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45
“뭐라고요?”
나현주의 물음에 소년은 다시 답했다.
“신께서 나현주 님을 찾아 말씀을 전하라 하셨습니다.”
나현주는 소년의 고개를 잡아 올려 눈을 바라봤다. 분명히 초점이 있었다.
‘미친 건 아닌 거 같은데.’
일단 자기 이름을 알고 있으니 그녀는 이진성이 보낸 사람으로 생각하기로 했다.
이진성의 전투를 보고 그런 모습을 처음 봐서 신이라고 생각하나 보다 생각했다.
“뭐라고 전하라 하던가요?”
소년은 다시 고개를 숙이고 말했다.
“신께서 1호라는 존재와 결판내러 가신다 하셨습니다.”
네 사람은 이해할 수 없었다. 이진성은 분명히 1호와 싸우고 있었다. 이미 어떤 식으로든 결판이 나고도 남을 시간이었다.
그런데 갑자기 처음 보는 사람들을 보내 결판을 내러 간다고 전하는 상황이 뭐가 뭔지 알 수 없었다.
“저기. 다른 말은 없었니?”
김현희가 물었다.
“없습니다.”
간결하게 대답하고 침묵하는 소년의 모습에 답답한 장동건이 차로 향했다. 차 문을 열고 내부를 들여다본 그는 화들짝 놀랐다.
“뭐야 이거? 온통 피잖아?”
차 내부는 여기저기 피 얼룩이 가득했다. 꺼멓게 변색한 것부터 아침에 새로 묻어 아직 마르지도 않은 것까지 색도 다양했다.
바로 총구를 아저씨의 뒤통수에 찔러 넣은 장동건이 소리쳤다.
“이거 다 뭐야? 니들 뭐 하는 것들이야? 우리 형 어디 있어? 어떻게 만났어? 전부 다 말 안 하면 죽어!”
“아악. 살려 주세요. 저희는 아무것도 안 했어요. 그저 전하라고 하신 말씀만 전할 뿐입니다.”
“그러니까 언제 어떻게 만나서 왜 그런 말을 들었냐고?”
남자 대신 아줌마가 나섰다.
“말씀드릴게요. 제발 총 좀 치워 주세요.”
그 모습에 관장이 다가가 장동건의 총을 내렸다. 일단은 들어보는 게 우선이었다.
그들은 이진성에게 했던 말을 다시 했다. 자기들이 어떻게 살아왔으며 왜 시청사 쪽으로 왔었고 어떻게 이진성을 발견했는지, 발견 후 무슨 일이 있었는지를 서둘러 털어놓았다.
그리고 어떻게 발견했는지를 말하면서 이진성이 벌인 기적을 같이 말해 버렸다.
“그거 말하지 말라고 하셨잖아요.”
“아차.”
이미 엎질러진 물이었다.
사람들의 반응은 이진성과 마찬가지였다. 미친 사람들이 분명하다고 생각되면서도 아닌 것 같기도 했다.
“뭔 소리야?”
장동건의 말에 김현희가 응답했다.
“그러게. 뭔 소리래?”
황당함을 감추지 못하는 셋이 웅성거리는 중에 나현주는 달랐다.
그녀에게 그런 것은 귀에 들어오지도 않았었다. 이진성이 1호를 잡으러 어딘가 갔다는 것밖에 들리지 않았다.
“어디로 갔는지 안내할 수 있나요?”
“그게… 저희 집에서 방향만 알 수 있습니다. 금방 사라지셔서…….”
최소한 얼마 전까지 살아 있었다는 것은 알았다. 일단은 찾아야 했다. 찾으면 무슨 일이 있었는지 알 수 있었다.
“박 준위님. 저 현주에요. 들리세요?”
나현주가 무전을 보냈지만, 대답이 없었다.
“누나. 준위님 지금 헬기에 안 계실 거야. 거기 정리하고 있을걸?”
“그럼 니가 좀 갔다 와. 우리 저 건물 옥상에 있을게.”
나현주가 가리키는 건물을 한번 본 장동건이 다시 시청사로 달렸다. 그리고 나현주는 소년을 잡아 일으켰다.
“넌 우리랑 같이 가자.”
