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34
<호랑이 코털>
지휘본부는 긴박하게 돌아갔다. 1호의 꼬리를 잡았고 거리는 100m 이내로 추적 중이라는 장진의 보고와 가능한 모든 자원을 투입해 예상 도주로를 막아 달라는 요청 때문이었다.
김 중장은 상황판을 보며 지원 가능 자원을 산정하고 있었다.
“지금 공중 지원이 필요한 곳은?”
“원성동 지역과 청룡, 청수, 청당동 지역이 막바지 정리 중입니다. 최소한 두 대는 필요합니다.”
천안의 정리는 거의 막바지였다. 남은 진화자와 병력 대부분이 천안시 동남부에 집결해 있어 정리는 금방 끝날 수 있었다.
“아파치 1기만 남기고 전부 추적조를 지원하도록 하지.”
“그러면 작전 지역이 넓어져서 위기상황에서 지원이 늦을 수도 있습니다.”
부관이 우려를 표했지만, 장군은 병력의 손실을 감수하고서라도 1호 쪽으로 자원을 배분하기를 원했다.
“병력이 많잖아. 버티라고 해. 그리고 평택에서 온 장갑차도 다 빼고 전차 3기도 빼.”
“그렇게나 말입니까?”
부관은 놀랐고 상황실 내의 병사들도 웅성거렸다. 장갑차와 전차의 지원 없이 맨몸으로 작전하라는 얘기였다.
“그래 봐야 몇 군데 커버 못 해. 저렇게 빠지면 천안 정리는 얼마나 걸리겠나?”
“전차와 장갑차가 빠지면 하루, 아니 이틀 정도 더 걸릴 것으로 예상됩니다. 앞으로 나흘입니다.”
“그럼 안돼. 가능한 병력도 빨리 지원 가야 해. 최대한 당겨. 이틀 준다. 이틀에 끝내. 대신 남은 지역은 선 파괴, 후 수색으로 간다. 건물 전부 파괴해도 상관없으니까 빨리 끝내.”
“알겠습니다.”
남은 전차와 헬기로 일단 포격과 폭격부터 하라는 명령이었다. 그 명령에 한쪽에서는 남은 포탄과 미사일을 확인하고 세종에 추가보급을 요청하는 통신을 보내고 있었다.
“공중 폭격이 가능하면 좋겠는데 말이지.”
장군은 얼마 전에 충주시의 중원 전투비행장을 수복한 것을 생각했다. 하지만 전폭기를 운용할 인력이 없었다.
아직은 그림의 떡인 F-16이 아쉬울 따름이었다.
그는 어쩔 수 없는 장비의 생각은 털어버리고 다시 부관에게 물었다.
“방벽공사는?”
“수복 지역은 70% 완료되었습니다. 내일까지 끝낼 수 있습니다. 미수복 지역은…”
준장이 말을 끊고 지시했다.
“공사가 끝나는 구간부터 우선하여 미수복지역에 투입한다. 방벽공사와 수복을 동시 진행 한다. 알겠나?”
“네. 알겠습니다.”
수복과 동시에 방벽공사를 진행하면 시 외곽으로 도주하는 놈들이 공사 인원과 마주칠 수도 있었다. 하지만 그 정도는 현장 지휘관이 알아서 할 일이었다.
장군에게 중요한 것은 빨리 방벽공사를 끝내는 것이었다. 그래야 차량을 깔아뭉개던 전차를 뺄 수 있었다.
“그리고 당장 뺄 수 있는 병력은 빼서 경계망 구축해.”
장군은 지도를 짚어가며 전차와 병력을 배치할 곳을 지시했다.
* * *
추적조는 입에서 단내가 나도록 산속을 달리고 있었다. 산속을 빙빙 돈 지 벌써 닷새. 어떻게든 추적조를 떨구려는 놈과 어떻게든 따라잡으려는 사람들의 치열한 싸움이었다.
결국 장진은 놈들의 꼬리를 잡았고 상당히 근접해 있었다. 지금은 놈들이 다시 달리고 있어 일행도 따라 달려야 했다.
