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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밤중의 포성 - 수정본
“탕” “탕” “탕”
왜구들은 상선을 포위하면서 조총을 발사해 좌수군 병사들을 위협했고 상선의 화포장과 포수들이 어떻게든 총통을 방포하기 위해 고군분투하는 했지만 총탄과 화살이 연이어 날아오면서 포수들은 하나 둘씩 왜구의 총탄과 화살에 쓰러졌다.
“으악~” “으윽”
포수들이 비명을 지르며 쓰러지는 동안에도 상선의 갑판위로 갈고리가 달린 밧줄들이 날아왔다. 등에 일본도를 찬 왜구들은 그 밧줄을 잡고 갑판위로 올라왔고 상선은 순식간에 생지옥으로 변했다.
“왜구다.” “잡아라.”
왜구들이 상선으로 올라오자 우성복과 임홍남 등 좌수군의 장수들은 환도를 뽑아들었고 병사들도 창을 휘두르며 왜구들을 상선에서 몰아내려고 했지만 선상전투에 익숙한 왜구들은 잽싸게 창날을 피하며 일본도를 휘둘렀다.
“이얏~” “합~”
장수들은 환도를 휘두르며 왜구들과 당당하게 맞섰지만 좌수군 병사들은 왜구들을 당해내지 못하고 하나 둘씩 왜구의 칼에 쓰러졌다.
“당황하지 마라 사부들은 활을 준비하고 움직일 수 있는 군사들은 창을 들어라.“
우성복은 직접 환도를 들고 눈 앞에 보이는 왜구를 베어버린 후 병사들에게 명령을 내렸다. 우성복을 비롯한 장수들의 분전으로 좌수군 병사들은 잠시 사기를 회복했지만 왜구들은 여전히 날카로운 칼날을 휘두르며 좌수군 병사들을 몰아붙였고 급기야는 조총병들 까지 상선으로 올라왔다. 조총을 든 왜구들은 상선에 올라오기가 무섭게 장수로 보이는 자들을 조준했고 곧 총성이 울렸다.
“탕” “탕” “탕” “탕” “탕”
요란한 총성이 울리며 가슴에 총탄을 맞은 우성복이 비명도 지르지 못하고 쓰러졌다. 우성복의 뒤를 이어 임홍남을 비롯한 장수들이 차례로 피를 흘리며 쓰러졌고 병사들을 격려하며 사기를 올려주던 장수들이 쓰러지자 좌수군 병사들의 사기는 급격하게 떨어졌다.
“어서 활을 쏘지 못하겠느냐 빨리 왜구들을 몰아내라.“
전라좌수사 심암은 그 광경을 보고도 고래고래 고함을 지르며 왜구들을 몰아내라고 외쳤지만 상선 위로 올라오는 왜구들의 수는 점점 늘어만 갔다. 어느새 좌수군 상선의 갑판에는 왜구들이 가득했지만 심암은 몇 명 남지도 않은 병사들에게 고함만 지를 뿐이었다.
“무엇을 하느냐. 어서 빨리 왜구들을 몰아내지 못하겠느냐.”
전선의 망루에 올라 갑주차림으로 고함을 지르고 있는 심암은 조총병들에게 최고의 표적이었다.
“탕” “탕” “탕”
다시 한번 총성이 연이어 들리더니 심암이 망루 안에서 천천히 쓰러졌다. 심암이 죽은 후 좌수영의 상선과 좌수영 직속 전선은 왜구들에게 점령당했고 좌수영의 장수들과 군사들은 대부분 전사하거나 바다로 뛰어들어 익사했다. 선체 안에서 노를 젓고 있던 격군들은 살아남았지만 이들은 모두 왜구들에게 포로로 붙잡히고 말았다.
한편 내 명령에 따라 어둠속에 몸을 숨기고 바다를 달리고 있던 녹도전선은 서서히 동쪽으로 나아가고 있었다. 좌수군 본대가 있는 방향에서 또 다시 총성과 포성이 울리자 나는 왜구들의 공격이 시작되었다는 것을 직감했다.
‘저렇게 될 줄 알았다. 왜구들이 순순히 좌수군을 보내줄 리가 없지 심암이 이미 철수명령을 내렸을 테니 다른 장수들도 굳이 왜구들과 싸우고 싶은 마음이 없을 거야. 전투는 순식간에 끝날 수도 있다.‘
우선은 좌수영으로 돌아가야겠지만 아군이 공격받고 있는데 그냥 도망치는 모습만 보여서는 앞으로 군사들을 통솔하는데 문제가 생길 것이 분명했다.
