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좀비 에이지 백수 생존기-143화 (143/145)

# 143

최종진화

이진성의 입과 코, 배의 갈라진 상처로 바닥에 흥건한 좀비의 피가 스며들었다.

상처를 통해 들어간 피는 이진성 자신의 피와 섞이기 시작했고 폐로 들어간 피는 서서히 호흡을 곤란하게 만들었다.

정신을 잃어가는 이진성은 상처를 통해 뭔가 이상한 불쾌한 감각이 번져감을 느꼈다.

배에서 시작된 그것은 마치 개미가 물어뜯는 듯 간질간질하면서 따끔거렸다. 동시에 화끈하면서 칼로 그어대는 듯도 했다.

불쾌한 느낌은 점차로 통증으로 변했다. 통증은 시간이 가며 강도를 더해갔다. 점차 심해진 통증은 정신을 잃은 이진성조차 몸을 비틀게 했다.

통증 때문에 정신이 들만도 했지만, 그는 그러지 못했다. 여전히 의식이 없는 상태로 몸은 비틀리고 입은 벌어져 더 많은 피가 넘어가 폐를 채우고 위장을 채웠다.

꿈틀대던 몸은 고통이 더해가면서 퍼득거림으로 변해갔고 그것은 다시 격렬한 경련으로 바뀌었다.

낚시에 걸린 잉어가 요동치는 듯한 극심한 경련에 고여있던 주위의 좀비 피가 튀고 좀비 살점 부스러기들이 날았다.

이진성의 심장 박동이 점점 더 빨라졌다. 온몸의 혈관이 툭툭 불거지고 피부는 새빨갛게 변해갔다.

혈압이 급격하게 올랐다. 혈류는 미친 듯이 혈관을 타고 흘렀다.

엄청난 속도로 흐르는 피는 외부에서 들어오는 좀비의 피를 끌어당겼다. 혈관으로 들어가 섞여버린 혈액은 그대로 이진성의 온몸으로 뻗어갔다.

모세혈관은 다 터져 남아나지 않았다. 작은 혈관도 거의 터져 버렸다. 몸 여기저기가 울룩불룩 하는 것이 마치 몸 안에서 물이 끓고 있는 듯했다.

그리고 마치 정말 그렇기라도 한 듯, 그의 체온이 오르기 시작했다.

이미 폐의 반은 피로 찼다. 혈관은 터지고 체온도 급격하게 올랐다.

동물로서 생존할 수 없는 상태였다.

하지만 그는 여전히 살아 있었다.

심장이 계속 뛰었고 폐도 움직였다.

세포 하나하나는 더욱 왕성하게 신진대사를 했다.

뇌의 전기신호는 말초신경까지 전보다 더 활발하게 전달되고 있었다.

피 웅덩이에 혈류가 생겼다. 이진성의 몸으로 빨려 들어가는 좀비의 피가 점점 늘어났다.

들어간 피가 어디로 사라지는지 들어가는 양은 무섭게 늘어났다.

이진성의 몸 안에서는 격변이 일어나고 있었다.

들어오는 피는 혈관에서 분해되어 나갔다. 물은 그대로 온몸의 구멍으로 배출되고 나머지 모든 성분은 세포 구석구석으로 퍼져 나갔다.

성분은 조각조각 났다. 어떤 것은 분자 단위로 분해되었다.

좀비로의 변이를 만들었던 변형된 유전자는 염기 단위로 분해되어 이진성의 세포와 만났다.

그리고 그의 DNA는 분해 재조립되기 시작했다.

이진성의 피부색이 변하기 시작했다. 팽창된 혈액 때문에 빨갛던 피부가 점차로 검게 변하더니 보라색으로 분홍색으로 파란색으로 누런색으로 시시각각 변했다.

몸의 털이란 털은 다 빠지고 손발톱도 다 빠졌다.

피부의 표피도 색이 변할 때마다 벗겨져 나갔다.

피부색이 열두 번 변하고 다시 사람의 색으로 돌아왔을 때 그의 경련도 약해지는 듯했다.