“저놈은 그렇게 다치고 지치지도 않네.”
이진성이 달리면서 푸념을 내뱉었지만 다른 사람들은 대꾸하기도 벅찼다. 특히 김현희는 숨이 턱까지 차올랐다.
“조금만 더 가면 산이 끝납니다.”
장진이 뒤로 외쳤다. 지도 따위 없어도 그는 지형으로 알 수 있었다. 몇 백 미터 이내로 산을 벗어날 수 있음을.
1호와 암컷은 빙빙 돌면서 서쪽으로 계속 향했다. 덕분에 그들은 영인산이라는 곳까지 가게 되었다.
처음 출발할 때는 아산시가 그들의 남서쪽이었는데 지금은 남동쪽인 곳까지 온 것이다.
그곳에서 놈들은 방향을 남쪽으로 틀었다. 계속 빙글빙글 돌고는 있지만, 점차 남쪽으로 진행하는 것은 확실했다.
몇 시간 전의 교신으로 이미 공중에는 헬기 몇 대가 와서 자신들의 진행 방향 바깥 농경지 상공에서 대기하고 있었다.
또 전차와 장갑차도 조금 전 도착해 놈들이 나올만한 길목을 막고 있다는 것도 들었다.
해가 지기까지 약 한 시간 정도의 시간이 남아 있었다. 그대로 놈이 몇백 미터밖에 안 남은 산지를 벗어난다면 공중에 대기 중인 헬기에 발각될 가능성은 매우 높았다.
다시 100m 정도를 전진해 하나의 능선을 넘었을 때였다. 장진이 손을 들어 일행을 정지시켰다.
“왜요? 또?”
“네.”
장진은 능선 밑을 흐르는 제법 넓은 개울을 바라보고 섰다. 놈들의 흔적은 그 개울로 이어졌고 거기서 다시 끊겼다.
이미 몇 번인지 모른다. 놈들은 물을 이용해 흔적을 지웠고 장진은 또 그것을 찾아냈었다. 다시 장진이 찾아낼 차례였다.
“좋지 않네요.”
장진이 안 좋은 표정으로 말하며 하늘을 바라보았다. 하늘에는 우중충한 먹구름이 짙게 깔려 있었다.
일몰 시각도 얼마 남지 않았는데 먹구름까지 있어 더 빨리 어두워질 것이 분명했다.
거기에 비라도 오면 더 어려워진다는 생각에 장진은 얼굴을 구겼다.
“놈들이 이대로 어딘가 숨어서 밤을 기다리면 어려워집니다.”
밤에는 헬기도 전차도 야시장비에 의존해야 한다. 관측범위가 줄어들 수밖에 없었다. 놈들이 도망갈 구멍이 그만큼 커진다는 말이었다.
개울이 향하는 곳은 남쪽, 놈들은 따라 내려갔을 가능성이 컸다.
그래도 혹시나 몰라 헬기 한 대를 개울을 따라 북쪽으로 따라 올라가게 한 장진은 인원을 분산시켰다.
“서둘러야겠습니다. 물을 건넜다면 아직 젖은 자국이 있을 겁니다. 이 지사님과 현주 씨는 개울 건너를 살펴 주세요.
관장님과 현희 아주머니는 저랑 같이 이쪽으로 가시고요.”
개울 양옆은 풀과 흙이었다. 추적술이 없는 사람들도 발자국을 찾는 것은 어렵지 않았다.
개울을 중심으로 좌우로 나뉜 그들은 물길을 따라 내려가며 놈들의 흔적을 찾기 시작했다. 하지만 좀처럼 물을 건넌 흔적은 나오지 않았다.
그렇게 백몇십 미터를 물을 따라 내려가자 정비된 수로의 시작점이 나왔다.
개울 양옆은 석축으로 쌓아올려졌고 그 옆에는 포장된 도로가 지나고 있었다. 그 도로의 옆으로는 과거에 밭이었을 초지가 펼쳐지고 드문드문 농가였을 폐가도 있었다.