소년은 장동건이 껑충껑충 뛰면서 순식간에 사라지는 것을 봤다. 그가 봤던 어떤 능력자도 그런 모습을 보인 적이 없었다.
‘이 분들도 신인가 보다.’
소년은 더욱 경건한 자세로 나현주와 관장, 김현희를 따라 건물로 달렸다.
* * *
이진성은 처음 무작정 창을 뚫고 점프할 때, 아무 생각이 없었다. 이끌림에 의해 일단 뛰었는데 마치 날아가듯 몸이 뻗어 나갔다.
처음에는 놀랐다. 하지만 이내 진화의 결과려니 받아들였다.
나는 듯 건물과 건물을 뛰어넘으며 달려가는 지금도 그는 또 다른 어떤 능력이 있을까 궁금했다.
‘놈이 가까이 온다. 놈도 날 느끼는 게 분명해.’
이진성과 1호는 엄청나게 빠른 속도로 가까워지고 있었다. 이진성은 그것을 분명하게 느낄 수 있었고 둘 사이의 거리가 500m 이내가 되자 위치가 보이듯 그려졌다.
‘저놈도 뭔가 변화가 있었어. 어제까지의 그놈이 아니야.’
그는 뭐가 다른지 모르지만 다르다는 것을 알았다. 느낌이 그렇게 말해주고 있었다. 이진성이 강해진 만큼 놈도 변했다고.
이진성의 눈에 놈이 들어왔다. 점처럼 보인 놈은 급속도로 가까워지며 순식간에 그 모습을 드러냈다.
“썅. 뭐야 저거?”
놈의 피부는 눈과 마찬가지로 완전히 검은색이었다. 불뚝불뚝했던 근육 덩이 몸은 날씬하게 쪼그라져 있었다. 하지만 근육이 더욱더 세밀해지고 촘촘해진 것임을 이진성은 한눈에 알아챘다.
팔은 땅에 닿을 듯 길었다.
손이 날아간 왼 손목 자리에서 창같이 뾰족한 뼈가 돋아 나와 있었다.
오른손은 그 크기가 두 배로 커진 듯했다.
겨드랑이에는 박쥐 날개 같은 피막이 뻗어있었다. 놈은 그것을 펼치고 진짜 나는 듯 달려왔다.
더는 인간의 형태가 아니었다. 완전한 괴물이 된 것이다.
‘위압감 장난 아니네.’
거의 50m 거리에서 점프한 둘은 공중에서 격돌했다.
주먹과 주먹이 만났다.
폭탄 터지는 소리가 터져 나왔다. 충격파가 퍼지고 주위 건물 옥상의 먼지가 일제히 날아올랐다. 가까운 곳의 유리창은 전부 가루가 났다.
충돌의 반탄력으로 각자의 뒤로 날아가던 둘은 동시에 바닥을 박차고 다시 날아올랐다.
놈의 킥이 빨랐다. 바람 가르는 소리조차 가르고 뻗어온 킥이 이진성의 배에 작렬했다.
다시 터지는 폭음. 그리고 날아간 이진성은 한 건물의 콘크리트 벽을 등으로 뚫고 들어갔다.
‘아프지 않잖아?’
이진성은 배에도 등에도 별 통증이 없는 것에 놀랐다. 거기에 날아가면서도 중심을 잃지 않았다.
건물 내부의 벽 하나에 거미줄 같은 금을 만들고 멈춘 이진성은 구멍을 통해 들어오는 1호를 향해 마주 달렸다.
‘받은 건 줘야지.’
벽을 박찬 이진성이 총알같이 날아갔다. 번쩍하고 날아간 그의 주먹이 이번에는 놈보다 빨랐다.
놈의 배를 뚫을 듯 꽂힌 주먹에 놈은 들어온 구멍으로 다시 날아갔다. 날아간 놈은 굉음과 함께 맞은편 건물을 등으로 뚫고 들어가 바닥을 데굴데굴 굴렀다.
이진성이 다시 몸을 쏘았다. 한달음에 놈이 뚫은 구멍으로 빨려 들어간 그가 막 일어나는 놈의 배에 발을 꽂아 넣었다.
건물의 반대편 외벽을 뚫고 나간 놈이 궁중에서 팔을 펴더니 날아가는 속도를 늦췄다.
