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33
장동건은 사흘 만에 깨어났다. 평택 기지의 병원으로 후송된 그는 깨어나서도 한동안 정신이 몽롱했다.
단순 기절은 아니었다. 그는 몸살 증상을 심하게 보였다. 그런데 그 증세가 다른 그 어떤 진화자의 그것보다도 심했었다.
열은 거의 40도 가까이 올랐었고 경련은 후송되고도 하루가 지나서야 멎었다.
다리의 붓기는 깨어난 그때까지 완전히 빠지지 않았고 멍도 그대로였다.
깨어나고 거의 반나절이 지나서야 정신을 차린 장동건은 자신의 두 다리에 칭칭 감긴 붕대를 보고는 깜짝 놀랐다.
붕대 사이로 주삿바늘이 양다리에 꽂혀 있었고 알 수 없는 약물의 링거가 연결되어 있었다.
장동건은 기절 전의 그 극심했던 통증이 기억나면서 소름이 돋았다. 그런데 다리에는 감각이 없었다. 뭔가 간질거리는 것 같은데 정확하게 어떤 것인지 알 수 없었다.
자신의 다리가 잘못된 것은 아닌가 걱정이 된 그가 다리에 조심스럽게 힘을 줘봤다.
‘어라? 통증이 없네?’
다행히 통증은 없었다. 약간의 이상한 느낌이 있기는 했지만, 통증은 아니었다.
움직이기 위해 힘을 넣었다.
‘헉?’
다리가 움직이지 않았다. 다시 시도했지만 역시 마찬가지였다.
다리를 눌러 봤다. 감각이 없었다.
‘나, 하반신 마비?’
장동건의 가슴이 철렁 내려앉았다. 눈에 눈물이 맺혔다.
누군가 불러 물어보고 싶었지만 안 좋은 말을 들을까 두려워 호출 버튼을 누르지 못했다.
그가 병실에서 홀로 다리만 내려다보며 눈물을 흘리기를 한참 만에 병실 문이 열렸다.
“어? 오빠 일어났네?”
일어나 앉은 그를 보고 활짝 웃으며 들어온 것은 장혜진이었다.
겨울이 지나며 무슨 일이 있었는지 어느새 연인이 되어 있던 두 사람이었다. 실려 온 장동건을 보고 울고불고하던 그녀는 검사 결과 이상 없다는 얘기에 겨우 안심할 수 있었다.
그리고 그동안 간병을 담당하며 대소변을 처리하고 몸을 닦아준 것이 장혜진이었다. 지금도 몸 닦을 물을 대야에 받아 오는 길이었다.
장혜진은 눈물을 흘리며 자신을 바라보는 장동건의 모습에 놀랐다.
“오빠 왜 울어?”
그녀의 목소리를 듣더니 기어이 소리 내 꺼이꺼이 울기 시작하는 장동건의 모습에 당황한 장혜진이 대야를 팽개치고 밖으로 뛰어나갔다.
“여기 좀 와보세요. 오빠가 이상해요.”
조금 있다 사람들이 달려오는 소리가 장동건에게 들려왔다. 그리고 장혜진과 박인화 소장, 몇 명의 의사가 같이 들어왔다.
“나, 나, 내 다리, 마비 된 건가요?”
장동건은 눈물 콧물 범벅인 채로 물었다.
“나 이제 하반신 불구인가요? 못 걷나요?”
사람들은 울며 절규하는 장동건을 바라만 보고 있었다.
“그럼 이제 애도 못 만드나요?”
성불구가 된 건가 물으면서 그의 시선은 장혜진을 향했다.
장혜진은 얼굴이 빨갛게 달아오르며 발끈했다.
“이 바보가 또 뭐라는 거야? 뭔 헛소리야?”
그녀는 바닥에 던져졌던 대야를 집어 들고 장동건을 내리쳤다.
“나 이제 어떡해? 혜진아. 나 어떻게? 나 안 버릴 거지?? 응? 그럴 거지?”
장동건은 맞으면서도 장혜진을 붙잡고 사정했다.
