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손죽도 해전2
조란환을 장전한 3문을 제외하고 방금 방포했던 3문의 지자총통에 다시 화약과 철환이 장전되는 동안 왜구들의 관선들도 대열을 정비했다. 선두에서 달리던 왜선들이 철환을 맞은 피해 때문인지 달리지 못하고 주춤거리자 뒤에서 따라오던 왜선들이 앞장서고 철환을 맞은 왜선들은 뒤로 물러났다. 확실히 전투경험이 있는 그것도 해전을 경험한 놈들이 분명했다.
‘고폭탄이 없는 것이 아쉽구나. 이번에 명중한 포탄이 철환이 아닌 고폭탄이었다면 최소한 2척은 전투불능 상태에 빠졌을 텐데 아깝다.‘
방금 전 포격으로 관선들을 침몰시키거나 폭파시키지 못한 것이 아쉬웠지만 300보 거리 밖에서 적선을 명중시킨 덕분에 추격해 오던 관선들이 주춤거리기 시작했고 총통을 재장전할 시간을 벌 수 있었다. 시작은 나쁘지 않다고 판단한 나는 사부들에게도 공격 명령을 내렸다.
“왜선들이 다가오고 있다. 공격의 고삐를 늦춰서는 안 된다. 사부들은 화전을 준비하라 선두의 2척을 노린다. 편전을 쏠 수 있는 사부들은 적의 장수들과 총통 사수들을 노려라.“
“예이”
내 명령이 떨어지자 사부들은 일제히 화살에 불을 붙였다. 화살촉에는 기름에 적신 무명천 조각을 묶어놓았었기에 화살촉에는 금방 불이 붙었다. 사부들이 각궁의 시위에 화전과 편전의 덧살(통아 桶兒)을 얹고 준비를 마치자 손대남은 나에게 보고했다.
“만호나리 사부들이 준비됐습니다.”
“지금 즉시 화전을 쏴라.”
“예이 활을 쏴라~.”
손대남이 내 명령을 다시 한번 복창했고 사부들은 일제히 활의 시위를 당기며 왜선들을 조준한 후 시위를 놨다. 순식간에 10여개의 화전이 하늘로 날아오르자 마치 불길이 하늘로 날아오르는 것 같았다.
“쉬지 말고 연이이서 쏴라.”
“쉬지 말고 쏴라”
내가 사부들에게 계속 화전을 날릴 것을 명령했고 손대남이 사부들을 독려하자 사부들은 시위를 놓기가 무섭게 미리 준비해 놓은 화살에 불을 붙였다. 불붙은 화살을 다시 각궁에 걸고 시위를 당겼다가 놓기가 무섭게 다시 하늘로 불길이 치솟았다. 이렇게 몇 분 만에 수십 발의 불화살이 하늘을 날면서 선두에서 달려오던 관선의 돛에 명중하거나 갑판위로 떨어졌다.
“어서 물을 떠와라 물통을 가져와.”
“돛에 불이 붙었다. 어서 돛을 내려라.”
불화살이 돛에 꽂히자 돛이 불에 타기 시작했고 갑판에도 불화살이 떨어지면서 갑판 곳곳에서 불길이 번지기 시작했다. 갑자기 불길이 일어나자 왜구들은 황급히 돛을 내리고 갑판에는 바닷물을 퍼 부우며 불길을 잡으려고 했지만 기름에 붙은 불은 잘 꺼지지 않았다. 이미 날이 어두워지고 있었지만 불붙은 돛이 관선의 돛대에서 불타며 관선을 환하게 밝혀주었다.
“으악”
왜구들에게 호통을 치며 돛을 내리라고 외치던 니시마 스케요시가 갑자기 비명을 지르며 쓰러졌다.
“장군” “장군 괜찮으십니까.”
선장인 스케요시가 쓰러지자 그의 부관인 마치다 사요네시가 황급히 스케요시에게 달려들었다. 사요네시는 스케요시는 부축하며 일으키려고 했지만 스케요시는 이미 숨을 멈춘 후였다.
“아니 이게 뭐야”
스케요시의 눈에 깃털 같은 것이 박혀있는 것을 발견한 사요네시가 조심스럽게 깃털을 잡아당기자 스케요시의 눈에서 화살이 빠져나왔다.
“이건 뭐야 조선의 화살인가.”
애기살을 처음 본 사요네시가는 일반 화살보다 작은 화살이 스케요시의 눈에 박혀있었던 것이 신기했다. 애기살을 자세히 보기 위해 애기살을 들어 올려 불빛에 비춰보던 사요네시가 갑자기 비명도 지르지 못하고 쓰러졌다.
“윽”
스케요시에 이어서 사요네시 까지 쓰러지자 주변에 있던 왜구들은 황급히 사요네시를 부축했지만 사요네시의 목에는 어느새 사요네시가 들고 있는 것과 똑같은 애기살이 박혀있었다.