그러더니 피부가 희미하게 밝아지기 시작했다. 희미한 광채는 빛이 되고 그 빛은 점차 밝아져 어두운 실내를 환히 비추기 시작했다.

빛이 밝아지며 이진성의 몸이 슬며시 떠오르기 시작했다. 피 웅덩이를 벗어난 그의 몸은 축 늘어진 팔다리조차도 그 웅덩이에 닿지 않을 높이까지 떠올랐다.

손발톱 다시 돋아 나왔다.

배의 상처가 급속도로 아물어 갔다. 삐져나왔던 창자가 제자리를 찾아 들어갔고 뚫리고 갈라진 상처는 메워졌다.

찢어진 뱃가죽이 다시 이어 붙으며 언제 상처가 있었는지 흔적조차 남지 않았다.

혈류가 정상을 찾았다. 체온도 빠른 속도로 내려가기 시작했다.

공중에서 몸의 모든 바이털 사인이 정상이 됨과 동시에 그의 몸에서 나오던 빛은 마치 플래시가 터지듯 섬광을 뿌리고 사라지고 다시 실내는 암흑에 잠겼다.

동시에 그는 다시 피 웅덩이에 처박혔다.

“씨발. 저거 뭐야?”

“몰라. 보고도 믿기지 않네. 좆도.”

이진성이 떨어져 내리고 약 1분이 지났을 때 웅성거리는 말소리와 함께 구석에서 네 명의 사람이 슬며시 나왔다.

남루한 옷에 지저분한 몰골의 사람들은 늙고 젊은 남녀들이었다.

“새로운 좀비 아니야? 가까이 가지 말아요.”

소년이 앞으로 나서는 아줌마를 잡아끌자 아줌마가 그런 소년의 손을 팽개쳤다.

“걱정 마. 자빠져 있잖아. 더 맛있을지도 몰라.”

네 사람의 손에는 식칼과 빨랫줄 등이 들려 있었고 등에는 피가 뚝뚝 떨어지는 망태기가 있었다. 망태기 안에는 조각난 좀비의 몸뚱이가 가득했다.

아저씨 하나가 이진성에게 다가와 쿡 찔러왔다. 반응이 없자 이번에는 발로 툭 찼다.

“죽었나?”

20대로 보이는 여자가 앞으로 나왔다. 그녀는 겁도 없이 이진성의 목을 짚어 맥을 확인했다.

“살았어요.”

그녀의 말에 넷은 서로를 돌아봤다.

“어쩌지?”

“가져갈까? 가져가자. 사람이면 살려주고 좀비면 먹어 버리지 뭐.”

“아까 그거 못 봤어? 세상에 그런 사람이 어딨어?”

“씨발. 그럼 그런 좀비는 있냐?”

티격태격하는 셋을 보던 소년이 슬며시 말했다.

“혹시 신 같은 거 아닐까요?”

소년은 쏟아지는 셋의 구타를 견뎌야 했다.

* * *

시청의 전투는 막바지에 달했다. 남은 좀비는 2,000 정도. 그중에는 좀비가 된 병사와 진화자도 꽤 있었다. 그리고 바닥에는 아직 좀비가 되어가는 사람들이 상당수 경련하고 있었다.

병력은 채 200명도 남지 않았다. 진화자도 여전히 싸우고 있는 사람들은 38명밖에 없었다.

지휘본부는 전멸한 지 이미 오래였다. 안에 있던 김 장군과 군인들, 진화자는 그 자리에서 죽었거나 좀비가 되었거나 되어가고 있었다.

관장과 나현주, 김현희, 장동건은 나머지 사람들을 이끌고 남은 놈들을 잡아갔다.

관장은 더는 검기를 쓰지 못하는 상태였다. 장동건도 탄이 떨어진 바렛은 오래전에 어딘가 던져 놓고 사방에 굴러다니는 K-2를 주워 쓰고 있었다.

김현희와 나현주도 몸에 상처를 가득 안고 있었다.

네 사람은 마지막에 나타난 한 마리의 까만눈 때문에 꽤 고전했다.

