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36
외곽으로부터 소리 없이 다가온 놈들은 거의 2,000에 달했다. 1호와 암컷은 동쪽과 서쪽에서 각각 놈들을 지휘하고 있었다.
시청사만을 바라보고 있던 장갑차와 전차, 몇 되지 않는 병사들은 놈들의 접근을 전혀 눈치채지 못하고 있었다. 그런 인간들에게 놈들은 서서히 접근해 들어갔다.
모든 장갑차와 전차에는 기관총 사격을 위해 사수가 상체를 내밀고 있었다. 어떤 차량은 전방 관측을 위해 조종수가 고개를 내밀고 있기도 했다.
그런 차량은 시청사 건물에서 멀게는 150m 정도 떨어진 것도 있었고 가까워 봐야 100m 정도였다.
적은 수로 360도 둘러싸느라 거리를 충분히 벌릴 수밖에 없었다.
놈들이 청사에서 300m 정도까지 접근했을 때 1호는 포효했다. 동시에 놈들은 달리기 시작했다.
십여 초 만에 차량에 도착한 놈들은 몸을 던져 기어올랐다. 그때까지 놈들의 접근을 눈치챈 병사들은 없었다.
아비규환 한 장갑차의 기관총 사수의 비명과 함께 시작되었다.
뭔가 장갑차에 올라와서 달려드는 느낌에 고개를 뒤로 돌린 그는 시커먼 그림자가 자신을 덮치는 것을 봐야 했다.
그리고 뜯겨 나가는 자신의 목덜미에서 전해지는 화끈한 통증에 차량 내부로 떨어져 내렸다. 하지만 떨어진 것은 자신만이 아니었다.
목덜미를 물어뜯은 놈도 같이 그 구멍으로 몸을 들이밀었다. 연이어 다른 놈들도 해치 구멍으로 몸을 던졌다.
내부에 있던 다른 병사들이 권총을 뽑아 들었다. 동료의 살덩이를 씹으며 고개를 드는 검붉은눈의 놈에게 몇 발을 먹여 줬다.
그 뒤를 따라 떨어진 놈에게도 몇 발을 쐈지만, 놈은 이미 그들의 코앞에서 쓰러졌다.
그리고 바로 따라온 다른 놈들이 병사들에게 몸을 던졌다.
거의 대부분 장갑차와 전차에서 같은 일이 벌어지고 있었다.
어떤 차랑은 총 한 발 쏴보지 못하고 당하기도 했다.
어떤 차량은 놀란 조종수가 기동을 시작하고 죽으면서 건물을 들이받고 멈추기도 했다.
보병들의 상황도 다를 바 없었다. 단지 그들은 장갑차 또는 전차보다 더 안쪽으로 있어서 놈들의 습격을 알고 당했다는 약간의 차이가 있었다.
1호의 괴성을 듣고 불안해하던 그들에게 비명이 들려왔다. 그 소리에 병사들의 고개를 바로 돌아갔다.
그들의 눈에 들어온 것은 장갑차에 또 전차에 올라탄 좀비에서 살점을 뜯기는 병사의 모습이었다.
또 다른 차량에서는 열린 해치로 몸을 던져 넣는 놈들의 모습도 보였다.
그리고 그런 차량을 옆으로는 엄청난 수의 놈들이 청사 건물을 향해 앞으로 달려나가고 있었다.
그 모습에 몇 발의 총알을 날린 병사들은 곧 밀려온 좀비 파도에 휩쓸렸다.
뒤에서부터 들려오는 발소리에 돌아본 그들은 눈앞을 가득 메우고 달려오는 놈들의 모습에 산개했다.
하지만 그들이 갈 곳은 없었다. 이미 사방은 좀비들에 둘러싸였고 빈 곳이라고는 폐허가 된 청사 건물뿐이었다.
뒷걸음질 치며 달려드는 좀비들에게 총을 쏴봤지만, 대부분은 미처 탄창 하나도 비우지 못하고 당해야 했다.