불타는 돛대를 달고 있던 관선은 녹도군 사부들에게 좋은 과녁이었고 특히 편전을 다루는 사수들은 내 명령대로 옷차림이 화려한 장수들과 조총을 들고 있는 왜구들을 노려서 저격했다.
“좋았어. 화전도 편전도 명중이다. 이정도면 대성공이야.“
선두에서 다가오는 관선들을 관찰하며 왜구들 중 지위가 높아 보이는 무장들이 쓰러지고 관선 곳곳에 불이 번지고 있는 것을 목격한 나는 기분 좋게 관선들을 바라보고 있었다. 관선들과의 거리를 계산하며 총통 공격을 생각하고 있었던 나는 갑자기 무엇인가 이상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아니 뭔가 이상해 철환에 한방 맞은 관선들은 뒤로 물러났는데 왜 불이 붙은 관선들이 계속 달려오고 있는 거지 설마 저 2척을 화살받이로 쓰려는 건가.‘
“격군들은 노를 잡고 화포장은 총통은 조준하라 선두의 2척을 조준한다.“
이미 선체의 불이 붙어 불타고 있는 2척의 관선이 선두자리에서 물러서지 않고 계속 녹도전선을 향해 다가오자 나는 무엇인가 잘못됐다고 판단하고 자리를 피할 생각을 했다.
‘불이 붙은 관선과 충돌하면 전선에도 불이 옮겨 붙을 거야. 그렇게 둘 수는 없지 우선은 화포로 공격하고 이 자리를 피한다.‘
“왜선을 조란환으로 공격하기에는 너무 멀리 떨어져 있사옵니다. 나리“
이동구가 관선과의 거리를 가늠하며 말하자 나는 즉시 외쳤다.
“철환으로 공격할 것이다. 조준이 끝나는 대로 곧장 방포하라.“
“예이 명을 따르겠습니다.”
“쾅” “쾅” “쾅”
이미 총통을 조준한 다음이었는지 방포하라는 명령이 떨어지기 무섭게 3문의 지자총통이 관선들을 향해 불을 뿜었다. 지자총통이 발사되자 나는 전과를 확인하지도 않고 외쳤다.
“격군들은 노를 저어라 앞으로 전진할 것이다. 타공은 키를 잡아라. 곧 명령을 내릴 것이니 타공은 키를 잡고 정신을 바짝 차려야 할 것이다.“
“예이”
내 명령이 떨어지자 격군들은 힘차게 노를 저었고 녹도전선은 앞으로 서서히 움직였다. 한편 관선들 무리 중에서 선두에 섰건 2척의 관선은 이미 선체에 불이 붙었고 지휘할 장수들이 대부분 사망하면서 관선의 지휘체계가 무너지고 말았다. 왜구들은 어찌할 바를 모르고
우왕좌왕하고 있었고 선내에 있던 격군들은 밖의 상황도 모르고 명령받은 데로 노만 젓고 있었으니 관선들은 불에 타고 있으면서도 맹목적으로 앞으로만 나아가고 있었다. 녹도전선이 자리를 피하면서 선두의 관선들을 향해 철환을 발사하자 좌측의 관선에는 2발의 철환이 우측의 관선에는 1발의 철환이 뱃머리에 명중하면서 선체에 충격이 가해졌다.
“으악~”
“아악~”
철환이 명중한 뱃머리 부분이 그대로 부셔져 내려갔고 뱃머리 주변에 있던 왜구들은 그 충격에 바다로 떨어졌다.
“아니 이게 무슨 일이야”
관선의 선내에서 노를 젓고 있던 격군들도 그제 서야 배의 상태가 이상하다는 것을 깨달았지만 이미 배는 파손됐고 갑판에서는 아직도 불길이 타오르고 있었다.
“으악 살려줘”
“으아악~”
갑판위로 올라오던 격군들은 불붙은 갑판과 이미 쓰러져 있는 장수들을 발견하고 비명을 질렀고 왜구들 중에는 선체가 불타는 것을 보고 겁에 질린 나머지 바다에 뛰어드는 자들도 있었다. 배는 파손됐고 격군들이 노를 놓았지만 앞으로 달려가던 관선은 그대로 물살을 따라 앞으로 움직였다. 녹도전선이 남쪽으로 빠져나가자 그제 서야 불타고 있는 관선들이 다가오고 있는 것을 발견한 전라좌수군의 장수들은 관선의 등장에 놀라 공격명령을 내렸다.
“어서 왜선을 향해 방포하라.“
“어서 방포하지 않고 무엇을 하느냐 방포하라 적선을 침몰시켜야 한다.“
발포진의 전선과 순천부의 전선이 관선들을 향해 방포하면서 겨울 바다에 포성이 울려 퍼졌다.
