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29
휘둘러 오는 놈의 무지막지한 손을 도끼로 쳐낸 이진성이 그 충격을 이용해 몸을 뒤로 뺐다.
빗방울을 가르며 빨래 터는 소리를 내는 놈의 무시무시한 돌려차기를 겨우 피한 나현주도 놈의 사정권에서 벗어났다.
두 사람이 물러섬과 동시에 장동건은 놈에게 연사로 총탄을 쏟아부었지만 역시나 놈의 가죽만 뚫을 뿐 피해를 주지 못했다.
“저놈이 왜 여기서 나와?”
깜짝 놀란 이진성의 의미 없는 외침에 나현주가 답을 했다.
“저 암컷. 1호 새끼를 뱄나 봐요.”
놈은 앞으로 나오지 않고 암컷을 등지고 서서 사람들과 대치했다. 장동건의 총탄도 피하지 않았다. 그저 팔 하나를 들어 눈을 가리고 있을 뿐이었다.
팔의 살은 어느덧 조금씩 파이기 시작했지만, 놈은 그다지 개의치 않았다.
놈은 사람들에 대한 공격보다 뒤의 암컷을 보호하는 것이 목적임이 분명했다.
“동건아. 탄창 얼마나 있어?”
이진성이 놈에게 달려들면서 소리쳤다. 그 모습에 나현주도 놈에게 킥을 날리며 달려들었다.
“병사들 꺼 다하면 많아요. 왜?”
“계속 쏴. 각도 확보해 줄게.”
이진성이 장동건의 사각을 방해하지 않지 놈의 왼쪽 옆으로 자리를 옮겼다. 나현주도 알아듣고서는 놈의 오른쪽에서 공격을 이어갔다.
정면으로는 장동건의 총탄, 양옆에서 이진성과 나현주의 무시무시한 공격이 이어지자 놈은 제대로 된 공격을 하지 못하고 피하고 방어에만 급급했다.
그렇게 되자 놈의 뒤에 있던 암컷도 공격해 오기 시작했다. 1호에 공격이 들어가면 암컷이 이진성이나 나현주 둘 중 하나를 공격해 왔고 그러면 그 사람은 공격을 멈추고 암컷을 방어해야 했다.
그럼 다시 1호의 공격이 들어오고 또 누군가 방어하고 공격하면서 상황은 점점 난전으로 흘러가고 있었다.
난전이 되면 장동건이 견제사격을 하기 힘들어진다는 생각에 나현주가 외쳤다.
“거리 벌려요.”
나현주가 암컷에게 공격을 퍼부으며 한쪽으로 밀어붙였다. 그런 나현주에게 공격해 들어가는 1호에게 이진성이 도끼를 찍어가며 방해하고는 나현주와 반대쪽으로 놈을 밀어붙였다.
두 개의 1:1 싸움이 되면서 각자의 거리가 슬슬 벌어지기 시작했다. 동시에 장동건은 양쪽으로 정신없이 총구를 돌리며 견제 사격을 날렸다.
암컷은 등과 가슴이 갈리지고 왼팔을 쓸 수 없음에도 나현주의 주먹과 발을 잘 막아갔다. 그래도 밀리는 것은 어쩔 수 없어 1호와 점점 거리는 벌어져만 갔다.
그 모습에 1호도 어떻게든 암컷에게 다가가려 하는지 이진성에 대한 공격에 집중하지 못했다. 덕분에 이진성은 더 쉽게 공격해 나갔고 그것이 다시 둘의 거리를 벌리는 요인이 되었다.
넓지 않은 분지의 두 곳에서 펼쳐지는 살벌한 싸움은 쏟아지는 빗속에서도 후끈한 열기를 발산하고 있었다.
특히 1호와 이진성의 싸움은 두렵기까지 했다. 둘의 주먹과 발, 그리고 이진성의 도끼에 스치는 빗방울은 그대로 흩날려서 안개를 만들었다. 시간이 지날수록 그 안개는 둘을 감싸며 점점 짙어지기까지 했다.