“빌어먹을.”
장진은 한숨을 쉬며 주위를 둘러봤다. 놈들이 갈만한 곳이 한순간에 엄청나게 늘어났다.
“여기 계세요. 이제부터는 어려워졌습니다.”
장진이 개울의 좌우를 오가며 세밀하게 흔적을 찾는 그 시간, 1호와 암컷은 그들에게서 점점 멀어지고 있었다.
모두에게 피 같은 시간이 흘렀다. 쫓기는 쪽에서는 더 안전해지는 시간이고 쫓는 쪽에서는 그간의 노력이 물거품이 될 수 있는 시간이었다.
그런 시간이 10여 분 지났을 때, 장진은 사람들을 불렀다.
혹시나 흔적을 지울까 여전히 물속에 있던 사람들이 기쁜 마음으로 장진에게 달려갔다.
“여길 지났습니다. 시간은 약 30분 전. 놈들이 극히 조심해서 움직였습니다. 계속 그렇게 움직이고 아직은 쫓을 수 있는 거리에 있을 겁니다.”
사람들이 봐도 뭐가 어떻게 다른지 알 수도 없는 풀을 가리키며 말하던 장진이 고개를 들고 한쪽으로 손가락을 뻗었다.
“저 숲으로 들어갔네요.”
이미 하늘은 깜깜해지고 있었다. 사람들은 야시경을 꺼내 착용했지만 엎친 데 덮친 격으로 빗방울이 하나둘 떨어지기 시작했다.
개울을 나오고서는 거의 흔적을 남기지 않은 놈들이다. 장진은 신중에 신중을 기해 천천히 앞으로 나갈 수밖에 없었다.
확실히 추적능력 특화 진화자였다. 숲속에서 장진은 신기하게도 놈들의 흔적을 발견했다. 지난 닷새도 그랬지만 역시 신기할 뿐이었다.
그렇게 숲속에서 놈들의 흔적을 더듬어 가던 그들은 갑자기 들려온 무전으로 다시 달려나가야 했다.
***
“아저씨. 뭐 보이는 거 있어요?”
중무장한 병사 하나가 스트라이커 장갑차의 기총사수에게 물었다.
“없어요.”
장갑차 주위에는 10명의 병사가 저마다 자리 잡고 북쪽의 산을 바라보고 있었다. 세종에서 온 병사들이었다.
그 한가운데에는 평택에서 온 스트라이커 장갑차가 역시 북쪽을 향해 서 있었다.
긴급 출동 명령에 의해 장갑차에 10명의 병력을 꽉꽉 채워서 도착한 곳은 한 들판이었다.
그곳에서 올지 안 올지 모르는 까만눈 두 마리를 마냥 기다리는 것이 그들의 임무였다.
하늘에서는 간간히 아파치가 지나갔지만 워낙 고도가 높아 소리는 잘 들리지 않았다. 그나마 들리던 벌레 소리와 새소리도 깜깜해지고 비가 오면서 들리지 않았다.
“얌마. 정신 차리고 있어.”
위에서 잡담하고 있는 사수에게 한마디 한 장갑차 차장은 적외선 화면이 떠 있는 모니터에 눈을 박고 있었다.
하지만 아무것도 움직이는 것이 없는 똑같은 화면을 보고 있는 그도 지겹기는 마찬가지였다.
장갑차 밖의 병사들은 지겨움에 더해 비까지 맞아야 했다. 우의는 미처 준비하지 않아 그대로 비를 맞는 그들은 오들오들 떨고 있었다.
“박 하사님. 춥습니다.”
“나도 추워 임마. 어쩌라고?”
“불이라도 피우면 안되겠습니까?”
“이새끼가 무슨 말 같잖은 소리야?”
“아니. 사람 상대하는 것도 아니고 좀비잖습니까. 불 피우면 혹시 압니까? 피해갈지?”