킥킥킥
사람들이 웃는 소리가 들려왔다. 돌아본 장동건은 의사들이 웃고 있는 것을 볼 수 있었다.
“왜?”
그 모습을 보던 박인화 소장이 혀를 끌끌 차며 앞으로 나왔다. 링거의 약을 확인 하고 다리를 꾹꾹 눌러 봤다.
“동건 씨. 걱정 마. 다리는 마취상태라서 그래. 그리고 애 만드는 데 지장 없겠네.”
박 소장은 장동건의 사타구니를 물끄러미 바라보았다. 다른 모든 사람도 그녀의 시선이 향하는 곳으로 시선을 돌렸다.
장동건의 환자복 한가운데는 자신도 모르는 상태에서 볼록하게 솟아 있었다. 도뇨관이 박혀 있는 바로 그곳이었다.
“죽어. 차라리 죽어!”
장혜진은 대야가 깨져라 장동건을 내리쳤다.
* * *
“여기 좋네요.”
시원하게 펼쳐진 드넓은 버려진 벌판을 장동건은 바라보고 있었다.
평택 기지의 안전지구 서쪽 경계인 고속철도의 고가 위에 엎드린 그가 보는 방향은 경계 바깥쪽이었다.
안쪽은 다가올 6월의 모내기를 위한 막 정비가 시작되어 간간이 경운기도 다니는 빈 땅이었지만, 바깥쪽은 온통 풀밭이었다.
펜스가 완성되고 인간이 한 번도 밟은 적이 없는 버려진 그곳을 장동건이 보고 있는 것이다.
“그런데 진짜 되겠어요?”
옆에 서서 쌍안경으로 전방을 주시하던 이재규가 장동건에게 물었다.
“해 보는 거죠 뭐.”
장동건은 그의 옆에 놓여있는 두 자루의 생소한 소총을 만지작거리며 답했다.
하나는 미군의 대인저격소총인 M24고 다른 하나는 대물저격총인 M82 바렛이었다.
총을 만지다 하루 전의 일이 생각난 그의 얼굴에는 은근한 미소가 떠올랐다.
남들 다 하는 진화를 드디어 자신도 했음을 확인했던 것이다.
다리의 마취가 풀리고 나서도 제대로 걷지 못하는 그에게 박인화 소장은 말했다.
‘며칠 걸릴 거야. 다리 근육 조직이 완전히 파열됐었는데 그게 전부 다시 붙었어.
현재도 근육은 재생 중이고 제대로 걷고 달리는 데는 사나흘 더 걸릴 것으로 보여.’
비록 다리는 그랬지만 장동건이 느끼는 몸에 도는 활력은 엄청났다. 활력과 함께 전해지는 어떤 짜릿한 쾌감 같은 것은 첫 번째 진화에서 느껴보지 못한 새로움이었다.
나현주가 그 쾌감을 다시 느끼고 싶다고 했을 때는 와닿지 않던 그 말이 확실하게 이해되었다.
진화의 결과물을 확인하고 싶었던 장동건은 목발을 짚고 슈팅 레인지로 나갔었다. 사선에 선 그는 K-2를 들고 표적에 집중했다.
‘어?’
탄두의 궤적은 보이지 않았다. 표적에서 어떤 빛도 나지 않았다. 자신이 뭔가를 잘 못 한 건가 싶어 자세를 바꿔보기도 하고 표적을 뚫어져라 노려보기도 했다.
‘아씨. 왜 안 되는데?’
혹시 사격 실력이 줄거나 하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이 덜컥 들면서 방아쇠를 당겨봤다.
실력은 그대로였다. 어디로 쏴야 할지 느껴지는 감각도 그대로였다.
날아간 총알은 표적의 원하는 부분에 정확하게 꽂혔고 그것은 어떤 자세 어떤 위치에서 쏘아도 마찬가지였다.
‘씨불. 진화라는 게 그저 빨리 오래 달릴 수 있게 된 거로 끝인가? 에너자이저 되고 만 거야?’
