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좀비 에이지 백수 생존기-138화 (138/145)

# 138

폭풍전야

“빨리빨리 움직여.”

병사들이 수십 명씩 뭔가를 매고 들고 달리고 있었다.

“야. 거기 조심해.”

건물 옥상으로 로프에 매달린 통나무들이 올라가고 있었다.

“김 병장님. 이거 이쪽에 설치합니까?”

크레모아를 들고 뛰어온 병사가 병장을 따라다니며 귀찮게 하고 있었다.

아산시청 주변은 난리가 아니었다. 모래주머니를 쌓아 올리고 기관총을 거치하고 레이저와이어를 까는 병사들이 정신없이 뛰어다니고 있었다.

어디선가 주워온 굴착기가 땅을 파냈고, 불도저가 도로에 널린 차량을 밀어냈다.

공중에서는 네 대의 아파치와 수리온 한 대가 쉴새 없이 로터 소리를 울려댔고, 다섯대의 전차와 열 대의 장갑차도 바쁘게 움직이고 있었다.

시청사 주변의 가로수와 조경수는 전부 뽑혀 나갔다. 전차 또는 장갑차로 밀어 버렸고 굴착기로 파냈다.

뽑힌 나무는 적당한 크기로 잘려 진지구축의 재료가 되었고, 버려진 차량과 함께 버무려 바리케이드가 되었다.

시청사 옆 우체국 건물에 설치된 지휘본부도 시장판이 따로 없었다.

모니터를 보며 뭐라 뭐라 떠들어 대는 병사들, 뭔가 서류를 들고 돌아다니는 장교들, 뭐가 그리 바쁜지 뛰어 들어왔다 뛰어나가는 연락병들 한가운데서 지휘부 요인들은 머리를 맞대고 있었다.

천안에 있던 지휘본부가 옮겨온 것은 암컷을 국기게양대에 매달아 올리고 두시간이 지나지 않아서였다.

거의 마무리가 된 천안시보다는 아산시의 상황의 급박하자 본부 자체를 옮겨 버렸다.

천안에는 마무리할 병사 100여 명만 남았고 보조할 진화자 20명이 남았다. 나머지 모든 병사와 진화자, 물자가 전부 아산으로 옮겨진 것이다.

“기관총 진지는 다 끝났나?”

김지훈 중장의 물음에 부관이 즉시 대답했다.

“이곳 우체국 옥상, 전자랜드, 삼성디지털플라자, LG베스트샵, 롯데마트, 농협은행 옥상은 완료했습니다.”

“도로변은?”

“총 20개 중 17개소 완료했습니다.”

“와이어 설치는?”

“레이저 와이어는 현재…….”

장군과 부관은 이런저런 진척 상황을 확인하며 상황판에 뭔가를 계속 적고 지우고 표시해 나갔다.

그 옆에서는 도만수와 이진성, 그리고 다른 특급 진화자들이 숙덕이고 있었다.

“그러니까 어르신 말씀은 놈이 바로 습격은 안 할 거라는 말씀이시죠?”

이진성의 물음에 도만수는 고개를 끄덕였다.

“그렇지. 놈은 혼자 안 와. 세력을 모아야 해. 항상 그래 왔지 않나. 그 수도 점점 더 들었고.”

삼성디스플레이 공장에서 놈은 수많은 놈을 모아놓고 있었다. 몇 개의 까만눈 군집이 합쳐진 대형 집단이었다.

또 이곳 아산시청에서도 미끼로 쓰인 놈들까지 다 하면 2,300 정도의 대형 군집이었다.

도주하던 중간에 어디서 불러왔는지 몇백 마리를 투입하기도 했었다.

“지 암컷을 버리고 안 온다면 모르겠지만, 온다면 이번에는 더 크게 올 거야. 얼마의 시간이 걸리지는 모르지만 하여간 그 숫자를 모으는데, 최소한 며칠은 걸리겠지.”

애초에 암컷만 포획하고 1호는 도망갔다는 소식이 전해졌을 때, 천안의 지휘부는 아산으로 옮길 생각이 없었다.

