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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해왜변
정해왜변 당시 긴시요라가 이끄는 왜구들은 손죽도를 점령하고 손죽도와 인근 섬의 주민들을 노략질 했을 뿐만 아니라 섬의 주민들 까지 노예로 일본에 끌고 갔었다. 전라좌수군이 손죽도로 출동했지만 좌수사 심암은 이대원 장군의 녹도수군을 선봉으로 내세우고는 전투가 벌어지자 녹도수군을 지원하지 않았다. 결국 녹도수군은 왜구들에게 포위되어 전선은 빼앗기고 이대원 장군은 전사하고 만다. 녹도수군의 병사들 역시 대부분은 전사하고 살아남은 사람들은 일본에 왜구로 끌려갔으니 이들 중 일부는 명나라에 까지 노예로 팔려갔다가 명나라에 사신으로 온 조선 대신들을 만나 구조되어 조선으로 돌아오게 된다. 손죽도 앞바다에서 녹도수군을 전멸시킨 왜구들은 기세가 등등해서 섬뿐만이 아니라 남해안 일대를 약탈하고 주민들을 노예로 잡아갔고 그 와중에 전라우수군은 왜구들에게 판옥선을 4척이나 빼앗기는 참패를 당하게 된다. 왜구들이 남해안 일대에서 마음껏 노략질을 벌이자 조정에서는 변협과 신립을 방어사로 파견해 왜구들을 토벌할 것을 명령했고 왜구들이 물러간 후 남해안 일대의 방어태세를 대대적으로 점검하기에 이른다. 또한 전라좌수사 심암 역시 이대원 장군을 지원하지 않고 부하를 사지로 내몬 것이 발각되어 참형을 당했다. 남해안 일대를 약탈한 왜구들은 나포한 판옥선과 납치한 조선인들을 끌고 일본으로 도망쳤지만 그로부터 2년 후인 1589년(선조22년)에 대마도주 소 요시토시는 조선과의 외교협상 중에 왜구들의 두목인 긴시요라와 왜구들에게 남해안의 뱃길을 안내한 조선인 사화동을 조선으로 보내라는 조선의 요청에 승낙해 긴시요라와 사화동을 조선으로 보냈으니 이들은 조선에서 참형을 당해 목숨을 잃었다.
조선수군과 일전을 각오하고 바다로 나온 긴시요라는 녹도전선이 속도를 높이며 도망치는 것을 목격하자 녹도전선과 조선수군을 비웃는 한편 속으로는 잘 됐다는 생각을 하고 있었다.
‘철포'(鐵砲)[조총] 한방 쏘지도 않았는데 벌써 도망부터 치는 것을 보니 조선수군도 별것 아니구나. 잠시나마 조선수군을 염려해 철군할 생각을 했던 것이 부끄러울 정도군.‘
손죽도 앞바다에 전라좌수군이 나타났을 때만 해도 긴시요라는 조선수군과 전투를 벌여야 할지 고민했었다. 판옥선이 12척이나 나타났다는 보고에 승리를 장담할 수 없다는 생각이 든 긴시요라는 잠시나마 고토열도로 물러날 것을 생각했을 정도로 고민했었다. 조선의 판옥선이 자신들의 세키부네(関船) 보다 크고 튼튼해 보인다는 보고는 긴시요라를 고민하게 만들기 충분했다. 고토열도를 출발해 손죽도로 오는 도중에 대열을 이탈해 선단과 헤어진 2척의 전선이 아직 돌아오지 않은 것도 긴시요라의 마음에 걸리는 일이었다. 잠시나마 후퇴를 고민하던 긴시요라는 손죽도의 주민들을 약탈한 것만으로는 18척의 전선과 2000명이 넘는 병력을 이끌고 조선까지 출병한 보람이 없다는 것을 깨닫고는 결국 조선수군과의 일전을 각오했다. 손죽도에 모인 2000명의 왜구들은 긴시요라에 대한 충성심이 아니라 재물과 식량 그리고 노예를 목적으로 모인 자들이었다. 이들이 만족할 만큼 충분히 재물과 노예를 확보하지 못하면 부하들에게 긴시요라의 권위도 떨어지니 긴시요라가 아무리 두목이라도 이들을 통솔하기 힘들 것이 분명했다. 아직은 만족할 만큼의 재물과 노예를 확보하지 못했다고 판단한 긴시요라는 호랑이 등에 올라타는 기분으로 모든 전선을 출동시켰다. 그러데 비장한 각오로 바다에 나온 보람도 없이 조선수군의 전선이 싸우기도 전에 도망부터 쳤으니 긴시요라는 물론 왜구들의 사기가 크게 올랐다.
“하하하 겁쟁이들 도망칠 생각부터 하다니.“
“그렇습니다. 이제 조선 놈들은 수군이건 뭐건 걱정할 필요가 없을 것 같습니다.“
긴시요라의 부장인 오쿠야마 역시 맞장구를 치며 조선군을 비웃었다.