‘아군이 박살나고 있는데 그냥 도망치는 모습만 보여서는 앞으로 군사들이 나를 따를 리가 없지. 나 같아도 적을 눈앞에 두고 도망만 치던 중대장이 돌격 명령을 내리면 도망칠 생각부터 할지 몰라. 군사들의 사기도 올리고 좌수영에 돌아가서 보급 받을 명분도 만들고 겸사겸사 관선 한 척 정도는 박살내고 가는 것이 좋겠어.‘
“타공은 키를 돌려라 뱃머리를 북쪽으로 돌린다.“
내 명령이 떨어지자 타공은 조심스럽게 키를 돌렸다. 전선이 북쪽으로 향하자 손대남과 이언세는 곧 전투가 벌어질 것을 예상하고 화포장과 사부들에게 다시 한번 주의를 주었다. 손대남과 이언세에게는 이미 내 계획을 설명해 두었으니 따로 설명할 필요가 없어서 편했다.
‘같이 싸운 지도 얼마 되지도 않는데 손발이 잘 맞는 느낌이군. 좋은 부하들을 만나서 다행이야.‘
북쪽으로 방향을 돌린 후 뱃머리로 나와 주변 바다를 살피던 나는 관선들이 모여 있는 곳으로부터 얼마간 떨어진 곳에 관선으로 예상되는 불빛이 보이자 그것을 목표로 삼았다.
‘다른 관선들은 좌수군 전선들을 포위했는지 모두 모여 있는데. 저놈 하나만 따로 떨어져 있구나. 움직이는 것을 보니 다른 관선들에게 합류하기 위해 서쪽으로 가고 있는 것 같은데. 좋아 저놈을 잡자.‘
전선의 방향을 북동쪽으로 돌릴 것을 명령한 나는 화포장 이동구를 불러 총통의 준비상태를 확인했다.
“좌측 갑판의 총통 중 3문에는 철환 3문에는 조란환을 장전하고 있고 우측 갑판의 총통은 6문 전부가 철환을 장전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지금 장전되어 있는 화약과 철환이 저희 전선에 남아있는 화약의 전부입니다. 더 이상 화약과 철환은 남아있지 않습니다.“
화약과 포탄이 다 떨어졌다는 말에 나는 정신이 번쩍 들었다.
‘하긴 지자총통은 천자총통 다음으로 화약소비량이 많은 대포인데 벌써 15발이나 쐈으니 화약이 떨어진 것도 무리는 아니지.‘
“수고 많았다. 이번 한차례만 방포한 뒤에는 좌수영으로 귀환할 것이니 더 이상 걱정할 필요는 없다.“
“알겠습니다. 만호나리”
이동구를 돌려보낸 후 나는 손대남과 이언세를 불렀다.
“좌수영으로 돌아가기 전에 한차례 더 왜구들을 공격하겠다고 했었지. 저기 동쪽에 보이는 왜선을 공격한다. 지금 우리 전선은 남쪽에서 북동쪽 방향으로 전진하고 있고 적선은 동쪽에서 서쪽으로 움직이고 있으니 우리 전선이 계속 전진하다 보면 적선과 마주칠 적이다. 적선과 마주치기 전 전선의 방향을 동쪽으로 돌리고 적선을 향해 전진해서 좌측 갑판의 총통을 적선에게 방포한다.“
“전투 준비를 위해서는 전선에 불을 밝혀야 합니다. 어둠속에서 총통을 다루는 것은 너무 위험합니다.“
손대남이 말에 나는 어렵지 않게 대답했다.
“물론이다. 전선의 방향을 동쪽으로 돌린 이후에는 전선에 불을 밝혀도 좋다. 그때에는 이미 적선과의 거리가 가까워졌을 테니 왜구들이 우리를 발견해도 상관없을 것이다.“
“그럼 화포장과 사부들을 준비시켜 놓겠습니다.”
손대남의 대답을 들은 후 나는 이언세에게 당부했다.
“조란환으로 적선을 공격할 것이니 적선에 최대한 가까이 접근하여야 할 것이다. 그리고 공격이 성공한 후에는 곧장 좌수영으로 향할 것이니 격군들에게도 힘껏 노를 저으라고 명하라“
“알겠습니다. 만호나리”
내 명령을 들은 두 사람은 각자의 자리로 돌아가 군사들에게 내 명령을 전달했다. 왜구들의 관선이 좌수군의 전선들을 향해 돌진해갔을 때 2척의 관선은 후방에서 왜구들과 좌수군의 전투를 구경하고 있었다. 그중 한 척은 긴시요라가 탑승한 관선이었고 또 다른 한척은 이마이 타케시가 지휘하는 관선이었다. 이마이 타케시가 지휘하는 관선은 녹도전선을 추격할 때 선두에 섰었다가 녹도전선의 총통 공격을 받아 뱃머리 부분이 파손되었다. 긴시요라가 3척씩 모여 공격대형을 갖출 것을 명령했을 때 이마이 타케시는 긴시요라에게 배가 파손되어 적선을 향해 돌격하기는 어렵다고 간청했고 파손된 배로 바다에 나오는 것이 얼마나 위험한 일인지 잘 알고 있었던 긴시요라는 이마이 타케시의 부탁을 받아들여 그의 관선은 다른 관선들과 달리 좌수군을 향해 돌격하지 않고 뒤에 남아 있을 수 있었다.