양쪽에서 끊임없이 이어지는 쇳소리와 암컷 쪽에서 간간이 터지는 둔탁한 소리에 장동건의 총성이 더하면서 분지 안은 소음으로 가득했다.
장동건은 초집중 상태였다. 빠르게 움직이는 이진성과 나현주가 의식적으로 사각을 만들어 주고 있었지만, 그렇다고 항상 기회가 나오는 것도 아니었다.
물론 두 사람에게 오발을 날리지는 않았지만 워낙에 빠른 몸놀림이 문제였다. 혹시나 총알이 총구를 떠나 날아가는 동안 사선 안으로 들어가지나 않을까 걱정이 안 되는 것은 아니었다.
양쪽 모두를 시선에 담으면서 한발 한발을 정성을 다해 날렸다. 총알은 피해를 주기 위한 것이 아닌 놈들의 동작을 방해하기 위함으로 바뀌어 있었다.
번개같이 상대를 찍어가는 놈들 손의 동선으로 총탄을 날렸다. 놈들의 발이 움직이면 그 발을 향해 탄을 날렸고 몸을 빼려고 하면 그 방향으로 날렸다.
생각하며 날릴 여유는 없었다. 무의식 속에서 눈에 보이는 대로 겨냥하던 그의 총구는 어느 사이에 놈들의 움직임을 앞서가기 시작했다.
놈들의 움직임이 워낙에 빨라 따라가며 쏘는 것은 효율이 낮았다. 손의 궤적을 따라가다 보면 아무리 장동건이라도 명중시키지 못하는 경우가 많았다. 발도 마찬가지였다. 몸통은 그나마 조금 나았지만 몇 발은 흙벽에 날아가 꽂히기도 했었다.
그러던 어느 순간 이후 발사의 빈도가 줄어들기 시작하면서 명중률이 올라갔다. 장동건이 무아지경에 빠지면서부터였다.
그가 날리는 총알은 주먹을 쫓아가는 것이 아닌 주먹이 갈 곳을 향하기 시작했다. 무릎의 움직임으로 발의 궤적을 선점했고 허리의 움직임으로 상체가 향할 곳을 판단했다.
총탄이 놈들의 손발을 때리는 것이 아니라 마치 공중에 미리 와있는 총탄을 놈들의 손발이 때리는 것 같았다. 그러면서 놈들의 움직임은 점점 더 산만해지고 그만큼 이진성과 나현주에게 기회가 더 오고 있었다.
두 사람은 그런 변화의 원인은 알 수 없었지만, 상황은 적극적으로 활용했다. 공격은 더욱더 매서워지고 빨라졌으며 장동건은 그럴수록 더욱 정교한 사격을 해야 했다.
장동건은 그러한 모든 상황을 전혀 인지하지 못하고 있었다. 완벽한 무의식의 세계에 빠진 그는 그저 한발 한발을 기계적으로 날리고 있을 뿐이었다.
그의 눈에는 놈들이 움직여 갈 동선이 어떤 빛과 같이 보였다. 그리고 그것이 플래시 터지듯 번쩍하면 그의 손가락이 자동으로 방아쇠를 당기는 것이었다.
이진성과 나현주의 동선과 겹치지 않으면서 결정적으로 놈들의 손과 발을 방해하는 포인트로 적시에 날아가는 총알이었다.
암컷의 손을 걷어내면서 놈의 배로 킥을 날리던 나현주는 그녀의 디딤발을 차오는 놈의 발을 보았다.
놈의 배를 차면 자신도 중심을 잃을 수밖에 없는 상황, 타격이 약해져도 점프해서 놈의 발을 피해야 했다.
점프를 위해 디딤발의 무릎을 꺾으며 힘을 주는 바로 그 순간, 탕 소리와 함께 놈의 발이 공중에서 멈칫했고 놈의 발톱 하나가 부러져 날아갔다.
그 모습을 보며 나현주는 날아가는 다리에 다시 무게를 더했고 놈의 배에서는 깡 소리가 아닌 퍽 소리가 나면서 물컹한 느낌이 전해져 왔다.
놈은 이번 타격은 충격이 컸는지 배를 잡고서 뒤로 급격하게 물러났다.
