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44
문소리에 고개가 돌아간 네 사람은 기겁했다. 그곳에 피칠갑한 이진성이 스스로 문을 열고 나오고 있었다.
보통 사람은 제대로 숨도 쉬지 못할 정도로 칭칭 동여매 놓았었다. 그런데 줄은 온데간데없이 걸어 나오는 것이다.
그들은 이진성이 그 줄을 끊었다고는 생각도 못 했다. 어떻게 풀었는지가 신기할 뿐이었다.
몸이 공중에 떴던 것, 빛이 났던 것, 거기에 푸는 것이 불가능한 줄을 풀고 나온 것, 모든 것이 이진성을 사람도 좀비도 아닌 것으로 보이게 만들기에 충분했다.
“귀신. 귀신.”
아저씨는 오줌을 지리며 엉덩이를 끓었다. 아줌마와 젊은 아가씨는 구석에 박혀 오들오들 떨고 있었다.
남자아이만 있던 자리에 있었지만, 넙죽 엎드려 뭐라고 중얼거리는데 마치 기도문을 외우는 것 같았다.
‘이 사람들 왜 이래?’
이진성은 그 모습에 기가 막혔다. 뭘 보고 저렇게 겁을 먹는지 이해할 수 없었다.
그런 사람들을 놔두고 실내를 둘러 봤다. 방과 다름없이 지저분했고 창문은 막혀 있었다.
한쪽에는 고깃덩이와 인간의 뼈도 쌓여 있었다.
네 사람에게서 식인의 냄새는 나지 않았다. 그냥 고소한 냄새일 뿐이었다.
‘좀비 고기를 먹고 사나 보네.’
이진성이 보기에 거지꼴의 그들에게 다른 변변한 식량이 있어 보이지 않았다.
“네 명이 전부니까?”
네 사람은 이진성이 인간의 말을 하리라고는 기대도 하지 않고 있었다. 그런데 갑자기 이진성의 입에서 인간의 말이 나오자 더욱 기겁했다.
“살려주세요”만 계속 되뇌는 사람들을 보며 이진성도 답답해 미칠 것 같았다.
“이봐요. 죽이긴 누가 죽인다고 그래요? 당장 안 닥쳐요? 계속 시끄럽게 하면 진짜 죽일지도 몰라요.”
이진성의 고함이 효과를 발휘했다. 네 사람은 한순간에 입을 다물고 떨면서 이진성을 바라봤다.
“지금 몇 시예요? 아니, 오늘 며칠이에요? 나 여기 온 지 얼마나 됐어요?”
“시간이나 날짜는 모릅니다. 그런 거 잊고 산 지 오래돼서. 여기 오신 건 오늘 아침에…….”
시간은 얼마 지나지 않았다. 이진성은 안심했다.
“여기 어딘데요?”
“여기 저희 집인데요?”
“그거 말고. 아산 어디냐고요?”
“용화동인데요?”
용화동이 어딘지 이진성이 알 리 없었다.
“그게 어디예요? 아니, 아산 시청에서 얼마나 돼요?”
“시청에서 얼마나 되나? 한 1.5km 정도 되나? 그 정도 일 겁입니다.”
이진성은 조금 놀랐다. 기절한 자신을 데리고 왔기에 멀지 않은 곳이라 생각했는데 생각보다 멀었다.
“여기까지 어떻게 날 끌고 왔어요?”
끌고 왔냐는 말에 사람들은 손사레를 크게 쳤다.
“끌고 오다뇨. 차로 모시고 왔습니다.”
“차?”
“네.”
용감한 건지 무식한 건지 좀비가 그렇게 많은 아산시에서 차를 끌고 다닌다는 것에 이진성은 놀랐다.
“도대체 뭐 하는 사람들이에요?”
네 사람은 혹시라도 이진성이 궁금한 것이 있으면 자기들을 해치기라도 할까 앞다투어 자신들에 관해 설명했다.
