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30
저격의 신
“으윽.”
관장은 갈라진 가슴을 부여잡고 뒷걸음질 쳤다. 놈의 손톱에 베인 것이다. 가까스로 뼈가 갈라지는 것은 피했지만, 살이 갈라진 네 줄기의 깊은 고랑에서는 상당한 피가 흘러나와 앞섶을 적셔가고 있었다.
1호는 왼팔이 깊게 갈라져 있었다. 어깨부터 손목까지 이어진 검상은 근육을 완전히 가르고 뼈까지 반 정도 갈라질 정도였다.
그리고 그 끝에는 덜렁거리는 놈의 손이 달려 있었다. 뼈는 잘렸지만, 살은 완전히 잘리지 않은 것이었다.
놈의 행동은 신속했다. 뒤로 물러남과 동시에 암컷을 다친 팔로 감싸고 분지의 입구로 달리기 시작했다.
난전 중에 분지 안쪽으로 이미 들어와 있던 이진성과 나현주는 놈을 막기에는 마땅치 않은 위치였다. 더군다나 튕겨 나온 관장을 받아서 출혈을 먼저 살펴야 했다.
한쪽 구석에서 나무를 등지고 가까스로 살아남은 장진도 놈들을 어떻게 할 수 없었다.
분지 입구에 버티고 선 사람은 장동건 하나. 달려오는 두 놈에게 총알을 날렸다.
왼팔이 떨어지고 상처투성이인 암컷은 1호에게 철저히 보호되면서 사각이 안 나왔다. 그저 1호에게만 집중사격 할 뿐이었다.
놈은 오른팔로 다시 눈을 가리고 전속력으로 달려 나왔다. 두 놈이 장동건의 위치까지 도달하는 것은 순식간이었다.
이진성과 나현주가 관장을 받았을 때, 1호가 장동건에게 몸을 날리고 있었다.
드르르륵~
장동건은 몸을 빼면서 연사로 바꾸고 갈겼다. 놈의 방어력이 약해졌는지 총탄에 튀는 피의 양이 보통 때 보다는 조금 많은 듯 했다.
공중에서 뻗어오는 놈의 오른 손톱을 장동건은 총을 뻗어 막아갔다. 그 사이 암컷은 둘 사이를 지나쳐 분지 입구로 빠지는 중이었다.
깡~
총과 놈의 손이 공중에서 부딪쳤다. 장동건은 놈의 파워를 이기지 못하고 날아가는 총을 간신히 부여잡으며 옆으로 밀려났다.
놈이 다시 공격한다면 꼼짝없이 당할 수밖에 없는 상황. 하지만 놈은 그런 장동건을 두고 암컷을 향해 달리는 것을 택했다.
관장의 상처를 살피던 이진성이 놈들을 쫓기 위해 몸을 일으켰다. 무릎을 다친 나현주는 추적보다는 관장의 지혈을 맡았다.
이진성이 왼팔을 다치기는 했지만, 놈은 왼팔에 더 큰 부상을 입었다. 할만하다고 마음으로 놈이 달리는 방향으로 달려나가는데 구석으로 밀려갔던 장동건이 달리기 시작했다.
“동건아. 여기 있어.”
어차피 제대로 먹히지도 않는 총알을 뒤에서 따라가며 쏴봐야 피해도 주지 못한다는 생각에 이진성이 외쳤다. 하지만 장동건은 들었는지 못 들었는지 그 목소리를 무시하고 앞으로 쭉쭉 뻗어 나갔다.
“저거…….”
어쩌다 한번씩 장동건이 위기에 빠졌을 때 나오는 초스피드 상태였다. 나무를 헤치고 나가느라 직선으로 달릴 때보다는 늦었다. 하지만 분명하게 평상시보다 빨랐다.
“오래 못 갈 텐데, 저 상태로.”
장동건이 초스피드로 달리는 것을 몇 번 본 이진성이었다. 그때마다 잠깐잠깐이었지 길게 간 적은 없었다.
