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좀비 에이지 백수 생존기-135화 (135/145)

# 135

“잘 도망치던 놈들이 왜 갑자기 흔적을 남겼을까요?”

1호와 암컷이 좀비로 만든 병사들은 추적조의 발밑에 누워 있었다.

“이 열 명으로 우리를 어쩌려고 했을까요?”

“자기들도 어쩌지 못해 도망가면서 그럴 리가?”

“그렇지. 미치지 않고서야.”

순식간에 열을 처치한 일행은 그 자리에 멈췄다.

이미 놈들이 물속에서 행방을 감췄다고 들었다. 서둘러 갈 필요는 없었다.

놈들이 왜 이런 짓을 했는지 의견을 모아보는 게 먼저였다.

“기습이라고 했잖아요. 도망치다 발각돼서 싸운 게 아니라…….”

말을 끄는 장진에게 모두의 시선이 쏠렸다.

“우리를 어쩌려고 한 것도 아니고 그렇다고 지연시키려고 했을 리도 없잖아요?”

보통의 좀비 열로 자신들을 지연시킬 수 없음을 충분히 알만한 1호였다.

“그래서요?”

나현주의 물음에 장진이 자신 없는 투로 답했다.

“설마, 혹시, 우리를 유인하려는 거 아닌가 해서요.”

“에이. 유인하려면 그렇게 도망 안 가고 우리랑 거리를 유지해야죠.”

반문하는 이진성에게 장진이 조심스럽게 고개를 저었다.

“그럼 자신들도 위험하니까. 일단 충분하게 거리를 벌려 안전을 확보했어요. 그다음에 자신들을 찾을 수 있게 흔적을 남긴 거죠. 이쪽으로 오라고.”

“왜 그런 짓을? 그리고 흔적을 남기려면 죽여도 되는데 굳이 좀비로 만들면서?”

김현희의 의문에 답한 사람은 장진이 아닌 관장이었다.

“좀비로 만드는데 시간이 덜 걸리니까. 한 번씩 물어주고 다음으로 옮겨가면 되니까 그런 거 아니겠소? 그리고 우리를 유인하는 것은 어쩌면 우리에게 줄 선물을 준비하고 있는 지도…….”

김현희가 얼굴을 구기며 말했다.

“설마. 그냥 가다가 사람이 보여서 본능적으로 물고 간 거를 너무 확대해석하는 거 아니에요?”

그럴 수도 있었다. 놈들은 아무 의도가 없었는데 사람들이 고민에 빠진 것인지도 몰랐다. 하지만 사람들의 마음에 있는 이상한 찜찜함은 없어지지 않았다.

관장은 놈들을 찾아 왔다 갔다 하는 헬기들을 바라보았다. 헬기들은 하천 상공에서 점차로 수색 범위를 넓혀가고 있었다.

* * *

장진이 놈들의 흔적을 다시 찾은 것은 다음날 오후 늦게였다. 놈들이 뛰어든 곳에서 상류로 거의 6km 정도 올라간 곳의 4차선 교량 밑이었다.

교량의 아래 펼쳐진 하천 남쪽의 모래톱에는 선명하게 놈들의 발자국이 남아 있었다. 그 발자국은 교량 밑을 따라가 하천을 벗어나고 있었다.

발자국을 따라 올라간 곳은 아산시 영역이었다. 교량 위에는 군인들이 시민의 탈출을 막았었을 바리케이드의 잔해가 남아 있었고 그 앞으로 수많은 차량이 엉켜 있었다.

이미 허옇게 변한 인간의 뼈가 널려 있는 것으로 봐서 그곳에서도 많은 살육이 있었던 것이 분명했다.

그런 흔적을 뒤로하고 발자국은 도시 안쪽으로 향했다. 그 자국을 유심히 살피던 장진이 고개를 들었다.

“놈들의 목적지가 가까운가 봅니다. 주저 없이 직선으로 쭉 달려간 것으로 보면.”

장진은 자국을 통해 놈들이 빠른 속도로 달렸다는 것을 간파했다. 보폭이 일정하고 자국의 모양과 찍힌 강도가 거의 같다는 것이다.

