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좀비 에이지 백수 생존기-132화 (132/145)

# 132

달려나가는 이진성을 그대로 보낸 장진이 장동건에게 달려갔다. 의식은 잃은 채 부들부들 경련하고 있는 장동건의 상태는 그가 보기에도 좋아 보이지 않았다.

돌 틈에 끼어 구겨진 채 널브러진 장동건을 꺼내서 편히 누일까 하던 그는 이내 생각을 접었다.

혹시라도 뭔가가 습격해 온다면 돌 틈 사이에 그대로 있는 것이 더 안전하고 자신이 방어하기에 더 편하다는 생각 때문이었다.

경련은 다리가 가장 심했다. 다리의 경련 때문에 상체까지 떨리는 것으로 보였다.

장진은 장동건의 바지를 걷어 올렸다. 혹시나 다리에 다른 이상이 있는지 보기 위해서였다.

“뭐야?”

드러난 다리의 피부는 피멍이 들어 거무죽죽했다. 게다가 퉁퉁 부어올라 정상 두께의 거의 두 배는 되는 것 같았다.

대검을 꺼내 든 장진이 바지를 허벅지까지 찢었다. 피멍은 골반까지 한치도 남김없이 다리 전체에 들어있었다.

“장동건 기절. 장동건 기절. 헬기 요망. 위치…….”

장진이 급하게 무전을 날렸다. 다행히 통달 거리 내에 아파치 한대가 떠 있었고 무전은 연결되었다.

연락을 받은 지휘소는 바빠졌다. 장동건은 특급 병력이다. 잃어서는 안 되는 중요 자원이었다.

지휘소는 박 준위의 수리온을 호출했다. 들것과 함께 레펠이 가능한 병사 몇을 함께 보내야 산속의 장동건을 실어올 수 있었다.

그와 더불어 평택 기지에도 상황을 전했다. 이재규도 알아야 할 사항이었고, 전달받은 이재규는 즉시 박인화 소장을 호출했다.

헬기를 기다리는 장진의 귀에 박인화 소장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여보세요. 들리나요?>

“아. 소장님. 들립니다.”

<얘기 들었는데 좀 더 자세히 설명해 주겠어요?>

장동건의 상태를 묻는 박 소장에게 장진은 보이는 모든 것을 전달했다.

<혹시 다리에 뭔가에 물린 자국은 없나요? 한 부분만 색이 다르다거나 더 많이 부어 있다거나?>

박 소장은 혹시 뱀이나 다른 독충에 물린 것은 아닌가 확인하는 것이었다.

“그런 자국은 안 보입니다.”

<그럼 허벅지 1cm 정도 절개해서 피를 내 봐 주겠어요? 피 색이 어떤지 봐 주세요.>

보통사람이라면 하면 안 되는 행위였지만 진화자였다. 칼로 그은 정도로 잘못되지는 않기에 박 소장은 지시했다.

“검붉은 피가 나옵니다. 아! 조금 나오다 피 색이 맑아지고 있습니다. 점점 붉어집니다.”

<그럼… 일단은 큰 이상은 없는 거로 생각되네요. 와서 검사해 봐야겠지만 걱정 안 해도 될 것 같아요.>

무전을 듣던 모든 사람은 한시름 놓았다. 그리고 때마침 상공에 도착한 수리온에서는 레펠용 로프가 내려지고 있었다.

* * *

그렇게 장진이 구조대를 기다리던 그 시간, 이진성은 놈을 찾아 열심히 달리고 있었다.

눈알이 터지면서 도주하기 시작한 1호는 당황했는지 많은 흔적을 남겼다.

젖은 흙에 남은 발자국은 물론이고 관목의 나뭇가지를 부러뜨려 놓았고 간혹 피를 묻혀 놓기도 했다.

방금 놈이 지나간 경로를 따라 생긴, 한 줄로 이어진 흔적을 쫓는 것은 이진성 혼자서도 가능했다.

빗속에서도 피가 남아 있다는 것은 놈이 지나간 지 얼마 지나지 않았다는 것이었다. 그런 자국을 쫓는 이진성과 놈과의 거리는 크게 멀지 않았다.