그런 놈을 놓일 나현주가 아니었다. 바로 따라붙으며 찢어진 가슴에 손날을 꽂아 넣었고 공중에서 허벅지 옆구리 목으로 킥을 꽂아 넣었다.
부러진 왼팔로 배를 감싸고 오른팔로만 나현주의 공격을 막아가던 놈은 급기야 흙벽에 등을 부딪히고는 더 갈 곳이 없는 곳까지 밀렸다.
그 모습에 1호는 발악을 했지만, 이진성은 그런 놈을 잘 막고 있었다.
어느덧 1호의 몸에도 몇 개의 도끼 자국이 나 있었다. 총탄에 상했던 가죽은 도끼로 길게 갈라져 제법 피를 흘렸고 놈의 오른쪽 어깨는 갈라져 오른팔의 움직임이 왼팔만큼만 민첩하지 못했다.
1호가 나타나고 약 5분, 이진성과 1호가 1:1로 격돌한 지 약 약 3분 정도의 시간 동안 이뤄낸 성과였다.
장동건의 적절한 견제가 있었지만, 이진성은 그전과 달라져 있는 자신의 모습에 놀라며 점점 자신감을 가져가고 있었다.
‘저번에 붙었을 때 보다 1호도 더 발전해 있다. 하지만 난 그보다 더 많이 발전했다.’
확실히 이진성은 1호보다 유리하게 싸움을 끌고 가고 있었다. 조금만 더 밀어붙이면 혼자서 잡을 수도 있을 것 같다는 마음에 다시 몸속 깊은 곳에서부터 힘을 끌어 올렸다.
정신없는 격돌이 이어지길 몇 십초, 그 짧은 시간에 몇백 번의 공방이 이어지고 다시 한번 퍽 소리와 함께 놈의 옆구리에서 피가 튀었다.
하지만 이진성은 공격을 이어가지 못하고 몸을 빼면서 주위를 둘러봐야 했다.
뒤에는 장동건과 세 명의 병사. 그리고 사방에서 자신들을 향해 빠른 속도로 다가오는 좀비들의 냄새. 어림잡아 300에 가까운 놈들이 이미 100m 이내에 들어와 있었다.
놈들이 도달하기까지 넉넉잡아도 20초 정도. 이진성은 뒤의 사람들에게 소리쳤다.
“놈들 몰려와요. 사격 준비!”
그 짧은 시간에 공격해오는 1호를 방어하며 다시 놈과 드잡이질을 시작한 이진성은 마음이 급해졌다. 놈들이 들이닥치면 어려워진다는 마음에 더욱 힘을 쏟았지만 그렇다고 그 짧은 시간 안에 쉽게 당할 놈이 아니었다.
나현주의 사정은 이진성보다는 조금 나았다. 암컷의 왼팔은 팔꿈치 아래가 뜯겨 사라지고 없었다. 나현주가 잡아 뜯어 버린 것이었다.
나현주는 뜯어버린 놈의 팔을 왼손에 잡고 무기로 쓰고 있었다. 놈의 날카로운 손톱은 좋은 무기였다.
대부분 경우 깊은 상처를 주지는 못했지만 그래도 몇 군데에서는 제법 많은 출혈을 하고 있었다.
하지만 그런 나현주도 갑자기 언덕 위에서 쏟아져 내려오는 좀비 떼에 아쉽게도 뒤로 물러날 수밖에 없었다.
흙벽 위에서 미끄러져 내려온 놈들이 금방 분지를 가득 메웠다. 이진성 일행이 놈들을 쫓아 왔던 분지의 입구로도 놈들은 밀려왔다.
세 명의 병사는 뒤돌아서서 밀려오는 놈들에게 총알을 먹이기 시작했지만, 점점 장동건에게 모여들 수밖에 없었다.
거리가 가깝고 놈들의 밀도가 높은 덕에 웬만큼 잡아 나가고 있었지만 그래도 그들은 위태위태했다.
반면에 무아지경의 장동건도 여전히 무표정한 눈으로 사방으로 총탄을 날리면서 효과적으로 놈들을 제거해 나갔다.