“감히 우리 앞에 전선을 몰고 나타났으니 도망친다고 용서해 줄 수는 없다. 겁쟁이를 뒤쫓는 것이 마음에 내키지는 않지만 적은 뿌리를 뽑아야 안심할 수 있는 법 모든 전선은 조선
전선을 쫓아라. 적장의 목을 베는 자에게 큰 상을 내리리라“
“하이. 알겠습니다. 모든 전선은 조선 전선을 잡아라.“
긴시요라의 명령이 떨어지자 고토열도[오도(五島)]와 히라도[평호도(平戶島)]의 해적들로 구성된 18척의 세키부네(関船) 선단은 녹도전선을 향해 속도를 높여 달려갔다.
“적선의 속도가 무척 빠릅니다. 적선과의 거리가 좁혀지고 있습니다.“
“나도 알고 있다. 걱정마라”
이언세에게 걱정 말라고 외친 나는 전선을 추격해 오는 관선(関船)들을 보며 작전을 생각하고 있었다.
‘첨저선인 관선들이 평저선인 판옥선 보다 직진 항로에서 속도가 더 빠른 것은 당연한 일이다. 하지만 평저선이 첨저선 보다 속도는 느리지만 방향전환에는 더 유리하지 무작정 도망만 쳐서는 왜구들에게 따라잡히고 만다. 결정적인 순간에 방향을 돌려서 따돌려야해‘
순간 꿈에서 봤던 장면들이 더욱 선명하게 떠오르며 관선들의 움직임과 왜구들이 공격하는 장면이 세세하게 기억나기 시작했다.
‘뭐야 이거 이것도 조선으로 떨어진 보너스인가 꿈에서 봤던 장면이 이렇게 생생하게 떠오르다니. 좋아 왜선들이 꿈에서는 정면공격이 안 되니까 좌우 측면을 공격해 왔었지 이번에도 측면에서 공격해 온다면 어떻게 상대할까.‘
나는 잠시 생각을 가다듬고 꿈에서 본 장면을 토대로 작전을 구상했다.
“선봉으로 나선 선장들에게 명을 내려라 조선전선을 좌우에서 포위하라고 말이다. 조선전선이 도망치지 못하게 잡으란 말이다. 조선수군을 가둬놓고 내가 직접 정면에서 치겠다.“
“하이. 알겠습니다.”
녹도전선들의 격군들이 힘껏 노를 저었지만 전선과 왜선들과의 거리는 점점 좁혀졌다. 왜선들 중에서 선두에서 달렸던 배들이 녹도전선으로 부터 조총 사정거리 까지 접근하는데 성공하자 긴시요라(緊時要羅)는 녹도전선을 포위할 것을 명령했다. 한편 왜선들이 가까이 접근해 오자 녹도전선의 군사들은 긴장한 기색이 역력했다. 긴장했는지 몸은 굳어있는 것 같았지만 군관과 화포장들의 지시를 따르며 제자리를 지키고 있는 군사들을 보며 나는 대견하다는 생각을 했다.
‘조선군 특히 조선 중기의 조선군은 완전히 당나라 군대인지 알고 있었는데 생각보다 침착하네. 경거망동하지 말라고 명령을 내려놨지만 적선이 다가오고 있는데도 자리를 이탈하는 자가 하나도 없다니. 이정도 군사들이면 충분히 승산이 있어‘
녹도진 군사들의 상태를 보고 나름 만족한 나는 화포장들에게 명령을 내렸다.
“방포를 준비하라 단 내 명령이 떨어지기 전에는 절대로 방포해서는 안 될 것이다. 명령하기 전에 함부로 방포하는 자들은 화포장은 물론 포수들 까지 모두 참할 것이다.“
“예이~”
화포장들이 내 명령에 대답하며 휘하의 포수들을 단속했다.
‘왜선들은 전선을 포위하기 위해 양 측면으로 다가올 거야. 바로 그때가 공격하기 가장 적합한 순간이다.‘
공격할 시기를 계산한 나는 다시 한번 화포를 점검할 것을 명령했다.
“화포장과 포수들은 화포를 점검하라”
“예”
녹도전선의 군사들이 전투를 준비하는 그 시간에도 왜선들은 녹도전선을 향해 달려오고 있었다. 선두에서 녹도전선을 뒤쫓던 왜선들이 두 갈래로 갈라지면서 각기 2척씩의 왜선들이 전선의 양 옆으로 다가오기 시작하자 나는 격군들에게 명령을 내렸다.
“속도를 천천히 줄여라 아주 조금씩 줄여야 한다.“
적선이 쫓아오고 있는데 속도를 줄이라는 명령에 이언세는 물론 대부분의 군사들이 이해가 되지 않는다는 표정을 지었지만 나는 녹도진 수군의 지휘관이었고 이곳에서 내 명령은 절대적이었다. 이언세는 격군들에게 내 명령을 전달했고 격군들은 노를 젓는 속도를 천천히 줄여나갔다.
