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좀비 에이지 백수 생존기-137화 (137/145)

# 137

이진성의 결정을 다른 셋 모두가 환영했다. 1인당 거의 500에 가까운 숫자였다.

잡는 게 어려운 것은 아니지만 최대한 빨리라는 조건이 붙으면 달랐다. 체력적인 무리가 따를 수밖에 없었다.

1호와 암컷이 진입한다면 둘씩 하나를 상대하면 됐다. 그때 보통 놈들의 협공은 없지만, 체력이 떨어진 것보다, 체력을 유지하고 협공받는 편이 나았다.

<형. 아파치 도착했어요.>

“적외선 수색 부탁해.”

아파치의 야시능력은 훌륭하다. 두 놈이 건물 밖에 있기만 하다면 금방 들킬 것이다.

네 대의 아파치는 동서남북을 나눠 뒤지기 시작했다. 도로 위는 저공비행으로 좌우를 살폈고 건물 사이는 상공에서 꼼꼼하게 뒤졌다.

시청 상공의 수리온을 중심으로 반경 500m까지를 정밀수색한 네 대의 아파치는 순차적으로 보내온 무전은 전부 같았다.

<이상 무.>

까만눈 뿐만 아니라 보통 좀비도 한 마리도 발견되지 않았다. 하지만 1호와 암컷이 아직 주위에 있는 것은 확실했다.

놈의 사자 같은 포효가 들려오고 청사안의 놈들이 공격에 강도를 더하기 시작했기 때문이다.

‘저놈들 들어올 생각이 없나?’

믹서기 칼날처럼 돌아가는 도끼로 여덟 놈을 갈아낸 이진성이 주위를 둘러봤다.

‘아직 여전히 많다. 들어 왔던 놈들의 반도 더 남았어. 들어와 주는 게 더 좋은데.’

천천히 공격한다고 해도 힘은 소모된다. 이진성은 두 놈이 빨리 들어와서 결판을 내길 원했다.

그리고 들어오기만 한다면 헬기와 도착할 전차로 포위할 수 있다.

‘썅. 들어와야 하는데.’

하지만 바깥에서 찾아야 한다면 또 도망갈 길은 널리고 널렸다.

지루한 학살은 계속되었다. 놈들은 간간이 소리를 낼 뿐 여전히 코빼기도 내비치지 않고 있었다.

‘부상이 완전히 낫지 않았나?’

암컷은 왼팔의 반이 없어지고 1호도 왼손이 날아갔다. 둘은 쉽사리 덤비지 못하는 것이 당연했다.

어느덧 청사 내를 빼곡하게 채웠던 놈들의 수는 반 정도로 줄었다. 대신에 바닥에는 놈들의 시체 때문에 다시 발 디딜 틈이 없게 바뀌었다.

흐르지 못하고 고인 피는 곳곳에 웅덩이를 만들었다. 미사일의 크레이터에 고인 피는 거의 다리가 다 잠길 정도의 깊이였다.

자리를 옮겨가며 시체의 수를 늘리고 피를 더해가던 넷에게 반가운 소식이 들려왔다.

<전차 전개 완료.>

천안에 남아있던 전차 두 대가 왔다. 그리고 좀비의 습격에 서 있던 전차 세 대도 다시 확보했다.

예비인원으로 천안에 있던 전차병과 10명의 진화자도 장갑차를 타고 같이 왔다.

좀비가 남아 있던 것은 진화자가 들어가 해결했다.

좀비 없이 경련하는 승무원만 있던 것은 전차병들이 들어가 권총으로 사살했다.

그렇게 확보된 세대에서 시체를 꺼내고 보급까지 마친 후, 다섯 대는 시청사를 둘러싸고 포격 준비를 마쳤다.

“여기는 신경 쓰지 말고요. 주위 건물부터 정리해 주세요. 까만눈이 튀어나올지 모르니까 절대 조심하고요. 그리고 외부에 사람 없게 해 주세요.”

