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27
“전차와 헬기부터 움직이자고요?”
이진성이 김 장군에게 물었다. 상황실의 그들은 무전을 받은 후 지도를 들여다보며 작전을 짜고 있었다.
“그렇습니다. 지금 신방동과 천안동 지역 수색이 진행 중입니다. 하다 말고 인력이 빠지면 갔다 와서 처음부터 다시 해야 합니다.”
“수색은 내일 정도면 완료되긴 하는데, 방벽 쌓는 데는 또 며칠 걸리잖아요.”
수색과 정리가 끝난 지역에는 놈들의 유입을 막을 방벽을 쌓아야 했다. 방벽의 재료는 전차가 깔아뭉갠 자동차가 쓰여 왔기에 전차가 몇 대라도 남아 있어야 했다.
“전차는 두 대만 남기고 나머지 보내도록 하죠. 일단 헬기로 포위하고…….”
장군의 계획은 간단했다.
가장 빨리 갈 수 있는 헬기가 놈들의 퇴로를 차단할 수 있는 위치를 확보 후 대기.
전차 도착하면 포격과 폭격으로 놈들의 숫자를 최대한 줄임.
다음날 인력 투입해서 정리.
“그래도 저랑 몇 명은 전차와 함께 가는 게 좋겠어요. 까만눈이 다섯인데 놈들은 포격 속에서도 도망갈 능력이 되는 것들입니다.”
“누구누구 가시려고요?”
“저랑 김현희, 나현주, 장동건 그리고 장진 하사요.”
“장진? 그 미군 말씀입니까? 왜…?”
“추격에 특화된 진화자입니다. 혹시라도 도주하는 놈들이 있으면 쉽게 찾을 수 있을 겁니다.”
“그런 능력도 있습니까?”
놀라는 김 장군에게 이진성은 평택시청에서 장진이 어떻게 도주한 까만눈을 추적했는지 간략하게 말했다.
“그렇군요. 그럼 병력도 50명 같이 가도록 하죠. 그 정도는 뺄 수 있습니다. 도주방지나 추격에 도움이 될 겁니다.”
나머지 세부사항을 논의하던 이진성은 사람들과 전차의 도착과 함께 상황실을 나와 장갑차에 탑승했다.
“조심하십시오.”
“네. 그럼 여기 마무리 잘 부탁드립니다.”
김 장군의 인사를 받고 출발한 장갑차와 전차는 전속력으로 달리기 시작했다.
그들이 향한 곳은 천안시 서쪽의 동산리라는 곳. 그곳을 지나 목표 지점의 동쪽으로 바로 진입할 수 있는 곳이었다.
<경로 상 도로 상황 양호>
공중에서 도로 상황을 파악한 헬기의 무전도 좋은 내용이었다. 가능한 빠른 속도로 달려가 불지옥을 퍼부어 주면 되는 것이었다.
“그런데 까만눈이 다섯이나 모여서 거기서 뭘 하고 있을까요?”
나현주의 의문이었다. 시내라면 먹이의 확보와 인간의 공격에 대한 대비라지만 놈들의 위치는 그런 곳이 아니었다. 더군다나 여기저기서 모여들고 있다는 관장의 보고였다.
“알 수 없죠. 어쩌면 천안에서 빠져나간 놈들이 모여 있는 것일 수도 있고.”
이진성의 말에 김현희가 자기 생각을 말했다.
“그런 거면 혹시 천안으로 다시 공격하려고 막 모인 거 아닐까?”
그럴 수도 있겠다 싶었다. 까만눈이 다섯이나 있다. 빼앗긴 자기네 영역을 다시 확보하기 위해 수를 불리고 다시 공격하는 것을 할 수 있는 놈들이 다섯이라는 말이었다.
“만약 그런 거면 골치 꽤 아플 뻔했어요. 모여있는 걸 미리 발견해서 다행이야.”
장동건의 말에 모두 내심 동의하며 제발 까만 놈들도 폭격에 죽거나 최소한 심각한 상처라도 입기를 바라고 또 바랐다.
<위치 확보 완료. 놈들은 공장 한가운데 모여 있습니다. 2,000 이상입니다.>
세 대의 아파치와 박 준위의 수리온까지 모두 출동했다. 현재는 고고도에서 놈들이 눈치 채지 못하게 자리만 잡고 있는 것이다.