나 현주와 관장의 중간 지점에서 나타난 놈은 파죽지세로 안으로 밀고 들어갔었다.

놈은 빠르고 강했다. 달려간 관장의 검기는 몇 분 이어지지 못했고 그동안 놈에게는 작은 상처 몇 개를 준 것이 다였다.

결국 탈진한 그는 나현주와 김현희의 뒤늦은 합세가 없었다면 죽었어야 했다.

이미 바렛의 탄을 다 쓴 장동건은 K-2로 계속해서 놈의 눈을 노리면서 놈의 행동에 제약을 주는 역할만을 수행했었다.

넷이 놈을 상대하는 동안 나머지 좀비들에 의한 피해는 눈덩이처럼 불어갔다.

분명 좀비가 사람보다 훨씬 많이 죽었다. 하지만 워낙 수가 많았다. 죽어 자빠진 좀비는 거의 3만에 육박했다. 그러고도 여전히 사람보다 훨씬 많았다.

사람들은 빠른 속도로 쓰러져 갔지만, 무기를 보급 받지 못한 헬기와 전차, 장갑차는 그냥 움직이는 쇳덩이일 뿐이었다.

그러던 것이 넷이 마지막 까만눈을 처리하고 사방으로 흩어져 다시 좀비들을 잡아가면서 진정되기 시작했다.

상황을 어느 정도 진정시킨 넷은 이진성이 갔던 방향으로 달렸다. 무전도 안되는 그가 계속 모습을 보이지 않자 나현주의 속은 타들어 가고 있었다.

“괜찮을 거야.”

김현희의 말은 나현주의 귀에 들어오지 않았다. 자신이 더 빨리 놈들을 잡았어야 했다는 자책만이 그녀를 괴롭힐 뿐이었다.

“누나. 걱정 마. 유리했어. 1호가 많이 밀리고 있었어.”

나현주는 그래도 안심할 수 없었다. 아무리 그래도 상대는 1호였다. 눈으로 보기까지는 안심할 수 없었다.

주차장을 지나 몇 개의 건물을 지났다. 흔적은 널려 있어 찾는 것은 어렵지 않았다. 핏자국과 깨진 유리, 1호와 이진성이 싸우면서 깨고 부순 온갖 물건들이 그들이 간 방향을 알려 주고 있었다.

“여기요.”

관장이 장난감매장의 깨진 유리를 통해 안으로 들어섰다.

이미 동이 터 해가 비치는 매장의 안은 문자 그대로 시산혈해였다.

“아저씨!”

“형!”

“진성아!”

사람들은 들어서면서 이진성을 찾아 소리쳤다.

철퍽 거리며 피웅덩이를 헤치고 뛰기 시작했다.

인기척은 없었다. 오로지 자신들이 내는 소리만 메아리칠 뿐이었다.

“흩어져 찾읍시다.”

관장의 말과 함께 넷은 흩어졌다. 쓰러진 진열장을 들추고 시체 조각을 살폈다. 하지만 이진성은 어디에도 없었다.

“누나. 여기.”

장동건의 외침에 사람들이 달렸다. 셋이 장동건에게 다가갔을 때 그는 자빠진 진열장 밑에서 이진성의 도끼를 꺼내고 있었다.

나현주는 그 도끼를 받아 들고 바로 울음을 터트렸다. 도끼를 부여잡고 그대로 무너져 앉았다.

무릎 꿇고 오열하는 그녀를 김현희가 감싸 안고 역시 울기 시작했다.

“아직 속단하긴 이르오. 이 안에 진성 씨 시체는 없소. 어쩌면 급박해서 도끼를 꺼내지 못하고 다른 곳으로 갔을 수도 있소.”

“그렇지만… 그렇다면 위험에 빠졌을 수도…….”

울며 돌아보는 나현주에게 관장이 소리쳤다.

“정신 차리시오. 아직 살아 있으면 이러고 있을 시간에 어서 찾아야지.”

나현주는 정신이 번쩍 들었다. 우는 것은 생사를 확인하고 할 일이라는 생각과 함께 다시 일어선 그녀는 도끼를 들고 달리기 시작했다.