단지 병력 얼마간과 장비만 급파하고 1호를 잡는 데 큰 도움이 안되는 전차와 헬기 일부는 되돌릴 생각이었다.

놈이 다시 온다면 빠른 시간 내 다시 올 것이고 어차피 결판은 진화자들이 낼 것이라는 생각 때문이었다.

거기에 제동을 건 사람이 도만수였다. 그는 놈이 당장 오지 않을 것이며 최소한 3,000 이상의 대 군집으로 몰려올 것으로 판단했다.

김 장군은 암컷 하나를 구하려고 놈이 그렇게까지 하겠는가 의심했고, 도만수는 그동안 평택에서 놈이 보였던 영악함을 이야기해 줬다.

또한 놈은 단순히 암컷을 구하는데 그치지 않고 계속해서 자신을 방해하는 이진성 일행을 노릴 것이 분명하다고 말했다.

‘과대평가 아닙니까? 놈이 그렇게나 머리를 쓴다고요?’

‘저놈은 다릅니다. 어떤 때 보면 사람 아닌가 싶다니까요.’

결국 김 장군은 모든 가용 자원을 아산으로 투입하기로 하고 부랴부랴 방어선을 구축하고 있었다.

어차피 천안은 거의 마무리 단계였다. 그곳에 꼭 있어야 할 이유도 없었기에 내린 결정이었다.

“할아버지. 얼마나 모아 올까요?”

“글쎄. 그건 아산시에 얼마나 좀비들이 있는지에 따라 달라지겠지.”

헬기의 정찰 비행에서 발견되는 돌아다니는 좀비는 별로 없었다. 시의 규모로 봐서 그 정도밖에 없을 수는 없었다. 훨씬 많은 놈이 있어야 하는데 안 보인다는 것은 헬기를 피해 숨는다는 말이었다.

“놈들이 숨는다는 것은 이미 군집화되었다는 말이야. 어느 놈인가의 지휘를 받는다는 말이지.”

“천안에서는 솔직히 도시 규모에 비해 많지 않았어요. 까만 시키들 수도 그렇고. 여기도 그렇게 많지 않을 수도 있잖아요.”

장동건은 천안보다 작은 아산시에 얼마나 있겠나 싶었다.

천안에서 잡은 좀비의 수는 다해서 2만도 안됐었다. 폭파한 집 안에 있다 죽은 놈들도 있을 수 있겠지만 많지는 않았을 것이다.

시내에서 잡은 까만눈도 관장이 기절하면서 잡은 것이 처음이었고 그 이후 둘을 더 잡은 것이 다였다.

오히려 삼성디스플레이에 모여있던 까만눈이 더 많았다.

“내 생각에는 놈은 우리가 천안으로 가기 전에 이미 그 지역을 먹었던 것 같네. 그리고 우리가 진주하면서 상당수를 이미 빼돌린 것이 아닌가 싶어. 그것들이 디스플레이 공장에 모여있던 거고.”

관장이 끼어들었다.

“그렇다면 어쩌면 아산시도 이미 놈이 먹었을 수도 있겠군요.”

“그렇지. 그럴 수도 있지. 함정을 파고 2,000 정도를 외부에 준비해 놓았던 것으로 봐서는.”

“모여 있는 곳만 찾으면 좋을 텐데.”

나현주의 아쉬움이 담긴 말에 도만수는 말을 이었다.

“그럼 좋지. 하여간 놈이 이번에 다시 온다면 최소한 저번의 두 배는 모아오지 않을까 싶네. 문제는 까만눈을 더 모아 오는 경우네. 그 경우를 대비해서 자네들도 경계해야 할 거야.”

영악한 놈이었다. 이미 이진성 일행과 충분히 붙어 봐서 그 강함을 알고 있는 놈이다.

얼마나 모아 올지 모르지만, 분명히 다른 까만눈과 함께 올 것이 예상되었다.

