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조선 수군이 되었다-11화 (11/2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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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좌수영 2

“만호의 뜻이 참으로 장하군. 내가 도와줄 일은 없겠나?“

좌수영 우후 한정복이 먼저 도와주겠다고 나섰으니 좌수영으로 돌아온 목적을 달성하는 것은 어려운 일이 아니었다. 나는 계획했던 대로 출정에 필요한 지원과 병력 그리고 전선을 우후에게 요청했다.

“가장 시급한 일은 저희 녹도전선에 식량과 화약 그리고 무기를 보충하는 것이고 격군들이 많이 지쳐 있으니 좌수영에 소집된 격군들로 녹도전선의 격군들을 교대시켜 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한정복은 어렵지 않다는 듯이 시원하게 대답했다.

“그 정도는 얼마든지 도와줄 수 있지. 명령을 내려놓겠네. 식량은 물론 화약이건 화살이건 필요한 것은 얼마든지 가져가게. 격군들도 걱정하지 말게 좌수사 영감께서 출정하시기 전에 이미 전라좌수영의 모든 고을과 진에 동원령을 내리셨네. 인근 고을의 장정들이 좌수영에 모여 있으니 격군들도 교대시켜 주겠네.“

이런 한정복의 대답에 나는 한결 밝아진 얼굴로 한정복에게 말했다.

“감사드립니다. 그리고 염치없지만 몇 가지 더 부탁드려도 되겠습니까?“

“무슨 말을 그렇게 하나 필요한 것이 있으면 얼마든지 말만 하게 내가 도울 수 있는 일은 최선을 다해 도와줄 것이네.“

“지난 전투에서 손죽도에 진을 치고 있는 왜선들을 보니 그 수가 18척에 달했습니다. 지난 전투에서 왜선을 3척이나 불태웠지만 왜구들에게는 아직도 15척 이상의 왜선이 남아있을 것입니다. 저와 녹도진의 군사들은 죽기를 각오하고 싸울 생각이지만 녹도진의 전선만으로는 왜구를 물리치고 좌수사 영감을 구하기가 어려울 것 같아 어려운 부탁을 드리려고 합니다.“

이번에는 한정복이 먼저 눈치 채고 말했다.

“좌수영 직속 전선을 원하는 것인가? 판옥선 2척과 협선 4척이 준비되어 있기는 한데.“

한정복이 바로 대답하지 못하고 고민하는 모습을 보이자 나는 한정복을 재촉하지 않고 조용히 대답을 기다렸다.

‘어차피 내가 아니면 전선을 이끌고 나갈 장수가 없다. 이미 좌수군이 참패한 상황에서 우후가 직접 전선들을 이끌고 나가고 싶지는 않을 테니.‘

내 생각대로 한정복의 고민은 길지 않았다. 우후는 종3품 품계로는 좌수영에서 정3품인

좌수사 다음가는 부사령관급이지만 무관이 아닌 문관 출신인 한정복은 전선을 몰고 나가 왜구들과 전투를 벌이고 싶은 생각이 전혀 없었다.

“좋아 왜구들을 몰아내야 하고 무엇보다 좌수사 영감을 구하는 일이 급하니 좌수영에 남아 있는 전선들을 만호에게 맡기겠네. 그리고 또 필요한 것이 있나?“

이제까지 한정복이 약속한 것만으로도 좌수영에서 받을 만큼 받았지만 필요한 것이 더 있냐는 한정복의 말에 나는 욕심을 냈다.

“마지막으로 한 가지만 더 말씀드리겠습니다.“

“얼마든지 말해 보게”

“왜구들은 기습에 능하고 검을 잘 다루는 반면 아군은 습사와 방포에 능숙합니다. 왜선을 격침시키는 것은 화포를 방포하고 화전을 날리는 것으로 충분하나 좌수사 영감과 아군 병사들을 구출하기 위해서는 손죽도로 상륙해 왜구들과 일전을 벌이는 것이 불가피한 일입니다.왜구들과의 일전을 위해 검술에 능한 무관들을 지원해 주실 수 있으시겠습니까?“

이번에도 한정복은 순순히 부탁들 들어주었다.