비명을 지르고 쓰러진 병사들은 달려가는 좀비들의 발에 짓밟혀 금방 다른 사람들의 시야에서 사라져 갔다.
헤드셋으로 들려오는 소리에 헬기에 있던 인원도 깜짝 놀랐다. 선회하며 시청사에서 나오는 놈들이 있는지만 보고 있던 그들은 소리와 함께 고개를 외곽으로 돌렸다.
"언제?"
사방에서 밀려온 놈들이 청사로 달려들고 있었다. 놈들 중 일부는 전차와 장갑차에 이미 올라탄 것이 보였다.
올라탄 놈들이 나와 있던 병사들을 물어뜯고 구멍으로 몸을 집어넣고 있었다.
"전차, 장갑차가 거의 당했어요."
장동건이 외쳤지만, 박 준위와 토우 사수도 이미 보고 있었다. 당하지 않은 것들은 장갑차 세 대, 전차 두 대였다. 간발의 차이로 차량 내부로 들어가 해치를 닫았던 운 좋은 사람들이었다.
놈들이 들어간 차량에서는 내부에서 총을 쏘고 있는지 열린 해치를 통해 번쩍이는 불빛이 보였다.
하지만 그 불빛도 금방 멈췄고 차량은 무용지물이 되어갔다.
몇 되지도 않는 병사들은 다 쓸려나갔다. 그들은 제대로 총도 쏴보지 못했다. 그저 파도에 쓸린 모래처럼 전속력으로 달려드는 놈들에게 깔리고 뜯겨 사라져 갔다.
“미사일이라도 쏴봐.”
박 준위는 시청사 바로 위로 위치를 바꿔 제자리에서 선회하기 시작했다. 어딘가를 조준할 필요도 없었다. 이미 놈들은 어디에도 있었다.
토우 사수는 놈들의 밀도가 높은 곳으로 무작정 미사일을 날렸다. 유선 유도인 토우를 유도하고 자시고 할 것도 없었다. 아무 곳에 맞아도 수십 마리씩은 죽어 나갔다.
장동건은 헬기의 기관총을 잡았다. 기관총이 불을 뿜으며 추풍낙엽처럼 놈들도 쓰러져갔다.
그가 쏘는 기관총의 명중률은 과연 달랐다. 쏟아져 나가는 한 발 한 발을 마치 조정이라도 하는 것처럼 탄의 손실은 현저하게 낮았다.
하지만 놈들은 너무 많았다. 숭숭 뚫린 청사의 구멍으로 쏟아져 들어갔다.
“썅. 많아도 너무 많잖아.”
이진성은 나직하게 내뱉으며 도끼를 찍어갔다. 어느새 그의 주위로는 물샐틈없이 놈들이 둘러싸고 있었다.
다른 사람들도 마찬가지였다. 저마다 한 지역씩을 차지하고 있는 나현주, 관장, 김현희는 빼곡하게 들어차 자신들을 둘러싼 놈들을 정신없이 잡고 있었다.
바닥은 온통 부서진 콘크리트 더미였다. 안 그래도 발 디딜 곳이 편하지 않은데 거기에 놈들의 피와 살이 뿌려지면서 운신이 더 어려워졌다.
다행인 것은 그것이 놈들에게도 같게 작용한다는 것이었다.
건물 내부로 들어온 놈들은 잔해에 1차로 속도가 늦춰졌고 죽은 자신들의 동료에 의해 2차로 공격에 제약을 받고 있었다.
횡으로 번쩍한 이진성의 도끼가 막 몸을 던져오던 세 놈의 배를 동시에 갈랐다.
놈들은 공중에서 내장을 쏟으며 어떻게든 이진성을 잡아 보려는 듯 버둥댔다.
이진성은 뻗어오는 놈들의 손톱을 피하며 뒤에서 오는 놈을 느꼈다.
바닥을 구르는 대가리 하나를 박차고 점프한 그가 공중에서 회전하며 도끼를 찍는데 갑자기 목표한 놈이 밑으로 푹 꺼졌다.