이진성의 요청에 따라 전차는 다시 움직였다. 진화자들은 타고 온 장갑차로 다시 들어갔다.

공중에서 아파치 두 대는 전차를 따라 움직이고 나머지 두 대는 반대 방향을 감시했다.

수리온은 계속 청사 상공에서 모든 상황을 주시했다.

전차는 일단 북동쪽으로 행했다. 야산과 공터가 있는 곳, 창고와 농가 몇 채가 있고 온양 민속 박물관과 아산시 교육문화센터가 있는 쪽이었다.

이미 아파치의 적외선 탐지로 야산에는 놈들이 없는 것을 확인했다. 창고와 농가는 순식간에 날아갔다. 박물관과 문화센터에도 미사일 한 발씩과 충분한 포탄을 먹여 주었다.

나오는 것이 없자 다섯의 전차는 동쪽으로 이동했다. 주택단지가 펼쳐진 곳이다. 파괴해야 할 건물이 엄청나게 많았다.

포격은 이어졌다. 포탄을 실은 트럭이 뒤를 따르며 꾸준히 집들을 부숴 나갔다.

한 채 한 채를 완전히 무너트리지는 못했다. 그러려면 포탄의 소모가 너무 크고 시간도 너무 많이 걸린다.

한 집에 두어 발, 외벽이 뚫리고 안이 들여다보일 정도만 먹여주고 다음 집으로 이동하는 데도 시간은 한참 걸리고 있었다.

전차가 들어갈 수 없는 곳은 공중에서 미사일이 날아들었다. 하지만 시청사를 파괴할 때처럼 마음 놓고 날리지는 못했다.

재고가 많지 않은 헬파이어였다. 이미 평택 기지에 있던 재고는 다 가지고 왔다. 세종에서 확보한 치장물자 비축기지에도 헬파이어는 없었다.

더 구하려면 경기도 하남시의 제1항공여단을 털어야 했다. 하지만 그곳은 현재 어떤 상태인지 알지 못하는 곳이었다.

시청에서 동쪽으로 400m 이내의 건물들을 적당히 파괴하고 전차는 거의 남쪽으로 넘어가고 있을 때였다.

청사 안에는 더는 남아 있는 좀비가 없었다. 천천히 잡는다고 해도 결국은 1호의 흔적을 발견하기 전에 2,000 에 가까운 놈들이 죽어 나갔다.

“도망친 걸까요? 포격 시작되고 놈들 소리가 안 들리기는 했는데.”

청사 밖으로 나와 주위를 둘러보는 이진성의 말에 관장도 역시 주위를 둘러보며 답했다.

“포성에 못 들었을 수도 있지 않겠소?”

그럴 수 있었다. 다섯대의 전차가 내는 포성은 거의 끊이지 않고 울려대고 있었다.

넷이 찌뿌둥한 몸을 스트레칭하며 풀기를 잠시, 서쪽을 탐색하던 코브라에서 급한 무전이 들어왔다.

<까만눈 추정 좀비 1개체 발견. 청사에서 190m, 210도 방향. 상가건물 옥상. 공격 한다.>

무전이 끝나기 전에 아파치의 기관포는 불을 뿜었다. 70mm 로켓탄도 줄지어 날아갔다. 그러면서 서쪽의 두 대가 급속하게 놈이 있는 지점으로 날았다.

“어디야?”

“저기.”

기관포탄과 로켓탄이 꽂히는 곳은 그들이 있는 시청사 주차장에서 바로 보이는 전자랜드 건물이었다.

“미사일은 쏘면 안 돼요.”

이진성이 무전을 날렸다. 혹시나 미사일에 옥상이 무너지면 놈은 안으로 들어갈 수 있었다.

이진성을 선두로 네 사람은 전력을 다해 달리기 시작했다. 다시 놓치기는 죽기보다 싫었다.

주차장을 가로질렀다. 도로로 나서자 전자랜드는 100m 앞에 보였다.

* * *

“동건아. 상황 어때?”