한 발에 최소한 한 놈. 관통한 총알이 다른 놈의 대가리를 뚫고 들어가면 한 발로 두 놈도 잡는 장동건이었다.
알고 하는 것인지 모르고 하는 것인지 알 수 없었지만, 장동건은 어느새 병사들을 엄호하면서 자신들에게 모여드는 놈들을 줄여가고 있었다.
그 와중에 분지에 가득 들어찬 놈들은 이진성과 나현주를 완전히 에워싼 채 까만눈과 협공을 해와 두 사람을 곤란하게 만들었다.
놈들은 이진성과 나현주에게 몸을 날리며 무모한 공격을 해 왔고, 이진성과 나현주는 그런 놈들을 잡으면서 까만눈의 공격을 방어해야 했다.
놈들이 조금만 더 체계적인 공격을 했다면 어쩌면 당할 수도 있다는 생각을 하는 이진성과 나현주였다.
무모한 공격은 오히려 까만눈의 공격을 방해했고 그 덕에 오히려 이진성과 나현주는 위험한 순간을 모면하고 있었다.
그렇다고 두 사람이 멀쩡한 것도 아니었다. 손톱에 수십 군데를 뜯긴 것은 물론이고 나현주는 오른쪽 무릎을, 이진성은 외팔 팔꿈치를 다쳐 있었다.
그런 두 사람의 귀에 병사 한 명의 비명이 들렸다. 결국 놈들의 손과 입을 피하지 못한 것이다.
그리고 이어지는 다른 두 명의 비명. 하지만 둘은 자신들을 둘러싼 놈들 때문에 어쩌지 못하고 그 자리에서 놈들의 숫자를 줄일 뿐이었다.
그렇게 다시 아슬아슬한 시간이 흘렀다. 이진성과 나현주 주위에 남은 것들이 50이 안 남았을 때였다.
장동건의 주위로도 30정도. 장동건이 다시 하나의 탄창을 갈아 끼는 순간이었다.
놈들의 뒤쪽 진입로에서 피바람이 불기 시작했다. 뿜어지는 피와 사방으로 날아가는 좀비의 팔다리 사이에서 관장이 그 새까만 검을 날리고 있었다.
검기는 맺혀있지 않았다. 보통의 좀비들은 검 자체의 날카로움만으로도 너무도 깨끗하게 잘려나갔다.
장동건의 총탄과 관장의 검은 순식간에 놈들을 제거하고 이진성과 나현주 주위의 놈들에게 향했다.
어느새 하나로 뭉쳐진 1호와 암컷, 그리고 남은 20여 마리는 날아오는 총알과 관장의 검이 가세하자 순식간에 녹아내렸다.
관장은 이진성과 나현주의 상태가 좋지 않음을 한눈에 파악했다. 즉시 검에 기를 밀어 넣으며 마지막 두 보통 좀비를 일격에 가르고 소리쳤다.
“견제만 해 주시오.”
뒤에서 갑자기 들리는 관장의 목소리에 두 사람이 한발 물러섰다. 그 공간으로 순식간에 파고든 관장이 1호와 격돌해 갔다.
1호는 암컷을 뒤로 물리고 관장에게 달려들었다.
이진성과 나현주가 암컷에게 붙으려 했지만 파고들 공간이 나오지 않았다.
장동건도 총탄을 날렸지만 1호의 공격을 방해하는 정도였다.
관장은 계속 달려오느라 힘을 비축하지 못했다. 검기를 쓸 시간이 길지 않다는 것을 알았다. 최대한 몰아쳐 빨리 끝내야 했다.
점점 검이 빨라졌다. 검기의 빛이 빗방울에 반사되어 검의 궤적에 잔상이 남았다. 그 잔상이 점점 늘어나더니 어느덧 관장은 빛의 구 안에 들어가 있었다.
시간은 흘러 어느덧 빛이 희미해지기 시작했다. 그리고 마침내 검기의 빛이 거의 없어지는 순간이었다.
서걱~
무엇인가 잘리는 소리가 들리며 관장과 1호가 몸을 뒤로 튕겼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