“염려 말게 좌수영의 군관들과 이번에 소집된 한량(閑良)들을 지원해 주겠네.“

“감사합니다. 최선을 다하여 왜구들을 토벌하고 좌수군의 패배를 설욕하도록 하겠습니다.“

“왜구를 토벌하려는 만호의 마음을 내가 잘 알겠네. 만호가 두려워하지 않고 왜구와 싸우려는 것은 그만큼 만호가 용맹하다는 증거이고 왜구와 싸워 패배를 설욕하고 좌수사 영감을 구하려는 것은 나라와 좌수군에 대한 충성심이 대단하다는 것을 보여주니 내가 어찌 위로하지 않겠나. 내 오늘은 만호와 녹도진의 병사들을 위로하고 격려하겠네. 저녁상을 거하게 준비하라고 명하고 반주도 준비할 테니. 오늘 저녁은 편히 쉬고 내일 준비가 끝나는 대로 출정하도록 하게.“

“알겠습니다. 우후 나리 감사합니다.”

좌수영 우후 한정복으로 부터 지원을 약속받은 나는 편안한 마음으로 좌수영 객사로 향했다.

녹도전선이 전라좌수영에 도착한 바로 그 시간 손죽도에서는 긴시요라(緊時要羅)가 사화동으로부터 포로들을 심문한 내용을 보고 받고 있었다.

“전라도 수군이라는 말이지.”

긴시요라의 질문에 사화동은 재빨리 대답했다.

“예 전라좌수군이라고 합니다.”

“전라좌수군?”

“조선은 전라도와 경상도에 각각 두 개씩의 수군영을 두고 있습니다. 전라도에는 좌수군과 우수군 이렇게 2개의 수군 군영이 있습니다.“

진도 태생의 조선인인 사화동은 조선수군에 대해 잘 알고 있었다. 이번에 왜구들이 무사히 바다를 건너 조선에 도착한 것도 사화동이 바닷길을 안내했기 때문이었다. 사화동의 대답에 긴시요라는 흥미롭다는 듯이 물었다.

“그럼 이번에 우리가 쳐부순 좌수군 말고도 전라우수군이 따로 존재하는 것이냐?“

“예 그렇습니다.”

사화동의 대답에 긴시요라는 가소롭다는 표정을 지으며 말했다.

“재미있는 놈들이군. 그렇지 않아도 허약한 전력을 한데 집결시키지도 않고 둘로 나눠놓다니.“

긴시요라는 조선수군이 허약하다고 비웃었다. 어제의 전투로 긴시요라가 이끄는 왜구들도 상당한 피해를 입었지만 전라좌수군의 수장인 좌수사 심암을 죽였으니 긴시요라와 왜구들은 자신들이 대승을 거두었다고 생각하고 있었다. 조선인인 사화동은 18척의 관선 중에서 3척이 불타고 2척이 파손되는 피해를 입은 왜구들이 비록 좌수군의 상선과 좌수영 직속 전선이라고는 하지만 조선수군의 전선 2척을 점령하고는 대승을 거뒀다고 생각하는 이유가 궁금했지만 그 이유를 굳이 물어보지는 않았다.

“어제 포획한 전선에 적군 총대장이 타고 있었다고 했나?“

긴시요라의 질문에 사화동의 대답이 이어졌다.

“예 그렇습니다. 전라좌수사가 상선에서 지휘하고 있었는데 전투 중에 철포(鉄砲)[조총]에 맞아 숨진 것으로 보입니다.“

사화동의 대답에 긴시요라는 껄껄 웃으며 조선 수군을 비웃었다.

