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41
이진성이 1호와 맞닥트릴 때 관장에게 달라붙은 놈은 여태 보았던 다른 까만눈과 또 달랐다.
작은 키에 날씬한 몸매의 암컷인 놈은 다른 어느 놈보다 긴 손톱을 앞세우고 달려들었다.
놈은 흉포했다. 달려오며 자신의 시야를 가리는 다른 좀비를 가차 없이 베어 버리는 놈의 손톱에 좀비는 조각조각 나 뿌려져야 했다.
10개의 손톱은 마치 10자루의 장검과 같았다.
놈이 나타나면서 관장은 바로 검기를 끌어 올렸다. 먹물 같은 운철검에 어린 검기의 빛은 또 전보다 조금은 진해 보였다.
번개같이 움직이는 검의 궤적을 따라 빛의 잔상은 중첩되고 중첩되어 공중에 빛의 그물이 쳐진 듯했다.
하지만 놈은 흉포하면서 빠르기까지 했다.
‘이렇게 빠른 놈도 있었나?’
좀처럼 맞지 않는 놈에게 관장은 살짝 당황했다.
아슬아슬하긴 했지만 어쨌든 놈은 관장의 번개 같은 검을 피해냈다.
처음의 격돌에서 손톱 세 개가 잘린 놈은 그다음부터 관장의 검을 손톱으로 수비하지 않았다.
오로지 검을 피하며 손톱으로 역습만을 해 올 뿐이었다.
어깨를 잘라 내기 위해 위에서 아래로 떨어지는 검을 놈은 옆으로 피해냈다.
어깨를 빗나간 검은 팔을 타고 내려가며 마치 면도하는 듯한 소리를 냈지만, 상처는 없었다.
새까만 다섯 개의 손톱이 놈의 비상식적 빠르기를 싣고 날았다.
관장의 배를 가를 듯 찔러오는 손톱은 번개와 같았다.
흘러내리는 검을 돌리기는 이미 늦었다. 관장은 그대로 무릎을 꺾으며 상체를 뒤로 뉘었다.
거의 등이 바닥에 닿을 듯 젖혀진 관장의 귀에 옷이 갈라지는 소리가 들리는 듯했다.
옷만 가른 놈의 손이 드러난 관장의 배를 다시 찍으려 공중에서 급격하게 방향을 틀었다.
동시에 관장의 검도 방향을 틀어 놈의 팔꿈치를 향해 쏘아졌다.
놈은 관장의 배를 가르기를 포기했다. 뻗던 팔을 기묘하게 뒤틀면서 뒤로 빠졌다.
관장은 뒤로 거의 누운 몸을 스프링처럼 일으키며 그런 놈을 향해 다시 검의 방향을 바꿨다.
스삭~
주위의 소음 때문에 들릴 리 없건만 소리가 나는 것 같았다. 그리고 허공에 흩날리는 놈의 긴 머리카락이 관장의 눈에 들어왔다.
놈은 또 목숨을 건졌고 관장은 다시 한 번 아쉬움에 입술을 질끈 물었다.
눈으로 쫓을 수 없는 둘의 접전이 계속 이어졌다. 어느덧 시간은 10분이 넘어가고 있었다.
검기를 뽑아낼 수 있는 시간이 겨우 5분도 안 남은 상황이었지만 관장은 침착함을 잃지 않으려 노력했다.
‘한 번만 걸리면 된다.’
자신을 다독거리며 검을 뻗었다.
‘니 놈이 먼저 지치나 내가 먼저 끝나나 해 보는 거야.’
놈의 에너지가 더 크다면 관장은 어차피 놈에게서 벗어날 수 없었다.
그저 끝까지 가봐야 하는 상황이었다.
‘변하기 전에 뭘 하던 놈이길래…….’
생각하는 중에도 수십번의 공격과 방어가 이루어졌다.
놈의 탄력도 스피드에 못지않았다. 횡으로 그어지는 검을 마치 체조선수의 백덤블링 처럼 피하고는 바로 몸을 쏘아오기도 했다.
예상하지 못한 놈의 반응에 초반 몇 번 결정적인 위험에 빠지기도 했던 관장이었다. 하지만 시간이 지나며 점점 그런 놈의 움직임에 익숙해져 나갔다.