놈에게 따라붙던 이진성은 아차 하는 생각과 동시에 두 팔로 가드를 올렸고 그곳에 놈의 주먹이 내려꽂혔다.
다시 뒤로 튕겨 땅에 내려꽂힌 이진성은 방금 나온 건물의 1층 벽을 부수고 들어가야 했다.
둘은 번개같이 건물과 건물을 뛰어다니며 손발을 나눴다.
이미 완전히 파괴되어 주저앉은 5층 건물이 넷. 구멍이 숭숭 뚫린 것들은 셀 수 없었다.
둘이 싸우는 곳은 돌가루 먼지가 가득해 연막탄을 뿌려 놓은 것 같았다. 그 안에서는 끊임없이 타격음과 파괴음의 터져 나왔다.
이진성이 무너진 벽의 거대한 덩어리를 집어 던졌다. 놈은 날아온 덩어리를 주먹으로 깨면서 뚫고 나와 이진성에게 창과 같은 왼팔을 찔러 넣었다.
이진성의 발이 마치 송곳같이 1호를 찔렀다. 쇠몽둥이 같은 다리뼈가 놈의 강철 케이지 같은 갈비를 때렸다.
상대의 손발이 스치면서 둘의 머리털은 숭덩숭덩 잘려나갔다. 이진성의 피에 절은 옷도 거의 잘려나가 점점 나체로 변해갔다.
* * *
수리온의 로터 바람이 아래의 먼지를 밀어냈다. 그리고 드러난 광경은 참혹했다. 마치 폭격이라도 맞은 듯 무너지고 뚫린 건물의 모습에 사람들은 혀를 내둘렀다.
“저기!”
장동건의 외침에 모두의 시선이 그의 손을 따랐다.
건물 벽이 무너지면서 두 덩이의 실루엣이 엉킨 채 쏘아져 나왔다. 그것들은 길바닥에 한 번 튕기고는 다시 다른 건물을 뚫고 들어갔다.
“뭐야? 형한테 무슨 일이 생긴 거야?”
둘의 모습은 장동건조차도 눈으로 확인하기 힘들 정도로 빨랐다.
주먹 한 번에 지붕이 뚫리고 발길질 한 번에 벽이 무너졌다.
전날까지 볼 수 있던 모습이 아니었다. 너무 놀란 사람들은 1호도 전혀 달라져 있다는 것조차 인지하지 못하고 있었다.
“정말 신이라도 된 거 아냐?”
장동건의 넋 빠진 소리에 아무도 대꾸하지 않았다.
둘은 한 번에 몇십 미터를 건너뛰며 사방으로 튀어 다녔다. 헬기는 그런 그들을 따르기에 정신이 없었다.
정신없이 움직이는 헬기 속에서 떨어뜨릴까 꽉 잡고 있던 이진성의 도끼를 장동건이 바라봤다.
“이거 줘도 별 도움 안 될 거 같은데.”
과연 저런 상태에 쇠붙이가 통할까 의심이 든 장동건이었다. 그런 그에게서 나현주가 도끼를 뺏어 들었다.
“도움이 되든 안 되든 없는 거보다 낫겠지.”
나현주가 도끼를 잡고 열린 문밖으로 몸을 내밀었다. 손잡이를 잡은 팔을 뻗어 한껏 밖으로 내민 몸으로 엄청난 바람이 몰아쳤다.
가까스로 눈을 부릅뜬 그녀가 기회를 노렸다. 가능한 이진성에게 가까이 가서 그가 도끼를 쉽게 주울 수 있는 곳으로 던져야 했다.
1초가 십 분은 되는 것 같은 조바심 속에서 나현주는 아래를 쏘아봤다.
둘의 정신없는 공방은 끝이 날 것 같지 않았다. 지치기는커녕 둘의 속도는 점점 빨라지는 것 같았다.
옥상에서 기계와 같이 서로 손발을 교차하던 둘이 갑자기 떨어졌다. 이유는 알 수 없었다. 하지만 둘이 다시 순식간에 격돌할 것이라는 느낌이 강하게 나현주에게 들었다.
‘지금!’
