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조선 수군이 되었다-10화 (10/2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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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좌수영

“만호 나리 날이 밝았습니다.”

이언세의 목소리에 잠에서 깼다. 눈을 뜨고 일어나니 나는 전선의 선실에 누워있었다.

‘지난밤에 망루에서 졸다가 이언세가 선실로 안내했지 잠이라도 편하게 자라고.‘

지난밤 홀로 떨어져 있던 관선을 공격한 것은 대성공이었다. 기습포격으로 갑판에 서 있던왜구들은 대부분 쓰러졌고 사부들은 불화살을 날려서 관선에 불까지 질렀다. 포격에 이어서 불화살을 날린 후 곧바로 후퇴했으니 관선의 최후는 확인하지 못했지만. 그 정도 피해를 입었으니 그 배가 앞으로 바다에 나오기는 힘들 것 같았다. 공격이 성공한 후 나는 곧장 좌수영으로 배를 몰 것을 명령했고 밤이 깊어지자 나도 모르게 졸기 시작했다. 졸고 있던 나를 이언세는 선실로 안내했고 덕분에 잘 잘 수 있었다.

“알았다. 곧 나가갔다.”

“알겠습니다. 만호 나리”

이언세가 물러나자 나는 두정갑을 입고 허리에 환도를 찼다. 투구까지 쓰고 갑판으로 나오자 이미 해가 중천에 떠있었다.

“이미 사시(巳時, 오전 9시∼11시)는 됐겠군. 좌수영 까지는 얼마나 걸리겠나?.“

“한 시진(2시간) 정도 더 가야 할 것 같습니다. 밤바다를 해쳐왔고 혹시 몰라 해안가에서 떨어져 왔기에 시간이 더 걸릴 것 같습니다.“

이언세의 대답에 나는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

“좋아. 병사들의 상태는 어떠한가? 아침밥은 먹였겠지.”

“만호 나리께서 명하신 대로 어두워진 다음에는 돛으로만 항해하고 격군들은 쉬게 했습니다. 병사들도 경계를 서는 것 외에는 편히 쉬게 했지만 어제 워낙 치열하게 싸운지라 격군들은 휴식이 더 필요합니다. 이틀 정도는 더 쉬어야 할 것 같습니다.“

“좋아. 수고했다. 좌수영에 도착하면 병사들은 쉬게 할 것이다. 그리고 손군관.“

“예 만호 나리”

“좌수영에 도착하는 대로 녹도진에 전령을 보내도록 하라 대기 중인 전선은 출정준비를 갖추고 있다가 내 명령이 떨어지면 즉시 출정할 수 있도록 말이야.“

“예 알겠습니다.”

“최대한 많은 양의 화약과 무기 그리고 군량을 싣고 출정해야 한다고 전하라.“

“예 만호 나리”

어제 손대남 이언세와 대화를 하다가 알게 된 사실이었다. 전라좌수사 심암은 좌수군이 출정하기 전에 좌수군에 동원령을 내렸으니 이번에 수군역을 설 차례가 아닌 장정들도 좌수영이나 각자가 수군역을 서는 진에 소집됐을 것이다. 나는 녹도진에 소집된 병력을 동원해 녹도진에 대기하고 있는 판옥선을 출동시킬 계획이었다.

녹도진에는 원래부터 판옥선이 두 척이 있었다. 평상시에는 한 척만 운용하다가 전쟁이나 이런 전란이 벌이지는 경우에는 장정들을 소집해 두 척을 동시에 운용하는 것이다.

‘녹도진에서 전선 한척을 더 동원하면 화력이 두 배가 된다. 그리고 좌수수영에도 소집된 병력이 있을 테니 우후와 예기만 잘 된다면 좌수영의 전선들도 동원할 수 있을지 몰라 좌수영에서 대기하고 있는 2척의 전선이 모두 출병한다면 출병할 수 있는 전선이 최대 4척이다. 화포로 무장한 판옥선 4척이면 왜구들을 충분히 상대할 수 있다.‘

생사가 달린 극한 상황에 몰렸던 나는 어느새 독한 마음을 가질 수밖에 없었다. 나는 이번 기회에 좌수영에서 식량과 화약은 물론 병력과 전선까지 한몫 단단히 뜯어낼 궁리를 하고 있었다. 내가 이런 생각을 동안에도 전선은 항해를 계속해 순천부(현대의 여수, 순천)에 위치한 전라좌수영에 도착했다.

“아니 녹도 만호 이게 무슨 일인가?”

출정했던 좌수영의 함대 중에서 녹도전선만이 홀로 좌수영으로 돌아오자 전라좌수영 우후(종3품) 한정복은 많이 놀란 것 같았다.

‘포구에는 좌수영 직속의 전선들만 보이고 우후의 반응을 보니 다른 전선들은 아직 좌수영으로 귀환하지 않았구나. 잘됐다.’

“우후 나리 큰일 났습니다.”