이미 생각을 하고 몸이 움직이는 단계는 지난 지 오래인 그였다.
물 흐르듯 이어지는 공격과 수비는 놈의 변칙적인 움직임에 대응하여 역시 변칙적으로 변해갔다.
놈의 중심이 왼쪽으로 쏠리는 듯했다.
‘변칙이 이어지면 더는 변칙이 아니다.’
이미 경험한 동작, 관장은 모험을 걸었다. 검이 놈의 오른쪽 공간을 향했다.
검이 뻗어 나갈 때 놈은 검에서 멀어지고 있었다.
검이 위에서 아래로 방향을 돌릴 때 놈의 몸은 정지하는 듯싶었다.
검이 떨어져 내렸다. 놈의 몸이 튕기듯 오른쪽으로 방향을 바꾸었다.
관장의 손에 분명히 뼈를 가르는 느낌이 전해져 왔다.
동시에 놈의 움직임이 주춤하는 듯 보였다.
아래로 떨어지던 검이 공간을 횡으로 갈랐다. 방향을 바꿔 위에서 아래로, 사선으로 올라갔다가 다시 반대방향 사선으로 내려왔다.
놈이 주춤하는 한순간에 이루어진 다섯 번의 검격 후 관장은 뒤로 몸을 튕겼다.
그런 관장을 놈이 따라서 앞으로 쏘아져 나왔다.
놈의 팔이 떨어져 내렸다. 떨어지는 자신의 팔을 보려 고개를 돌리는 놈의 허리가 갈라졌다.
몸이 상하로 양분됨과 동시에 수직으로도 갈라져 네 조각으로 갈라지기 시작했다.
균열이 커지면서 피가 솟구쳤다. 피에 밀려난 살덩이는 더 빨리 벌어졌고 4 등분된 몸에 다시 X자의 금이 갔다.
놈의 하나 남은 팔의 손톱이 관장의 코앞에 도달했을 때, 마침내 놈의 몸은 여덟 조각이 나면서 무너져 내렸다.
‘조금만 더 늦었으면 내가 당했다.’
검기를 쓸 수 있는 시간이 몇 분 안 남은 때였다. 모험은 성공했다.
관장은 속으로 가슴을 쓸어내리며 검기를 내린 채로 좀비 무리 속으로 다시 달려들었다.
***
연달아 터지는 크레모아에 좀비들은 쓸려나갔다.
바로 직격 된 놈들은 산산이 갈라져 분해 되었다.
그 뒤의 놈들은 몸에 구멍이 숭숭 뚫렸고 또 그 뒤를 따르던 놈들은 몸 안에 쇠구슬이 박혀 들었다.
하나가 터지면 수십 마리가 사라지고 다시 수십 마리가 피를 뿜고 즉사했으며 또 다른 수십 마리는 큰 상처와 함께 자빠졌다.
그런 것들이 나현주의 앞에서 벌써 수십 개가 터지고 있었다.
“저건?”
방금 또 한 무더기를 쓸려나간 뒤에서 튀어나오는 까만눈이 그녀의 눈에 들어왔다.
놈의 앞에 있던 놈들이 피 안개와 함께 사라지고 그 뒤의 놈들이 사지를 떨어뜨리고 쓰러지는데 그 중간에서 살아서 앞으로 달려 나오는 놈이었다.
놈도 완전히 멀쩡하지는 못했다. 달리고는 있지만, 온몸에서 피를 흘리고 있었다. 동시에 쏟아진 쇠구슬이 피부의 방어력이 커버하기에 너무 많았다.
대부분이 튕겨 나갔지만 상당한 숫자가 가죽을 뚫고 근육에 박혀 들었다.
나현주는 놈을 향해 달려나갔다. 놈도 그런 나현주를 보고 마주 달렸지만, 어딘가 어색했다.
놈은 미세하게 절뚝이고 있었다. 크레모어에 당한 다리가 정상이 아니었다.
‘다행이다.’
나현주는 그 모습에 상황을 간파했다. 주공격 목표를 놈의 오른쪽 다리로 정했다.