“야 이 미친놈아. 놈을 찾으려고 나와 있는데 피해가게 만들면 어쩌자고? 정신이 있는거야 없는거야?”
말은 그렇게 하지만 하사 자신도 이미 주의력은 많이 떨어져 있었다.
그렇게 서로 잡담을 하며 시간을 죽이던 병사들은 그들의 뒤로 벌써 두 좀비가 접근해 오고 있다는 것을 알지 못했다.
산에서 나온 1호와 암컷은 논이었던 곳에 길게 자란 풀을 기어서 헤치고 나왔다. 그리고 한쪽에 포진한 인간들을 발견한 그들은 옆으로 빙 돌아 이미 인간들을 지나쳤다.
하지만 1호는 그냥 도망치는 것을 택하지 않았다. 암컷을 데리고 인간들의 뒤로 돌아간 놈은 소리를 죽이고 천천히 그들에게 접근하고 있었다.
첫 비명은 장갑차의 기총사수에게서 터져 나왔다. 소리 없어 장갑차에 기어오른 암컷이 몸을 던져 사수의 어깨를 깊게 물어뜯고는 그대로 밑의 병사들에게 몸을 던졌다.
그 소리와 함께 1호도 병사들에게 몸을 던져 어깨나 팔, 다리 등을 물어뜯어 냈다.
비명과 함께 총성이 터졌지만 명중하는 탄은 별로 없었다. 어쩌다 맞아도 소용없는 소총탄이었다.
10명의 병사가 1호와 암컷에게 모두 물어뜯기기까지 시간은 채 1분도 지나지 않았다. 그들은 인간을 죽이는 게 목적이 아니었는지 치명상은 피하고 살만 뜯어 경련만 일으키게 만들고 있었다.
장갑차 내의 운전수와 차장은 어깨에서 피를 뿜으며 내부로 떨어진 사수의 모습에 식겁했다. 까만눈에 물려 경련하면 채 몇 분 내로 좀비로 변이한다는 것은 그들도 교육받아 알고 있었다.
차장은 망설이지 않고 권총을 뽑아 방아쇠를 당겼다. 차량 내에 진한 피 냄새와 화약 냄새가 퍼짐과 동시에 그는 운전수에게 소리쳤다.
“저 새끼들 깔아뭉개.”
장갑차가 움직임과 동시에 차장이 무전을 보냈다.
“3번 포스트. 좀비 습격. 병력 전원 손실. 놈들이 도주한다. 추격하겠다.”
둘은 장갑차가 움직임과 동시에 달리기 시작했다. 그 뒤를 따라 장갑차도 서치라이트를 켜고 달렸다.
평지를 달리는 놈들은 빨랐다. 그리고 뒤에서 쫓아오는 장갑차를 따돌린다고 지그재그로 뛰어다녔다.
논이었던 자리지만 논두렁도 있고 농로도 있었다. 풀에 가려 보이지 않는 그런 것들을 지날 때마다 장갑차는 덜컹거렸고 덕분에 최대 속력을 내지 못했다.
놈들과의 거리는 좀처럼 좁혀지지 않았다. 그렇게 몇 분간의 동물과 기계의 추격전이 이어졌을 때 하늘에서 불벼락이 내리기 시작했다.
아파치의 기관포가 불을 뿜고 한 번씩 미사일도 날아갔다.
“씨발. 존나 안 맞네.”
사수가 보는 곳을 향해 자동조준되는 아파치의 기관포도 소용없었다. 적외선 증폭 화면으로 선명하게 보이는 놈들은 맞을 듯 맞을 듯 하면서도 잘도 달려갔다.
놈들은 순식간에 초지를 지났다. 그리고 그 앞에 나온 하천으로 몸을 날렸다.
놈들이 몸을 날리던 그 순간 내리 꽂힌 미사일의 폭염을 뒤로하고 둘은 하천의 물속으로 들어가 버렸다.
물에 들어간 직후 적외선 영상에서 희미해져 가는 둘의 모습은 상류로 향했다. 그리고 그 모습은 곧 사라져 버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