“격군들에게 절대로 긴장을 풀지 말라고 전하라 아니 힘을 빼지는 말아라. 곧 힘차게 노를 저어야 한다.“
“격군들은 팔에 힘을 빼지 말라”
격군들에게 다시 한번 명령을 내린 나는 전선의 좌측과 우측으로 다가오는 왜선들을 노려봤다. 녹도전선의 속도가 갑자기 줄어들자 전선을 포위하기 위해 다가오던 왜선들은 달려오던 속도를 줄이지 못했고 예상보다 빠르게 녹도전선에 가까이 접근했다. 전선과의 거리가 가까워지자 왜선에 탑승하고 있던 왜구들은 갑판위로 올라와 전선을 공격할 준비를 했다. 일본도를 등에 메고 갈고리가 달린 밧줄을 손에 들고 있는 왜구들을 노려보던 나는 왜선들이 녹도전선의 양 옆에서 나란히 달리는 위치까지 오자 힘껏 외쳤다.
“바로 지금이다. 즉시 방포하라”
“펑” “펑” “펑”
“펑” “펑” “펑”
순식간에 포성이 울리며 화약연기가 안개처럼 자욱했다. 총통이 모두 발사되자 나는 전과도
확인하지 않고 외쳤다.
“격군들은 힘차게 노를 저어라 최대한 빨리 이것을 벗어나야 한다.“
“예이”
다시 격군들에게 명령이 전달되고 전선의 속도가 올라갔다.
“타공은 뱃머리를 돌려라 좌측으로 방향을 돌려라.“
“예이”
“으윽 내가 살아있는 건가”
오도(五島) 출신인 무사인 도노카츠가 타고 있던 관선(関船)[세키부네]은 조선전선의 좌측면을 노리고 접근하고 있었다. 선장의 호위무사였던 도노카츠는 갑판 위에서 병사들을 통솔하고 있던 선장의 바로 뒤에 서 있었다. 관선이 조선전선에 닿을 듯이 가깝게 다가가고 있었을 때 갑자기 조선전선에서 도노카츠가 타고 있던 관선을 향해 화포를 발사했다.
“쾅~”
폭음에 놀라 뒤로 쓰러졌던 도노카츠는 잠시 후 정신을 차리고 자리에서 일어났다. 자리에서 일어나 주변을 둘러본 도노카츠는 그대로 얼어붙고 말았다.
“도대체 이게 무슨 일이야”
갑판 위에는 두발로 서있는 자는 찾아볼 수 없었고 피를 흘리며 죽어가거나 이미 사망한 자들만이 가득했다. 녹도전선은 12문의 지자총통 (地字銃筒)을 장비하고 있었고 지자총통 1문당 100발씩의 조란환(鳥卵丸)을 장전하고 있었다. 녹도전선 양 측면으로 접근해온 관선들을
향해 갑판의 좌우에 장비한 각각 6문의 지자총통이 일제히 불을 뿜었으니 관선의 갑판위로 각각 600발씩의 조란환(鳥卵丸)이 쏟아진 것이다. 머리나 가슴에 철환을 맞고 곧바로 사망한 자들은 차라리 운이 좋은 편이었다. 팔이나 다리에 철환을 맞은 자들은 갑판 위에 피를
쏟으며 고통스러워했고 이들은 운 좋게 살아남는다고 해도 이 시대의 의술로는 철환에 맞은 신체부위를 영원히 잃을 수밖에 없었다.
“내가 칼을 잡은 이후 그동안 전투도 수 없이 겪어봤고 노략질도 해봤지만 이런 끔찍한 광경은 처음이다.“
죽어가는 동료들의 모습에 놀란 도노카츠는 비명을 지르며 그 자리에 주저앉고 말았다.
지자총통이 불을 뿜은 후 포격을 당한 왜선들의 속도가 눈에 띄게 줄어들었다. 조란환의 일부가 선체를 관통해 선창 안으로 날아가면서 노를 젓고 있던 왜인들 까지 조란환 세례에 쓰러진 것이다. 그야말로 번갯불에 콩 볶아먹을 만큼 순식간에 벌어진 일이라 왜인들은 비명도 지르지 못하고 쓰러졌고 심지어는 노를 잡은 채로 사망한 왜인들로 인해 노가 제멋대로 움직이면서 노질에 방해가 됐다. 결국 관선의 속도가 떨어짐과 동시에 관선의 뒤에서 따르고 있던 다른 관선들의 진로까지 방해하면서 녹도전선에 대한 포위망은 완전히 풀리고 말았다.
지자총통(地字銃筒)
구경 : 105mm
사정거리 800보
무게 : 90kg
길이 : 90c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