“어디가?”

장동건의 외침에 그녀가 마주 외쳤다.

“핏자국 찾으러.”

피 웅덩이인 건물에서 나갔다면 핏자국이 없을 수 없었다.

나현주는 그 자국을 찾기 위해 건물 주위를 돌기 시작했고 나머지 셋도 그녀를 따랐다.

* * *

밀려오는 두통과 함께 정신을 차린 이진성의 눈에 알지 못하는 낯선 공간의 모습이 들어왔다.

어떤 집이 분명한 그곳의 창문은 나무판자로 덧대어 막혀 있었다.

판자 사이로 새어 들어오는 빛으로 봐서 이미 낮이 되었음을 알 수 있었다.

‘여긴 어디? 몇 시나 된 거지?’

바닥은 온통 잡동사니로 가득했다. 그 잡동사니 사이로 바퀴벌레가 가득했고 한구석으로 쥐도 돌아다니고 있었다.

풍겨오는 냄새도 지독했다. 마치 시궁창 안에 들어와 있는 듯했다.

분명한 것은 좀비는 없다는 것이었다. 좀비의 냄새는 나지 않았다. 대신에 방 밖에서 사람의 악취와 함께 말소리가 들려왔다.

“근까 저 새끼가 새로운 뭔가라는 것은 맞잖아.”

“그렇지. 분명히 사람은 아니지.”

“그럼 죽여야 하는 거 아닌가요?”

“아씨. 또 말이 제자리야. 일단은 기다려 보자고. 능력자들도 엄밀하게 사람은 아니잖아.”

사람의 목소리는 넷이었다. 남녀가 섞인 그들은 계속 싸우고 있었다.

이진성이 듣기에 뭔가 새로운 존재를 발견한 것 같은데 몸에서 빛이 나는 이상한 존재를 말하고 있었다.

도대체 뭐를 발견했기에 그러나 궁금해진 그가 몸을 일으키려 했다.

‘어? 왜?’

자신의 몸을 칭칭 동여매고 있는 것은 빨랫줄이었다. 온몸에 얼마나 많은 빨랫줄을 감았는지 빈틈도 없었다.

‘왜 나한테?”

자신을 구해준 것이 분명한 사람들인데 왜 이렇게까지 묶어 놨는지 알 수 없었다.

이진성이 몸을 비틀어 봤다.

‘뭐야? 꽉 묶어 놓지는 않았네?’

쉽게 비틀어지는 몸에 의아함이 더해갔다.

‘이렇게 많이 묶어 놓느니 손발만 좀 확실하게 묶으면 될걸. 쯧’

이진성이 팔을 벌려봤다.

투투툭

빨랫줄은 썩은 명주실처럼 끊어져 나갔다. 다리를 벌리자 그곳도 마찬가지였다.

‘삭았나? 뭐 이렇게 쉽게 끊어져? 그래서 많이 감아 논 건가?’

빨랫줄 가닥을 하나 들어 당겨보자 역시나 톡하고 끊어져 나갔다.

‘허술한 사람들이네.’

끊어진 조각을 다 털어내고 일어선 이진성은 생소한 느낌에 그 자리에 흠칫 멈춰 섰다.

‘이건 뭐지?’

이진성에게 네 사람의 냄새가 아닌 다른 것이 느껴졌다. 무엇인지 설명할 수 없는 느낌이었다. 생전 처음 느껴보는 것이었다.

마치 내가 여기에 있소 하고 말하는 듯한 그런 느낌으로 네 사람의 위치를 알려주고 있었다. 또한 그들의 강함도 느낄 수 있었다.

‘이게… 관장님이 느낀다는 거?’

뭔지는 알 수 없었다. 하지만 분명하게 그들의 존재감이 보이듯 느껴졌다.

갑자기 왜 자신이 그런 것을 느끼는지도 궁금했다. 일단은 사람들을 만나봐야겠다 생각하며 이진성은 방문을 열었다.

“으악.”

“살려주세요.”

넷은 방문을 열고 나오는 이진성을 향해 저마다 소리치며 난리를 치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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