일행은 달리는 장진을 따라 달렸다. 양옆으로 공터와 공장 같은 건물들을 지나며 두 번째의 사거리를 건너자 아파트 단지가 나타났다.

하천에서 올라온 후 처음 나온 주택단지에서는 이제는 더 썩을 것도 없는지 별다른 냄새도 나지 않았다.

“좀비 냄새조차도 안 나네요.”

달리는 이진성의 코에 양쪽 단지에서 들어와야 할 좀비의 냄새는 없었다.

집안에 갇혀 가사상태에 빠진 놈들도 있겠지만 나머지는 모두 어디론가 떠났다는 말이었다.

“삼성디스플레이에 모여 있던 놈들이 여기서 모아간 놈들인가?”

그렇다면 아산시 내에는 남아 있는 좀비가 생각보다 적을 수도 있겠다 생각하며 그들은 달려나갔다.

다시 나온 사거리에서 좌회전은 그들이 300m쯤 달렸을 때, 이진성이 일행을 세웠다.

“저기로 갔나 봐요.”

이진성이 가리키는 곳은 그곳에서 다시 300m 정도 앞의 큰 건물이었다. 도로에는 그 방향으로 시청이라고 적힌 표지판이 매달려 있었다.

“이것들은 왜 이렇게 시청을 좋아해?”

김현희의 혼잣말이었다. 평택시청에도 떼로 모여 있더니 여기도 시청이냐는 말이었다.

“모여 있기 좋잖아. 부지 넓지, 건물 안 높지, 건물 출입하기 쉽지.”

나현주의 말에 이진성이 말을 이었다.

“500 정도 있어요. 이 주위로 좀비 냄새나는 곳은 일단은 저기뿐입니다.”

“어떻게 할까요? 폭격부터 할까요?”

일단 충분히 잡고 나머지를 정리할까 하는 장진의 물음이었다.

“글쎄요. 공장에서 그러다가 놓쳤었잖아요. 폭격 없이 들어가는 것과 어느 편이 좋을까요?”

나현주는 그냥 들어가서 전부 몸으로 잡아버리고 싶었다. 그편이 몸은 고돼도 확실하게 정리할 수 있다고 생각했다.

“안에 또 다른 까만눈이 있을 수도 있으니까 일단 미사일 좀 먹이고 가죠.”

이진성은 일단 몸이 편한 쪽을 택했다. 일단 폭격으로 놈들의 수를 줄이는 게 낫다 싶었다.

혹시 1호가 건물을 빠져나와도 헬기에서 놓치지는 않을 것 같았다.

다른 건물로 들어가지 못하게 발목만 잡아줘도 되고 다른 건물로 들어가면 그 건물도 날려 버리고 싸우면 된다 생각했다.

“헬기 전부 투입하는 거로 하죠. 전부 무장 채우고 오라고 해 주세요.”

장진의 무전에 그들의 상공을 배회하던 아파치와 수리온은 보급을 위해 천안으로 기수를 돌렸다.

* * *

“오빠 정말 괜찮겠어?”

“괜찮아. 걱정하지 말래도.”

장동건은 수리온 앞에서 장혜진을 토닥거렸다. 헬기가 온 김에 같이 타고 가겠다는 그를 말리는 장혜진에게 자신은 공중지원은 하겠다고 약속하고 겨우 진정시켰다.

겨우 걸어 다니면서 육상에서 총 들고 설칠 생각은 스스로도 없었다.

공중에서 지켜보다 빠져나오는 놈이 있으면 그런 놈들만 잡을 생각이었다.

“별로 할 일도 없을 거 같은데 뭐 하러 가?”

“하나라도 잡으면 도움 되는 거지. 그리고 1호 새끼라도 잡을지 누가 알아?”

다른 총은 챙기지도 않았다. 바렛 하나만 들고 나선 장동건은 애초에 1호 외에 다른 놈들은 생각하지 않았다.