<먼지 때문에 안 보여. 근데 계속 기관포 쏘는 거 보니까 아직 움직이고 있나봐.>

이미 상공으로 자리를 옮긴 수리온에서 장동건은 바렛을 들고 놈을 찾았다. 하지만 야시경에는 놈이 선명하게 보이지 않았다.

한 번씩 바렛을 쏘지만 맞지 않았는지 총탄은 계속 날아가고 있었다.

장동건의 말대로 두 대는 옥상을 중심으로 선회하며 기관포를 계속 쐈다.

로터 소리를 뚫고 들리는 포성과 비 오듯 떨어지는 탄피를 보는 것만으로도 충분히 위압적이었다.

“혹시 지붕 뚫려 그리로 들어간 건 아니겠죠?”

“아직 있으니까 쏘고 있는 것 아니겠소?”

다행히 기관포에 지붕이 뚫리지는 않았다. 옥상의 놈은 자기가 나온 곳으로도 들어가지 못하고 정신없이 총탄을 피해냈다.

장동건은 집중했다. 옥상의 콘크리트가 깨지면서 솟구치는 먼지가 야시경의 화면을 가리자 아예 벗어 버렸다.

‘보여라. 보여라.’

놈의 동선을 알려주는 희미한 빛이 다시 나오기를 빌었다. 그 빛만 나온다면 타격점이 보일 것이고 탄두궤적도 나올 것이었다.

고작 100m 상공에서 탄두궤적 따위는 필요 없었다. 놈의 동선과 타격점만 보이면 됐다.

아예 눈에 보이지 않은 것이어서 그런지 동선의 빛은 좀처럼 나오지 않았다. 일단 눈에 대상이 확인되어야 나오는 것이라는 것을 깨달았다.

아파치 한 대가 옥상으로 근접했다. 그리고 쏘아대는 기관포의 화염에 뭔가가 언뜻 보였다.

암컷이었다. 실루엣으로도 들은 대로 왼쪽 팔은 반만 남은게 보였다.

눈이 놈을 인지함과 동시에 보이는 놈의 동선을 그리는 빛의 선. 그리고 그 약간 앞에 보이는 타격점.

“저년도 어지간히 빨리 움직이나 보네. 타격점이 몸 앞에 있는 게.”

한번 보이기 시작한 선과 타격점은 기관포의 화염이 멀어지고 타깃이 안 보이게 되면서도 계속 이어졌다.

쾅~

역시나 무식한 바렛의 총성이 울렸다. 장동건이 원한 타격점은 놈의 오른쪽 무릎. 날아간 총탄은 정확하게 꽂혔고 무릎의 슬개골을 박살 냈다.

동시에 사라지는 타격점과 동선에 장동건은 아차 싶었다. 한번 맞추고 나면 사라지리라고는 그는 생각하지 못했다.

표적이 눈에 계속 보인다면 선도 계속 있겠지만 안 보이는 표적에 이어진 선은 일회성이었던 것이다.

다리가 아닌 머리를 쏠 걸 후회하는 장동건이 다시 야시경을 집어 들 때 두 대의 아파치는 호버링하며 기관포를 날리기 시작했다.

다리가 박살 나 바닥을 기는 놈은 적외선 야시 화면에 선명하게 나타났다. 자빠진 놈에게 날아간 탄알은 놈의 몸을 뚫기 시작했다.

소총 따위의 위력과는 차원이 다른 탄알이 비 오듯 쏟아져 내렸다. 명중만 한다면 놈의 방어력이 커버할 범위를 훨씬 벗어나는 충격량이다.

그래도 워낙에 질긴 놈의 근육 덕에 총탄은 관통하지 못하고 몸에 박혀 들면서 멈췄다.

놈은 안간힘을 다해 기었다. 온몸은 이미 걸레나 마찬가지였지만 죽지 않고 기었다.

놈이 자빠진 곳이 난간에서 멀지 않은 곳이었다. 그리고 난간은 이미 완전히 파괴되어 존재하지 않았다.

