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좀비 에이지 백수 생존기-142화 (142/145)

# 142

장동건은 걸었다. 그의 고개는 연신 돌아갔다.

소총은 주위의 좀비들을 쓸었다. 바렛은 김현희의 방패를 두들기는 두 까만눈을 향했다.

막 좀비에게 물어 뜯길뻔한 병사 하나는 눈앞에서 놈의 대가리가 터지고 뇌수와 피가 쏟아지자 기겁을 하며 주저앉았다.

좀비 한 놈의 목뼈를 끊어 내면서 다른 놈의 공격을 막지 못한 한 진화자는 갑자기 자신을 공격하던 놈의 대가리가 뚫리며 뒤로 넘어가자 누군지 모를 은인에게 감사 인사를 했다.

장동건은 김현희에게로 이어지는 사선을 가리는 놈들도 치워야 했다. 난전 중인 사람과 좀비들은 계속해서 장동건의 사선을 가렸고 그때마다 놈들을 제거하기 위해 총탄을 날려야 했다.

겨우 사선을 정리하고 한두 발 바렛을 날리면 또 사람들이 들어오고, 다시 정리하고 또 한두 발을 날리기의 반복이었다. 그래 봐야 타격도 제대로 주지 못하면서 탄알만 소비할 뿐이었다.

김현희는 일단 그걸로 숨을 돌릴 수 있었다. 그녀의 방패를 두드리던 놈들은 한 번씩 울리는 포성과 같은 총소리와 함께 주춤할 수 밖에 없었다.

짧은 순간이었지만 김현희에게는 더할 나위 없는 기회였다. 그녀의 무지막지한 힘이 실린 방패 풀스윙에 맞은 놈들은 서너 걸음씩 밀려 나가야 했다.

‘어디 높은 곳.’

장동건은 집중타를 날리기 위해 방해받지 않을 곳을 찾았다. 그가 있는 곳은 시청사 옆 아산중학교의 운동장, 뻥 뚫린 공간이었다.

그의 왼쪽으로 체육관 건물이 보였다. 건물의 왼쪽 끝으로 툭 튀어나온 화장실의 지붕 높이는 기껏 3m 정도였다. 거기서 다시 체육관의 지붕이 3m 정도. 아치형의 지붕 위는 깨끗했다.

장동건은 다시 달렸다. 앞을 가리는 좀비들을 쏘아 넘어뜨렸다. 여유가 없으면 점프해서 놈들을 뛰어넘었다.

순식간에 체육관에 도착한 그가 메뚜기처럼 지붕에서 지붕으로 뛰어올라 김현희를 바라보았다.

그녀의 방패가 한 놈을 때렸다. 놈은 그 방패를 마주 때렸음에도 10m 정도를 날아가 다른 좀비와 사람들을 뚫고 들어갔다.

다른 한 놈이 그녀의 옆에서 기회를 놓치지 않고 달려들었다. 놈의 이빨은 훤히 드러난 김현희의 옆구리로 향하고 있었다.

“눈까리 좀 보이란 말이야!”

다섯 발의 바렛 소리가 울렸다. 탄알은 김현희에게 달려드는 놈의 뒤통수를 사선으로 향했다.

세 발에 두개골이 금 가면서 중심을 잃었다. 네 번째 탄은 놈의 무릎을 때리며 다리를 꺾어 놈의 이빨을 김현희의 허리를 벗어나게 만들고 다섯 번째 탄이 놈의 두개골을 터트렸다.

장동건을 돌아보고 엄지를 들어준 김현희는 다시 그녀에게 달려드는 다른 한 놈에게 방패를 날렸다.

왼손의 정글도 역시 동시에 날아들었다.

장동건의 탄도 놈을 마음대로 움직이지 못하게 거들었다.

어마무시한 힘이 실린 방패와 정글도, 거기에 연속된 1점 타격의 무서운 총알에 놈은 오래 버티지 못했다.

탄이 흉곽을 뚫고 장기를 휘저었다. 동시에 정글도가 배를 쑤시고 들어갔다.

그와 함께 아래로 정수리로 내려 꽃인 방패는 놈의 목을 꺾어 버렸다.