다만 나무들 때문에 시야가 가려 보이지 않을 뿐이었다.

놈의 흔적은 산 정상을 향해 있었다. 그 흔적을 따라 달리는 이진성은 혹시나 놈을 놓칠까 조급한 마음으로 다리에 온 힘을 밀어 넣었다.

‘동건이 살핀 시간은 얼마 안 된다. 멀리 못 갔어. 다쳤을 때 잡아야 해.’

이번에는 반드시 놈을 잡고 만다고 마음속으로 다짐하며 이진성은 달렸지만, 놈은 좀처럼 보이지 않았다.

어느덧 정상을 넘었다. 다시 내리막을 내려가며 나무숲을 조금 지나자 토양과 식생이 변했다.

갑자기 펼쳐진 돌밭에는 드문드문 작은 관목만이 있을 뿐 시야를 가리는 나무는 없었다.

경사진 돌밭은 몇십 미터 정도 이어져 있었고 그 끝은 벼랑이었다.

그리고 그 벼랑 앞에 1호가 서성거리고 있었다.

숲을 벗어난 자리에 멈춰선 이진성이 놈을 살폈다.

놈의 팔은 갈라진 그대로였지만 어느새 지혈되었는지 흐르는 피는 없었다.

덜렁 거리던 손도 여전히 붙어 있었지만, 그곳에서도 출혈은 멈춰 있었다.

피가 흐르는 곳은 오직 왼쪽 눈이 있던 자리. 하지만 양은 많지 않았다.

‘내가 저 정도였다면 죽었을까? 살았을까?’

순간 드는 쓸데없는 생각을 고개를 저어 날려버린 이진성이 놈을 향해 걷기 시작했다.

놈도 다가오는 이진성을 보며 이빨을 드러내고 그르렁거리며 마주 걸어 나왔다.

‘이번엔 반드시.’

이진성의 예감은 또 놓치면 두고두고 골치 아플 것이라고 강하게 말해왔다. 몇 번의 까만눈들과의 격돌에서 1호는 다른 놈들과는 다름을 느끼고 있었다. 더 똑똑했고 더 강했다.

다른 어떤 까만눈보다 훨씬 이진성을 신경 쓰이게 만드는 1호였다.

도끼를 잡은 손에 힘을 잔뜩 준 이진성이 달렸다. 놈도 그런 이진성에게 마주 달려나왔다.

‘확실히 왼팔은 쓰지 못하네.’

달려오는 1호의 왼팔은 거의 움직이지 않았다. 그 끝에 달린 손만 덜렁거릴 뿐이었다.

이진성의 주공격 목표는 놈의 왼쪽 상반신으로 정해졌다.

무방비인 왼쪽 가슴을 깨고 심장이라도 터트린다면 쉽게 끝낼 수 있다는 기대가 차올랐다.

내리친 도끼는 쨍 소리와 함께 놈의 오른쪽 어깨에 막혔다. 내리치는 도끼를 놈은 몸을 비틀어 어깨로 막아 버린 것이다.

동시에 놈은 손톱을 세워 이진성의 배를 찔러왔다. 뻗어오는 손은 뻗는 힘과 상체를 비틀던 힘이 더해져 빨랐다.

놈의 손이 이진성의 배에 거의 다라랐을 때, 이진성은 어깨의 반탄력에 튕긴 도끼를 채 완전히 수습하기 전이었다.

이진성은 튕겨 나오던 도끼를 멈추던 힘을 풀어 도끼가 뒤로 뻗게 하면서 그 힘에 몸을 실어 회전했다.

찌익~

옷이 찢어지고 화끈한 통증과 함께 뱃가죽이 살짝 베인 이진성은 겨우 놈의 손을 피할 수 있었다.

배를 부여잡고 뒤로 물러선 이진성은 큰 상처가 아님을 확인하고 놈을 노려봤다.

놈도 이진성을 마주 노려보면서 둘 사이에 긴장감과 함께 살기가 진하게 피어올랐다.