아쉬운 마음에 투덜거리며 하늘을 올려보던 그의 눈에 빠르게 날아가는 비둘기가 보였다. 그리고 그 뒤를 쫓는 다른 한 마리의 비둘기가 눈에 들어왔다.
‘저기도 좀비 때문에 바쁘네.’
장동건은 습관적으로 좀비 비둘기에게 총구를 들었다. 그리고 그 순간, 눈앞이 번쩍하는 것 같았다.
놈의 약간 앞으로 희미한 빛의 선이 그려지는 듯 느껴지면서 견착한 총에서 뻗어 나가는 선이 보이는 듯했다.
‘뭐야? 움직이는 놈한테만 나오는 거야?’
총구를 사격장의 표적으로 돌리자 선은 사라졌다. 그리고 다시 공중의 비둘기를 겨냥하자 다시 그 선이 느껴졌다.
눈에 보이는 선은 아니었다. 뇌에서 그렇게 인지하는 것일 뿐이었다. 그 가성의 선은 장동건이 표적으로 하는 부위로 이어졌다.
‘머리를 겨냥하면 머리로, 몸통을 겨냥하면 몸통으로.’
1호의 경우 손을 쏘려고 했을 때, 손 약간 앞으로 표적 점이 그려졌던 것이 생각났다.
‘비둘기는 충분히 빠르지 않아서 그런가 보네. 그때 1호는 방아쇠 당기고 총알 날아가는 그 시간에 대한 보정이 자동으로 들어간 거였고.’
장동건이 생각하는 그동안 쫓고 쫓기는 두 마리의 비둘기는 저 멀리 날아갔다. 이미 유효사거리를 벗어나 거의 500m 정도까지 멀어졌다.
‘’뭐야? 저기까지 간 게 보여? 겨냥을 계속하면 멀리 가도 선이 이어지나?’’
비둘기의 모습이 보이는 것은 아니었다. 그냥 거기에 있다는 것이 느껴졌고 그것은 하나의 점으로 인식되었다. 그리고 그곳으로 선은 계속 이어졌다.
탕~
한 발의 총성이 울렸다. 이미 유효사거리는 한참 벗어난, 쏴봐야 별 의미 없는 거리였다.
‘응? 뭐야 이거?’
기대 없이 쐈는데 탄두궤적이 약간 번쩍하는 듯하더니 사라졌다. 그리고 장동건은 비둘기가 맞았다는 것을 느낄 수 있었다. 그냥 그렇게 느껴졌다.
전날 있었던 신기한 경험을 생각하고 있던 장동건의 귀에 이재규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3시 방향에 한 놈 나왔어요. 거리는 700 정도?”
장동건은 그 말에 정신을 차리고 M-24를 집어 들었다.
저격 스코프를 통해 이재규가 말한 방향을 탐색한 그의 눈에 어정거리고 돌아다니는 거지꼴의 좀비 하나가 보였다.
“거리 780이네요.”
왠지 모르지만, 장동건은 거리가 느껴졌다. 그리고 조준한다고 마음먹은 순간 탄두의 궤적이 그려져 놈의 대가리에 맞닿았다.
‘눈.’
장동건은 마음속으로 놈의 눈을 생각했다. 스코프로도 정확하게 눈이 어딘지는 보이지 않았다. 그런데 대가리로 이어진 선이 미세하게 움직이는 듯하더니 눈으로 이어졌다는 느낌이 들었다.
조준을 유지한 채 장동건은 기다렸다. 바람이 바뀌고 놈이 움직이면서 궤적도 달라졌다. 그리고 총구도 미세하게 움직이고 있는 것이 자신에게 느껴졌다.
‘내가 의식하지 않아도 몸이 알아서 미세 조정 되는 건가?’
자신의 몸을 신기해하던 장동건이 방아쇠를 당겼고 탄은 정확하게 날아가 놈의 눈을 뚫었다.
“우와. 죽인다. 12시 방향 비슷한 거리에 한 놈 더.”
이재규는 감탄과 함께 다른 표적을 찾아 주었다.
‘두 무릎과 양쪽 어깨, 그리고 마지막에 눈.’
