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조선 수군이 되었다-7화 (7/2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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패전의 이유

‘이제 심암이 멍청한 짓만 안하면 이번 전투는 승리하고 무사히 귀환할 수 있을 것 같은데.‘

적보다 더 많은 병력을 가지고 적군보다 유리한 상황이었어도 지휘관의 삽질로 전쟁에서 패한 사례는 세계전사에 얼마든지 있었다. 나는 심암이 또 다른 삽질을 하지 않기를 간절히 바라며 녹도전선을 지휘했다. 한편 녹도전선을 노리고 달려들었던 왜선들은 그들이 얕잡아 봤던 조선수군의 집중포화를 경험하고는 이전보다 신중해졌다. 선두에서 돌격했던 2척의 왜선이 이미 폭발했을 뿐만 아니라 지금도 좌수군 전선에서 연이어 총통을 발사하고 있었으니 반격할 수단이 없었던 왜선들은 더 이상 전진하지 못하고 조선 수군의 공격을 피해 주변 바다를 맴돌았다.

“무엇하느냐 당장 공격하지 못하겠느냐. 적이 눈 앞에 있는데 무엇을 하고 있는 것이냐.“

긴시요라는 호통을 치며 공격명령을 내렸지만 그의 부하들은 조선 수군의 화력에 놀라 앞으로 나서기를 주저했다.

“조선군의 화력이 너무나 대단합니다. 전선이 벌써 2척이나 불타지 않았습니까. 우선은 물러났다가 적들의 공격을 피하고 전선을 재정비한 후에 다시 공격하는 것은 어떠십니까?.“

오쿠야마가 긴시요라에게 간청했지만 이미 눈이 돌아가 버린 긴시요라는 오쿠야마의 말을 듣지 않았다.

“어림도 없는 소리. 지금 물러서면 적들의 사기가 오르고 그만큼 아군의 사기는 떨어진단 것을 모르느냐. 조선군의 화포는 아군의 철포(鐵砲)[조총] 만큼 연이어서 발사할 수는 없을 것이다. 한번 포탄을 뒤집어 쓸 것을 각오하고 두세 척이 연이어서 공격해 들어가면 적들이 발포 후 두 번째 포탄을 쏘기 전에 적선에 뛰어들 수 있을 것이다. 알겠느냐 당장 모든 전선은 세척씩 조를 짜서 적선을 공격하도록 하라 오늘 조선 수군의 씨를 말릴 것이다.“

“예 알겠습니다.”

오쿠야마와 무장들은 긴시요라에게 머리를 조아린 후 각 전선에 긴시요라의 명령을 전달했다. 방금 전까지만 해도 우선 후퇴할 것을 주장했던 오쿠야마나 무장들이 순순히 긴시요라의 명을 따른 것만 봐도 그들에게 긴시요라의 권위가 얼마나 대단한지 잘 알 수 있었다. 긴시요라의 권위도 귄위였지만 오쿠야마는 긴시요라의 명령을 듣고 속으로 대단하다는 생각을 했다.

‘역시 장군이 된 이유가 있었어. 20년간 바다를 누볐다고 하더니 그냥 바다를 다닌 것은 아니었군. 이정도 포화는 긴시요라 장군도 처음 당해봤을 텐데. 그 와중에도 공격전술을 생각해 내다니 역시 대단해.‘

오쿠야마는 긴시요라의 권위에 눌려 물러서기는 했지만 긴시요라의 명령대로 3척씩 조를 짜서 동시에 공격하는 전술이 충분히 가능성이 있다고 생각하며 감탄하고 있었다. 다른 무장들도 오쿠야마와 마찬가지로 긴시요라의 전술이 그럴 듯하다고 생각했기에 긴시요라의 명령을 각 전선에  달했다. 긴시요라의 명령이 관선들에게 전달되자 긴시요라가 탑승한 기함을 제외한 13척의 관선들은 각각 3척씩 모여서 공격대형을 정비했다. 남은 1척은 과선들 대형의 뒤에 남았다.

“어서 쌀가마니를 쌓아라. 가마니를 다 쌓았으면 그 앞에는 장작과 목재를 쌓고 물을 부어라 어서 서둘러라.“

마치다 시게하사가 고함을 지르며 명령을 내리자 왜인들은 관선의 뱃머리 부분 갑판위에 쌀이 가득 든 가마니와 장작더미를 쌓았다. 가마니와 장작, 목재 더미가 앞이 보이지 않을 정도로 쌓이자 시게하사는 장작더미에 물을 더 부을 것을 명령했다.

