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좀비 에이지 백수 생존기-131화 (131/145)

# 131

장동건은 여전히 식은땀을 흘리며 호흡을 몰아쉬고 있었다. 다리의 근육이 다 찢어졌는지 조금만 힘이 들어가도 밀려오는 통증에 치를 떨었다.

겨우겨우 몸을 돌려 정면을 보고 있지만, 돌 틈에 기대앉은 자세는 불편하기만 했다. 삐죽 튀어나온 돌은 등을 찔렀고 경사진 바닥은 허리를 바로 펴지 못하게 만들었다.

몸을 움직이지 않으려고 해도 저절로 조금씩 움직이는 몸은 한 번씩 화끈한 통증을 선사해 주고 있었다.

‘열네 발? 그동안 이렇게 많이 쓴 거야?’

탄창을 뽑아 들고 무게만으로 남은 탄알의 양을 가늠한 장동건은 고작 열네 발밖에 남지 않은 탄알에 한숨을 내쉬었다.

언제 움직일지 모르는 다리였다. 그 다리가 어느 정도라도 움직일 때까지는 그 탄알로 버텨야 하는데 너무 적었다.

그나마 틈이 좁아 온다 해도 팔을 앞으로 뻗는 것밖에는 방법이 없다는 게 다행이었다.

‘놈이 오기 전에 정신이라도 잃으면 큰일인데.’

끔찍한 통증 속에서 눈이 자꾸 내리깔기는 장동건이었다. 한 번씩 몰아치는 통증 덕에 감기던 눈이 떠지기는 했지만, 눈꺼풀은 점점 더 무거워만 갔다.

동시에 장동건의 다리에는 점점 마비가 오면서 통증도 약간씩 덜해지고 있었지만, 그는 아직 인식하지 못하고 있었다.

“정신 차려. 눈 감으면 죽어!”

자기 자신에게 소리치며 내리누르는 눈꺼풀을 억지로 치켜뜨고 어떻게든 정신을 유지하려 했다.

안되면 한 번씩 일부러 다리에 힘을 주거나 몸을 움직거렸다. 그때마다 화끈한 통증이 온몸을 훑고 지나가기는 했지만, 그때뿐이었다. 통증이 가시면 또 눈은 감겨왔다.

“씨불. 무전만 됐어도.”

언제 송수신기가 도망갔는지 곰곰이 생각해 봤지만 떠오르는 것이 없었다.

기억나는 것은 자신이 정신없이 놈을 쫓아 온 것, 정신을 차리니 알 수 없는 장소에 서 있던 것과 거기서 지금의 돌 틈까지 온 것뿐이었다.

그 이전 기억은 분지에서 1호와 암컷을 상대로 싸우는 이진성과 나현주를 도와 견제사격을 한 것까지였다.

그는 자신이 무아지경 속에서 뭘 어떻게 했었는지도 기억하지 못했고 수백의 좀비들이 몰려왔던 것도 알지 못했다. 물론 관장이 왔었던 것도 뇌리에 없었다.

몽롱해 가는 정신을 억지로 부여잡기 위해 장동건은 계속 생각했다. 분지에서 있었던 일을 생각하며 기억나지 않는 부분을 떠올리기 위해 안간힘을 다했다.

‘두 사람을 혹시나 맞출까 봐 엄청 긴장했었는데...’

총알이 고작 몇 십 미터를 날아가는 동안 두 사람이 궤적 안으로 들어갈까 신경 쓰며 사격했던 것이 기억났다.

‘놈들 손발을 맞춰서 움직임을 방해하려고 했었어.’

양쪽으로 갈라져 있는 이진성과 나현주를 번갈아 보며 놈들을 방해했던 것도 기억에 있었다. 두 사람을 향해 날아가는 놈들의 손과 발을 쏘았고 위치를 바꾸려는 놈들의 몸을 쏘았었다.

‘손톱을 맞추려고 했는데 손등에 맞고 그랬어. 그래서 조금 앞을 조준했었던 것 같은데.”

그 이후는 기억이 사라진 부분이었다. 장동건은 기억의 희미해지는 부분부터 생각해 내려 모든 정신을 집중했다.