놈들이 모인 곳은 공장 가운데 있는 운동장과 휴식공간. 놈들이 건물 안으로 들어가지 않는다면 도주할 곳은 동서남북으로 난 도로밖에 없었다.
네 대의 헬기는 각 방위의 도로를 담당할 것이었다.
“형님. 공장도 파괴하기로 했다며?”
“응. 놈들이 건물로 많이 들어가면. 조금 들어가면 우리가 들어가서 정리하고.”
“그 집 사람들 속 쓰리겠네.”
“야. 그 재벌집 살아 있기나 할까?”
“가족 중에 누군가는 어디서 편하게 살고 있겠지. 미리미리 유전자 검사 다 했을 텐데.”
“그렇긴 하겠다.”
일행은 모르고 있었다. 그들이 한가한 잡담을 나누는 그 시간 김 장군은 세종과 싸우고 있는 것을.
삼성디스플레이 공장에 대한 공격이 이루어질 것이라는 것이 어느 사이에 세종의 귀에 들어갔고, 그것은 다시 삼성 가문의 귀에 들어갔다.
삼성가에서는 공장의 피해를 원하지 않았고, 세종의 일부 고위 인사는 그들의 대변인이 되길 서슴지 않았다.
“이거에 대해서는 두말하지 않겠습니다. 군 작전에 간섭하는 것은 용납하지 않습니다. 제가 판단해서 필요하다면 파괴하는 겁니다. 이만 끊겠습니다.”
김 장군은 교신을 일방적으로 끊어버리고 먹던 커피잔을 던져버렸다. 평택과의 연합 후 파괴의 쾌감을 알아버린 그였다.
어느덧 군인으로서의 야성을 찾은 그는 재벌이고 관료고 간섭하는 것을 참을 수 없어 씩씩대고 있었지만, 이진성 일행은 그 사실을 끝내 알지 못했다.
“준비하세요.”
공장의 북쪽에 자리 잡은 이진성이 사인을 보냈다. 이제 동서남북에 자리 잡은 전차와 장갑차의 진입과 동시에 공중 폭격으로 놈들의 발목을 묶을 것이다.
병력은 도로의 끝에서 달려오는 놈들에게 사격을 가할 것이다.
그럼에도 많은 수가 도주할 것을 예상했다. 하지만 까만눈만 잡아도 수지맞는 장사였다.
“준비 끝났습니다. 병사들 대피할 건물도 확보했습니다.”
만약의 경우 병사들이 힘에 부칠 때는 길을 내주고 대피하도록 했다. 굳이 흩어지는 놈들을 무리해서 잡을 필요는 없었다.
섬멸해야 하는 것은 정리한 도시의 방벽 내부지 이런 산속에 있는 놈들이 아니었다.
놈들이 다시 도시로 오면 그때 방벽에서 상대하기가 오히려 쉽고 안전하기 때문이었다.
“그럼 시작할까요?”
* * *
“이제 시작 하나 봐요.”
“그런가 보오.”
관장과 홍수진은 놈들에게서 서쪽 방향 도로의 끝에 대기하고 있었다. 두 사람의 주위로 10명의 병사가 두 대의 K-3를 거치하고 나머지는 소총을 들고 대기했다.
그리고 막 출발한 장갑차와 전차를 신호로 공중에서 아파치가 내리꽂히면서 미사일과 기관포탄를 날리기 시작했다.
놈들과의 거리는 약 350m, 아파치에서 날린 미사일이 폭발을 시작하자 달려가던 전차포도 불을 뿜기 시작했다.
봄비답지 않게 거친 빗속에서의 폭염은 그것대로 운치가 있었다.
일시에 쏟아지는 미사일과 포탄에 순식간에 반 정도가 가루가 난 놈들은 일제히 흩어져 달리기 시작했다.
가까스로 폭발을 피해 빠져나와 동서남북 네 방향으로 달려나간 놈들이 가장 먼저 만난 것은 전차와 장갑차의 기관총탄이었다.
어떤 놈들은 도로변의 공장건물로 들어가 보려는 듯 구멍을 찾았지만, 놈들에게 불행하게도 그쪽에는 열려있는 입구가 없었다. 오히려 열심히 달린 놈들과 달리 그런 놈들은 기관총탄에 몸이 걸레가 되어야 했다.