달려들다 다른 놈의 내장을 밟고 미끄러진 놈은 그대로 자빠지면서 콘크리트 더미에서 삐져나온 철근에 대가리를 찍었다.
철근은 눈을 뚫고 들어가 뒤통수를 뚫고 나왔고 이진성의 도끼는 그 대가리를 의미 없이 쪼갰다.
김현희는 달려드는 놈들을 방패로 쳐내고 갈랐다. 방패에 맞은 놈들은 온몸의 뼈가 산산 조각나 날아갔다. 날에 가린 놈들은 상하체가 분리되어서 뿌려졌다.
한참을 그러다 보니 어느덧 주위에 방해물이 너무 많아졌다. 다른 사람들보다 민첩하지 못한 그녀였다. 동작에 받는 제약이 더 컸다.
“이거나 먹어. 잡것들아.”
잠시 놈들의 공격이 끊어진 틈에 앞에 있던 콘크리트 덩이를 집어 던졌다. 밟을 때마다 꺼떡거리며 중심을 흩트리던 놈이었다.
날아간 그것은 덩치 큰 어른의 몸뚱이보다 큰 조각이었다. 그런 것이 엄청난 속도로 날았다. 좀비의 몸이 견딜 수 있는 충격량이 아니었다.
김현희의 앞으로 30m를 날아가 남아있던 기둥에 걸려 떨어진 그것은 하나의 통로를 만들었다. 날아간 궤적에 걸린 놈들이 전부 터져나가며 피의 길을 연 것이다.
“와. 이거 좋은데.”
김현희는 방패를 내려놓았다. 그리고 손에 잡히는 대로 던졌다. 작은 것은 머리통 정도였다. 큰 것은 사람 키만한 덩어리도 날아갔다.
맞은 놈들은 터지든 깨지든 해야 했다. 어떤 놈들은 날아온 것과 같이 날아갔다. 어떻게든 거동불능이 되는 놈들이 늘어감과 동시에 김현희의 주위는 점점 깨끗해 지고 있었다.
나현주는 스프링처럼 뛰어다니며 놈들을 잡아 나갔다. 넷 중에 바닥의 잔해에 가장 방해받지 않는 것이 그녀였다. 아니 그녀는 전혀 방해받지 않고 있었다.
밟았을 때 푹 꺼지는 것들도 그녀에게 지장을 주지 못했다. 다른 사람이었다면 조금이라도 중심을 잃었을 상황에서 그녀는 아무렇지도 않게 다음 동작을 이어갔다.
오히려 그녀는 발디딤이 좋지 않은 곳으로 놈들을 유인했다. 그리고 중심이 삐끗한 놈들은 그녀의 좋은 먹잇감이었다.
쫓아오던 좀비의 자세가 흐트러지는 순간, 그녀의 발은 날아들었다. 그리고 놈들의 뼈는 산산조각이 나 공중으로 흩어졌다.
나현주의 몸은 계속 돌았다. 팽이처럼 돌면서 걸리는 것들을 박살 냈다.
그 팽이는 한자리에 있지 않았다. 통통 튀면서 정신없이 자리를 옮기는 팽이에 걸린 놈들은 반드시 터져 나갔다.
그 모습은 핏빛의 그라인더가 튀어 다니며 좀비들을 갈아내고 터트리는 것 같았다.
관장은 검기 없이 놈들을 도륙해 나갔다. 까만눈이 아닌 놈들을 상대로 검기를 쓸 이유는 없었다.
얼마 지속하지도 못하는 그것을 쓴다고 앞에 있는 놈들을 더 빨리 잡는 것도 아니었다.
더군다나 지금 관장이 휘두르는 까만색의 검 자체도 보통의 좀비를 가르는 데는 과분했다.
관장이 느끼기에 검이 닿으면 살이 저절로 갈라지는 것 같았다.
뼈와 살이 느낌만 다를 뿐 검이 지나가는데, 조금도 힘이 들이 않았다. 그저 가져다 대면 쓱 하고 통과할 뿐이었다.