‘역시 다쳤어도 만만하게 볼 놈이 아니야.’

자칫 배가 갈라져 내장을 쏟아낼 뻔한 이진성은 다시 한번 마음을 다잡고 기회를 노리며 놈의 왼쪽으로 돌았다.

잔뜩 긴장한 놈도 그런 이진성을 보며 왼쪽을 주지 않기 위해 마주 돌았다.

빠각~

기회는 갑자기 왔다. 이진성이 작은 자갈을 밟고 발이 약간 미끄러지자 1호는 득달같이 달려들었다.

놈은 오른손을 뻗어 오면서 동시에 왼발을 같이 차올렸다.

이진성은 도끼를 안에서 밖으로 휘두르면서 손을 막아갔고 그 회전력에 몸을 실어 오른발을 돌려차며 놈의 발을 막아갔다.

도끼와 놈의 손톱이 얽히며 울리는 쇳소리와 두 정강이가 부딪히면서 나는 뻑 소리가 동시에 울려 터졌다.

1호의 팔은 도끼에 밀려 벌어졌고 발도 같이 밀렸다. 그러면서 디딤발로 짚은 맨발 상태의 오른발은 비에 젖은 돌에 미끄러졌다.

놈은 미끄러지는 발로 중심을 겨우 잡았지만, 몸이 틀어지는 것은 막지 못했다.

놈의 몸뚱이 왼쪽이 드러났고 오른팔은 바깥으로 벌어진 상태, 기회였다.

이진성이 회전하는 몸을 더 비틀어 가속력을 주었다. 그리고 놈의 다리를 걷어낸 오른발을 그대로 돌렸다.

번개같이 한 바퀴 돌아간 몸에 실린 원심력을 다리에 모두 담아 아직 중심을 완전히 잡지 못한 1호에게 날렸다.

발은 정확하게 놈의 늘어진 팔을 차면서 상체를 쳤다. 그리고 이진성은 놈의 비명을 들을 수 있었고 움찔하는 놈의 모습도 볼 수 있었다.

비록 피는 멈췄지만, 놈의 팔에 고통이 없을 수는 없었다. 거기에 엄청난 파괴력의 이진성이 킥이 꽂히면서 밀려온 고통에 1호는 멈칫하면서 물러나야 했다.

그때부터 이진성의 일방적인 공격이 이어졌다. 도끼가 날아들고 정권이 꽂혔다.

무릎으로 찍어 올리고 돌려차기로 내리찍었다.

정신없이 몰아치는 이진성의 공격을 1호는 막기에 급급했다. 놈의 부상과 미끄러운 바닥은 놈의 공격력을 줄이는 또 다른 적이었다.

이진성도 공격 중에 몇 번 미끄러지긴 했지만, 맨발인 1호는 훨씬 그 어려움이 컸다. 놈은 그 와중에도 용하게 빗발치는 공격을 막아내고 있었지만, 점점 밀리는 것은 분명했다.

퍽퍽 소리의 빈도가 늘어나던 와중에 빠각 소리가 들려왔다. 집중되는 왼쪽 가슴으로의 공격을 견디지 못하고 드디어 갈비 몇 대가 부러진 것이다.

이진성으로서는 아쉽게 부러진 갈비가 살을 찌르고 들어가지는 않았는지 놈은 여전히 활발하게 움직였다. 하지만 분명하게 움직임이 불편해진 것이 보였다.

이진성이 다시 놈의 오른쪽 목을 도끼로 찍으며 왼팔을 향해 킥을 날렸다. 놈은 가까스로 도끼를 피해 냈지만, 킥은 허용할 수밖에 없었다.

다만 어렵게 팔을 들어 위팔로의 직격은 피해냈다. 하지만 그 덕에 이진성의 발은 놈의 팔뚝을 차버렸다.

크아악~

놈이 비명을 지르며 몸을 쥐며느리처럼 감았다.

갑자기 공격도 수비도 멈춘 놈의 모습에 의아함이 들었지만, 이진성은 공격을 늦추지 않았다.

놈에게 접근해서 놈의 등에 몇 번의 도끼질을 하고 옆구리에 몇 번의 킥을 꽂아 넣었다.