‘어? 그러고 보니 어느 순간부터 두 사람의 모습이 한 번에 보였던 거 같네?’

기억하는 범위에서는 양쪽을 번갈아 보며 견제했었다. 그런데 자신의 기억이 희미해지는 부분에서 떠오르는 모습은 마치 둘 모두를 한 번에 보는 것 같았다.

자신의 시선이 어디로 향한 것인지 알 수 없었다. 뇌리에 남아 있는 영상은 그냥 전체를 관조하고 있는 것이었다.

‘발사 빈도가 줄었었나?’

희미한 기억 부분이 조금은 선명해 지면서 자신의 사격 속도가 점차로 줄었던 것도 알게 되었다.

‘그리고 이 터무니없는 오조준은 뭐지?’

자신이 어느 순간부터 놈들 손발이 아닌 공중을 조준했던 것이 보였다. 기억한다기 보다는 보인다고 하는 것이 맞았다.

그가 보는 모습에는 놈들 손발이 움직이며 만드는 궤적에 잔상이 남아있었고 앞으로 움직일 길이 어떤 빛과 같은 것으로 그려져 있었다.

그리고 장동건은 그 빛의 어느 포인트를 조준해서 쏘는 자신의 모습을 볼 수 있었다.

그리고 그 포인트를 향해 날아갈 총알의 궤적까지 그려져 있었다.

‘뭐야, 이건?’

장동건은 떠오르는 기억이 맞는지 틀렸는지 알 수 없어 혼란스러웠다. 현실에 있을 수 없는 모습이었다.

‘그냥 그런 느낌이 들었던 거겠지. 그게 지금 이런 식으로 기억나는 거고.’

타겟이 움직일 동선이 그려지고 사격 포인트가 보이는 것도 말이 안 됐지만, 총알이 날아갈 궤적이 보이는 것도 터무니없었다.

물론 장동건은 목표물에 명중시키기 위해 어떻게 쏘아야 할지 그전부터 느끼고 있었지만, 탄이 날아갈 궤적이 보이는 것은 아니었다.

그런데 기억 속에는 분명한 탄두의 궤적이 있었다. 그것도 바람과 빗방울에 영향을 받은 그런 궤적이.

‘뭐 이런 터무니없는...’

기억인지 꿈인지 알 수 없는 그것에 스스로 피식한 장동건이 그 후 일어난 일을 기억하려 노력했지만 좀처럼 떠오르는 것은 없었다.

그래도 감기는 눈을 치켜뜨고 몽롱해지는 의식을 부여잡기 위해 생각을 이어갔다. 기억이 떠오른 부분까지만이라도 되짚고 또 되짚어 나갔다.

그럴수록 꿈같은 기억의 장면이 실제 같아졌지만 신경 쓰지 않았다. 그저 뭐든 생각하면서 정신을 유지할 뿐이었다.

그러면서 장동건은 자신도 모르는 횡재를 하고 있었다. 눈으로 쫓아가지 못할 정도로 움직이는 놈들의 손발을 어떻게 맞출지 무의식 속에서 감을 잡아가고 있었던 것이다.

탕~

부스럭거리는 소리와 함께 깊은 생각에 잠겨 있던 장동건이 총알 한 발을 날렸다. 총을 쏘느라 힘이 들어간 몸에는 다시 한번 죽을 것 같은 고통이 밀려왔다.

고통 속에서 숨죽이고 전방을 주시하는 장동건에게 더 이상의 기척은 느껴지지 않았다.

‘짐승인가?’

자신이 쏜 것이 멧돼지였고, 무의식중에 반사적으로 날린 총알이 돼지의 두개골을 부수고 끽소리 못하게 즉사시킨 것임을 알지 못하는 장동건은 계속되는 빗소리만을 들으면 전방을 주시하고 있었다.

그리고 그 총소리는 장진과 이진성에게 들렸을 뿐만 아니라 암컷과 함께 은신하고 있던 1호에게도 들렸음을 장동건은 알지 못했다.