긴시요라의 공격 명령이 떨어진 후 관선들이 좌수군을 향해 돌격해 들어가자 왜구들은 큰 어려움 없이 좌수군의 상선과 좌수영 직속 전선을 포위하는 데 성공했고 긴시요라는 직접 관선을 몰고 전투에 참여했다. 긴시요라 까지 전투에 나서는 마당에 언제까지 뒤에 있을 수 없었던 타케시는 그제서야 전진할 것을 명령했고 그의 관선은 관선들이 모여 있는 곳으로 향하여 전진하고 있었다. 갑판위에 준비된 자리에 앉아 부하들을 지휘하고 있었던 이마이 타케시는 주변을 바라보며 얼굴을 찌푸렸다. 날이 완전히 어두워졌고 차가운 바닷바람이 불어오는 것이 뭔가 불길한 느낌이 들었던 것이다.
‘이놈의 바닷바람은 오늘 따라 유별나게 춥구나. 겨울밤이지만 오늘은 유난히 캄캄하기도 하고.‘
겨울에 바닷바람이 차가운 것은 당연한 일이고 밤이 어두운 것 역시 당연한 일이었지만 이마이 타케시는 이 모든 것이 마음에 들지 않고 못마땅했다. 왠지 불길한 느낌에 얼굴을 찌푸리고 있던 타케시는 갑자기 불빛들이 보이기 시작하자 놀라서 자리에서 일어났다.
“저것이 무엇이냐. 저기에 무엇이 있는 것이냐?.“
타케시가 왼쪽을 가리키며 외치자 갑판 위에서 횃불을 들고 서 있던 왜구들이 타케시가 가리키는 방향을 보며 외쳤다.
“배다.” “배가 다가오고 있다.”
불도 밝히지 않고 어둠속에서 항해하던 녹도전선이 드디어 불을 밝힌 것이다. 이동구와 이언세의 조언으로 적선을 조란환으로 공격할 수 있는 거리를 계산한 나는 적선에서 눈을 떼지 않고 바라보다가 과감하게 외쳤다.
“키를 돌려라 키를 오른쪽으로 돌려라”
녹도전선의 뱃머리가 돌아가는 것을 신호로 녹도전선에서 일제히 불을 밝혔고 화포장과 포수 그리고 사부들은 전투를 준비했다.
“힘껏 노를 저어라. 화포장은 내 명을 기다릴 필요 없다. 적당한 거리가 되면 그대로 방포하라“
“예이~”
녹도전선이 불을 밝히고 군사들이 전투를 준비하자 나는 망루로 돌아와 군사들에게 명령을 내렸다. 불빛을 보고 관선에서도 녹도전선을 발견했지만 이미 때는 늦었다. 이마이 타케시와 그의 부하들은 갑자기 나타난 배가 조선수군의 전선인 것을 확인하고 당황한 나머지 우왕좌왕하다가 공격할 시기를 놓쳤고 녹도전선은 이마이 타케시의 관선으로부터 남쪽으로 50m 가량 거리를 두고 마주보는 방향으로 다가오고 있었다. 잠시 후 녹도전선의 좌측갑판이 관선의 우측갑판을 완전히 마주보는 위치에 이르자
“쾅” “쾅” “쾅” “쾅” “쾅” “쾅”
녹도전선 좌측 갑판에 설치되어 있던 6문의 지자총통이 일제히 불을 뿜었고 300발의 조란환과 3발의 철환이 관선을 덮쳤다. 이마이 타케시를 비롯해 갑판위에 나와 있던 왜구들은 조란환 세례에 받고 쓰러졌고 선체에는 철환이 충돌하면서 큰 충격이 가해졌다.
“으으~”
어깨에 조란환을 맞아 왼쪽 어깨가 떨어져 나갔지만 이마이 타케시는 신음소리를 내며 몸을 일으켰다. 이제까지 느껴본 그 어떤 고통보다도 극심한 고통이 느껴졌지만 이대로 쓰러져 있으면 그대로 죽는다는 것을 본능적으로 느낀 이마이 타케시는 살겠다는 의지 하나로 고통을 참고 몸을 일으켰다. 오른 손으로 바닥을 짚고 간신히 몸을 일으킨 이마이 타케시는 고개를 돌려 주변을 바라보았다. 갑판위에는 그의 부하들이 쓰려져 있었고 어둠을 밝히기 위해 들고 있던 횃불들도 갑판 곳곳에 떨어져 있었다.
“아아 안 돼”
너무나 처참한 상황에 비명을 자르던 타케시는 한줄기 바람이 자신을 향해 불어오는 것을 느끼고 바람이 불어오는 방향으로 고개를 돌렸다. 그곳에는 불을 밝히고 있는 조선수군의
전선이 보였고 전선의 갑판위에서는 군사들이 활 시위를 당기고 있었다.
“퍽”
타케시가 조선수군 군사들이 활 시위를 놓는 것을 목격함과 동시에 화살이 타케시의 가슴에 명중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