어떤 놈은 검이 지나가고 나서도 바로 갈라지지 않고 몇 발자국을 더 움직였다.
그 덕에 한 번만 맞을 칼을 두어 번을 더 맞아야 했다.
베이지 않은 것이 아니었다. 너무나 정교하게 갈라진 몸이 두 조각이 나기에는 다른 충격이 필요했던 것이다.
그런 놈들은 결국 두 조각이 아닌 네 조각, 여섯 조각이 났다.
관장도 그런 경우를 몇 번 겪고는 한번 베인 놈들은 무시하고 다른 놈들을 배어나겠다.
중간중간 방해되는 콘크리트도 가르고 철근도 잘라냈다.
동시에 폭풍처럼 놈들을 도륙하며 나가는 관장 뒤로는 양분된 시체만 쌓여갈 뿐이었다.
“동건아. 1호 안 보여?”
어느 정도 여유가 생긴 이진성은 내부에 1호가 없다는 것을 깨달았다.
500 정도가 죽었다. 아직 놈의 공격이 없다는 것은 여전히 외부에 있다는 얘기였다.
<몰라. 못봤어.>
이미 외부에는 남아 있는 놈이 없어 상공만 선회하는 헬기에서 들려온 대답이었다.
“찾아봐. 여기는 안 들어왔어.”
<알았어. 근데 온통 건물이라서 안에 있으면 찾을 수가 없어.>
“아파치는 어디까지 왔데?”
<1분 정도면 도착할 거야.>
재무장을 위해 돌아간 지 거의 10분 정도 된 것이다.
그들은 돌아간 김에 잠시 쉬려다 습격 소식에 부랴부랴 다시 날아오고 있었다.
와 봐야 어차피 청사 내부 폭격은 할 일이 없다. 내부는 네 명이 시간이 걸려도 정리하면 되는 일이었다.
다시 다섯의 대가리를 쪼개고 배를 가른 이진성이 말을 이었다.
“아파치 오면 같이 찾아봐. 그리고 전차는 어떻게 되고 있어?”
천안에서는 습격 소식에 모든 전차를 전부 투입하기로 했다. 일단 급한 불부터 끄는 게 우선이었다.
여기저기 흩어진 전차를 불러모았다. 탄을 보급하고 기름도 채워야 했다.
<아직 출발 못했다나봐.>
“오면 주위 건물 다 쏴버려. 안에 있으면 튀어나오겠지.”
1호와 암컷이 어딘가 숨어 있다 해도 근방의 건물임이 분명했다.
천안에서 고작 10여km 정도 거리다. 길도 좋다. 출발만 하면 금방 도착할 수 있다.
‘이 새끼가 함정을 파? 한번 당해 봐라. 씨발놈아.’
이진성은 다시 몇 놈의 대가리를 쪼개고 소리쳤다.
“전차 도착할 때까지 속도 늦춰요.”
모습도 제대로 보이지 않는 나현주가 돌면서 외쳤다.
“왜요?”
“1호 놈 근처에 숨어 있나 봐. 전차 올 때까지 여기 놈들 남겨놔야 놈이 도망 안 가지.”
이진성은 놈이 들어오지 않고 도망가는 것이 걱정이었다.
아직 1,000마리가 넘게 남았지만 작정하고 잡는다면 20분 정도면, 넉넉하게 잡아도 30분이면 끝날 수량이었다.
저쪽에서 콘크리트 덩어리로 좀비 네 마리의 대가리를 찍어 뭉개던 김현희가 소리쳤다.
“우리 많이 변했다. 이제 놈이 도망가는 걸 걱정하고. 그리고 앞에 이놈들은 장난감 취급이나 하고.”
이진성이 마주 소리쳤다.
“썅노무 시키가 어디서 함정을 파고 지랄이야 지랄이. 호랑이 코털을 건드렸어. 이번엔 안 놓칠 거야.”
그랬다. 그들 넷은 불과 1년 만에 변해도 너무 많이 변해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