* * *

얼마의 시간이 지났을까 알지 못한 채 생각에 잠겨 있던 장동건에게 소리가 들려왔다. 관목을 헤치고 뭔가가 다가오는 소리였다.

소리의 방향은 돌 틈으로 보이는 정면에서 약간 벗어난 곳. 사각이 나오지 않는 곳이었다.

‘온 건가?’

기다리던 장동건의 눈에 무언가 빠르게 돌틈 앞을 지나는 것이 보였다. 비와 관목을 뚫고 순식간에 지나가는 그것을 향해 방아쇠를 당겼지만 맞지 않았는지 별다른 소리가 들리지 않았다.

돌틈의 폭은 겨우 어깨너비 정도. 놈이 지나치면서 보이는 시간이 너무 짧았다.

‘보고 쏘면 늦는다.’

장동건은 소리에 집중했다. 놈은 가능한 소리를 죽이고 있었지만, 진입을 위해 땅을 박찰 때는 소리가 날 수밖에 없었다.

다시 한번 들리는 부스럭 소리와 함께 정면을 향해 총탄을 날렸다. 동시에 검은 실루엣이 희끗 보이는 듯하더니 쇠를 두드리는 소리와 함께 놈이 멈칫하고 다시 물러섰다.

‘씨발. 1호 맞네.’

암컷 없이 혼자 온 것이 다행이라면 다행이었다.

남은 것은 열 발. 어차피 그다지 위협이 되지는 않는 총탄이지만, 두 놈 보다는 한 놈만 상대하면 된다는 것이 위안이었다.

놈도 정면으로 총탄을 맞으며 들어오는 것은 부담이었는지 틈으로 바로 비집고 들어오지는 않았다.

귀를 바짝 열고 집중하던 장동건은 놈이 움직이는 소리와 함께 놈이 시야에 들어올 시간을 예측하며 한 발 한 발을 날려갔다.

총구는 놈의 대가리가 있을 곳을 향했다. 몸은 맞춰봐야 소용없는 것, 어떻게든 눈을 뚫어야 자신이 산다는 생각이었다.

놈은 바위틈으로 진입을 시도할 때 마다 자세를 바꿨다. 서서 들어오려고도 하고 자세를 낮추기도 했다.

단지 발소리만으로 놈의 진입을 예상하고 총을 쏘던 장동건은 계속 바뀌는 대가리의 위치를 쫓아가지 못하고 있었다.

“씨발놈아. 좀 가만있으란 말이야.”

장동건은 턱도 없는 주문을 1호에게 내뱉으며 기억 속에서 봤던 그 궤적이 다시 한번 보이길 빌고 또 빌었다.

* * *

이진성과 장진은 계곡을 거슬러 오르던 중에 한 발의 총성을 들었다. 빗소리와 물소리에 섞여 들린 총성의 방향을 이진성은 가늠하지 못했다.

“들었어요?”

총소리에 걸음을 멈춘 이진성이 장진에게 물었다. 그는 한쪽을 바라보고 있었다.

“네. 저쪽입니다.”

장진은 숲을 울리며 들린 그 소리로도 방향을 정확하게 잡았는지 손가락을 들어 가리켰다.

그 손가락 방향을 바라보는 이진성에게 장진이 말했다.

“어서 가시죠.”

그는 계곡을 계속 타고 가려고 했다. 이진성은 왜 소리 나는 방향으로 직진하지 않는지 알 수 없었다.

“저쪽으로 바로 안가고요?”

“동건 씨가 움직이지 않는다면 저쪽으로 직진하면 만나겠지만, 움직이고 있다면 놓칠 수 있습니다.

이 계곡을 따라가면 어딘가에 벗어난 흔적은 반드시 있을 거고, 거기서부터 쫓아가면 놓치지 않을 수 있습니다.”

총성은 한 번 울리고 더 울리지 않았다. 까만눈의 울부짖음이나 사람의 비명도 들리지 않았다. 장동건이 여전히 추적 중일 가능성이 없지 않았다.

“시간 조금 더 걸려도 확실한 방법으로 가야 합니다.”