그들의 말에 의하면 가족은 아니었다. 그냥 어찌어찌 만나서 같이 살고 있고 좀비고기로 연명해 오는 사람들이라고 했다.
그러면서 제발 죽이지 말아 달라고 신을 몰라봤다고 엎드려 빌었다.
“신? 뭔 소리야?”
이진성의 혼잣말에 소년이 자신들이 봤던 것을 풀어놓았다.
그들이 총성에 이끌려 가다가 한 건물에서 새어 나오는 빛을 따라갔던 것, 그곳에서 공중에 뜬 이진성이 빛을 뿜어내던 것을 발견 한 것을 마치 경건한 무엇인가를 본 듯 설명했다.
더불어 빨랫줄을 풀고 나온 것까지 기적이라고 떠들어 댔다.
“그 빨랫줄, 그냥 끊어지던데?”
그 말도 네 사람을 다시 놀래켰다. 그들은 엎드려 이진성에게 잘못했다고 빌고 또 빌었다.
‘이 사람들 제정신 아닌 거 같은데. 나한테서 빛이나? 공중에 떠 있어? 말이 돼?”
정상으로 보이지 않는 사람들이었다. 말하는 것도 두서없었다.
정신 사나운 네 사람을 두고 다시 방에 들어간 이진성이 끊어진 빨랫줄 가닥을 들고 나와 햇살에 비춰 봤다.
‘멀쩡해 보이는데.’
주위를 돌아보던 이진성이 한쪽에 놓인 철근 꼬챙이에 다가가 집어 들었다.
‘헉. 뭐가 이렇게 부드러워?’
이진성은 소리도 없이 너무도 쉽게 휘어버리는 철근에 놀랐다. 그리고 그런 모습을 본 네 사람이 이진성보다 더 놀랐다.
‘변화가 있었어. 뭔지 모를 큰 변화가. 사람의 존재를 느끼는 것, 이런 말도 안 되는 힘. 또 뭐가 있을까?’
이진성이 자신의 몸을 내려다봤다. 잊고 있었던 배의 상처를 확인하려고 피로 완전하게 물든 옷을 들쳤다.
‘뭐야? 흔적도 없잖아?’
죽을 수도 있는 상처였다. 살았기에 어느 정도 나았으리라 생각했지만 몇 시간 만에 흔적도 없이 나았으리라고는 생각하지 못했었던 그였다.
그리고 또 다른 것이 있었다. 그동안 살도 많이 빠지고 근육도 많이 붙었다고는 하지만 그의 체형은 아저씨 체형이었다.
그런데 그의 배에 보이는 것은 선명한 식스팩이었다.
이진성이 여기저기를 더듬었다. 온몸이 돌덩이 같았다.
“혹시 거울 같은 거 있나요?”
갑작스런 이진성의 말에 또 화들짝 놀란 아줌마가 방 안으로 달렸다. 그리고 들고 나온 손거울을 이진성에게 두 손으로 건넸다.
‘이게 나?’
살이 쪽 빠진 갸름한 얼굴, 팽팽한 피부, 매섭게 빛나는 눈빛. 이진성은 마치 다른 사람을 보는 기분이었다.
‘설마 저 정신 나간 사람들이 한 말이 진짜였나? 에이. 설마.’
그는 머리에 무협지에 나오는 환골탈태가 떠올랐지만 이내 고개를 저었다.
‘뭔가 헛것을 봤겠지. 말이 돼?’
‘지난 시간 모두가 말이 안 되는 것 같지만 어쨌거나 과학적으로 설명이 되고 있어. 하지만 이건 아니야. 이건 초자연적인 거야.’
눈앞의 네 사람의 말을 믿을까 하다가도 그건 아니라는 생각에 다시 물으려던 말을 삼켰다.
물어봐야 같은 소리가 나올 것 같고 또 그런 걸 확인하고 있을 시간도 없었다.
“총소리는 언제 그쳤나요?”
아가씨가 즉시 대답했다.
“이곳으로 돌아오고 나서 좀 있다가요. 해 뜨고 좀 지나서였어요.”