김현희는 주저앉는 놈의 대가리를 잡아 돌렸다. 360도 돌면서 목뼈가 완전히 부러진 놈의 대가리는 결국 그녀의 손에 의해 뽑혀 저 멀리 날아가 버렸다.

* * *

이진성과 1호는 그동안 몇 개의 건물을 더 지나쳐 좀 더 남쪽으로 내려와 있었다.

다시 한번 날린 이진성의 도끼를 배에 맞은 놈은 버티지 않고 그 힘을 이용해 뒤로 날았다.

콰장창

두꺼운 강화유리를 뚫고 놈은 한 거대 상점 안으로 처박혔다. 곧바로 따라 들어간 이진성의 눈에 놈이 들어가면서 무너트린 진열대에서 쏟아진 장난감들이 보였다.

대형 장난감 매장이었다. 약탈 대상이 아니었기에 여전히 멀쩡했던 그곳은 이진성과 1호의 싸움으로 순식간에 난장판으로 변해갔다.

진열대는 도미노처럼 무너졌다. 천장에 달려있던 비행기가 날아가 산산이 부서졌고 바닥을 구르던 인형이 밟혀 삑삑 소리를 냈다.

수많은 장난감 박스와 쏟아진 플라스틱 조각이 둘의 발을 미끄럽게 만들었다.

‘놈. 제대로 움직이지 못한다.’

이미 많이 다친 1호였다. 도끼에 맞은 주둥이에 이빨은 다 날아가 피를 철철 흘리고 있었고 여기저기 갈라진 상처가 있었다.

안그래도 조금씩 휘청이는 1호는 맨발 때문에 전투화를 신은 이진성보다 더 잘 미끄러졌다.

‘오고 있는 놈들이 들이닥치기까지 십여 초도 안 남았다. 빨리 끝내야 해.’

이진성이 슬쩍 민 장난감 자동차를 1호가 밟고 자빠지며 몸이 공중에 떴다.

이진성은 쾌재를 부르며 도끼를 쳐올렸다.

놈의 등허리를 도끼날이 찍었다. 활처럼 휘며 떠오르는 놈의 배를 이진성의 뒤꿈치가 무서운 속도로 회전하며 내리찍었다.

도끼로 올려침과 동시에 몸을 띄워 공중후려차기를 내리꽂은 이진성은 바닥을 쓸며 저만치 미끄러진 1호를 따라 달렸다.

놈의 대가리가 벽을 때리고 멈춰 섰을 때 이진성의 도끼는 놈의 사타구니는 향해 내려 찍히고 있었다.

이진성은 뒤에서 밀려오는 엄청난 바람 가르는 소리를 들었다. 뒤를 볼 수 없는 그는 냄새 없이 공격하는 놈의 존재에 화들짝 놀랐다.

‘개 같은. 또 까만 새끼네.’

그대로 1호를 찍어간다면 놈에게 큰 타격을 줄 수 있지만, 뒤에서 밀려오는 공격을 허용해야 했다.

그의 본능이 그 공격을 맞으면 안 된다고 경고했다. 맞으면 최소한 심각한 부상이라는 듯 등골이 화끈해지며 온몸이 찌리리 했다.

이진성은 이미 거의 1호를 찍고 있는 도끼를 놓았다. 손을 놓음과 동시에 몸을 비틀며 점프했다.

도끼는 1호의 치골을 때렸다. 이진성은 공중에서 누운 채 드릴처럼 돌면서 뒤에서 뻗어온 주먹을 향해 발을 날렸다.

‘아까 그 덩치 새끼?’

쩡하는 소리가 아래와 위에서 동시에 터졌다. 1호가 도끼에 맞는 소리였고 사라졌던 덩치의 손목이 이진성의 발에 맞는 소리였다.

“이 씨발 새끼가.”

바닥에 내려선 이진성이 다시 주먹을 휘둘러 오는 덩치에 마주 발을 날렸다. 순식간에 손과 발이 교차하고 주먹과 주먹이 서로를 때리기 시작했다.

놈의 주먹에 맞은 진열대는 뻥뻥 뚫려 나갔다. 이진성은 그런 놈의 주먹을 감히 맞을 수는 없었다.

뻗어오는 놈의 팔을 때로는 발로, 때로는 주먹으로 때려 경로를 피하면서 가까스로 피해냈다.