내가 전선에서 내리기 무섭게 호들갑을 떨며 외치자 우후는 한층 더 놀란 표정을 지었고 우후의 목소리도 덩달아 커졌다.

“큰일이라니 무슨 일인가”

“저희 좌수군이 왜구들에게 기습을 당해 좌수사 영감께서도 위험하신 상황입니다.“

좌수사가 위험하다는 말에 우후는 소스라치게 놀랐다.

“뭐라고 좌수사 영감이 위험하다니 도대체 어떻게 된 일인지 자세히 말해 보게 어서 아니 아니지 방금 전장에서 돌아온 사람을 이리 세워 둘 수 없지 어서. 안으로 가세.“

우후를 따라 좌수영 동헌으로 들어서기 무섭게 물을 청한 나는 사발에 담긴 물을 단숨에 들이마시고 손죽도 앞바다에서의 상황을 내 나름대로 각색해서 설명했다.

“좌수사 영감께서 저희 녹도진에 선봉을 명하셔서 손죽도로 진군해갔습니다. 그런데 왜구들이 저희 녹도전선을 발견하더니 왜선들을 모조리 몰고 바다로 나오는 것이 아닙니까. 적선의 수가 무려 스무 척에 가까워 보였습니다.“

“뭐 왜선이 스무 척이나 됐다고?”

우후 한정복은 왜구들의 규모에 놀랐다.

“예 나중에 세어보니 적선은 정확히 18척이었습니다. 물론 왜선은 저희 판옥선 보다 작고 화포도 장비하고 있지 않지만 적선의 수가 18척이나 되니 녹도전선 혼자서는 싸울 엄두가 나지 않았습니다. 더구나 왜구들도 승자총통과 흡사한 무기를 가지고 아군 전선을 향해 방포하는 통에 아군 포수들이 대응하기 어려웠습니다.“

왜구들이 총통으로 무장했다는 말에 한정복의 표정이 심각하게 변했다.

“그러니까 왜구들이 새로운 병기를 가지고 왔다는 말인가?“

“그렇습니다. 형태는 승자총통과 비슷한데 정확도는 승자총통보다 더 정확한 것 같았고 장전속도도 빨랐으며 위력도 대단했습니다.“

“승자총통처럼 휴대하기 편하면서 더 위력이 강한 새로운 병기라?“

왜선들의 수가 많으나 저희 녹도전선은 당해내지 못하고 좌수군 본대가 있는 곳으로 후퇴할 수밖에 없었습니다. 왜선들이 끈질 지게 쫓아왔지만 기회를 봐서 총통을 방포해 왜선 두 척을 파괴하는데 성공했습니다. 간신히 왜구들에게 후퇴하여 좌수군 본대와 합류했는데도 왜구들이 겁도 없이 좌수군 전선들을 향해 달려들었습니다.“

“그래서 어떻게 됐는가?”

한정복은 다급하게 물었고 나는 피곤하다는 듯이 한숨을 내쉰 후 다시 입을 열었다.

“녹도전선은 물론 좌수군 전선들이 일제히 총통을 방포해 왜선 두 척을 불태워 버렸습니다. 왜선들 중에서 선두에 나섰던 왜선들이 두 척이나 불타자 왜구들은 잠시 물러났고 저희는 전열을 재정비했습니다. 저는 왜선들의 옆구리를 찌르기 위해 녹도전선을 남동쪽으로 우회시켜 왜선들 좌측면을 공격하려고 했는데 그 사이에 왜선들이 전열을 재정비했는지 좌수군의 본대를 공격했습니다.“

“그래서 좌수군 전선들이 왜구들에게

당했다는 말인가?“

한정복 믿기지 않는다는 듯이 외쳤고 나는 침착하게 설명했다.

“이미 날이 어두워진 다음이었지만 왜구들이 총통을 방포하는 소리가 요란하게 들려왔습니다. 왜선은 판옥선 보다 작고 허약하나 속도가 빠르니 왜선들이 빠른 속도로 좌수군의 본대에 달려들며 왜구들이 총통을 방포했다면 포수와 사부들도 반격하기 어려웠을 것입니다. 포수들이 방포하지 못하는 사이에 재빨리 왜선이 전선에 달라붙고 왜구들이 왜검을 꿰차고 전선의 갑판 위로 올라갔다면 우리 군사들도 속수무책으로 당할 수밖에 없었을 것입니다.“

내 말을 들은 우후는 혀를 찼다.

“왜구들이 포악하고 왜검을 제 몸처럼 잘 휘두르는 것은 익히 잘 알려진 사실인데 왜구들이 전선에 올라탔다면 병사들은 물론 장수들도 무사하지는 못했겠구나.“

“좌수군의 본대에 왜선들이 다가가고 있는 것을 알았지만 이미 날이 어두워지고 있었고 화약도 넉넉하지 않아 어쩔 수 없이 철군하였습니다. 좌수사 영감께서 위험에 처하신 사실을

우후 나리께 알리는 것이 무엇보다 중요할 것 같아 밤바다를 달려서 곧장 좌수영으로 달려왔습니다.“

전라좌수사가 위험에 처했다는 말에 우후의 얼굴이 창백해졌다.