표적을 찾아낸 장동건이 다시 마음속으로 원하는 포인트를 그렸다. 그리고 당긴 다섯 발의 탄은 정확하게 그가 원했던 곳으로 날아갔다.
한 발 한 발 장전하면서 재조준을 위한 시간은 필요 없었다. 장전과 동시에 방아쇠는 당겨졌다.
유효사거리를 약간 벗어난 거의 900m 지점이었지만 총알은 놈의 무릎과 어깨를 부수고 눈을 뚫고 들어갔다.
“헐. 저격총을 연사하듯 쏘시네.”
감탄하는 이재규를 무시하고 장동건은 바렛을 집어 들었다.
“더 멀리 있는 놈들로 부탁해요.”
다시 총성이 울리기까지 약 두 시간이 지났다. 겨우 찾아낸 것은 거리 1.4km의 두 놈이었다.
대물저격총이 불을 뿜었다. 그리고 두 놈의 팔다리와 대가리는 거의 동시에 박살나며 산산이 흩어져 갔다.
* * *
“박사님. 저 언제 갈 수 있어요?”
목발을 짚은 장동건이 종종걸음으로 도망치는 박인화 소장을 따라가며 소리치고 있었다. 비록 목발을 짚고 있지만, 장동건은 꽤 빨라 소장을 놓치지 않고 따라붙었다.
“이틀 정도 더 걸린다니까 왜 그래? 좀 기다려.”
복도 끝까지 내몰린 소장이 더 갈 곳이 없자 장동건에게 빽 하고 소리쳤다.
“하루라도 당길 방법 없어요? 저도 가서 도와야 한단 말이에요.”
“그런 방법 있으면 벌써 했지. 지금도 기적에 가까운 속도로 회복되고 있는 거야.
다시 말하지만 어설프게 가서 돕는다고 하지 마. 남들한테 짐만 되는 수가 있어.”
장동건이 기절해 있는 동안 사람들은 1호의 흔적을 계속 찾고 있었다. 장진의 인도로 이진성과 나현주, 김현희와 관장이 수색과 추적에 나섰다.
장진은 놈이 떨어진 곳에서 흔적을 찾아냈고 추적을 시작했다. 산속 깊숙이 들어간 흔적은 한순간 둘로 늘어났다.
그리고 계속 방향을 바꾸며 산속을 돌고 있지만, 전체적인 방향은 서남쪽이었다.
계속 그렇게 진행한다면 머지않아 산을 벗어날 것이고 그곳에서 논밭을 지나 남서쪽으로 아산시가 위치했다.
놈이 시내로 들어간다면 다시 찾기 어려워질 것이 뻔했다.
장동건은 하루라도 빨리 추적에 합류하고 싶어 박인화를 따라다니며 계속 떼를 썼다.
“근까 민폐 안되게 만들어 달라고요. 제가 가면 바바박 뛰어서 탕탕탕 쏴서 잡을 수 있다고요.”
박인화도 더는 못 참겠는지 소리소리 지르기 시작했다.
“시간이 지나야 한다고 몇 번을 말해. 기다리라고. 그냥 기다려. 혹시 알아? 간절하게 원하면 조금 더 빨라질지? 그냥 좀 닥치고 기다려!”
잠시 숨을 고른 그녀가 장동건의 가슴을 찌르며 앞으로 밀고 나왔다.
“지금 추적조 산속에서 매일 뛰어다닌다며. 완전하지 못한 상대로 가서 뭐 어쩌려고? 대충 뛸 수 있어 갔다가 다리 다시 망가지면 어쩌려고?”
돌변한 박인화의 서슬 퍼런 모습에 찔끔한 장동건이 어버버 댔다.
“아니 근까, 다시 안 망가지게… 좀 더 빠른 시간 내에…….”
“그런거 모른다고!”
박인화의 차트 모서리에 머리를 얻어맞은 장동건이 주저앉아 머리를 쓰다듬으며 눈물을 찔끔하던 그때, 천안의 지휘본부는 추적조로부터의 연락으로 정신없이 바빠지기 시작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