이진성은 완전히 맨몸으로 격투하기는 처음이었다.

도끼는 1호를 때리고 튀어 올라 저만치 안 보이는 곳으로 날아갔다. 일단은 손발로 놈을 상대할 수밖에 없었다.

이진성에게는 다행인 것과 불행인 것이 동시에 닥쳐왔다.

다행인 것은 1호가 아직 일어나지 못하고 바닥을 기고 있다는 것이었다.

불행인 것은 덩치에 이어 검붉은눈들이 장난감 가게로 꾸역꾸역 밀려들어 온 것이었다.

들어온 놈들은 순식간에 이진성과 1호, 그리고 덩치를 에워쌌다. 몇 놈은 1호의 주위를 둘러쌌고 나머지는 이진성과 덩치 사이에서 공격할 틈을 노리고 있었다.

이진성으로서는 무너지거나 아직 멀쩡하게 서 있는 진열장들이 너무나 고마웠다. 또한 바닥에 널린 장난감들도 그를 도와주는 아군 같이 생각되었다.

그것들 덕에 놈들은 물밀듯 밀려들지 못하고 있었다.

이진성은 놈들의 공격을 막으며 어떻게든 도끼가 날아간 방향으로 움직이려 했다. 놈은 그 마음을 아는지 모르는지 정신없이 공격을 퍼부어 댔다.

‘이대로는 위험해. 저 새끼마저 합세하면 좆되는건데...’

가까스로 놈의 주먹을 피하면서 뒤돌려 차기를 덩치의 목에 꽂아 넣었지만, 놈은 잠시 휘청할 뿐이었다.

그 틈을 이용해 달려드는 놈들의 목뼈를 차서 끊고 심장을 주먹으로 터트렸다.

이진성은 압도적인 속도로 덩치의 무지막지한 힘과 다른 놈들의 교란을 이겨냈다.

하지만 바닥의 방해물은 그에게도 골칫덩이였다.

한 번씩 잘못 밟은 장난감들이 이진성의 중심을 흩트렸다.

그때마다 그의 몸을 파고드는 놈들의 손발을 가까스로 피하며 식은땀을 흘려야 했다.

‘곱게 끝내긴 힘들겠어.’

이진성은 1호가 시간을 끌며 그곳까지 밀려온 그 전법을 떠올렸다.

한방씩 맞아주며 거리를 벌리는 것. 놈은 교묘하게 충격을 흘리며 도끼의 타격을 이용했었다.

이진성이 도끼가 날아간 쪽으로 등을 향하게 섰다. 다시 날아오는 덩치의 무지막지한 킥을 두 손으로 막으며 몸을 띄웠다.

손에서 밀려오는 고통에 이진성을 얼굴을 구겼다. 하지만 그 덕에 그의 몸은 쏘아진 듯 뒤를 향해 날아갔다.

콰콰쾅

으윽

날아가는 이진성의 뒤에 있던 몇 놈이 볼링핀처럼 날아가 제멋대로 구겨져 바닥에 꽂혔다.

이진성도 진열대에 튕기고 다시 다른 진열대를 들이받고서야 멈춘 채 신음을 토했다.

‘빌어먹을. 이건 어디 간 거야?’

주위를 훑었지만, 도끼는 보이지 않았다.

대신 번쩍이는 쇳덩이 아령이 바로 옆을 구르고 있었다.

이진성이 날아가 떨어진 곳은 운동용품 코너, 쓸만한 쇳덩이가 많았다.

다시 내려꽂히는 덩치의 주먹이 진열대에 구멍을 냈다.

바닥을 굴러 그 주먹을 피한 이진성이 일어났을 때 그의 양손에는 20kg짜리 아령이 하나씩 들려 있었다.

“개새끼. 한번 맞아 봐라.”

아령은 고무 피복 같은 것은 있지도 않은 통짜로 만든 쇠였다. 이진성에게는 고마운 일이고 놈들에게는 아쉬운 일이었다.

덩치의 주먹을 마주 아령으로 때리자 이진성의 손이 찌르르했다. 하지만 그는 손에 힘을 더하며 놈을 때려갔다.

놈보다 빠른 이진성은 놈이 한 번 때릴 때 그 한 번을 막고 두 번을 때렸다. 거기에 발을 날리는 것도 잊지 않았다. 또한 놈의 공격을 피하며 달려드는 다른 놈들도 잡아 나갔다.