말과 함께 장진은 다시 앞장서 계곡물을 헤치고 나가기 시작했다.

계속된 비에 물은 더 불었지만, 이미 상류로 많이 올라왔기에 두 사람은 어느 정도 속도를 내기 어렵지는 않았다.

다시 약간의 시간이 지났다. 두 사람에게 또 총성이 들려왔다.

계속 이어지는 총성으로 보아 추적이 아닌 교전이 분명했다.

그리고 총성은 이진성도 거리가 멀지 않다는 것을 알 수 있을 정도로 선명했다.

이진성과 장진은 달렸다. 더이상 장진은 좌우를 살피지 않았다. 그리고 계곡을 벗어날 만큼 완만한 곳이 나오자 그는 소리나는 방향으로 빠져나갔다.

그를 따라 계곡에서 벗어난 이진성의 눈에 관목숲이 보이고 그 너머에서 정신없이 움직이는 1호의 모습이 보였다.

그 앞으로는 바위벽이 있었고 그쪽에서 1호를 맞추지 못한 유탄도 날아왔다.

“기다려!”

이진성이 도끼를 앞세우고 땅을 박찼다. 이진성이 외치는 소리는 1호와 장동건 모두에게 들렸다. 그 소리에 1호의 얼굴은 일그러지고 장동건의 얼굴은 펴졌다.

소리와 함께 몸을 트는 1호에게 장동건은 마지막 한 발의 방아쇠를 당겼다. 방아쇠가 움직이고 총 내부에서 격발이 일어나며 폭발과 함께 탄두가 총신을 빠져나가는 것이 하나하나 느껴지는 것 같았다.

그리고 눈앞에는 총탄의 궤적과 놈의 동선이 보이는 듯했다.

총탄의 궤적의 끝에는 놈의 얼굴에서 뻗어나온 빛이 움직일 동선을 그리고 있었다. 그리고 두 선이 만나는 곳으로 놈의 눈동자가 움직여 갔다.

모든 것은 총성보다 빨랐다. 방아쇠가 당겨지면서 그려진 궤적은 탕하는 총성이 들려옴과 동시에 번쩍하면서 사라지는 듯 했다.

그리고 장동건의 눈에 들어오는 모습은 한쪽 눈에서 피를 뿜으며 시야에서 사라지는 1호의 모습이었다.

1호는 이진성과 장진의 인기척에 몸을 빼는 순간 터지는 총성과 날아오는 총알을 느꼈다.

불과 2m 남짓의 거리. 피하는 것은 불가능했다. 그저 돌아가는 몸에 더 힘을 가할 뿐이었다.

총탄은 1호의 왼쪽 눈으로 향했다. 빗나감은 없었다. 날아간 총탄은 그대로 눈동자를 파고들었다.

하지만 1호가 운이 좋았는지 총알의 발사 시점이 조금 늦었다. 발사 당시에 1호의 얼굴은 이미 거의 옆으로 돌아 있었다.

덕분에 눈동자를 터트린 총알은 뇌로 들어가지 못하고 안와골을 부순 채 눈 옆으로 빠져나왔다.

크아악~

찢어지는 듯한 비명을 지른 1호는 그대로 산속으로 달려들었다.

간발의 차이로 1호가 있던 곳에 도착한 이진성은 그 1호를 쫓을 수 없었다. 눈앞에는 돌 틈이 있었고 그 안에 장동건이 앞으로 고꾸라진 채 경련하고 있었다.

“동건아!”

코앞의 장동건에게 달려가는 이진성은 가슴이 철렁했다. 경련하는 것이 혹시나 물린 것이 아닌가 싶었다.

1호에게 물렸다면 좀비로 변하는 것은 몇 분 내로 끝난다. 언제 물렸는지 모르니 얼마나 시간이 있는지도 몰랐다.

잔뜩 긴장한 이진성의 눈에 장동건의 등 쪽에 보이는 상처는 없었다. 급하게 장동건의 상체를 뒤집었다.

휴~

다행히 보이는 상처는 없었다. 이진성은 그제야 안심하고 1호가 사라진 방향으로 몸을 날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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