1호는 암컷을 데리고 잘 달렸다. 1호가 빠른 것은 알고 있었는데 암컷도 그게 못지않았다. 비록 중상을 입었음에도 다리는 멀쩡했는지 둘은 빠른 속도로 숲속으로 사라지고 있었다.
그런 둘을 장동건도 못지않은 속도로 따라 달렸다. 작지 않은 바위는 뛰어넘어 버렸다. 급하게 방향을 틀 때는 나무를 박차면서 방향을 꺾고 속도를 유지했다.
언덕을 껑충껑충 뛰어오르고 폭 몇 미터의 계곡 따위는 뛰어서 건넜다.
험한 산속을 그렇게 달리기를 몇 분. 이진성과 장동건의 거리는 점차 벌어졌다. 그리고 다시 일이 분이 지나지 않아 장동건은 이진성의 시야에서 사라졌다.
“저놈, 이상한데…….”
너무 오래 초스피드를 유지하는 장동건이 혹시나 퍼져버릴까 걱정이 되는 이진성이지만 이미 놓쳐버린 그를 어떻게 할 방법이 없었다.
간간이 총성은 울려왔다. 장동건이 쏘는 총이 분명했다. 하지만 숲속에서 들려오는 총성은 방향을 가늠하기 어려웠다.
어쩌지도 못하고 두 까만눈과 장동건이 사라진 방향을 바라만 보고 있던 이진성의 귀에 뒤에서 누군가 달려오는 소리가 들렸다.
“이 지사님.”
외치는 목소리는 장진이었다. 돌아보는 이진성을 향해 장진은 다람쥐처럼 달려오고 있었다.
비록 장동건의 초스피드처럼 빠르지는 않았지만, 산속의 지형지물을 이용해 고무공처럼 탄력 있게 통통거리며 달리는 그는 별로 힘도 들이지 않고 언덕을 오르고 있었다.
“왜 여기 이러고 있습니까?”
다가와 묻는 장진에게 이진성이 장동건이 사라진 방향을 가리키며 말했다.
“너무 빨라서 놓쳤어요. 저 지점에서요.”
이진성이 있는 곳까지 흔적으로 찾아온 장진이었다. 그는 후다닥 이진성이 가리킨 곳으로 가서 바닥을 잠시 살폈다.
“동건이가 좀 이상해요. 폭주상태 아닌가 싶어요. 저러다 아무도 없는 데서 쓰러지면 그냥 당하는데…….”
이진성의 말에 장진은 계속 바닥을 살피며 대답했다.
“그게 아까 밑에서부터 이상했습니다. 사격하는데 눈에 초점이 없는 것 같았습니다. 마치 정신이 나간 듯한 그런…….”
가슴이 덜컥한 이진성이 조바심을 내는데 장진이 고개를 들었다.
“이쪽입니다.”
* * *
장동건은 계곡을 흐르는 작은 개울을 거슬러 오르고 있었다. 비가 와서 물이 분 개울의 물살은 제법 빠르고 거칠었다.
그런 개울을 첨벙거리며 달려 올라가는 그의 앞 40m 정도에 1호와 암컷이 또 달리고 있었다.
산속의 작은 개울이라 폭이 넓지도 않았고 양옆은 경사가 가팔랐다. 도주하는데 급급했던 놈들은 한번 계곡에 들어와서는 그런 지형 때문에 벗어나지 못하고 계속 상류로 올라가고 있었던 것이다.
개울은 수시로 꺾여 장동건의 시야에서 놈들은 계속 사라졌지만 벗어나지 못하는 덕분에 그는 놈들을 놓치지 않을 수 있었다.
장동건은 추격하는 동안 벌써 두 개의 탄창을 썼다. 다시 하나를 버리면서 새 탄창을 끼워 넣었다.
남은 것은 하나. 좋지 않은 상황이었지만 장동건은 인식하지 못하고 있었다.
1호도 자신과 암컷의 부상 때문인지 뒤에서 따라오는 사람이 하나임에도 공격하지 않고 도망만 칠 뿐이었다.
정신도 없고 총알도 없는 장동건에게는 여간 다행인 일이 아니었다.