공중에서 흔들리는 헬기에서 얼마나 정확한 사격이 될지는 아직 몰랐다. 지금껏 써오던 소총이라면 문제 될 것이 없지만 충격량이 다른 대물 저격용 총은 좀 다를 수도 있다 생각했다.

‘그거야 가면서 연습하면 되는 거고.’

하지만 새로 얻은 능력이 그에게 자신감을 불어넣어 줬다. 그리고 그 능력을 어서 쓰고 싶어 조바심이 나는 장동건이었다.

결국 손 흔드는 장혜진을 뒤로하고 수리온은 장동건을 싣고 하늘로 떠 올랐다.

장동건은 점점 작아지는 장혜진의 모습을 보면서 새로운 장난감을 받은 아이 같은 얼굴이 되어갔다.

“좋겠어.”

박 준위의 밑도 끝도 없는 말이었다. 장혜진 때문에 좋겠다는 건지, 또 한 번의 진화를 해서 좋겠다는 건지 알 수 없었다.

“좋네요.”

장동건은 어느 쪽이든 다 좋았다. 웃으며 대답한 그가 바렛을 들고 이제는 잘 보이지도 않는 육상의 한 간판을 겨냥했다.

스코프는 일부러 빼놓았다. 거리는 500m 정도. 비록 하늘에서 헬기가 움직이고 있지만 정지한 물건이라 그런지 탄두궤적은 보이지 않았다.

‘멀지도 않은데 이 정도 쯤이야.’

평소 자신이 쏘던 K-2의 유효사거리 이상이지만, 그리고 소총도 아니지만 될 것 같았다.

쾅~

무식한 소리와 함께 날아간 총알은 간판에 있는 ‘ㅇ’ 하나의 중심을 정확하게 뚫고 들어갔다.

다시 세 발을 날렸고 그것들도 모두 장동건이 원했던 곳으로 정확하게 들어갔다.

“박 준위님.”

“왜?”

“헬기 좀 막 흔들어 주세요. 막 올라갔다 내려갔다 하면서.”

“조심해.”

갑자기 선회하며 옆으로 눕다시피 하는 헬기는 그상태로 추락하듯 떨어졌다 다시 급상승하며 난리를 피웠다.

평택 농협에서부터 같이 했던 그 토우 사수는 옆에서 비명을 지르고 난리를 피웠지만, 장동건은 침착하게 아래를 탐색했다.

한 건물의 옥상에 고양이를 뜯어 먹고 있는 고양이가 보였다. 난리 치는 헬기 덕에 놈은 금방 시야에서 사라질 것이 분명했다.

견착과 동시에 방아쇠는 당겨지고 대물 저격용 무식한 탄알이 날아갔다.

그리고 놈은 피와 고기 부스러기로 변해 옥상에 뿌려졌다.

“예스!”

주먹을 불끈 쥐는 장동건을 태운 수리온은 이미 저만치 앞으로 가고 있는 아파치를 향해 속도를 높여 갔다.

* * *

헬기가 보급을 위해 갔다 오는 동안 추적조를 보조하기 위해 나왔던 전차와 장갑차는 모두 이동을 마쳤다.

소리 때문에 시청사에서 1km 정도의 거리에서 대기하는 그들은 공급이 시작됨과 동시에 진격해서 포격을 가하기 위해 대기하고 있었다.

<준비 완료.>

공중의 다섯대의 헬기가 자리 잡고 공격 준비를 마쳤다고 알려왔다.

시청사의 전방으로 두 대, 후방으로 두 대의 아파치가 포진하고 수리온은 공중을 빙빙 돌고 있었다.

“동건아. 부탁한다.”

<걱정 마셔.>

아파치에서 미사일 쏘는 동안 어차피 몇 발 날리지도 못하고 파괴력도 약한 토우는 쏘지 않기로 했다.

대신 공중을 선회하며 혹시 1호가 튀어나오면 장동건이 저지하기로 한 것이다.

시청사 후면 길 건너 공터의 나무 밑에 대기하던 이진성은 공격명령을 내렸다.

“시작하세요.”