“쾅” “쾅” “쾅” “쾅”
“콰아앙~” “쾅~”
발포전선과 순천전선이 방포한 직후 불타고 있던 2척의 관선에서 폭발이 일어났다. 이미 공황상태에 빠져있던 왜구들이 포격에 놀라 앞 다투어 바다에 뛰어들기 위해 움직이다가 그만 화약통이 쓰러졌고 바닥에 흘러내린 화약에 불이 옮겨 붙으면서 화약통이 폭발한 것이다.
“쾅~” "쾅~“
그 폭발에 다른 화약통이 연쇄적으로 폭발하면서 두세 번 더 폭발이 일어났고 불붙은 관선의 파편들이 사방으로 튀어 올랐고 왜구들은 물론 전라좌수군도 그 광경을 목격했다.
“아니 이게 무슨 짓인가. 감히 군령을 어겼을 뿐만 아니라 좌수사인 내 허락도 없이 함부로
방포하다니.“
심암은 녹도전선에 이어서 발포전선과 순천전선이 왜선들에게 방포하는 장면을 바라보며 온몸을 부들부들 떨었다. 녹도만호를 비롯해 자신의 허락도 구하지 않고 방포한 부하들에 대한 증오심에 왜구들에 대한 두려움 까지 겹쳐지자 심암은 이성적인 판단을 내리지 못했다.
“당장 배를 돌려라 좌수영으로 돌아갈 것이다. 주상전하께 장계를 올려 녹도만호와 장수들의 죄를 고할 것이다.“
한참 전투가 벌어지고 있는데 좌수사가 좌수영으로 돌아가겠다고 하니 좌수영의 장수들은 놀란 것을 넘어 어이가 없었다.
“영감 왜구들이 아직 물러가지 않았나이다. 우선은 왜구들을 물리쳐야 하지 않겠습니까. 공격명령을 내려주소서 녹도만호를 처벌하는 것은 왜구들을 물리친 이후에도 늦지 않을 것입니다.“
보다 못한 우성복이 심암에게 공격명령을 간청했지만 심암은 왜구들과 전투를 치를 마음이 없었다.
“닥쳐라 네놈이 감히 본관의 명을 거역하는 것이냐. 군율의 지엄함을 맛보고 싶으냐.“
왜구들과 싸우자는 말에 심암은 살기어린 눈빛으로 우성복을 노려보며 호통을 쳤다. 군대는 계급이 깡패다 심암이 이렇게 나오자 우성복은 고개를 조아리며 용서를 구했다.
“아닙니다. 영감 소장이 주제도 모르고 건방을 떨었습니다. 용서하소서.“
우성복이 고개를 조아리며 물러서자 심암은 다시 한번 철수 명령을 내렸다.
“즉시 좌수영으로 돌아갈 것이다. 깃발로 신호를 올리고 배를 돌려라.“
심암의 명령에 따라 좌수영 상선에서는 깃발 신호로 좌수군 전선들에게 철수 명령을 전달했고 좌수영으로 돌아가기 위해 북쪽으로 뱃머리를 돌렸다.
한편 관선과의 충돌을 피하기 위해 남쪽으로 전선을 이동시켰던 나는 좌수군의 전선들이 관선들을 향해 방포하고 불붙은 관선들이 폭발하는 것을 보면서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이제 됐다. 좌수군 전선들이 전투에 개입했고 선두에서 달려오던 관선 2척은 완전히 폭발했다. 좌수군 본대에는 녹도전선 말고도 총통으로 무장한 판옥선이 11척이나 있으니 왜구들도 덤벼들어도 쉽게 무너지지는 않을 거야 더구나 방금 관선이 2척이나 폭발하는 것을 왜구들도 봤을 테니 왜구들의 사기도 많이 떨어지겠지.‘
한시름 돌린 나는 다시 명령을 내렸다.
“타공은 키를 좌측으로 돌리게 하고 격군들은 노를 저어라. 적선의 측면을 공격할 것이다.“
내 명령이 떨어지자 녹도전선은 천천히 왼쪽으로 방향을 틀었다.
‘남쪽으로 전진하면서 관선들 보다 약간 남쪽에 위치하고 있다. 현재 관선들은 동쪽에서 서쪽으로 전진하는 형상이고 좌수군의 전선들은 뱃머리로 남쪽을 바라보고 좌측 갑판에 배치된 총통으로 관선들을 포격하고 있으니 관선들이 좌수군을 향해 달려들어도 좌수군의 집중 포격을 받게 된다. 나는 녹도전선을 서쪽으로 전진시켜 좌수군 본대를 향해 달려드는 좌측 갑판의 총통으로 관선들의 측면을 노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