 두 놈의 대가리를 한 번씩 손으로 쓸어주는 것이 보였다. 그리고 그제야 두 놈은 슬며시 일어서서는 한쪽 옆으로 물러서는 것이었다.
‘까만눈 사이에 위계가 생겼다. 놈들 사이에 더 강한 놈에게 약한 놈이 복종한다. 그나저나 이렇게 거대 집단을 왜?’
관장은 조용히 건물을 빠져나와 자신이 넘어온 곳으로 달렸다. 빨리 돌아가 본부에 이 상황을 알려야 했다.
다행히 무사히 돌아온 관장은 명인과 홍수진의 부름도 무시하고 바이크로 달려가 무전기를 켰다.
그리고 자신이 본 것을 보고했지만, 그는 비 때문에 보지 못한 것이 있었다.
놈들의 가운데에서 다른 놈들의 경배를 받는 놈이 1호였다는 사실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