“장막더미에 바닷물을 부어라 어서 서둘러라 공격명령이 떨어지기 전에 끝내야 한다. 장작이 완전히 물에 젖도록 바닷물을 부으란 말이다. 갑판에도 물을 부어야 한다.“

선장인 마치다 시게하사의 명령에 왜인들은 아깝다는 생각을 하면서도 긴 밧줄이 달린 물통으로 바닷물을 길어 장작더미 위에 부었다. 10여 차례 이상 바닷물을 들이 붓자 장작더미는 물론 그 밑에 있던 쌀가마니 까지 바닷물에 완전히 적었고 갑판위에도 물이 흥건했다. 젖었던 장작은 완전히 말리기 전에는 불이 붙지 않고 바닷물에 젖은 쌀은 재빨리 맑은 물로 씻어내서 말리지 않으면 썩어서 먹을 수가 없다. 선장의 명령이니 바닷물을 부었지만 쌀과 장작이 물에 젖자 왜인들은 안타까운 눈빛으로 물에 젖은 가마니와 장작더미를 바라보았다. 부하들이 아까워하는 표정을 짓고 있는 것을 본 마치다 시게하사 부하들에게 외쳤다.

“고작 이정도 쌀과 장작을 아까워 할 필요는 없다. 이게 우리 목숨 값이라고 생각하면 오히려 싸게 목숨을 건지는 것이다. 오늘 전투에서 승리하면 이 쌀과 장작 값으로 살아남은 것이다.“

목숨 값이라는 말에 왜구들이 일제히 마치다 시게하사를 바라보자 시게하사는 호기롭게 외쳤다.

“앞서 나갔던 전선은 조선 수군의 불화살에 배가 불탔지만 우리 전선은 이미 갑판에 물을 뿌려놓았고 뱃머리에 젖은 장작과 가마니를 쌓아놨으니 조선수군이 불화살을 쏴도 전선에는

불이 붙지 않을 것이다. 알겠느냐? 우리는 조선수군의 불화살을 두려워하지 않고 마음껏 싸울 수 있는 것이다.“

마치다 시게하사의 말에 왜구들은 그제서야 쌀과 장작더미를 쌓아놓고 물까지 부은 이유를 알 수 있었다. 부하들이 납득한 기색을 보이자 시게하사는 다시 한번 외쳤다.

“이제 공격 명령이 떨어지면 앞으로 돌격한다. 모두 준비해라 이번에 승리하면 너희에게 곡식과 면포 그리고 노예가 주어질 것이니 두려워하지 말고 용감히 싸워야 하느니라.“

10년 이상 바다를 누비며 전투와 노략질을 경험했던 시게하사는 부하들의 사기를 올리는 방법을 잘 알고 있었다. 전리품이 생긴다는 왜구들의 사기가 치솟았고 제각기 일본도와 활 조총 등 자신의 무기를 단단히 잡으며 공격명령만 기다렸다. 부하들이 전투준비를 끝내자 시게하사는 자리에 앉아 긴시요라가 타고 있는 기함을 바라보며 생각에 잠겼다.

“역시 장군이야 이번에도 물러서지 않고 공격할 생각을 하시다니 조선군 따위 화포만 아니면 충분히 짓밟을 수 있어.“

좌수군 전선들의 화포공격에 놀라기는 했지만 시게하사를 비롯한 왜구들은 조선수군의 배에 오르기만 하면 충분히 승리할 수 있다고 믿고 있었다. 부하들의 사기를 생각해서 화포를 언급하지는 않았지만 뱃머리에 쌓아놓은 쌀가마니는 화공 보다는 포탄으로부터 선체를 보호하기 위한 방어물이었다. 시게하사는 기함으로 공격명령이 떨어지면 곧장 조선수군을 향해 돌진할 생각이었다. 배는 이미 물에 젖었으니 불화살은 걱정할 필요가 없었고 뱃머리에 쌓아 놓은 장작더미와 쌀가마니가 포탄을 한 두발은 막아줄 것으로 기대했다. 그대로 조선전선에 돌격해 전선에만 올라타면 조선수병을 제압하고 전선을 점령하는 것은 어렵지 않은 일이라고 판단하고 있었다. 다른 관선을 지휘하는 무장들도 대부분 시게하사와 같은 생각을 하고 있었기에 자신의 배에 방어물을 설치해 놓고 공격 명령만 기다리고 있었다. 전국시대라는 난세에 태어나 철이 들기도 전에 칼부터 잡은 이들이었다. 도적들로부터 자신의 목숨과 가족을 지키기 위해 칼을 휘둘렀었고 영주들 간의 전투에 동원될 때는 살아남기 위해 생사의 기로에서 칼과 창을 휘두르며 살아온 왜인들인 그만큼 전투에는 자신이 있었다.