놈과의 거리가 5m 정도 되었을 때 공중으로 몸을 뽑아 올린 그녀의 발이 하나는 놈의 무릎을 찍고 하나는 낭심을 걷어찼다.
“어라? 아무렇지도 않아?”
놈은 낭심을 차이고도 타격이 없었는지 그대로 손을 휘둘러 왔다.
섬뜩한 바람 가르는 소리와 함께 놈의 손은 나현주의 뺨을 향해 날아갔다.
나현주는 놈의 무릎 위에서 그대로 발에 힘을 밀어 넣었다.
놈의 다리가 밀리는 듯하면서 중심이 흐트러졌다.
뒤로 다시 튕겨 나가며 공중에서 몸을 뒤튼 나현주의 몸 위를 놈의 손이 지나쳤다.
그녀는 공중에서 그 손을 향해 다시 킥을 날렸다.
빠각 소리가 들려왔다. 쇳소리가 아니었다.
‘놈. 정상이 아니야.’
크레모아에 의한 부상이 보이는 것보다 큰 것이 분명했다. 나현주는 착지와 동시에 놈을 향해 다시 몸을 쏘아냈다.
다시 중심을 잡고 나현주를 향해 한 발을 내딛던 놈의 오른 다리에 나현주의 니킥이 날아들었다.
“깨지란 말이야!”
무릎과 무릎이 충돌하면서 바위 깨는 듯한 소리가 터졌다.
놈의 다리는 휘청했고 나현주는 공중에서 몸을 360도 돌리며 다른 발로 놈의 관자놀이를 찍었다.
대가리가 돌아가며 옆으로 밀리던 놈이 손을 뻗어 나현주의 정강이를 잡았다.
놈은 그대로 손을 당겨 나현주를 바닥에 메다꽂으려 했다.
“이 새끼가 어딜 잡아?”
다리가 당겨지는 나현주는 잡히지 않은 발로 놈의 복부를 걷어찼다. 동시에 허리를 돌려 팔꿈치로 놈의 정수리를 찍었다.
놈이 손을 놓았다. 중심을 못 잡고 뒤로 밀리는 놈에게 나현주가 따라붙었다.
“죽어. 이 재수 없는 새끼야.”
놈의 오른 다리에 양발이 교차하며 여섯 번의 킥을 차올렸다.
정수리와 관자놀이에 주목과 팔꿈치가 작렬했다.
옆구리와 갈빗대에 니킥이 꽂히고 목울대에 정권이 날아갔다.
놈의 코가 주저앉았다. 빗장뼈가 동강 났다. 안와골이 깨지면서 눈동자가 튀어나왔다.
뻗어 오던 놈의 팔을 겨드랑이에 낀 나현주가 공중으로 몸을 던져 올라 회전했다.
뻑 소리와 함께 놈의 팔꿈치가 탈골했다. 그녀는 그대로 공중에서 세바퀴를 더 돌아 놈의 팔 아래를 뜯어내 버렸다.
나현주는 목을 걸어서 당겨 놈을 던졌다. 팔에서 피를 뿜으며 놈은 날아갔고 그녀는 그 피를 맞으며 따라붙었다.
착지하며 남은 팔로 땅을 짚은 놈의 몸은 순간적으로 무방비 상태가 되었다.
‘오케이. 왔어.’
나현주는 기회를 놓치지 않았다. 척추를 차서 놈을 공중에 띄웠다. 새우처럼 꺾인 놈의 옆구리에 스트레이트 연타를 찔러 넣고 다시 허리에 니킥을 꽂아 놀렸다.
놈은 공중에서 떨어지지 못한 채 나현주의 소나기 같은 공격을 그대로 다 허용해야 했다.
제기 차이듯 계속 차올려지며 두들겨 맞은 놈의 뼈는 하나둘 금이 갔다. 금이 가던 뼈는 급기야 부러지기 시작했다.
갈비뼈가 부러지고 척추가 기형적으로 꺾였다. 어깨의 뼈들이 다 부러지면서 팔들은 축 늘어졌다.
놈이 땅에 떨어졌을 때 놈의 상체는 이미 형태를 잃고 있었다.
두 다리만 버둥대고 있었지만 오른 다리는 이미 꺾일 수 없는 각도로 꺾여 있었다.