운 좋게도 전차와 장갑차의 옆을 빠져나온 놈들은 다시 도로의 끝에서 대기하던 병사들의 총탄을 맞아야 했다.
K-3가 불을 뿜었다. 빗속에서 예광탄이 날아가는 것이 선명하게 보였다. 병사들은 계속된 좀비와의 전투로 이제는 달려오는 놈들이 아무리 많아도 당황하지 않았다.
침착하게 가장 앞에 있는 놈들부터 총탄을 먹여 갔다.
관장이 바라보고 있는 폭 15m 정도의 도로에도 많은 놈이 달려오고 있었다. 전차와 장갑차를 빠져나온 놈들이 어림잡아 70~80은 되어 보였다.
놈들 선두와의 거리는 이제 100m도 안 되게 남았을 때 총탄에 쓰러지고 남은 놈들은 대략 30마리 정도.
병사들이 마지막으로 총탄을 퍼붓는데 관장이 급하게 소리쳤다.
“대피. 어서 피하시오!”
관장이 놈들 사이에서 앞으로 튀어나오는 까만눈을 발견한 것이다. 놈은 공장의 벽면을 박차고 공중으로 뛰어올랐다 내리기를 반복하면서 교묘하게 총탄을 피하면서 달려오고 있었다.
마치 체조선수가 공중회전하듯 공중에서 절묘하게 움직이는 모습이 감탄스럽기까지 했다.
어쩌다 맞는 몇 발의 총알은 어떤 피해도 주지 못했다.
단지 놈이 전속력으로 앞으로 달려오지 못하게 견제하는 역할밖에 하지 못하고 있었다.
병사들도 놈을 봤는지 신속하게 미리 열어둔 공장으로 달리기 시작했다. 하지만 그냥 마구잡이로 도망가는 것은 아니었다. 달리면서도 견제사격을 날리면서 까만눈 외의 일반 좀비 수를 착실히 줄여줬다.
마침내 병사들이 전부 건물 안으로 들어갔을 때 까만눈과 여덟의 일반 좀비는 관장과 홍수진의 전방 40m 지점에 도달해 있었다.
슉슉슉~
순식간에 다섯 발의 화살이 날아갔다. 세 발은 한 대에 두 놈씩의 대가리를 뚫고 날아가 공장의 벽에 박혔다. 다른 두 발도 남은 두 놈에게 각자 날아가 깔끔하게 미간을 뚫고 들어갔다.
남은 놈은 까만눈 하나. 놈이 소리를 지르며 달려오는 것을 보며 관장이 검이 뽑아 들었다.
놈의 눈동자와 같은 색의 살벌한 검. 바로 명인이 새벽에 완성한 그 검이었다.
관장은 달려나가며 기를 불어 넣었다. 검이 달라서 그런지 기는 더 쉽게 들어가는 듯했다. 그리고 빛나는 검기의 크기도 일반 검보다 더 큰 것 같이 보였다.
‘확실히 더 편해.’
관장은 기를 밀어 넣는데 답답함이 전혀 없는 검에 감탄하며 뻗어오는 놈의 손톱을 향해 검을 날려갔다.
서걱
놈의 검과 같았던 손톱 몇 개가 잘렸다. 놈은 자신의 손톱이 잘려나가자 놀랐는지 바로 몸을 뒤로 빼며 두어 발 물러나 관장을 바라보았다.
한 번에 잘릴 것이라고는 기대하지 않았던 관장도 놀랐다. 너무 놀라 놈이 뒤로 몸을 빼는데도 바로 따라붙지 않고 그 자리에 서서 놈을 바라보고 있었다.
‘이거면 된다.’
살도 한 번에 잘릴지 어떨지 모르지만 어쨌든 잘라낸다는 것은 확실했다.
검기를 씌운 일반 검으로도 잘라냈었다. 더 빠르면 빨랐지 안 될 이유는 없었다.
쐐액~
빛을 머금은 새까만 검이 엄청난 파공성을 내면서 놈을 베어갔다. 검이 내는 소리가 마치 놈들이 지르는 소리같이 섬뜩했다.