“한심한 놈들. 능히 우리와 싸울만한 화력을 가지고 있었으면서도 도망치기 바빴다니 자기들 총대장이 죽은 것 도 모르고 꽁지가 빠지게 도망치다니 한심하다. 한심해. 놈들의 총대장이 죽었으니 도망친 놈들도 할복을 면하기는 어렵겠구나.“

해적질을 하고 있지만 긴시요라도 일본에서는 어엿한 사무라이라 불리는 무사였고. 일본 무사들은 자신의 주군을 지키지 못하는 것을 수치로 여겼다. 긴시요라를 비롯한 왜구들이 조선수군을 상대로 대승을 거뒀다고 생각하는 것도 자신들의 손으로 전라좌수사를 죽였기 때문이었다. 긴시요라가 조선 수군을 비웃는 것을 듣고 있던 사화동은 일본과 달리 조선의 장수들은 패배했다고 할복을 강요당하지 않는다는 것을 알고 있었지만 긴시요라 앞에서는 입을 다물었다. 한참을 껄껄거리며 웃던 긴시요라가 웃음을 멈추고 사화동에게 물었다.

“네가 이 근방의 뱃길을 잘 안다고 했었느냐?“

“예 소인이 살던 곳이 이곳에서 서쪽에 있는 진도라는 섬입니다. 고기잡이를 하며 배를 타고 돌아다니던 곳이라 진도 앞바다는 물론 전라도 해안지역의 뱃길에는 자신이 있습니다.“

사화동의 대답에 긴시요라는 마음에 든다는 표정을 지으며 말했다.

“좋다. 오늘 하루는 쉬고 내일 날이 밝는 대로 전선을 몰고 바다로 나갈 것이다. 너는 뱃길을 안내하는데 있어서 한 치도 실수가 없어야 할 것이다.“

“예 알겠습니다. 뱃길은 물론 해안가 일대를 제 손바닥 보듯 알고 있으니 아무 염려 마십시오.”

사화동이 자신 있게 대답하자. 긴시요라는 다시 한번 껄껄 웃으며 말했다.

“좋아 이번에 무사히 오도로 돌아가면 너도 신세가 필 것이다.“

“예 감사합니다.”

사화동은 긴시요라에게 고개를 조아렸다. 긴시요라에게 고개를 숙인 후 밖으로 나온 사화동은 잠시 하늘을 바라본 후 자신의 숙소로 배정받은 집을 향해 걸었다. 조선에서 그것도 해안가 마을에서 태어나 각종 군역과 공납을 부담하며 살아왔던 사화동은 조선에 아무런 미련도 없었지만 왜구들에게 조선으로 오는 길을 안내하고 왜구들을 대신해 조선인 포로들을 신문하는 일은 마음에 걸렸다.

‘마음 편한 일은 아니지만 어쩔 거야. 조선으로 돌아가면 왜구들 앞잡이라고 바로 목이 잘려서 효수될 테고 조선에서 사는 동안은 한번이라도 마음 편하게 살았었나. 수군군역에 전복공납에 온갖 부역에 차라리 오도로 떠내려간 것이 백배 천배 잘된 일이지.‘

사화동은 어쩔 수 없는 일이라고 스스로를 다독이며 자신의 숙소로 들어갔다.

“으음”

잠들어 있다가 목이 말라서 눈을 뜬 나는 눈앞이 캄캄한 것을 보고 내가 조선에 있다는 것을 다시 한 번 실감했다.

“아직 한 밤 중인가 시계도 핸드폰도 없는 세상이라니 확실히 불편하네.“

투덜거리면서 몸을 일으킨 나는 손으로 자리 주변을 더듬으며 그릇을 찾았다.

“역시 목마르면 마시라고 가져다 놓은 물이 있구나.“

머리맡에서 찾은 그릇을 들어 올려 살짝 맛을 보니 역시 물이었다.

“목마른데 잘됐다.”