“혹시 그곳에서 나 외에 다른 사람이나 좀비는 못 봤어요? 손이 하나 없고 눈도 하나 없는 좀비 같은 거라든가.”
“아뇨. 없었어요. 혼자 피바다에 계셨어요.”
‘하긴 그땐 아직 싸우고 있었을 때니까. 지금쯤 나 찾는다고 난리 났겠네.’
슬슬 돌아가야겠다는 생각에 이진성이 현관으로 걸음을 옮겼다.
그 모습에 네 사람은 화들짝 놀라며 이진성의 반대 방향으로 우르르 몰려갔다.
이진성은 등 뒤에서 느껴지는 네 사람의 존재감을 다시 한번 확인했다.
소리와 냄새 말고도 사람들의 움직임이 확실하게 느껴졌다.
‘역시 계속 느껴지는군. 좋은데? 어디까지 느껴지는 거지?’
이진성은 나가다 말고 선 자리에서 눈을 감고 정신을 집중했다.
‘이건 뭐지? 나한테서 어떤 힘의 장막이 퍼져 나가는 것 같잖아?’
아지랑이 같은 무엇인가가 자신의 주위로 펼쳐지는 것 같다는 생각과 함께 확연히 느껴지는 존재감들.
‘반경 500m 내에 좀비 73, 인간 8.’
마치 레이더 화면을 보듯 좀비와 인간의 위치가 느껴졌다.
‘어디까지 되는 거지?’
간질간질하면서 따스한 그 느낌에 좀 더 집중했다. 하지만 범위가 더 넓어지지는 않았다.
‘이 정도가 한계인가?’
뚫린 공간이면 냄새로도 비슷한 거리까지 확인할 수 있는 그였다.
다른 점이라고는 실내에 있어도 되고, 인간도 확인 가능하다는 것 정도.
좋지만 약간의 아쉬움이 남았다.
퍼져나가던 힘의 장막에서 의식을 돌리려는 그때였다. 그의 신경을 자극하는 어떤 기운이 다가왔다.
‘1호…….’
그는 느꼈다. 아니 느끼는 것이 아니라 그냥 알 수 있었다.
거리는 잡히지 않았다. 방향만이 전해질 뿐이었다.
‘나를 부른다. 놈도 날 느낀 건가?’
역시 상식적으로 설명되지 않는 현상이었다. 하지만 이진성은 확신했다.
‘이것도 변화의 결과라면…….’
일단 수용하기로 하고 놈이 느껴지는 방향을 돌아보았다. 나무판자로 막힌 거실 베란다 쪽이었다.
“부탁 하나만 합시다.”
“부탁이라뇨. 지시만 하세요.”
소년이 무릎을 꿇고 고개를 박으며 대답했다. 이진성은 난감했지만, 그냥 말했다.
“시청에 가면 사람들이 있을 겁니다. 나현주라는 여자를 찾아서 내가 살아 있고 1호와 결판을 지으러 갔다고 전해 주세요.”
“알겠습니다.”
소년은 가타부타 말도 없었다. 그냥 받아들일 뿐이었다.
“가서 공중에 떴다는 둥, 빛이 났다는 둥 그런 소리는 말고.”
“알겠습니다.”
이진성은 너무 공경한 소년이 부담스러웠지만 무시했다. 잘하겠거니 생각하며 베란다로 뛰었다.
이진성의 몸과 충돌한 나무판자는 산산 조각났다. 그 뒤의 유리창도 같이 깨지고 다시 베란다 외창도 박살이 났다.
그대로 몸을 뽑아 올린 이진성이 앞 건물 옥상까지 뛰어올랐다.
거기서 다시 점프해 뛰어넘은 거리는 30m 정도. 점프와 점프를 이어가며 그는 네 사람의 시야에서 순식간에 사라졌다.
“세상을 구원하러 신이 강림하셨어. 거봐, 내 말이 맞잖아.”