때로는 이진성의 피한 놈의 공격에 휩쓸린 검붉은눈들의 대가리가 터져 나갔다.

‘땡큐.’

그 모습에 이진성은 고마움을 가득 담이 덩치를 향해 아령을 휘둘러 갔다.

덩치는 자신의 공격은 번번이 막히면서 자신만 얻어터지자 점차 이성을 잃어 갔다.

공격에 힘이 과하게 들어갔다. 그만큼 동작이 커지고 정교함이 떨어져 갔다.

덕분에 이진성은 놈의 그 섬뜩한 주먹과 발을 막지 않고 피할 수 있었다. 그리고 그것은 수비하던 그 시간마저도 공격에 사용할 수 있게 되었다는 말이었다.

아령을 든 주먹이 쏟아졌다. 발과 무릎, 뒤꿈치 팔꿈치가 작렬했다.

마치 나현주가 그곳에 있는 듯, 좀비들은 터져 나가고 있었다.

바닥의 장난감들 위에 피와 내장이 쏟아졌다. 안 그래도 미끄러운데 바닥은 점점 제대로 서 있기도 힘들어졌다.

이진성은 자빠진 진열대 위를 뛰어다니기 시작했다. 미끄러워도 그편이 더 나았다. 빠르고 가볍게 통통 튀어 다니는 그를 놈들은 우르르 몰려다니며 쫓아다녔다.

마침내 실내가 좀비들의 파편으로 가득 찼다.

서 있는 놈이라고는 덩치밖에 없었다. 1호도 어딘가 자빠져 있는지 보이지 않았다.

덩치도 한쪽 손목은 뒤로 꺾여 제 역할을 못 하고 왼쪽 갈비뼈는 함몰되어 있었다.

그게 폐와 심장을 찔렀는지 놈의 입에서는 피가 꿀럭꿀럭 넘어오고 내장 부스러기 같은 것도 올라왔다.

여전히 도끼 대신 아령을 들고 있는 이진성이 몸을 돌리며 놈에게 쏘아졌다.

빠각

놈의 관자놀이가 깨졌다.

놈의 무릎이 역으로 꺾였다.

턱이 빠져 살을 찢고 이빨과 함께 날았다.

놈은 무릎 꿇고 이진성을 노려봤다. 그런 놈의 앞에 쭈그려 앉은 이진성이 놈을 마주 노려봤다.

이미 덩치는 들어 올릴 팔이 남아 있지 않았다. 부서진 뼈로 제멋대로 덜렁거리는 고기만 어깨에 달려 있을 뿐이었다.

“썅노무 새끼. 잘 가라.”

이진성이 마지막 일격을 가하기 위해 서서히 몸을 일으켰다. 아령을 들은 팔을 한껏 뒤로 뺐다.

오함마를 내려치듯 온몸의 모든 힘을 쏟아부은 아령이 놈의 정수리를 부수고 들어갔다.

뇌를 박살 내고 그대로 두개골을 깬 아령이 없어진 아래턱의 자리로 뚫고 나왔을 때였다.

이진성은 배에서 밀려오는 엄청난 고통에 아래를 내려다보았다. 배에는 새카만 손톱 두 개가 튀어나와 있었다.

그가 옆을 돌아보았다. 1호가 그의 옆구리에 손을 박아 넣고 있는 것이 보였다.

“언제?”

덩치와 다른 좀비들에게 정신이 팔린 이진성은 1호를 잊고 있었다. 아니 바닥을 버둥대던 1호를 무시했다.

그런데 그놈이 소리 없이 다가와 이진성의 배를 뚫었다. 다행인 것은 놈의 이빨이 없어 이진성을 물지 못한다는 것이었다. 또 접전 중에 남은 손톱도 둘밖에 없었다.

“씨발…….”

이진성은 좀비들의 피 웅덩이로 쓰려졌다. 놈은 그런 이진성을 버려두고 어기적거리며 천천히 실내를 벗어났다.

“최소한 고자는…….”

사타구니에서 피를 철철 흘리며 서서히 사라지는 놈의 모습을 바라보던 이진성의 눈도 서서히 감겨 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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