관선들이 전라좌수군의 화포에 대비해 갑판위에 방어물을 설치하고 있었을 때 전라좌수군의 상선을 비롯한 전선들은 좌수영으로 돌아가기 위해 뱃머리를 돌리고 있었다. 좌수영으로 귀환하라는 명령이 떨어지자 왜선들을 향해 총통을 방포하던 전선들이 방포를 멈추고 돛을 올리며 뱃머리를 돌렸고 전라좌수군의 전선들이 방포를 멈췄다는 보고를 받은 긴시요라는 그야말로 기뻐 날뛰었다.

“바로 지금이다. 멍청한 놈들 무슨 생각으로 공격을 중지했는지는 모르겠지만 아니 알 필요도 없다. 당장 적선을 향해 돌진하라 조선군이 화포를 쏘지 않고 있는 바로 이때 돌격해 들어간다.“

“하잇~”

긴시요라의 공격 명령이 떨어지자 공격준비를 끝내고 명령만 기다리고 있던 관선들은 일제히 좌수군 전선들을 향해 달려갔다. 한편 관선들의 측면을 공격하기 위해 녹도전선을 동쪽으로 몰고 가고 있었던 나는 관선들이 물러가지도 않았는데도 간간히 들려오던 포성이 들리지 않자 놀라서 좌수군의 전선들을 살펴봤다.

“뭐야 왜 갑자기 포성이 멈췄어 설마 벌써 화약이 떨어졌나.“

좌수군 전선들이 포격을 중지하자 이상하다는 생각한 나는 정신을 집중해서 좌수군 전선들을 바라보았다.

‘계속 발포하지 않으면 좌수군 본대가 위험한데 왜 쏘지 않는 거지.‘

망루에 서서 좌수군 전선들을 살펴보던 나는 좌수군의 전선들이 뱃머리를 돌리는 장면을 목격했다.

“뭐야 왜 뱃머리를 돌리고 있어? 그대로 관선들을 향해 총통이건 불화살이건 쏴버리면 그만인데.“

뱃머리를 남쪽으로 향하고 있던 좌수군 전선들은 관선들을 향해 왼쪽 측면을 노출하고 있었으니 왼쪽 갑판의 화포로 관선을 포격할 수 있었다. 그러나 뱃머리를 돌리게 되면 전선의 자세를 바로 잡을 때 까지 관선들을 향해 화포를 조준할 수 없고 관선들을 향해 정면으로 바라보는 위치에 있어도 관선들을 향해 화포를 발사할 수 없게 된다. 관선들이 아직 물러나지도 않은 상태에서 뱃머리를 돌리는 것은 좌수군에게는 자살 행위였다. 어찌된 일인지 몰라도 일어나서는 안 되는 일이 일어나고 있었다. 놀란 와중에 문득 불길한 생각이 들었다.

‘혹시 심암이. 심암이 역시 심안한건가.’

정해왜변 당시 심암이 무슨 짓을 저질렀었는지 떠오르면서 심암이 도망칠 궁리를 한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심암 설마 도망칠 생각인가?. 전황이 불리한 것도 아닌데.아니지 이정도면 충분히 유리한 상황인데‘

머릿속으로 생각을 멈추지 않으며 눈으로는 좌수군 전선들을 살펴본 나는 좌수군 한 두 척도 아니도 수군의 모든 전선들이 일제히 돛을 펴고 뱃머리를 돌리는 것을 보며 전라좌수사 심암이 도망칠 생각을 하고 있다는 확신했다.

‘왜 정해왜변 당시 조선이 그토록 큰 피해를 입었는지 이제는 확실히 알겠다. 수군지휘관인 전라좌수사가 비열한데다가 비겁하기 까지 했으니 아니 저런 무능한 자가 해군제독인격인

좌수사 까지 오른 조선이라는 나라 자체가 문제였다.“

씁쓸한 마음을 감출길이 없었지만 전라좌수군이 철수해 버리면 나는 물론 녹도수군의 안전도 보장받을 수 없었다.

‘이대로 심암이 도망치면 끝장이다. 전라좌수사군의 다른 전선들이 도망치면 녹도수군은 끝장이야“

고민할 시간도 여유도 없었다.

‘계속된 전투로 군사들도 지쳐있고 화약도 화살도 넉넉하지 않아 지금은 어쩔 수 없다.

나와 녹도수군의 생존만 생각한다.‘

결정을 내린 나는 손대남과 이언세를 불렀다. 왜구들과의 전투로 피곤이 역력해 보였지만  예상보다 선전한 덕분인지 손대남과 이언세 모두 얼굴이 밝아 보였다. 얼굴 가득히 웃음을 짓던 그들은 딱딱하게 굳은 내 표정을 보고는 덩달아 얼굴이 굳어졌다.

“만호 나리 무슨 일이십니까?”

손대남이 묻자 나는 간결하게 대답했다.

“우리는 이대로 전라좌수영으로 돌아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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