소년은 의기양양했다. 처음 장난감 가게에서 소년을 때리고 무시했던 세 사람은 혹시나 천벌을 받는 것은 아닌가 전전긍긍하기 시작했다.
* * *
핏자국을 따라가던 나현주는 얼마 못 가 망연자실했다.
차도로 들어서자 자국은 증발한 듯 사라졌다.
오도가도 못한 그녀는 그 자리에 주저앉아 다시 울음을 터트렸다.
장동건은 그 모습에 시청사로 달렸다. 나는 듯 달려 청사에 순식간에 도착한 그는 장진을 찾아 나섰다.
무전에 응답하지 않는 그를 찾기는 쉽지 않았다. 살아남은 사람이 많지는 않았지만 전부 흩어져 있었다. 지휘체계도 없어 모두는 중구난방으로 뛰어다녔다.
장동건이 청사를 한 바퀴 돌며 만나는 사람마다 물었지만 장진의 행방을 아는 사람은 없었다.
무너진 청사 안도 뒤지고 지휘부가 있던 곳도 뒤졌다. 주위 건물도 뒤졌다. 하지만 그는 없었다.
혹시나 싶어 다시 한 바퀴를 돌던 중 네 시간 만에 겨우 장진과 함께 조를 이뤘던 병사를 찾아냈다.
“전사하신 것 같습니다.”
난전 중에 그 병사도 장진과 헤어졌고 그 이후로 보지 못했다고 했다.
‘썅. 그럼 어떻게 찾지?’
장진이 죽은 것보다는 이진성을 추적할 방법이 없어졌음이 더 문제였다.
그가 다시 돌아간 그곳에 나현주는 탈진해 있었다. 김현희가 그녀의 옆에 붙어 앉아 한숨만 내쉬고 있었고 관장은 나름 뭔가를 찾아보려는 듯 주위를 배회했다.
장동건이 관장에게 슬며시 다가가 속삭였다.
“장진 하사는 아무래도 죽은 것 같아요.”
“음. 어렵게 됐군.”
“제가 해 보겠지만 기대는 하지 마세요.”
“뭐 어쩌겠소. 일단 하는 데까지 해봐야지.”
말은 그렇게 했지만, 장동건은 어디서부터 어떻게 시작해야 할 지 난감했다.
하늘도 솟은 듯 없어진 핏자국을 포기한다고 해도 어떤 자국을 찾아야 할지 감도 잡히지 않았다.
그저 관장과 마찬가지로 땅바닥만 보면서 이리저리 돌기를 30분이나 했을까, 저쪽에서 갑자기 차 소리가 들려왔다.
“웬… 차죠?”
“그러게 말이오.”
장동건은 소총을 들었다. 관장도 검을 뽑아 들었다. 저 뒤에 앉아 있던 김현희도 방패를 세우고 정글도를 잡고 일어섰다.
흙먼지를 잔뜩 뒤집어쓴 승용차가 슬며시 다가왔다. 그 차도 길을 막고 선 장동건과 관장을 봤는지 속도를 줄이고 그들 앞 20m 정도에 멈춰 섰다.
차 문이 열렸다. 운전석에서 소년 한 명이 조심스럽게 내렸다. 조수석에서 아저씨 하나와 뒷자리에서 아줌마와 아가씨가 따라 내렸다.
소년이 소리쳐 물었다.
“혹시 나현주 님이라고 아십니까?”
긴장한 세 사람을 포함해 나현주까지 그들에게 달렸다.
“내가 나현주예요. 내 이름 어떻게 알죠? 혹시 아저씨가, 아니 이진성이라는 사람이 보냈나요?”
나현주는 소년의 어깨를 잡고 흔들었다.
소년은 그 손을 정중하게 물리고 그 자리에 무릎 꿇었다. 다른 셋도 소년을 따라했다.
“저희는 신께서 보내셨습니다.”
나현주와 장동건, 김현희, 관장은 이건 뭔 미친 소린가 싶어 서로를 돌아봤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