놈은 자신의 손톱을 한 번에 자른 검이 무시무시한 소리를 내며 다가오자 감히 덤비지 못하고 피하기 시작했다.
아직 남은 손톱이 더 많았지만 피하기에만 급급할 뿐 좀처럼 공격을 하지 못하고 있었다.
달려올 때부터 몸놀림이 남다르던 놈은 피하는 것도 감탄스러울 정도였다. 관장의 그 빠른 검을 비록 가까스로지만 어떻게든 피해내고 있었다.
놈은 가능한 관장과 거리를 늘리려고 도망 다녔고 관장은 그런 놈을 악착같이 따라붙었다.
그런 둘의 움직임은 보통 사람의 눈으로 따라다니기도 힘든 정도였다.
“저거 뭐냐? 검에서 빛이나.”
“무협지에 나오는 검기 같은 거 같습니다.”
“그러니까 그게 말이 되냐? 검기가 현실에 존재 하는 게 말이 되나?”
“저렇게 움직이는 건 말이 됩니까? 이미 사람 아닌 사람들입니다. 입에서 불을 쏜다고 해도 이상할 것 없습니다.”
“제기랄, 그러네.”
건물 안에 숨은 병사들은 창밖으로 보이는 영화 같은 모습에 침을 흘리고 있었다. 분명히 인간과 좀비의 싸움이었지만 인간이 인간이 아니었고, 좀비는 좀비가 아니었다.
시간이 갈수록 관장은 조바심이 났다. 검기를 유리할 수 있는 시간은 10분 남짓. 이미 5분 정도의 시간이 지났다.
그동안 놈에게 준 피해라고는 열 손가락의 손톱을 모두 잘라낸 것. 그리고 두 번의 타격으로 오른손을 잘라낸 것, 세 번의 타격으로 옆구리를 가른 것이었다.
워낙에 빨라 옆구리도 깊게는 갈라내지 못했다. 그저 가죽이 갈라지고 피가 흐르는 정도였다.
검기가 사그라지면 자신은 평상시보다 약해진다. 그러면 오히려 놈에게 당한다는 생각에 관장은 조금 더 힘을 냈다.
무리하는 것이었다. 그 상태로는 검기가 사라짐과 동시에 기진맥진할 수도 있었지만, 어차피 시간 내에 놈을 잡지 못하면 당하는 것은 마찬가지였다.
쾌액~
검의 소리는 귀신이 울부짖는 소리로 바뀌었다. 갑자기 더 빨라진 관장의 검에 놈도 놀랐는지 튕기듯 옆으로 몸을 빼는데 갑자기 그 방향에서 먼가가 굉음을 내면서 터졌다.
아스팔트 바닥을 조각내며 길이의 반이나 박혀 든 홍수진의 화살이었다. 뒤에서 보던 홍수진이 관장이 갑자기 검의 속도를 높이자 상황이 쉽지 않다는 것을 알아채고 날린 것이었다.
화살로 놈의 몸을 뚫을 수는 없지만 움직임을 방해할 수는 있었다. 그리고 옆으로 몸을 빼려던 놈은 딱 맞게 떨어지는 갑작스러운 화살에 잠시 주춤할 수밖에 없었다.
그 주춤거림은 결정적이었다. 놈의 베어진 허리를 향해 날아온 검이 정확하게 그 틈을 헤집고 들어갔다.
서걱 소리도 없었다. 그 새까만 눈을 부릅뜬 놈의 상체는 하체에서 분리되어 움직이던 방향으로 날아갔고, 하체는 그 자리에서 무너져 내렸다.
단 일 검. 미리 갈라져 있는 부위였기에 가능했지만 어쨌든 까만눈의 몸을 일검에 갈랐다. 놈이 당황하지 않았다면 안됐을 수도 있었지만, 정신이 팔린 상태에서는 가능하다는 증거였다.
관장이 손에 들고 있는 무시무시한 검을 내려다보고 있는데 갑자기 공중의 헬기가 방향을 바꿔 공장의 북서쪽으로 향하며 기관포를 쏘는 것이 보였다.
이미 미사일은 다 떨어졌는지 쏘는 것은 오직 기관포. 그리고 대피했던 병사들이 튀어나오며 소리쳤다.
“까만눈과 100여 마리가 저쪽으로 도주한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