이진성은 우체국 건물의 3층에서 시청사를 내려다보았다. 공중에 매달린 채 시계추처럼 흔들리고 있는 암컷은 아직은 살아 버텨주고 있었다.

놈은 죽었나 싶으면 한 번씩 괴성을 질러댔다. 마치 어서 자기를 구하러 와 달라고 소리치는 것 같았다.

‘그래. 더 버텨라. 니 서방이 올 때까지 계속 버텨라. 이번에는 반드시 죽여서 같이 보내 주마.’

암컷을 보며 다짐하는 이진성의 눈은 강한 살기가 피어오르고 있었다. 동시에 얼굴에는 잔인한 미소가 그려졌다.

잠시동안 암컷을 그런 상태로 보던 이진성이 문득 고개를 털었다.

‘또 이러네. 요즘 왜 이러지?’

요즘 들어 한 번씩 솟구치는 강한 살기와 적개심에 스스로 놀란 그였다. 얼마 전부터 자신이 전 같지 않음을 느끼고 있었다.

좀비들을 죽일 때 점점 전보다 더 과격한 수를 쓰고 있었다. 그 결과는 점점 더 안 좋아 지는 시체의 상태로 확인할 수 있었다.

1호를 생각할 때 한 번씩 미친 듯이 치밀어 오르는 살기가 자신이 생각하기에도 낯선 그였다.

암컷의 다리와 팔을 잘라 공중에 매단 것도 그의 평소 모습과는 어울리지 않았다.

‘이러다 또 폭주하는 건 아니겠지. 그럼 안 되는데.’

이진성은 다시 이성을 잃는 것이 두려웠다. 혹시라도 자신 주위의 사람을 헤치게 되는 것이 아닌가 걱정이었다.

돌아본 그의 눈에 티격태격하는 나현주와 장동건이 들어왔다. 말없이 도만수의 이야기를 듣고 있는 관장이 보였고 그런 도만수에게 자꾸 농담을 거는 김현희도 있었다.

‘저 사람들과 오래오래 살고 싶은데.’

특히 나현주를 다시 놀라게 만들고 싶지는 않았다.

‘정신 똑바로 차리자.’

자신의 뺨을 가볍게 한번 두드린 이진성은 다시 사람들에게 다가갔다.

“내려갈까요? 준비도 얼추 된 거 같은데?”

해가 지면서 설치된 탐조등에 불이 들어왔다. 시청사를 중심으로 빙 둘러 빛의 장막이 펼쳐졌다.

건물 옥상에 설치된 기관총 진지에서도 불을 밝혔다. 도로변 진지와 경비초소에서도 사방으로 빛을 뿜었다.

이진성은 시청 남쪽 롯데마트 앞 공영주차장으로 향했다.

나현주는 우체국 앞에서 시청 서쪽을 맡았고 김현희는 농협은행 뒤에서 시청 동쪽을 막아섰다.

관장은 북쪽의 대로 위에 설치된 진지로 향했다. 그리고 장동건은 공중에서 흔들거리는 암컷의 몸뚱이 밑에 자리를 잡았다.

거기에 100여 명의 진화자들은 시청사를 둘러싼 채 그들의 뒤에 포진했다.

* * *

1호는 앞에서 자신을 마주 노려보는 거대한 까만눈을 향해 낮게 그르렁댔다.

놈은 1호보다 머리 하나는 더 컸고 덩치는 거의 두 배였다. 손의 크기만 해도 웬만한 어른 얼굴보다 큰 것 같았다.

캬르릉

1호를 내려보면서 위협이라도 하려는 듯 날카로운 소리를 내는 덩치와 1호의 대치는 이미 10분을 지나고 있었다.

손 하나가 없는 1호였다. 하지만 덩치는 1호의 전신에서 풍기는 위압감에 덩치는 쉽사리 덤비지 못하고 있었다.

1호 역시 덩치가 만만하지 않았는지 계속 위협만 하면서 빙빙 돌 뿐이었다.