무슨 생각이 있어 기는 것은 아니었다. 그저 본능이었다.

놈의 하나 남은 손이 옥상의 경계를 잡았을 때, 덜렁거리던 오른 다리의 반쪽은 떨어져 나갔다.

팔을 당겨 상체가 옥상을 벗어났을 때, 결국 옆구리가 터지고 양수도 터졌다.

놈은 아래로 떨어져 내렸다. 마침 그 아래에는 이진성과 나현주, 김현희, 관장이 도착해 있었다.

공교롭게 네 사람 사이로 놈이 떨어지면서 헬기의 사격은 멈췄다. 그리고 네 사람은 의식을 잃은 걸레 꼴의 놈을 들어 올렸다.

“이렇게 되고도 안 죽어?”

신기해하는 이진성에게 나현주가 말했다.

“아무래도 임신하면 더 몸이 단단해지는 거 같아요.”

셋은 나현주의 말이 맞는다고 생각했다. 그렇지 않다면 아무리 까만눈이라도 몸이 남아나지 않았어야 정상이었다.

“일단 끌고 가죠.”

이진성은 놈의 주둥이에 자신의 옷을 찢어 쑤셔 넣었다. 혹시나 깨어나 물려고 덤빌까 하는 조치였다.

“안 죽이고요?”

나현주가 눈을 동그랗게 뜨고 물었다.

“죽으면 어쩔 수 없지만 일단은 살려 놓으려고. 미끼로 써야지. 1호가 아직 어디 있는지 모르니까.”

이쪽의 사격이 시작되고 얼마 후 남쪽의 전차 포격은 멈췄다.

1호가 이미 포격한 곳이 숨어 있는지, 아니면 죽었는지, 그도 아니면 아예 다른 곳에 있는지 누구도 알지 못했다.

놈이 나타나지 않는다면 병력을 투입해 수색해야 하지만 이제 그럴 필요가 없어졌다. 더는 포탄을 소비할 필요도 없었다.

지난 며칠간 1호가 암컷을 데리고 탈출한 모습을 보면 놈은 분명히 암컷을 찾으러 올 것이라는 게 이진성의 생각이었다.

이진성은 암컷을 질질 끌고 시청사로 돌아갔다. 가는 동안 출혈은 이미 줄어들고 있었다.

“회복력 죽이네. 쉽게 죽지는 않겠어.”

죽으면 어쩌나 내심 불안했던 이진성은 안도의 미소를 머금었다. 그리고 그는 도끼를 쳐들었다.

“왜?”

나현주의 의문에 그는 대답 대신 암컷의 하나 남은 다리를 내리치기 시작했다. 또 하나 남은 팔도 마찬가지였다.

기절한 상태의 놈은 순수하게 근육 밀도로 도끼를 맞았다. 방어력이 작동하지 않은 근육은 아무리 밀도가 높다 해도 이진성의 도끼를 몇 번 견디지 못했다.

결국 몸뚱이만 남은 놈은 줄에 묶여 국기게양대에 끌어올려 졌다. 공중에 걸린 놈이 정신을 차리는 데는 채 30분이 지나지 않았다.

끼익

입안의 천은 올리면서 이미 제거했다. 놈의 소리는 고통스러웠고 처연했다. 그 소리는 이미 모든 기계음이 멈춘 밤하늘을 멀리 갈랐다.

캬아악 크엉

잠시 후 1호의 포효가 들려왔다. 놈의 소리는 그 어느 때 보다 격앙되어 있었다.

전차와 헬기 승무원들과 새로 투입된 진화자들은 소름 돋는 그 소리에 몸을 부르르 떨었다.

아무렇지 않은 것은 이미 땅에 내려온 장동건을 포함한 이진성 일행 다섯뿐이었다.

“형님. 있잖아. 아무래도 우리가 저놈 코털을 건드린 거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드네.”

이진성은 대답하지 않았지만, 속으로는 같은 생각을 했다. 그리고 밀려오는 불안함을 억지로 밀어내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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