그녀는 모든 힘을 다해 도끼를 이진성의 옆으로 던졌다. 그리고 소리쳤다.
“받아요.”
* * *
이진성은 자신을 따라다니는 헬기에 누가 타고 있는지 이미 느끼고 있었다.
놈과 정신없이 싸우는 중에도 다가온 헬기에서 느껴지는 각자의 기운은 선명하게 구분되었다.
각자 기운의 특징은 언젠가 관장이 안산에서 사시미칼과 싸운 후 말해준 것과 비슷했다.
그 후 다시 진화하면서 변했는지 들었던 것과 조금은 다른 것 같지만 그 특징은 같았다.
‘현주씨가 동요하고 있다.’
놈의 왼팔 송곳 뼈를 발로 차 걷어내면서 느낀 나현주의 감정은 극도의 불안함이었다.
‘빨리 끝내자.’
어서 끝내고 그녀를 안아주고 싶었다. 이진성은 몸 저 안쪽에서 돌고 있는 기운을 더 끓어 올렸다. 끓어 올려진 기운을 그의 손과 발로 흘려보냈다.
‘움직임이 달라진다.’
스스로 느끼기에도 몸이 더 가벼워지고 빨라졌다. 신기하고 놀라웠다.
1호도 이진성에게 상응하면서 빨라지며 둘의 공방은 미친 듯 몰아쳤다.
‘뭔가 어긋난다.’
점점 빨라지는 속도에 이진성과 1호의 합이 약간씩 어긋나기 시작했다. 서로의 공격을 허용하는 횟수가 늘어났다. 공중을 치는 경우도 생기기 시작했다.
뻗어오는 주먹을 주먹으로 막은 이진성의 니킥을 놈이 송곳 뼈로 찌르면서 옆차기를 날렸고 그것들을 이진성이 휘돌려 차기를 날렸다.
둘의 공격과 수비가 미묘하게 어긋나자 둘은 마치 서로 말이라도 한 듯 뒤로 몸을 튕기며 숨을 돌렸다.
그때였다. 위에서 나현주의 기운이 울렁하면서 뭔가 날카로운 것이 쏜살같이 내리꽂히는 것이 이진성에게 느껴졌다.
익숙한 쇠의 기운. 자신의 도끼임을 알아챈 이진성이 땅을 박찼다.
공중으로 몸을 뽑아 올린 이진성이 떨어지는 도끼를 향해 손을 뻗어가자 1호도 이진성을 향해 몸을 날렸다.
놈도 이진성이 도끼를 잡으면 자신이 불리해 짐을 느꼈다.
엄청난 속도로 날아가는 도끼에 비슷한 속도로 밑에서 둘이 솟구쳐 올랐다.
하지만 이진성이 빨랐다. 그의 손에 빨려 들어가듯 들어간 자루를 움켜쥔 이진성은 코앞까지 다가온 놈의 대가리를 향해 도끼를 내리찍었다.
1호는 팔의 피막을 펼쳐 대가리를 감쌌다. 동시에 도끼는 대가리를 찍었고 1호는 포탄과 같이 머리부터 날아갔다.
“씨발.”
이진성은 도끼가 피막을 찍는 순간 느꼈다. 너무도 얇아 반투명한 그 피막에서 전해져 오는 느낌은 ‘물컹’이었다. 그리고 힘이 분산되는 느낌에 타격이 크지 않음을 알 수 있었다.
바닥에 떨어져 내린 그가 다시 놈이 날아간 곳으로 몸을 던졌다. 무너진 건물의 잔해 사이로 뚫고 들어갔던 놈이 다시 몸을 일으켜 마주 쏘아져 왔다.
터지는 충돌음의 충격파가 그전과 달랐다. 공중의 수리온마저 흔들렸다. 박 준위는 급상승하여 둘의 전권에서 멀어져야 했다.
거리를 벌린 상공에서 보이는 둘의 싸움은 아까보다 훨씬 살벌했다. 별 도움이 되지 않을 것 같은 도끼는 분명히 도움이 되고 있었다. 그만큼의 질량이 더해져 힘이 더 커졌고 그만큼의 거리가 더 유리해졌다.