계곡을 거의 올랐는지 폭이 급속히 좁아졌다. 그에 따라 양옆의 둔덕도 급격히 낮아지고 수심도 얕아졌다.
다시 몇 발을 총알을 날리고 시야에서 사라진 두 놈을 따라 방향을 튼 장동건은 멈칫하고 그 자리에 서야 했다.
갑자기 나온 좌우의 평탄한 숲. 놈들이 어디로 갔는지 보이지 않았다.
팔꿈치 아래가 뜯겨나간 암컷과 손이 거의 달린 1호가 흘린 피가 분명히 있어야 하는데 보이지 않았다.
그 사이에 빗물에 씻겨나간 것인지, 아니면 벌써 지혈이 된 것인지, 그도 아니면 장동건이 못 찾는 것인지 하여간 보이지 않았다.
잠시 멍하고 있던 장동건은 갑자기 밀려오는 극심한 근육통에 몸을 구부렸다.
으윽
터져 나오는 신음을 억지로 삼키는 그의 등은 새우처럼 굽었고 다리는 사정없이 떨리기 시작했다.
아아악~
마침내 고통을 참지 못하고 비명을 토해낸 장동건의 눈에는 점차 초점이 돌아오고 있었다. 그리고 초점과 함께 정신도 드는지 고통을 이기지 못하고 땅바닥을 굴러야 했다.
빗물과 함께 땀을 줄줄 흘리며 바닥을 구르던 그는 3분 정도가 지나서야 일어설 수 있었다.
“여기가 어디야?”
비록 정신이 없었지만 자기가 왜 그곳에 있는지는 알고 있었다. 놈들을 쫓아왔고 결국 놓친 것은 기억이 났다.
그런데 문제는 어딘지 모른다는 것이었다. 헤드셋을 확인하는데 언제 없어졌는지 전투 조끼에 달려 있어야 할 송수신기가 없었다.
“이건 언제?”
송수신기가 들었던 조끼의 주머니는 열려있었다. 전투 중에는 떨어졌는지 달리다 떨어졌는지 알 수는 없었지만 어쨌든 없었다.
“씨발. 고립된 거네.”
어딘지도 모르는 숲속에서 통신도 안 된다. 그리고 1호와 암컷이 어디에 있는지도 모른다. 장동건은 빨리 안전한 곳으로 이동해야 했다.
으악~
걷는데 다리에서 극심한 통증이 느껴졌다. 근육이 움직일라치면 밀려오는 고통에 몇 번을 주저앉았다.
마치 불에 달군 칼로 쑤시면 이럴까 싶은 고통에 식은땀을 흘리며 장동건은 멀리 가는 것을 포기했다.
자신이 있는 곳에서 왼쪽으로 울창한 관목 숲, 아래로는 돌밭, 오른쪽은 나무가 듬성듬성한 산등성이였다.
장동건은 일단 왼쪽의 관목 숲으로 향했다. 산등성이를 오를 상태가 아니었고 돌밭을 내려가는 것도 무리였다.
크지 않은 나무 사이에라도 일단은 숨는 게 우선이었다.
장동건은 이를 악물고 기었다. 걷기에는 너무 아팠다. 다리는 축 늘어뜨린 채 포복으로 팔로 몸을 끌었다. 그래도 다리에서 느껴지는 고통은 엄청났다.
죽을 것 같은 고통을 참으며 나무를 헤치고 기어가기를 10여 분, 어느새 나무들이 끝나고 돌벽이 나왔다. 그리고 그 돌벽에는 기적적으로 작은 틈이 있었다.
사람 하나 들어가기에 딱 적당한 폭의 틈은 깊이 2m 정도였다.
장동건은 약간은 덜해진 고통을 참으며 살살 기어 틈 안으로 들어가 정면을 보고 앉았다. 1호가 온다면 정면으로 들어올 수밖에 없는, 그것도 똑바로 서서는 못 들어올 작은 공간이었다. 더군다나 비까지 피할 수 있으니 최적의 장소였다.
* * *
장진은 비교적 선명한 흔적을 쫓아 장동건과 두 놈이 간 곳을 잘 찾아갔다.