덩치는 아산시 동남부에 위치한 아산경찰서에 터를 잡고 세력을 불려왔었다. 그동안 그에게 위협이 되는 다른 까만눈은 그다지 없었다.

동쪽에서 온 뜨내기 까만눈 하나가 지난 1년간 가장 위협적이었다.

비정상적으로 민첩한 놈에게 거의 죽을 뻔하다가 상대를 찢어 죽이고 놈의 세력을 흡수하면서 자기 지역 반경 1km 내로는 적이 없이 살아왔었다.

덩치에게 1호는 초면이 아니었다. 한 달 전쯤 1호는 아산시를 휩쓸고 다니면서 덩치의 세력권에 들어간 적이 있었다. 그때 덩치는 멀찍이서 1호를 위협했고 1호는 순순히 물러났었다.

그런데 갑자기 까만눈 다섯을 거느리고 나타난 놈에게 위협받고 있는 상황이었다.

덩치는 열이 뻗쳐올랐다. 자기 지역이 침범당한 것도 그런데 위협까지 받고 있었다. 슬슬 그의 난폭함이 불안감을 넘어섰다.

괴성을 지르며 몸을 던졌다. 통나무 같은 팔이 휘둘려 지면서 엄청난 파공성이 터져 나왔다.

놈의 무지막지한 공격을 1호는 손이 없는 왼팔을 들어 막아갔다.

두 팔이 만나면서 터진 소리는 마치 폭음과 같이 경찰서 지하를 메아리쳤다. 천장에서는 먼지가 부스스 떨어져 내렸다.

한 번의 격돌 후 잠시 물러섰던 덩치가 다시 돌진했다. 더 이상의 탐색은 없었다. 둘의 격돌은 살벌했다.

덩치는 1호를 반드시 찢어 죽이겠다는 식으로 덤벼왔다. 하지만 1호는 덩치를 죽이는 게 목적이 아니었다. 제압을 통한 완벽한 복종이 그의 목적이었다.

상처 정도야 하루면 나으니까 목숨만 붙여 놓으면 되는 것이었다.

둘의 싸움은 1화 이진성의 싸움에 버금갔다. 주위를 둘러싸고 있다 싸움에 휘말린 몇몇 좀비는 피떡이 되어 사라지기도 했다.

결판은 쉽게 나지 않았다. 거의 10분이 지났다. 덩치는 1호를 압도하는 힘이 있었지만 1호는 그것을 상쇄하는 몸놀림과 스피드가 있었다.

더구나 아이러니하게 그동안 이진성 일행과 했던 싸움이 놈의 전투기술을 한층 키워 놓았다.

콰앙

엄청난 소리와 함께 덩치가 벽에 처박혔다. 놈의 한쪽 팔이 덜렁거리는 것이 부러진 것이 분명했다.

1호는 지체하지 않았다. 날아간 놈에게 바라 따라붙으며 공격을 쏟아 냈다.

쇠 때리는 소리가 퍽퍽 소리로 점차 바뀌어 갔다. 그리고 철썩하는 살 치는 소리가 나오기 시작했다.

그러길 잠시, 덩치의 비명이 터져 나왔다. 고통에 찬 소리였고 그 소리에 더는 적개심이 남아 있지 않았다.

1호는 뒤로 물러섰다. 덩치는 이미 피 칠갑을 한 채 온몸이 베여 갈라졌고 여기저기 뼈가 부러져 있었다.

그런 덩치를 잠시 내려보던 1호가 뒤로 돌았다. 그곳에는 1호를 바라보는 일곱의 까만눈과 몇 십 마리의 검붉은눈이 있었다.

크라라라락

1호가 천장을 보며 포효했다. 그 소리에 놈들은 일제히 무릎을 꿇고 엎드려 포효했다.

좀비의 그르렁 소리는 경찰서 건물 곳곳에서 터져 나왔다. 소리는 경찰서 주위 건물로 이어졌다. 건물마다 들어차 있던 좀비들은 나직하게 울부짖었고 그런 건물은 하나둘 그 수를 더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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