물인 것을 확인하고 그릇째 단숨에 들이마시고 다시 그릇을 머리맡에 놓은 후 잠시 멍하니 앉아 지난 저녁에 있었던 일을 생각해봤다.

“어제 우후가 권하는 술을 마시고 방으로 들어온 것 까지는 기억이 나는데.“

전날 저녁 우후를 비롯한 좌수영의 장수들과 저녁식사를 함께했다. 우후는 내게 함께 출정할 장수들과 한량들을 소개했고 나는 그들과 인사를 나누며 함께 술잔을 비웠다.

“아무리 출정을 축하하는 자리라고 하지만 너무 과했어. 술에 기생들 까지 있었으니.“

저녁을 거창하게 대접하겠다던 우후의 장담대로 저녁상은 푸짐하게 차려졌고 관기들 까지 나와 술시중을 들었다. 출정을 준비하고 있는 전라좌수영은 전시와 다름없는 상황이었지만 장수들은 술을 따라주는 관기들의 애교에 자리에서 일어날 줄 몰랐고 저녁 자리는 늦게까지 이어졌다. 술잔은 비워지기 무섭게 다시 채워졌고 우후가 권하는 대로 색이 맑고 투명하지만 도수는 상당히 높은 약주를 여러 잔 마신 나는 술기운이 오르는 것을 느끼자. 몸이 피곤하다는 핑계로 우후에게 양해를 구하고 먼저 자리에서 일어났다.

“방으로 일찍 들어오길 잘했지 내일 전장으로 나가야 하는데.“

머릿속으로 생각을 마치고 더 자기위해 자리에 누운 나는 옆에 있는 이불에 손을 뻗어 잡아끌었다.

“응 이게 뭐야?”

무심코 잡아당긴 이불 속에서 묵직한 중량감이 느껴졌고 누군가의 숨소리가 들려왔다.

“이건 누구야?”

이불속에서 사람을 발견하고 놀란 나는 몸을 일으켜 이불을 온몸으로 말고 있는 사람을 바라보았다. 방은 아직도 어두웠지만 보려고 하자 신기하게 어둠속에서도 눈이 보였고 그 사람이 여자인 것을 알 수 있었다.

“왠 여자야 관기인가?”

저녁 연회에서 내 옆에 앉아 잔을 채워주던 관기가 있었다. 조심스럽게 얼굴을 보니 어제 옆자리에 있었던 관기가 분명했다.

“자리에서 일어났을 때 방에 까지 따라왔었지. 방으로 들어가기 전에 돌아가라고 말했었는데 분명 나 혼자 방으로 들어왔고 방에 들어와서는 바로 자리에 누웠는데.“

분명히 돌려보낸 관기가 지금은 내 옆에 누워있었다.

“우후의 명을 받고 방으로 들어왔나 보군.“

바로 옆에 기생이 잠들어 있었지만 워낙 뜻밖의 상황이라 욕정이 생기지는 않았다. 조선의 녹도만호 이대원은 이미 혼인을 해서 부인이 있었지만 대한민국 해병대 출신에 특전사 중위인 나는 그동안 변변한 애인 한번 없었던 그야말로 모쏠이었다. 이런 경우는 생각해 본적도 없었기에 그냥 당황스러웠다.

“한밤중에 밖으로 내보낼 수도 없으니 그냥 재우자.“

나는 기녀에게 이불을 덮어주고 그대로 자리에 누웠다.

“다음날 전장에 나가는 장수에게 기생을 보내다니 이건 아닌 것 같은데.“

전장에서 사기를 높이기 위해 병사들에게 음주를 허락하는 경우는 간혹 있었다. 그러나 다음날 출정해야 하는 상황에서 그것도 모범을 보여야할 장수들이 술을 마시고 기생과 관계를 가지는 것은 마음에 들지 않았다.

“조선 시대이니 장수들이 기녀들과 관계를 가지는 일은 흔한 시대라고 하지만 출정하기 전날 이러는 건 아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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