나현주는 잠시 숨을 돌렸다. 턱까지 차오른 숨을 몰아쉬며 주위를 둘러봤다.
그 주위로만 공간이 있을 뿐 사방이 좀비였다. 이미 좀비와 인간의 경계는 없어진 채 서로 섞여 죽이고 죽고 있었다.
“이 개 같은 것들이…….”
그녀는 이를 갈았다. 그리고 자신을 노려보고 있는 까만눈의 옆구리에 수도를 찔러 넣었다.
이미 걸레가 된 놈의 가죽은 어렵지 않게 뚫렸다. 몸 안을 쑤시고 들어간 나현주의 손은 부러진 갈빗대를 잡았다.
그녀가 손을 잡아당겼다. 부욱하고 가죽이 찢어지며 갈비뼈가 뽑혀 나왔다.
뽑혀 나온 갈비뼈를 두 동강 낸 그녀는 양손에 하나씩 잡고는 그대로 놈의 눈에 내리찍어 넣었다.
* * *
장동건은 좀비와 병사들이 한 덩어리가 되어 싸우고 있는 지역을 통과해야 했다.
가지고 있는 총이라고는 바렛 하나. 그걸로 놈들을 잡는 것은 낭비였다.
“소총. 소총 하나만.”
달리는 장동건은 혹시나 바닥에 떨어진 소총이 없는지 찾았다. 하지만 보이는 것은 없었다.
난전이 벌어지는 곳 내부에는 많이 떨어져 있었겠지만, 아직 그가 있는 곳은 방어선의 내부였다. 그곳에는 죽어 자빠진 병사가 없었다.
‘아 씨. 이런 거 하기 싫은데.’
장동건은 자신의 다리를 다시 한번 써먹기로 마음먹었다. 달리던 그는 인간 방어벽 바로 뒤에서 땅을 박차 공중으로 솟구쳐 올랐다.
‘저기.’
솟아오르며 보이는 전방 30m쯤 지역에 막 병사 하나의 어깨를 물어뜯는 좀비가 보였다. 그가 착지할 위치였다.
엉켜있는 사람과 좀비를 순식간에 지난 장동건이 하강하면서 두 다리를 놈을 향해 뻗었다.
다행히 놈은 뒤통수를 장동건에게 보이고 있었다.
빡 소리와 함께 그의 전투화가 놈의 대가리를 찼다.
놈은 밀려가면서 앞으로 자빠지며 얼굴을 아스팔트에 갈았다.
놈을 차고 땅에 떨어진 장동건은 한 바퀴 구르며 손을 뻗었다. 그의 손은 아슬아슬하게 방금 어깨를 뜯긴 병사의 소총을 잡을 수 있었다.
장동건이 떨어진 곳으로 주위의 좀비들이 달려들기 시작했다.
워낙에 밀도가 높은 곳이라 놈들이 장동건을 둘러싸는 것은 순식간이었다.
그리고 장동건의 모습은 금방 놈들의 아래로 사라졌다.
타타타탕 타타탕
아래를 바라보는 놈들의 뒤통수를 뚫고 나온 총알이 하늘을 향했다.
대가리가 깨진 채 푹푹 쓰러지는 놈들 밑에서 피를 뒤집어쓴 장동건이 부랴부랴 일어섰다.
장동건이 달리기 시작했다. 달려가는 그의 전방의 좀비들은 전부 대가리가 터지며 그에게 길을 터줘야 했다.
가는 길에 소총 하나를 더 주웠다. 처음 주운 소총의 탄알이 떨어지자 그 총을 버리고 두 번째 총을 썼다.
죽어 자빠진 병사가 있으면 탄창도 챙겼다. 하지만 떨어진 총이 너무 많았다. 탄창을 가는 것보다는 웬만하면 총을 갈았다.
장동건은 쭉쭉 앞으로 나갔다. 김현희의 위치는 알고 있었다.
거의 직선으로 나간 장동건이 김현희를 발견했을 때 그녀는 두 까만눈의 협공을 받고 있었다.
장동건은 왼손에 K-2, 오른손에 바렛을 들었다. 그리고 두 총이 서로 다른 목표물을 향해 불을 뿜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