놈이 주춤거렸다. 이진성은 마무리하기 위해 한껏 도끼를 위로 뽑아 올렸다.

그리고 활처럼 뒤로 휜 몸을 당기며 도끼를 내리찍으려는 찰나, 놈에게서 무엇인가가 날아왔다.

바로 눈앞에 있던 놈에게서 번개처럼 날아오는 것은 이진성의 얼굴을 향했다. 가까스로 고개를 돌려 피했다. 그래도 그것은 얼굴을 깊숙이 찢으며 지나쳤다.

날아오는 것을 피하느라 내리 찍힌 도끼의 궤적은 살짝 틀어졌고 놈의 목을 노리던 그것은 어깨를 찍는데 그쳤다.

팍하면서 도끼는 어깨에 박혔다. 하지만 뼈를 부수지는 못하고 어깨의 근육을 조금 잘라내는 데 그쳤다.

이진성은 도끼를 뽑지 않고 그대로 내리누르며 무릎을 놈의 턱으로 차올렸다.

턱 밑에 제대로 꽂힌 이진성의 무릎 덕에 놈의 굽었던 몸은 펴지면서 솟구쳐 올랐다.

자연스럽게 도끼는 미끄러져 빠지면서 어깨에서 피가 뿜어 나오고 입으로도 피를 뿌리며 놈은 떠올랐다.

이전성이 다시 한번 도끼를 날렸다. 공중에 뜬 채 드러난 놈의 배를 향해서였다.

깡~

아쉽게도 이진성의 귀에 들린 것은 쇳소리였다. 놈은 그 와중에 배로 방어력을 집중했었던 것이다. 그리고 놈은 공중에서 뒤로 뻗어 갔다.

날아가는 놈은 세 곳에서 피를 뿌리고 있었다. 어깨와 입, 그리고 덜렁거리던 왼손이 있었지만 이제는 손이 안 보이는 왼팔의 손목.

“어, 어.”

순식간에 뒤로 몇 미터 날아간 놈은 이진성의 사정거리를 벗어났고 그대로 뒷걸음치더니 벼랑 밑으로 떨어져 버렸다.

바로 이진성이 벼랑 끝으로 따라 붙었다. 하지만, 놈은 이미 공중에 떨어지고 있었다.

아래는 약 30m 정도 밑으로 펼쳐진 숲. 놈은 순식간에 숲으로 빨려 들어갔고 더는 보이지 않게 되었다.

“썅!”

거의 잡은 놈을 놓친 이진성은 열불이 치솟았다. 하지만 따라 뛰어내리지는 않았다.

나무 높이가 얼마나 되는지 알 수 없었다. 10m라고 해도 바닥까지 40m가 넘는다. 맨몸으로 뛰어내리기에는 무리였다.

이진성은 아쉬운 마음을 다잡으며 뒤로 돌아섰다. 그리고 다시 돌밭 언덕을 올랐다.

자신의 얼굴을 찢고 날아간 것이 저 위에 떨어져 있는 것이 보였다. 터덜터덜 걸어간 그가 집어 든 것은 1호의 왼손이었다.

“허. 지 손을 뜯어 던졌네? 독한 새끼.”

날카로운 손톱이 달린 놈의 손은 이미 싸늘했고 시커멓게 변색해 있었다.

“이거라고 가져간다. 기념품이다. 씨발놈아.”

들을 리 없는 1호에게 얘기하고 털래털래 자신이 왔던 곳으로 향하는 이진성의 귀에 놈의 외침이 들려왔다.

“빌어먹을. 좀 뒤지지 아직 살아 있네.”

떨어졌다고 쉽게 죽지 않을 놈이라는 것은 알았다. 기대하지 않았지만 소리로 확인하자 아쉬운 마음이 더 커졌다.

그리고 잠시 후 다른 방향에서 또다른 울부짖음이 들려왔다. 암컷의 소리였다.

“에이. 둘 다 살았어?”

소리난 방향을 보며 소용없는 돌팔매질을 하는 이진성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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