마치 팔이 늘어난 듯, 손이 커진 듯, 놈의 송곳 뼈와 같은 송곳이 손끝에서 돋아난 듯 이진성은 도끼를 휘둘렀다. 그와 도끼 사이에 이질감은 없었다. 이미 도끼는 그와 한 몸이었다.
헬기가 멀어지면서 둘의 모습은 다시 먼지에 휩싸였다. 사람들은 먼지 속에서 움직이는 검은 그림자만 희미하게 볼 수 있었다.
조바심을 내며 바라보기를 어느 정도 시간이 지났을까, 관장의 눈이 커졌다. 장동건도 손가락을 가리키며 ‘어, 어’를 외쳤다.
먼지구름 속에서 번개가 치는 듯했다. 번개의 색은 피같이 붉었다. 그 붉은 번개가 한 번씩 번쩍이더니 점점 빈도를 더해갔다.
급기야 번개가 더 이상 번개가 아니고 이어지는 빛의 선이 되었을 때 한 실루엣이 몸을 공중으로 띄웠다.
1호였다. 공중으로 뻗어 나가는 놈은 밑으로 길게 피 분수를 뿌리고 있었다.
이진성은 그 피를 맞으며 따라 솟구쳐 올랐다. 그의 도끼는 밑으로 제쳐져 있었고, 그 도끼를 선명한 핏빛의 오라가 감싸고 있었다.
“저거. 검기 같은 거잖아요.”
장동건이 외쳤다. 관장과 다른 색이었지만 멀리서 봐도 알 수 있었다.
오를 만큼 오른 1호가 다시 낙하를 시작하려는 찰나에 놈의 눈앞까지 솟구쳐 오른 이진성의 도끼가 움직였다.
작열하는 핏빛의 도끼를 놈이 팔로 막아갔지만 팔은 뎅겅 잘리고 말았다. 팔을 자른 도끼는 놈의 정수리로 향했다.
낙하가 시작된 놈의 정수리를 파고든 도끼가 놈보다 빠르게 낙하했다.
대가리가 갈라지고 목이 갈라졌다. 상체를 양분한 도끼는 정확하게 가랑이 사이로 빠져나왔다.
바닥에 착지한 이진성이 눈앞의 두 고깃덩어리를 바라봤다. 그의 두 눈에는 묘한 감정이 담겨 있었다.
‘정말 지겨운 놈이었다. 그런데 섭섭하네. 이건 뭐지?’
그다지 기쁘거나 하지 않았다. 지긋지긋하던 놈이 두 동강이 났지만 아쉬운 마음이 슬금슬금 올라왔다.
‘나… 뭐가 된 건가?’
다시 드는 의문 속에 1호의 시체를 내려보던 그의 귀에 자신을 부르는 소리가 들려왔다.
나현주였다. 그 뒤에 장동건이었고 김현희와 관장도 달려오는 것이 안 보고도 느껴졌다.
이진성이 서서히 돌아섰다. 나현주가 그에게 몸을 던져왔다.
이진성이 그녀를 받아 안아줬다. 나현주는 그에게 키스를 퍼부었다.
“음, 음. 저기… 옷이라도 입던가 아니면 둘이 아무 건물이라도 들어가던가.”
나체 상태의 이진성과 그에게 달라붙어 키스를 퍼붓는 나현주의 모습에 장동건 혼자 얼굴이 달아올랐다.
“에라이 모쏠아.”
혼자 쭈뼛쭈뼛 돌아서 눈을 어디에 둘까 고민하는 그의 등짝을 김현희가 내리쳤다.
“내가 왜 모쏠이야? 나도 혜진이랑 할 거 다 했어.”
장동건의 억울함이 담긴 목소리가 울려 퍼졌다.
사람들은 그를 뒤로하고 헬기로 걷기 시작했다.
“다 끝난 건가요?”
“1호는 끝난 거지. 하지만 세상에 1호 같은 놈이 또 없으란 법은 없으니까.”
헬기에 탑승하는 이진성은 하늘을 바라보았다.
‘날 왜 이렇게까지 만드셨소? 얼마나 고생을 시키려고?’
대답 없는 하늘은 맑기만 했다. 그 맑은 하늘로 수리온은 부드럽게 솟구쳐 올라 저만치 멀어져 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