“이런 이를 어찌한단 말인가?“

한정복이 당황해서 어쩔 줄 몰라 하자 나는 기회를 놓치지 않고 한정복에게

권했다.

“우선 우후 나리께서는 한시라도 빨리 주상전하께 장계(狀啓)를 올리셔야하지 않겠습니까.“

“장계(狀啓)를 내가 말인가?”

“좌수사 영감께서 변을 당하셨으니 우후 나리께서 좌수영의 공무를 처리하셔야 하지 않겠습니까. 주상전하께 장계를 올려 이곳의 상황을 자세히 보고하셔야 합니다.“

내 말을 들은 한정복은 고개를 끄덕이며 대답했다.

“그렇지 좌수사 영감께서 수영을 비우셨으니 마땅히 내가 책임을 져야지. 만호의 말이 옳다. 내 당장 주상전하께 장계를 올리겠네.“

한정복이 장계를 쓰겠다고 하자 나는 웃음이 나오는 것을 참으며 고개를 숙였다.

‘됐다. 심암이 지난밤의 전투에서 죽지 않고 살아남았다고 해도 심암이 아닌 한정복이 쓴

장계가 먼저 한성으로 올라가면 심암은 자기 마음대로 나에게 죄를 묻기는 어려울 것이다.아니 심임이 패했다는 소식이 조정에 전해지면 조정에서는 전란을 수습하기 위해 다른 장수를 내려 보낼 것이 분명해. 지금 상황에서는 누가와도 심암이 좌수사로 있는 것 보다는 내게 유리하다.‘

나에게 있어서 최악의 시나리오는 심암이 무사히 좌수영으로 돌아와 나와 녹도군에게 패전의 책임을 뒤집어씌우고 군법을 내세워 나를 처형하는 것이다. 일단 심암이 왜구들에게 패했다는 소식이 한성으로 전해지면 심암의 지휘권은 그대로 박탈되고 좌수군의 지휘권을 위임받은 다른 장수가 내려올 것이다. 즉 심암은 그대로 아웃되고 나와 녹도군의 안전은 보장된다. 이제 안전은 보장됐다는 생각에 마음이 놓인 나는 애써 웃음을 참으며 심각한 표정으로 한정복에게 말했다.

“지금 왜구들의 기세가 심상치 않습니다. 왜구들이 손죽도를 거점으로 삼아 해안가를 돌아다니며 노략질을 할 것이 염려되니 전라우수사에게도 왜구들이 침입한 사실을 알려 대비하게 해야 할 것 같습니다. 전라감사에게도 좌수군이 패배한 사실을 보고하고 지원을 요청하는 것이 좋을 것 같습니다.“

내 말을 들은 한정복은 고개를 끄덕이며 대답했다.

“좋은 생각이야. 우수사 영감과 감사 영감에게도 글을 써서 좌수군의 상황을 보고하고 지원을 요청하겠네.“

“우후 나리가 계시니 좌수영은 이제 아무 염려가 없겠습니다. 우후 나리께서 든든히 좌수영을 지켜주시니 저는 전선을 정비해 다시 바다로 나가겠습니다.“

한정복은 놀란 표정으로 나를 바라보았다.

“아니 방금 전에 바다에서 돌아온 사람이 곧 바로 다시 바다에 나가겠다니 너무 무리하는 것 아니가? 하루도 쉬지 않고 곧바로 출정하는 것은 무리야.“

“좌수사 영감께서도 왜구들에게 해를 입으셨을 수도 있지만 혹시나 아직 살아계실지도 모르는 일입니다. 좌수사 영감 말고도 왜구들에게 잡혀간 병사들이 많을 것이니 한시라도 빨리

이들을 구하러 가야 합니다.“

나는 최대한 심각한 표정을 지으며 말했고 한정복은 좌수사를 구하러가겠다는 말에

감동한 것 같았다.

“그렇지 아직 왜구들이 물러간 것이 아니지 우리 좌수군이 한번 패했다고는 하지만 싸우지 못할 지경에 이른 것도 아니고.“

조선 수군은 군역 대상자들이 2교대로 1개월씩 번갈아가며 복무하도록 되어 있었으니 1년에 6개월을 근무하는 셈이었다. 평상시에는 수군의 절반이 복무하고 왜란이나 전시에는 동원령을 군역 대상자 전원을 동원하는 방식이었다. 이번에 복무할 순번이 아니었던 장정들도

동원령에 따라 이미 좌수영과 각 진에 소집된 상태였다. 심임이 끌고 나갔던 병력 이상의 병력이 좌수영과 각 수군진에서 명령을 기다리고 있는 셈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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