말과 함께 급강하하는 아파치에서 헬파이어가 불을 뿜고 날기 시작했다.

오렌지색 연기를 남기고 내려꽂히는 미사일은 이진성이 지정한 곳을 정확하게 타격했다.

1층 중앙 부분에 놈들이 가장 많이 모여있었고 2층의 동쪽, 그리고 3층의 서쪽이었다.

폭발과 함께 콘크리트 벽이 터지고 유리는 가루로 변해 하늘을 날았다. 건물은 앞뒤 할 것 없이 거대한 구멍이 뚫린 채 시커먼 연기를 뿜어냈다.

헬기는 위치를 바꿔가며 신중하게 미사일을 날렸고, 그동안에 접근한 전차에서 날아간 포탄이 그 위력을 더했다.

네 기의 아파치로부터 각 16발씩, 총 64발의 미사일을 얻어맞았다. 전차도 모든 포탄을 소진했다.

폭음이 멈춘 시청사는 처참했다. 온통 구멍이 숭숭 뚫리고 시커먼 연기와 화염이 그곳에서 치솟고 있었다.

“그래도 100여 마리 남았어요. 건물 무지 튼튼하게 지었나 보네.”

놈들은 미사일의 타격지점에서 먼 곳에 흩어져 있었다. 그리고 폭격이 멈추자 다시 한곳으로 모여드는 것이 느껴졌다.

무엇인가 놈들을 컨트롤 하는 것이 분명했다. 그리고 그것은 1호 또는 암컷, 아니면 둘 다 일 수 있었다.

“참 목숨도 질긴 놈들이네.”

혀를 찬 이진성이 내부 상황을 전달했다. 그리고 아파치는 재보급을 위해 돌려보냈다.

건물 내부에 자신들이 들어가면 아파치는 할 일이 없다. 노느니 가서 미사일을 채우고 돌아오는 편이 나았다.

전차도 화력이라고는 기관총밖에 남지 않았지만 갔다 오는 것은 시간 낭비였다. 트럭으로 포탄을 보내라고 요청했다.

전차와 장갑차 그리고 남은 병력이 시청사를 둘러싸도록 위치를 조정했다.

그동안 이진성과 나현주, 관장과 김현희는 어미 어둑해진 하늘을 뒤로하고 폐허로 진입했다.

사람들이 들어서자 모여있던 놈들이 밀려오기 시작했다. 멀쩡한 놈들이 많긴 했지만, 몸 한 부분이 없어진 놈들도 꽤 있었다.

그런 놈들 100여 마리가 녹아나는데 걸린 시간은 5분 남짓이었다. 제대로 발 디딜 곳 없어 거의 제자리에 덤벼오는 놈들만 상대하느라 오래 걸린 것이었다.

마지막 놈을 이진성의 도끼가 반으로 가를 때까지 1호도 암컷도 나타나지 않았다.

‘도망친 건가?’

건물 밖으로 나간 놈은 없었다. 어딘가 숨어 있다는 말이었다.

네 사람은 흩어져 무너진 콘크리트 더미 속을 헤집기를 잠시, 마침내 구석에서 까만눈을 발견했다.

그런데 놈은 1호도 암컷도 아니었다. 전혀 다른 뚱뚱한 놈이 다리가 잘려나간 채 이진성을 노려보고 있었다.

“뭐야 이건?”

짜증이 확 오른 이진성이 놈을 끝장내기 위해 천천히 걸었다. 그러렁 거리는 놈은 움찔거렸지만 그게 전부였다.

“한 번에 죽지는 마라.”

분풀이라도 하고 싶은 마음에 놈의 방어력이 그대로이길 바라며 도끼를 들어 올렸다. 그리고 그 도끼를 내려찍는 순간이었다.

키아아악~

바깥 저 멀리서 들리는 익숙한 소리. 분명 1호였다. 동시에 사방에서 밀려오는 냄새. 그리고 채 몇십초 지나지 않아 헤드셋으로 다급한 목소리가 들려왔다.

<습격입니다. 많습니다. 셀 수 없이 많습니다. 으악…>

시청사는 함정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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