비에 씻겨 희미한 핏자국을 찾아냈고 돌에 묻은 군화의 진흙 자국을 읽어냈다.
간혹 흔적이 끊겼지만, 마지막 발자국의 방향과 지형을 살피며 몇 분 만에 다시 흔적을 찾아내기도 했다.
그러던 그가 한 계곡에 이르러 입술을 잘근잘근 씹고 있었다.
“여기서는 흔적이 없습니다.”
이미 계곡 주위를 다 살피고 온 그였다. 이제 남은 곳은 계곡을 따라 올라가거나 내려가는 것. 둘 중 하나를 선택해야 했다.
잘못된 선택을 하면 시간만 낭비하고 장동건이 죽을 수 있다는 생각에 어쩌지 못하고 있는 것이었다.
“어느 쪽 같습니까?”
이진성이 장진의 의견을 물었다. 추적술을 체계적으로 배운 그였다. 그의 결정에 따라야 했다.
“전 위쪽을 택하고 싶습니다.”
“왜요?”
잠시 다시 생각하던 장진이 설명했다.
“좀비가 어떨지는 자신이 없지만, 본능으로만 움직인다면 도주하는 과정에서 더 깊은 숲으로 들어가기 마련입니다. 보시면 아래로는 점점 넓어지고 완만해집니다. 위는 계곡의 깊이가 점점 깊어지고요.”
장진의 말대로였다. 상류 쪽으로는 계곡을 감싸는 양쪽의 벽이 점차로 각도가 가팔라지고 나무가 더 많았다.
반면에 아래쪽으로는 계곡이 넓어지면서 좌우 경사도 완만하고 그 옆으로는 큰 나무들이 성기게 서 있었다.
“그럼 위로 가시죠.”
이진성은 불안한 마음을 감추고 앞장서 위로 향했다. 물이 불어 미끄럽고 오르기 힘들었지만 빨리 장동건을 찾아야 했다.
장진은 그 모습을 보고 앞으로 나서며 이진성이 더 편하게 발 디딜 곳을 찾아 알려줬다.
장진은 서두르지 않았다. 이진성의 마음이 급한 것은 알지만 자신이 서두르다 작은 흔적이라도 놓치면 그게 더 큰 일 이었다.
계곡 양쪽 벽에 혹시라도 남은 흔적이 있는지 세밀하게 살피고 또 살폈다. 그렇게 오르기를 10분쯤. 그의 눈에 계곡 벽 흙에 박힌 금속물체가 들어왔다.
“탄창입니다.”
달려든 그가 뽑아 든 것은 분명한 소총 탄창이었다. 진흙에 반 정도 박혀 있던 그것은 장동건이 그곳으로 지나갔다는 증거였다.
“여기까지는 맞게 왔습니다. 지형을 보시면 양쪽이 가팔라서 도망치는 놈들이 그쪽으로 가지는 않았을 것 같습니다. 이대로 쭉 올라가면 되겠습니다.”
최소한 방향은 맞았다. 이진성 마음의 불안함이 어느 정도 가셨다. 더 위에서 안 좋은 일이 생겼을 수도 있지만 일단은 가깝게 가고 있다는 생각에 얼굴도 많이 펴졌다.
“조금 빨리 가도 되겠습니다.”
장진은 속도를 조금 올렸다. 양쪽 어딘가로 놈들이 빠져나갈 만한 곳이 나올 때까지는 어차피 계곡을 따라가야 한다. 그런데 일단 눈에 보이는 곳에는 그런 곳이 없었다.
그래도 주위를 흩트리지 않고 집중해서 양쪽 벽을 살피던 그가 다시 하나의 탄창을 찾아냈다.
그곳에서 올려다본 산 정상은 크게 멀지 않았다. 계곡은 정상 밑 어딘가에서 끝날 것이고 셋이 계속 계곡을 따라갔다면 그곳 어디에서 다시 어디론가 갔을 것이다.
“서두르는 게 좋겠습니다.”
장진의 말과 함께 둘은 돌을 박차고 달려 오르기 시작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